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야권 대통합 추진모임 ‘혁신과 통합’ 발족식에서 참석자들이 혁신과 통합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럼 민주당은 어디서 실패했나. 그 첫째는 노쇠화다.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87명의 평균 나이는 57.7세. 전체 국회의원 평균 연령(56.2세)보다 높은 것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 168명의 평균 나이 57.3세보다도 높다.
‘영원한 DJ맨’이랄 수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30대 초반의 386세대들을 대거 영입했던 민주당인데, 그들이 486이 되고 586이 될 때까지 추가적인 ‘새 피 수혈’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는 지난 10월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범야권 후보 경선장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맞서 박영선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던 민주당 인사들이 오후 들어 젊은 층 유권자들이 경선장으로 밀려드는 모습에 사색이 된 것이다.
당시 현장을 지켰던 한 의원은 경선을 마치고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해서 분한 게 아니라 젊은 층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 민주당의 한심한 처지에 속이 터진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한계는 많은 국민들에게 ‘불통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192만 명이나 된다는 민주당원들에게 당은 여전히 지도부와 국회의원 87명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당원들이 소외될 정도이니 일반 국민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민주당은 제1 야당으로서 대표성의 위기도 겪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이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을 바라보고 있거나 무당파층으로 빠져나갔다. 한나라당과 1대1 대결 구도를 만들지 못하면 총선 승리도, 정권교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15% 안팎에 머무는 데서 알 수 있듯 민주당만으로는 그런 구도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진 상황이다.
야권 통합 논의의 판이 완전히 깨지지 않는 한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등이 함께 만들어 갈 통합정당은 이 같은 민주당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적극적인 2030세대 끌어안기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학 등록금 문제, 취업난, 전·월세난, 보육비와 사교육비 문제 등 2030세대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통합정당은 이를 위해 2030세대에 문호를 크게 열어젖힐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야권 통합정당 추진을 위한 연석회의 준비모임에 참석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19세밖에 안된 연방 하원의원을 만나 충격을 받았었다”면서 “우리도 통합정당을 만들면 (공무담임권이 있는 최저연령인) 26세 국회의원을 배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현재의 민주당 국회의원 87명 중 10%만이라도 2030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면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어려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새 피 수혈’ 필요성을 강조했다. 통합정당의 당권을 노리고 있는 그는 “지역구 의원 공천 때 2030세대 후보에게 가산점을 주고,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비례대표 의원은 거의 100% 젊은 층을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과거 DJ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당시 30대의 김부겸 의원에게 부총재직을 제안했던 것처럼 통합정당에 2030세대 최고위원을 임명직으로 배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통합정당이 출현할 경우 26세 국회의원, 2030세대 최고위원을 기대할 수도 있는 셈이다.
통합정당은 또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기 위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정당’, ‘개방형·시민참여형 정당’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과 통합’은 “신속하게 소통하고 역동적으로 참여하며 이슈를 선도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가 소통과 의사결정, 홍보의 주요 수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9일 ‘혁신과 통합’ 주최로 열렸던 ‘Let’s Party’ 행사는 이런 SNS를 이용해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과 대응 방향을 정하는 실험의 일환이었다. 이 행사는 SNS를 통한 실시간 토론과 여론조사까지 선보이며 이른바 ‘집단지성에 의한 정책 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직 실험 단계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정착될 경우 현재까지 의원총회에서 결정되던 당론을 이런 SNS 토론과 여론수렴을 통해 당원과 시민들이 결정하는 모습이 출현할 수도 있는 셈이다.
소통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당 운영에 참여하는 데 걸림돌이 돼 온 높은 장벽도 대거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개방형 시민당원제’ 도입을 통해 누구든 쉽게 당원이 될 수 있게 하고 ‘온라인 당원제’도 도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정책 결정과 공직후보자 선출, 심지어 당 지도부 선출에 이르기까지 일반 국민들이 폭넓고 깊게 참여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서울대 총장을 고려대 교수가 뽑고 한국노총 위원장을 전경련 회원사 사장이 뽑는다는 말이냐”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아직은 적잖은 반발이 있는 게 사실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민주당에서 지도부를 뽑는다면 박지원 전 원내대표, 이인영 최고위원 등 많은 국회의원·지역위원장의 지원을 받고 조직력을 갖춘 사람들이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높지만 투표권을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한다면 ‘컷오프’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보정당들이 딴 살림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대표성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연합정당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빅 텐트(big tent)’론이라고도 하는 연합정당 방식은 통합정당의 큰 틀 안에 제 정파가 나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고 ‘당 내 당’ 형식으로 공존하자는 구상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통합정당의 색깔은 지도부 선출 과정과 내년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을 통해 정해질 것이다. 여기서 기존 정치실험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단지 종잇장에 인쇄된 ‘개혁 청사진’에 머무를 수도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