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정의선 부자 | ||
현대차 비자금 사건 재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정몽구 회장은 아직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라 될 수 있으면 관가와 마찰을 빚지 않는 게 이로울 것이라는 평도 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글로비스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배경을 들여다봤다.
신년 벽두부터 글로비스는 해운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하고 나섰다. 현대제철과 제선원료 해상운송에 대한 20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은 것이다. 지난해 9월 6000톤급 벌크선을 도입할 때부터 글로비스의 해운사업 진출은 예견돼 왔다. 공시에 따르면 이번 현대제철과의 계약금액만 1조 3400억 원에 이른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이 해외업체로부터 회수한 완성차 20%의 수송 배선권이 글로비스의 몫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계열사 물량 증가로 인해 글로비스가 올해에도 큰 폭의 성장세를 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월 25일 대신증권은 ‘현대제철 원료 해상운송과 현대차 완성차 수송량 증가로 글로비스의 올해 신규 매출이 2500억 원 이상 발생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비스의 앞날을 무작정 장밋빛으로 전망할 수만은 없다. 현대차그룹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악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공정위가 현대차그룹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만 총 900억 원대에 이른다. 대리점들에 대한 과도판매 강제 행위와 납품단가 부당 인하 등에 대해 공정위가 철퇴를 휘두른 것인데 그중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과징금이 631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글로비스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 혐의’는 세간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정몽구 회장에 대한 현대차 비자금 사건 재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까닭에서다. 지난 2006년 3월 26일 현대차 양재동 사옥과 함께 검찰의 기습적인 압수수색을 받은 글로비스가 비자금 조성 창구로 지목됐던 것이다.
여러 부담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 글로비스의 몸집을 키우려는 배경엔 정몽구 회장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는 듯하다. 글로비스는 지난 2001년 정몽구-의선 부자가 약 50억 원을 출자해 설립한 회사. 정 회장 부자가 57.54% 지분을 보유한 글로비스에 대한 물량 지원이 지속되고 글로비스의 몸집이 커질수록 정 회장 부자의 주머니도 그만큼 두툼해지는 것이다.
글로비스 지분 가치를 높여 정의선 사장이 보유 중인 지분 31.88%(1195만 주) 중 일부를 매각해 핵심 계열사 지분 매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사장은 기아차 지분 1.99% 외에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핵심 계열사 지분구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글로비스 물량 증가를 바라보는 관가의 서늘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 글로비스 키우기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 보고 있다. 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액 2조 510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33.2% 증가율을 보였다. 글로비스는 1월 24일 올해 영업실적 전망 공시를 통해 2008년 예상 매출액을 2007년보다 19.5%(4900억 원) 늘어난 3조 원으로 전망했다. 대신증권의 ‘신규매출 2500억 원 발생’ 전망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글로비스에 대한 업계의 기대감은 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2월 4일 현재 주가 5만 5600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두 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정 사장이 당장 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해 기아차 지분 매집에 ‘올인’할 경우 세금 문제 등을 감안해도 10%에 가까운 기아차 지분 확보가 가능해 보인다.
글로비스 주가에 대한 업계 인사들의 전망과 현대차그룹의 물량 밀어주기를 고려할 때 수년 내 글로비스 지분 가치는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발판이 될 수 있는 기아차 지분 확보 밑천이 될 듯하다. 공정위가 글로비스 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해도 정 회장 부자가 글로비스 살찌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치적 상황 역시 정 회장이 배짱 있게 글로비스를 키워나가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정 회장의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공로와 더불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한 이명박 정부 출범, 그리고 동생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중진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점 등이 과연 글로비스의 탄탄대로를 뒷받침해줄지에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