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
-
머슴과 종년의 나라
이년 전 겨울 노숙자들의 숙소에서 특이한 남자를 본 적이 있다. 팔랑귀에 움푹 들어간 작은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육십대 말쯤으로 보이는 그는 북한을 갔다 왔다는 죄로 징역을 살고 나왔다고 했다. 탈북을 해서 대한민
-
어떤 간호사의 고백
오랫동안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비밀을 들어왔다.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누구에겐가 자기의 속에 꽉 꽉 눌러왔던 말을 토해내고 싶어 한다. 성직자 다음으로 변호사가 그런 얘기
-
회고록
공기업 사장을 지냈던 선배가 사무실로 놀러왔다. 칠십대 인 그는 은퇴를 하고 책과 영화를 보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세월을 낚고 있다. 서울공대 토목과를 나온 그는 건설회사에 들어가서 해외 건설현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
-
계란부침
한 영화에서 초라하게 늙은 여배우 허진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서린 여인역할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배우로 분장한 게 아니라 현실 자체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목살이 늘어져 골 깊은 주름에 겹쳐져 있었
-
한 서민의 조용한 실종
어린 시절 같이 놀던 동네친구의 실종소식을 들었다. 아내와 같이 여행을 했던 남해의 작은 섬에서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들어갈 때 선착장에 있던 CCTV에는 모습이 찍혔는데 그 후 부터는 연락이 두절됐다는
-
민주화 투사
가끔 사무실로 놀러오는 고교 후배가 있다. 그의 삶의 행적을 보면 고개가 수그려진다. 그는 일찍부터 세상을 보는 사회의식이 예리했다. 대학시절 독재에 항의하는 데모에 가담했다가 징역을 살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었다.
-
한 덩어리의 기억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대학동기모임이 있다. 밥만 먹고 헤어지기보다 잠시지만 강사를 초청해서 영양가 있는 얘기들을 듣자고 결정했다. 어느 날 모임에 육십대 중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나왔다. 은발이 섞인 부드러운
-
동네 밥집여자
나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지하에는 고만고만한 밥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김치찌개, 된장찌개, 백반을 파는 서민식당이다. 그중 유난히 음식이 맛깔스러운 밥집이 있었다. 콩나물을
-
당당하고 정직한 가난
삼십대 중반인 아들과 이따금씩 세상에 관한 대화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가난하지만 당당한 친구들을 볼 때가 있어. 함께 돈을 써야 할 경우가 있어. 그런 때 주저
-
너의 일이 즐거운가?
광화문의 프레스센터내 레스트랑에서 바둑협회장과 모신문 편집국장을 만나 밥을 먹는 자리였다. 나는 바둑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 그렇지만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그 분들의 권유로 바둑협회 이사가 됐다. 이사회에 참석해
-
보석함과 사료통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말하는 진행자의 몇마디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처음 들어보는 우화였다.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나무는 귀한 보석함이 되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나무의
-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노무현이 공사장 옆 도로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악수를 청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면서 피해갔다. 그는 길가 식당에 들어가서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주방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