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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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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description>
        <language>ko-KR</language>
        <lastBuildDate>Fri, 29 Sep 2017 14:19:00</lastBuildDate>
        <pubDate>Fri, 29 Sep 2017</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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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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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청탁전문 법률회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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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29 Sep 2017 14:19: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995966956.jpg"/> 오후 두시의 강한 햇볕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었다. 고급정장차림의 조폭두목이 탄 마이바흐가 삼성동의 고층 유리건물 앞에서 섰다. 차 안에서 조폭두목이 내렸다. 잠시 후 조폭두목은 이십층에 있는 전직 법무장관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에 다양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정치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조폭두목이 전직 장관 출신인 변호사 앞에서 허리를 깊이 굽히면서 말했다.&ldquo;제 동생인 은성그룹의 이동팔 회장이 특수부에 체포됐습니다. 지금 동생을 구할 수 있는 분은 장관님 밖에 안계십니다.&rdquo;&ldquo;알겠소, 잠깐만&rdquo;장관출신 변호사는 손짓으로 맞은 편 소파에 앉으라고 하면서 탁자위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여비서가 나왔다.&ldquo;서울지검장을 대라&rdquo;조폭두목 앞에서 직접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려는 태도였다. 여비서가 전화연락을 하는 동안 잠시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ldquo;장관님께서 힘써 주시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dquo;조폭두목이 황송한 듯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장관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도 마지막 관직이 죽을 때까지 따라붙었다.&ldquo;지검장 나왔습니다.&rdquo;인터폰에서 여비서의 목소리가 흘렀다. 장관출신 변호사가 인터폰의 스피커 통화 스위치를 눌렀다.&ldquo;장관님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찾아뵙지도 못하고 격조했습니다.&rdquo;지검장이 공손하게 문안 올리는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ldquo;김공, 지금 특수부에 이동팔 회장이라고 있나?&rdquo;&ldquo;지금 조사하고 있다고 보고받았습니다.&rdquo;&ldquo;이 사건 내가 맡아도 되겠나?&rdquo;바로 석방이 될 수 있겠느냐는 우회적인 말이었다.&ldquo;예, 망신당하실 사안은 아닙니다. 괜찮을 겁니다. 맡으셔도 될 겁니다.&rdquo;&ldquo;고맙네&rdquo;조폭두목은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 순간 지하의 주차장에서는 사과상자에 든 현찰다발이 장관의 승용차 트렁크로 옮겨지고 있었다. 근거를 남기지 않고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전관예우로 사건이 간단히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체포됐던 거액의 주가조작을 한 회장은 검찰청사를 비웃는 듯 미소를 지으며 늠름하게 검찰 청사를 나왔다. 전관예우의 한 형태다. 장관이나 검사장 출신 검사의 전관예우를 사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물급 범죄자들은 직접 권력을 사기도 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검찰총장이나 지검장의 가족이나 형제를 자신의 회사의 비서실에 취직을 시키는 방법이다. 조폭두목과 연계된 그룹에서는 검찰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가족을 회사에 영입해 매달 높은 월급을 주고 있었다. 교묘한 뇌물제공 방법이었다. 거물들의 뇌물제공방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어떤 일을 청탁하기 이전에 아예 권력자의 야산이나 임야를 몇 십배 몇 백배 비싼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니까 법이 댓가성을 아무리 추궁해도 걸릴 수가 없었다. 외형적으로 정상적인 매매거래였다. 법상 금액을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자유였다. 어떤 법의 그물도 그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팔던 전관예우란 명목의 청탁 판매가 포장을 하고 조직적 집단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평소 고문을 맡고 있던 회사의 김상무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그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여러 소송에 휘말려많은 변호사들이나 로펌을 이용하고 있었다.&ldquo;저희 단체의 돈을 거액 횡령한 임원이 있습니다. 그 고소사건을 검사장 출신이 많은 로펌에 맡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서 상담할 때면 제가 위압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몇 번 당해봤는데 말들은 자기네가 힘쓰면 당장 해결될 것 같이 하는데 결과를 보면 엉망인 경우가 있었어요. 한번 부탁에 돈만 몇 억이 들어가기도 하구요. 그러니 고문을 맡은 엄 변호사님이 로펌에 같이 가서 얘기를 듣고 저희가 사기를 당하지 않게 함께 참석해 주세요.&rdquo;단체임원의 횡령수사는 간단한 사항이었다. 회사 돈을 빼내간 흔적이 있는 서류와 몇 사람의 진술을 받으면 윤곽이 바로 잡히는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도 거액을 내고 전관예우를 사야만 조사가 되는 현실이었다. 서민들은 고소해도 담당형사들은 그들을 비웃는 경우가 많았다.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법조문은 있지만 그 진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사법공무원들의 적폐였다.&ldquo;그런 내용이면 저도 고소장이나 의견서를 써 드릴 수 있는데요&rdquo;내가 말했다.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ldquo;아닙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검사장출신들이 있는 로펌에 고소를 의뢰하기로 했어요. 다만 변호사님에게 부탁하는 것은 회사 고문으로서 로펌에 가서 회의를 할 때 옆에 같이 있어 줘 달라는 겁니다.&rdquo;호기심이 일었다. 대형로펌에서 하는 비즈니스의 일선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오후 세시의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강남의 중심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웅장한 유리건물의 회전도어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천정이 높은 로비의 곳곳에 검은양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깨끗이 청소가 된 대리석 바닥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의 단추를 눌렀다. 소리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거울 같은 벽에 기가 죽은 듯한 우리의 모습이 비쳤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두꺼운 유리건물 자체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화려한 로펌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청동판으로 만든 로펌의 로고가 은은한 조명을 받는 앞에서 미녀안내원이 비둘기색의 대리석 탁자 뒤에 서 있었다. 고급그림들을 넣은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벽아래 붙어있는 탁자의 유리 안에는 로펌의 변호사들이 활짝 웃으며 둥그렇게 둘러 서 있는 사진과 함께 로펌을 소개하는 기사가 들어 있었다. 검사출신만 백 명이 넘는 국내초유의 대형로펌이라고 했다. 대법관부터 판사출신도 직급별로 근무한다고 기사에 적혀 있었다. 이 로펌에 돈만내고 일을 부탁하면 어떤 사건이든지 해결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류 잡지는 아닌 걸 봐서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기사 같았다. 우리는 늘씬한 미녀 안내원을 따라 호텔복도 같이 푹신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여러 개의 접견실이 나란히 이어진 곳을 지나갔다. 법률사무소가 아니라 고급호텔의 방들을 지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접견실중의 한 방으로 안내받고 들어갔다. 중앙에 길다란 고급목재로 만든 회의 탁자가 있었고 양쪽으로 가죽을 씌운 검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탁자위에는 예쁘게 깍은 연필들이 필통에 나란히 누워있었고 그 옆에 노란 메모지가 보였다. 윤기 나는 검은 가죽 회전의자에 앉았다. 투명한 통 유리창 밖으로 강남일대의 경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미세먼지가 안개같이 도심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ldquo;티로 하시겠습니까? 원두커피로 하시겠습니까?&rdquo;안내하는 여성의 공손한 목소리였다.&ldquo;예 커피를 주시죠&rdquo;같이 온 단체의 임원인 남자가 분위기에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ldquo;저두요&rdquo;내가 옆에서 말했다. 잠시 후 커피를 담은 하얀 도기찻잔을 차반에 든 안내여성이 들어와 세련된 몸짓으로 탁자위에 커피를 놓고 나갔다. 마치 낯선 외국의 고급 사무실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고급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은 오십대 말이고 청색 쟈켓의 다른 한사람은 그보다 조금 어리게 보였다.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들고 온 서류파일을 탁자위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 청색쟈켓을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ldquo;저는 부장검사를 지냈고 여기계신 저희 팀장님은 제가 검사장으로 모셨습니다.&rdquo;화려한 법조경력이었다. 사건의 혐의를 받는 겁먹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신같이 보일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같이 간 단체의 임원을 내가 그들 본보의 일을 상시 도와주는 고문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검찰출신 두 명의 변호사는 이미 사건을 검토한 표정이었다. 검사장출신의 변호사가 대표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ldquo;요즈음 검찰청은 한 검사가 매월 이백 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어 과부하 된 상태입니다. 하루에 열 건이 넘는 사건의 결정문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바쁜 상태니까 어떤 사건에도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심도 있게 수사를 할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사건을 경찰에 넘겨버립니다. 경찰역시 한 형사가 여러 사건을 맡고 있어 대충대충 처리하는 게 현실입니다.&rdquo;그의 말은 묘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검사장 출신인 자기가 아니면 일이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전관예우의 가치를 그는 강조하고 있었다.&ldquo;그러면 검사장님은 어떻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rdquo;같이 간 김상무가 물었다.&ldquo;저희가 특별히 부탁하면 검찰청 수사과에서 직접 수사를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도 사건이 넘쳐 아무나 수사를 부탁한다고 해 주지를 않습니다. 이 수사관이란 사람들이 골치 아파요. 고소장을 길게 써 내면 읽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고소할 내용을 조각으로 나누어 조금씩 써서 내고 직접 가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조금씩 움직일까 말까입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증거도 자기네가 수집하는 일이 없어요. 고소하는 쪽에서 완벽하게 만들어 바쳐야 받아먹을까 말까하죠. 그게 수사의 현실입니다. 그래도 예전의 우리 때는 약간의 정의감이라는 게 남아 있었죠.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미미한 정의감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제대로 수사가 되게 하려면 부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건 전관예우하고 다릅니다. 예전의 장관이나 검사장들처럼 전화한통으로 일하고 돈을 받지 않습니다. 의견서를 써서 수사관이나 검사를 설득하고 유도하는 거죠.&rdquo;고문변호사자격으로 온 내가 끼어들을 때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나서서 직접 물었다.&ldquo;수사에 대한 의견서나 증거자료 제출은 고문인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로펌으로 온 이유는 검사장 출신이라고 내세우시는데 그 경력으로 뭘 할 수 있느냐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rdquo;그가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ldquo;좋습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걸 말씀드리죠. 일단 사건을 직접 신경 써서 수사하게 하겠습니다. 지금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사담당검사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로펌에 현직검사에서 바로 나와 뛰고 있는 변호사가 56명입니다.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서 뛰게 할 예정입니다.&rdquo;일반 변호사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조직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ldquo;수임료는 어떻게 받으십니까?&rdquo;&ldquo;전에는 성공보수를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말라는 판결이 나와 타임 챠지를 편법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한 사람당 시간당 타임챠지를 백 오십 만원 정도로 하고 시간과 인원을 조정하면 저희가 요구하는 금액이 될 것 같습니다.&rdquo; 개인변호사를 했기 때문인지 30년 변호사생활에서 처음보는 광경이다. 미국의 법률드라마에 나오는 로펌의 비즈니스 행태들이 어느새 국내에 들어와 뿌리 깊게 박힌 것 같았다. 로펌이 있는 빌딩을 나오면서 김상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ldquo;고문 변호사님이 오니까 로펌의 검사장 출신들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얼마나 전관경력을 과시하면서 사람을 기 죽이는지 몰라요. 앞으로는 저쪽 로펌에서 오는 계약서 검토도 변호사님에게 부탁해야 겠어요.&rdquo; 경제성장으로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복지는 되어가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국가를 대신하는 공무원인 검사나 형사가 그리고 사법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들이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어야 법치국가고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민들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가 않다. 법치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다. 법을 하는 사법공무원의 많은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 때문이다. 전관이 가서 부탁을 해야만 업무를 처리하는 나라는 썩은 나라다. 그 무사안일은 뇌물죄보다 더 큰 차별을 이 사회에 만들어 내고 있다. 법의 날 행사장에서는 법의 깃발이 화려하게 걸리지만 현실의 그늘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늘 속에서 번지는 곰팡이들을 행사장 단상에 앉은 높은 사법관료들은 볼 수가 없다.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는 고교후배인 대법관의 사진을 보면서 평생 엘리트로 고속승진을 한 그가 정말 한번 눈물을 흘려봤을까 의문이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에 무지개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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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슬픈 미혼모의 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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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28 Sep 2017 09:40: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53548709747.jpg"/>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십대쯤의 여인이 저택의 문가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잔디 안쪽 건물의 통유리창을 통해 육십대 중반쯤의 여인이 온화한 얼굴로 손자 손녀들과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가에 선 여인의 쌍거풀 진 커다란 눈에 순간 강한 그리움이 비쳤다.그 유복해 보이는 여인은 처녀시절 아이를 낳아 버린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버린 딸이 찾아와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딸은 고생하며 자라서 평범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어느 날 말기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모를 한번 쯤 보고 싶었다. 심부름센터에 부탁해서 생모의 주소를 알았다. 사람을 통해 생모에게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모는 단호하게 자신은 그런 딸을 낳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거부했다.딸은 그런 엄마를 한번 보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그 집 문가에 와서 간절한 눈빛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눈이 번쩍 크게 떠지면서 분노의 빛이 번들거렸다. 그녀는 문가의 돌을 집어 안 쪽을 향해 힘껏 던졌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났다. 그녀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죽기 싫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늘에서 세상에 나오고 외롭게 죽어가는 인생이었다. 일본영화 &lsquo;행복목욕탕&rsquo;의 한 장면이었다.오랫동안 변호사를 하면서 그런 영화보다 더 절절한 현실을 여러번 경험했다. 여배우와 부잣집 아들 사이의 불꽃같은 사랑으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다. 미혼의 여배우가 아이를 낳았다는 게 언론에 보도되자 남자 쪽에서 단호히 연락을 끊어버렸다. 기혼자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열 살 무렵 나의 개인법률사무실로 찾아왔다. 책상 높이의 키인 작은 아이의 조그마한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ldquo;변호사 아저씨 우리 아빠 나쁜놈이예요. 죽여주세요&rdquo;어린 아이의 마음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얼마쯤 후에 아이는 포장을 한 작은 향수병을 내게 선물했다. 포장에는 이렇게 쓴 작은 카드가 있었다.&lsquo;아저씨 우리 엄마하고 친구해 줄 수 없어요?&rsquo;그의 아버지는 철저히 그들 모녀를 외면했다. 나는 소송을 통해 그 아이를 아버지의 딸로 입적시켰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자집 아들인 아버지는 모녀에 대해 냉정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어른이 된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른이 된 그 아버지의 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ldquo;한번 아버지의 집을 찾아갔어요.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그 집 식구들이 얼음보다 더 냉냉하더라구요. 그 집 재산 때문에 겁을 먹는 것 같았어요.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죠. 엄마는 일이 없어요. 알바를 하면서 엄마와 먹고 살아요.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고 냅킨을 접으면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몇 가지 일을 겹쳐 하고 있어요.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죠? 내가 세상에 나온 게 누구 책임인가요?&rdquo;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그런 아이들이 참 많았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을 때면 할 말이 없다. 자식을 버린 아버지나 엄마의 사랑어린 따뜻한 눈빛만 한번 봐도 아이들의 가슴에 퍼렇게 든 멍이 단번에 반쯤은 풀린 텐데.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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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의사의 천문개폐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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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27 Sep 2017 10:05: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736541805.jpg"/> 집근처의 한방병원을 더러 놀러간 적이 있다. 여성 한방병원장 부부는 티벳 여행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됐다. 서울대 철학교수였던 남편과 한의사인 원장은 동양의 정신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방병원 4층에는 동양화와 액자에 넣은 글씨들 그리고 자수들이 가득했다. 먼지 묻은 오래된 불상과 보살상도 보였다. 옛것과 함께 음음한 기운이 묻어 있는 느낌이었다. 철학교수가 말했다.&ldquo;이 물건들은 제가 고미술협회에 가서 공부하면서 구입한 거예요. 저기 글씨는 한석봉의 것이고 그림은 조선말 화공 장승업의 작품이죠. 자수들도 많이 모았는데 자수박물관을 할 뜻도 있죠.&rdquo;원장 부부의 마음속에는 옛날에 시간과 공간속으로 들어왔다가 간 영혼이 들어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때 한방병원장인 여한의사가 들어와 내게 말했다.&ldquo;오신 길에 제가 사상의학의 체질을 밝혀 드릴 께요&rdquo;나를 본 원장이 그렇게 말하고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다.인간을 몇 개의 체질로 구별하는 동양의학으로 알고 있었다. 원장은 나를 책상 앞 의자에 앉히고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면서 말했다.&ldquo;인간의 몸에는 옅은 전류가 흐르고 있어요. 그걸 기(氣)라고도 표현을 하죠. 그리고 사람에게는 독특한 주파수의 뇌파가 있어요. 그 주파수의 변화에 따라 우주와 접속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합니다.&rdquo;몸속에는 확실히 어떤 기운이 흐르는 것 같다. 20층 아파트에 사는 나는 동네야산을 산책해도 땅에서 어떤 생기를 받는 느낌이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와 접속해서 그 세계에서 살다가 나온다. 그 일부가 꿈이 아닐까. 원장이 말을 계속했다.&ldquo;저희 부부가 얼마 전 이상구박사가 운영하는 힐링센터에 다녀왔어요. 이상구 박사는 우리 몸의 DNA를 활성화 해야 몸이 건강해 진다고 해요. 그게 활성화 되지 않으면 암세포로 변하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상구 박사는 DNA의 활성화의 배경에는 영적인 작용이 있다는 거예요. 영의 세계와 우리의 몸은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거죠.&rdquo;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성경 속에서 예수의 치유방법들을 떠올렸다. 특정한 병의 원인은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라고 하면서 예수는 귀신을 쫓았다. 혈루병을 입던 여인이 예수의 몸을 만지자 단번에 병이 나았다. 예수는 자신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비슷한 게 아닐까.&ldquo;원장님은 어떻게 동양의 여러 비법을 공부하게 됐죠?&rdquo;내가 물었다.&ldquo;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 동네에 궁중의 전의가 살았대요. 조선왕조의 마지막 전의였대요. 아버지는 그 분한테 궁중에서 쓰던 여러 처방과 침술을 배웠죠. 아버지는 안암동의 작은 한옥에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저희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옆에서 아버지가 환자를 치료하는 걸 보고 자랐어요. 아버지는 한의학 지식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에 대해 평생 공부하셨어요. 지난번에 &lsquo;면벽수행&rsquo;이나 &lsquo;육경신&rsquo;을 잠깐 말씀드렸었는데 오늘은 제 동생의 경험을 말씀 드릴 께요. 남동생이 팔도 가늘고 몸이 약한 편이어서 한번은 남한테 얻어맞아 이빨까지 부러진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죠. 그때부터 아버지는 동생에게 &lsquo;천문개폐법&rsquo;이라는 수련을 하게 하셨어요. 매일저녁 장독대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손짓으로 하늘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수련을 하는 거예요.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몸이 강인해진다는 거죠. 그 수련이 끝나고 동생이 팔씨름을 하게 됐어요. 상대방은 팔뚝이 쇠막대 같이 강해 보인 덩치가 큰 남자였어요. 그런데 동생이 단번에 이긴 거예요. 아버지는 그런 동양의 수련법을 많이 공부하셨죠. 저는 아버지를 따라 그런 것도 배우고 아버지의 비방을 거의 다 배웠죠. 병아리한의사 시절 제가 뭘 알겠어요. 아버지한테 환자의 증상을 얘기하면 아버지는 어떤 탕을 지으라고 했어요. 그대로 했죠. 아버지 말대로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환자가 병이 다 나았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러 올 때면 제가 더 신기했죠.&rdquo;인간을 치유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서양의 발달된 외과적 수술도 있고 동양의 여러 비법도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증산도를 창시한 구한말의 강증산은 동곡약방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유했다. 동양만의 신비한 세계들이 많은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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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혼자 사는 족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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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ue, 26 Sep 2017 09:37: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660498432.jpg"/> 일본드라마의 매니아가 되어 매일 저녁 즐겨보던 때가 있었다. 개천가의 낡은 빌딩에 있는 작은 흥신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속 늙은 탐정의 평소 사는 모습이 특이했다. 일이 없으면 책상에서 배의 모형을 조립 하던가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그게 그의 취미였다. 혼자 사는 그는 하루일과가 끝나면 혼자서 골목길의 주점에서 생맥주 한잔을 시켜 마시고 가로등이 비치는 자기 그림자를 끌고 빈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현대의 고독한 한 일본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이웃에 사는 대학선배를 만나 차를 마시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ldquo;일본에서 여러 해 살다보니까 작은 자기 일에 빠져서 사람들과 사귀기를 중단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 내가 본 한 일본인은 휴가 때 만화만 몇 백 권 빌려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그것만 보는 거야. 기계조립에 빠진 사람도 있고 종류별로 그런 매니아가 많아.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족속이지.&rdquo;혼자 살아가는 족속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생을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시절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어둠침침한 만화방에서만 살았다. 한 만화방만 다닌 게 아니라 여러 동네 만화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수수깡을 사다가 연필 깍는 칼로 수수깡을 자르고 붙여 비행기나 헬리곱터의 모형을 만드는 게 취미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과 어울리지를 못하고 내 안의 세계에서만 살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도시락을 싸들고 남산도서관을 다니면서 소설을 빌려 읽곤 했다. 대학시절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싸들고 암자의 뒷방이나 얼어붙은 강가의 방가로를 빌려 그곳에서 혼자 살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불편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일본의 매니아들 얘기를 전했다. &ldquo;아버지 우리나라도 사람들 하고 만나지를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자기 일만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친구도 있고 야구나 축구경기만 보는 친구도 있어. 그렇게 하다가 대박이 터지면 천재소리를 듣고 그런 게 없으면 &lsquo;찐따&rsquo;가 되는 거지.&rdquo;&ldquo;너는 어떠니?&rdquo;삼십대 중반의 아들에게 물었다.&ldquo;나는 방안에 들어박혀 찐따 노릇을 하는 게 싫어 세상에 나가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물코 같이 관계를 맺어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살고 싶어. 그게 사는 것 같아.&rdquo;평소 아버지인 나의 모습에 반발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들 녀석도 어렸을 때 노는 걸 보면 혼자 방에서 장난감자동차들을 하루 종일 분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며칠 전 손녀를 데리고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특이한 곳이었다. 작업대 위의 통에는 네모난 칸 마다 색색의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들어있었다.아이들이 핀셋으로 그 알갱이들을 집어 놀이방 주인한테 받은 본 위에 있는 작은 구멍에 맞추어 넣는 작업이었다. 보석세공을 하는 사람들의 섬세한 작업과 유사했다. 그게 완성이 되면 비행기도 되고 꽃이 되기도 했다. 손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다. 박수와 환호 그리고 인기 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그리고 인간을 낚는 베드로가 된 종교인들이다.혼자 내면의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주의 문학관에서 소설 &lsquo;혼불&rsquo;을 쓴 여성작가가 쓴 원고지가 천정까지 닿을 듯 쌓여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녀는 결혼도 세속의 즐거움도 포기하고 평생 자기의 방에서 원고지의 그물코를 또박또박 메우다가 죽었다고 하고 있다. 그녀는 이름이 났지만 평생 글을 쓰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일생을 글을 쓰고 몇 사람 앞에서 작은 문학 강연을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간 분의 수필집을 본 적이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음란한 여성탤런트의 상업적인 수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좋은 책이었다.다만 세상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자본주의는 장사꾼의 잣대로 재는 세상이다. 돈을 벌어야 대박이 터졌다고 표현한다.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더 소중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평생을 기도하는 경건한 수도사의 삶은 세상적인 대박과는 무관한 것이다. 혼자 사는 족속이란 말을 듣고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걸 자폐증 같은 부정적인 관념보다 자기 일을 홀로 하는 생산적인 관념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대개는 자기세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바보도 사흘은 할 수 있다. 보통사람도 석 달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골방에서 같은 일을 삼십년 이상 전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그렇게 혼자 살아가는 족속은 괜찮은 사람들이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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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전원주택의 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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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25 Sep 2017 09:33: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569818485.jpg"/> 호텔의 예식부에서 하는 친구 딸의 결혼식장에 갔었다. 둥그런 테이블에 몇 명의 고교동창의 얼굴이 보였다. 음식을 나누면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로펌의 대표변호사를 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ldquo;아내가 전원주택에 사는 게 꿈이었어. 그래서 오포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데 차가 막힐 때면 이게 보통일이 아니야.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잔디가 그럴 듯 하지만 살아보니까 항상 잡초가 잔디를 이기는 거야. 잡초를 뽑는 게 일이라니까. 겨울에 눈 오는 풍경은 좋은데 쌓이는 눈을 다른 집에서 치우면 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누가 줘서 개도 한 마리 키워봤는데 그게 사람을 꽉 붙드는 거야. 밥을 챙겨 먹여야 하고 말이야. 여행을 갈 수가 없어. 그래서 주인에게 돌려줬지. 하여튼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전원주택에서 살 자격이 없어.&rdquo;그 자리에서 같이 스테이크를 먹던 다른 친구가 말했다.&ldquo;나는 사업을 접고 이십년 전에 아예 예산으로 내려갔어. 수덕사 부근의 농가주택을 사서 지금까지 거기서 혼자 살고 있어. 장작을 패고 물을 긷고 그렇게 스님들의 수행생활같이 시작했지. 처음에 먹물같이 캄캄한 밤에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갔다가 방으로 돌아올 때면 뒤에서 뭐가 잡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했지. 무서웠어.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까 이제 한밤중에 중천에 뜬 달빛에 나뭇가지가 바닥에 어른거리는 걸 보면서 즐기게 됐어.&rdquo;&ldquo;요즈음은 시골사람들 인심이 고약해서 귀촌해서 살기 힘들다면서?&rdquo;내가 물었다.&ldquo;시골에 정착하려면 마을 사람들한테 잘해야 해. 행사 때 마다 마을회관에 돈을 내기도 하고 막걸리도 수시로 돌려야 해. 내 경우는 집집마다 찾아가서 놀기도 하고 기금을 내라면 냈어. 그래야 융화가 될 수 있어. 요즈음 서울에서 내려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보면 시골사람들하고 전혀 어울리려고 하지를 않아. 글을 쓰던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같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가 그런 예술가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밤이면 뭘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rdquo;나도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어린 시절 강원도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할머니의 세 칸 초가집에서 녹음 짙은 여름이나 눈 덮인 하얀 겨울을 보냈었다. 소금쟁이가 물주름을 잡고 기어가는 투명한 개울물의 모래바닥에 있는 고동을 잡기도 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기도 했었다.이십대는 책 보따리를 싸들고 강가의 외딴 빈집을 빌려 한겨울을 보내기도 했었다. 도심의 공간에서 바빴던 삶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더러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통해 산골의 오두막에 사는 대리체험을 하곤 했다. 스님이 얼어붙은 시냇가의 얼음을 깨 물을 길어오고 채소밭을 가꾸고 하면서 사는 단순 소박한 삶 자체가 수행이었다.스님은 맑고 투명한 삶의 모습과 매일 자연을 화두로 삼아 얻은 깨우침을 원고지위에 또박또박 아름다운 수필로 남겨놓았다. 고난은 깊은 산속까지도 따라가는 것 같았다. 스님이 없을 때 마을에서 누군가 심술 꾼이 와서 채소밭을 뒤엎어 놓기도 하고 문짝을 떼고 방을 흐트러놓고 가기도 했다. 고약한 짓을 참는 스님은 또 다른 인내의 고행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나와 다르면 부수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일요일 밤 우연히 헌책방에서 사다가 놓은 소설가 박완서씨의 &lsquo;호미&rsquo;라는 수필집이 책꽂이에서 내 눈에 띄어 들춰보았다. 평생소원이던 호수가의 집에서 채마밭과 잔디를 가꾸는 일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벌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그녀는 채마밭을 가꾸는 걸 포기하고 있었다. 무성해지는 잡초 뽑기에 하루가 가는 칠십 할머니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노년이 된 나는 숲으로 들어가야 하겠다는 마음만 먹을 뿐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전원주택을 화두로 인생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름답고 화려한 경력의 인생을 가진 사람들의 백조같이 품위 있는 외형만 보고 부러워했지 흙탕물 밑에서 부지런히 놀리는 발을 상상하지 못했다. 의원이 되기 위해 그들은 매일 밤 모르는 상가 집을 내집같이 드나들어야 했다. 지저분한 인생들의 쓰레기 같은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밤낮없이 영혼까지도 인사권자의 종이 되어야 하는 면이 있었다.부자가 좋아 보이지만 그들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먹지 않고 쓰지 않고 험난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겉의 그럴듯한 모습만 보았지 그걸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뒤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 같이 게으른 사람은 도심의 지하철 역 부근의 작은 아파트 골방에 자리잡고 책이나 읽다가 허기지면 라면을 끓이며 사는 게 제일 행복일 것 같았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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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장군과 의원이 소망이던 선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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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at, 23 Sep 2017 08:33: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446094506.jpg"/> 이십대 시절 법무장교로 입대했던 동기들끼리의 역삼역근처의 참치 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다가 군복무의무 때문에 차선책으로 장기직업장교를 선택했었다. 지금은 그 제도가 없어졌지만 십년만 복무하면 변호사자격이 나오는 건 동등했다. 육십대 중반까지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가 보니까 젊은 날의 십년은 순간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중에는 군에서 장군으로 성공한 친구도 장군을 마치고 국제형사재판관을 한 친구도 또 도중에 다시 고시에 도전해서 대법관을 마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에 다시 변호사라는 한 호수로 모여들었다. 백세주가 몇순배 돌아간 후 장군출신 동기생이 입을 열었다.&ldquo;우리들 2기 선배인 정장군이 3년 전부터 식물인간이 되어 있어. 산소호흡장치를 하면서 연명하고 있지.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해. 요즈음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선배들을 보면 칠십대 중반이면 가을 낙엽같이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보다 한기 위인 안선배나 박선배도 벌써 돌아가셨지. 그러고 보면 우리도 남은 세월이 많지 않은 것 같아.&rdquo;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선배들은 인생의 밤이 되어 잠들기 시작하고 우리들도 저녁 어스름 속으로 젖어드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의식불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는 정장군은 내가 중위시절 군에서 최초로 모신 직속상관이었다. 둥그런 얼굴에 입술이 두툼한 자상한 성격의 육군중령이었다. 서울법대를 졸업한 그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보병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제대를 한 후 법무장교시험을 다시 보고 군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육군 중령시절 그는 자신이 장군팔자인지 아닌지 속리산에 있는 유명한 점쟁이한테 찾아가 묻기도 했었다. 그는 소원이던 별을 달았다. 장군을 마친 그의 다음번 소원은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몇 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그 후유증으로 재산을 탕진했다는 소문을 바람결에 들었다. 변호사가 된 그를 법정에서 몇 번 만났다.&ldquo;내가 언제 장군을 했나 싶어.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한 것 같아.&rdquo;그가 지나치면서 한마디 내뱉던 게 가슴에 와 닿았다. 세상에서의 모든 게 지나가면 한바탕의 꿈인지도 모른다.군에서 맺은 첫 인연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씁쓸한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제복을 벗고 자유롭고 싶었다. 법에 규정되어 있는 5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전역신청을 했다. 그때 그는 병과에서 장군진급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나를 불러놓고 앞에 놓인 백지에 평생 군복무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가 군대에서 상급자라고 해도 법에 정한 기본 의무복무를 다 한 내게 일생을 군에 있도록 강요할 권한은 없었다. 내겐 장군보다 자유가 소중했다. 나의 전역을 심사하는 위원회가 열렸다. 그는 나의 전역은 안 된다고 항의를 했었다. 물론 그 나름대로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아마도 나같이 도중에 나가려는 장교들의 의지를 꺽어야 조직이 유지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원회는 표결에서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마지막에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지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했었다. 장군이 되려면 한 부하장교의 의지는 꺽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섭섭함의 앙금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그의 병실로 발걸음이 옮겨지지를 않았다.인간의 삶에서 장군과 국회의원 같은 걸 절대 목표로 삼는 게 과연 행복을 가져다줄까?.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그가 변호사직업에 전념했다면 건강한 몸으로 아직 손자와 즐겁게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의 역정에서 같은 배나 기차의 승객이 되어 잠시 동행을 한 경우도 많았다. 우연히 만난 그 사람들을 섭섭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반성을 해 본다. 알고지은 죄도 많고 모르고 지은 죄도 역시 많을 게 분명하다. 글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마다 보다 겸손하게 대하고 잘해주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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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아름다운 마무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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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22 Sep 2017 09:07: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381003926.jpg"/> 동묘옆 벼룩시장 입구의 헌책방을 들렸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안에는 책들이 꽉 들어차 있다.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뒤엉켜 허리높이까지 겹겹이 쌓여있어 제목조차 읽을 수 없다.&ldquo;이 책들 분류해서 꽂아놓으면 좋지 않겠어요?&rdquo;내가 책방주인에게 말했다.&ldquo;그렇게 못해요, 할 수가 없어요.&rdquo;주인남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일손이 딸리는 것 같았다. 먼지가 자욱한 빈 공간에서 살펴보고 책을 골라내는 건 불가능했다. 인연이 닿아 우연히 책이 내 눈에 띄어야 했다. 우연히 책더미 사이에서 &lsquo;아름다운 마무리&rsquo;라는 법정스님의 수필집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십대부터 그가 쓴 수필집이나 기행문을 빠짐없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책은 읽은 기억이 없었다. 보물이라도 만난 것 같이 기뻤다.요즈음은 대형서점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가 힘들다. 출판사마다 자기 매대를 만들고 자기 책들만 사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하는지 사회를 살아가는 기술을 어떤 것인지 얕은 자기개발서가 많았다. 명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시시덕거리는 내용을 담은 책도 많았다. 게오르규의 &lsquo;25시&rsquo;라는 책을 찾았다. 감성이 많이 녹슨 사십대에 읽었는데도 눈물을 흘린 고전이었다. 두 세 번 다시 읽을 마음이 나야 좋은 책이다. 점원은 판매가 중단되어 그 책이 없다고 했다. 좋은 책이 큰 서점에서조차 사라진 것이다.그래서 요즈음은 발품을 팔아 헌책방들을 간다. 거기서도 수북이 쌓인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구해온 법정의 수필집을 매일 아껴가며 조금씩 음미했다. 다른 세상으로 훌쩍 옮겨간 법정스님은 아직도 책속에서 가을 계곡 맑은 물 속의 물고기같이 청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스님은 &lsquo;월든&rsquo;을 쓴 자연주의자 데이빗 소로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데이빗 소로우가 혼자 들어가 살며 글을 썼던 월든 호숫가도 몇 차례 갔다고 쓰고 있다. 데이빗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법정스님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lsquo;간소하게 살라, 일을 두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여러 가지 만들지 말라. 단순하게 살면 우주법칙은 명료해 질 것이며 그때 비로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rsquo;깊은 진리가 담겨있는 말이다. 세상은 끼리끼리 통하는 것 같다. 영혼이 맑은 사람은 영혼이 맑은 다른 사람을 알아본다. 그건 바로 법정스님의 삶이 아니었을까. 법정스님은 또 소로우의 생애를 가장 충실하게 기록한 영국의 헨리솔트의 말을 이렇게 소개했다.&lsquo;소로우가 공적인 일을 하여 남길 수 있었던 것 보다 월든이라는 책을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다.&rsquo;법정의 수필집 &lsquo;무소유&rsquo;도 &lsquo;월든&rsquo;에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월든 호숫가 숲속에서 맑게 살았던 데이빗 소로우도 죽었고 산골 오두막에서 청정한 삶을 살았던 법정스님도 저 세상으로 허허롭게 건너갔다. 법정스님이 조계산의 산자락에서 보라색 연기로 변해 숲속의 청정한 소나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세상과 섞이기 싫어하는 그를 번거롭게 하기 싫어 살아서는 찾아가거나 본 적이 없었다. 법정스님은 수필집에서 계속 살아 숨쉬면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영혼의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 같다. 그가 주장하던 무소유란 탐욕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죽을 때까지 탐욕에 끌려 끙끙대다가 빈손으로 가는 사람보다 일찍 모든 걸 털어버리고 밤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파도를 보고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담아 간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이익을 본 성공한 사람일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늙은 문학청년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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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21 Sep 2017 08:49: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282241925.jpg"/> 한 신문사에 칼럼을 쓴 계기로 친하게 된 논설위원이 있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그는 퇴직 후 젊어서 부터의 꿈인 소설을 쓴다고 했다. 문학을 전공한 또 다른 기자출신 고교동기가 있다. 세 사람이 종종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문학과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는 즐거움을 나눈다. 육십 대를 훌쩍 넘은 우리는 마음만은 십대의 문학청년들이다. 세 사람이 서초동의 조그만 밥집에 모여 알 탕을 안주로 하고 소주와 맥주를 시켜놓고 문학의 정담을 나누었다. 논설위원출신이 말했다.&ldquo;퇴직을 한 후 집을 김포의 아파트로 옮겼어요. 그리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읽고 소설을 써요. 난 앞으로 차별이라는 주제로 쓰고 싶어. 우리사회에 빈부차별이 있잖아?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돈 없는 북한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가 될거라구. 그런 걸 쓸 거야. 그리고 뒤늦었지만 노력할 거야. 소설가 신경숙은 야간여상을 다닐 때 처음에는 소설을 무턱대고 베껴 썼대. 습작을 그렇게 한 거지. 문학이라는 게 뭐 별게 있나 처음에는 남의 작품을 많이 읽고 흉내 내 보는 거지. 혼자 갑자기 대작을 창조해 내려고 해도 되지 않는 거야.&rdquo;그는 이미 논설위원 중에서도 글을 잘 쓴다고 평가받았던 사람이다. 소설영역은 또 다른 것 같았다. 같이 않아 있던 기자출신 고교동기가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ldquo;맞아 드라마도 히트한 한 작품을 보고 변용을 하기도 하고 그렇잖아? 후속편을 만들기도 하고 말이야. 난 요새 집에서 드라마를 거의 다 보는 셈이야. 영화도 보고. 그리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서 재즈피아노를 배우고 있어.&rdquo;신문편집을 평생 해 왔던 그는 탁월한 글 수리공이었다. 내가 편집인으로 있었던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을 부탁했었다. 내가 퇴직 후 소설을 쓰는 논설위원에게 말했다.&ldquo;문예창작과를 나오고 동기들 중에 유명소설가도 많은데 추상적인 관념 말고 구체적으로 읽어야 할 책과 글 쓰는 방법에 대해 한 말씀해 봐요.&rdquo;장인들이 자기의 비법을 남들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듯이 내가 만난 소설가들도 세부적인 것은 말하지 않았다.&ldquo;먼저 좋은 책을 골라 많이 봐야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주는 그런 책은 수명이 길죠.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그게 아니겠어요? 결국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책들을 읽는 건 음식으로 치면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를 구입하는 것이고 그걸 읽으면서 메모들을 하는 건 야채를 다듬는 것 같다고 봐요. 나는 그렇게 하고 있어.&rdquo;옆에서 듣고 있던 고교동기인 친구가 끼어들었다.&ldquo;그런 책도 좋지만 우리시대의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 고통과 박해를 무릎 쓰고 쓴 책들도 읽어야 해. 그런 책들은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녹아있기도 하지.&rdquo;&ldquo;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요?&rdquo;내가 전 논설위원에게 물었다. 그는 내게 소설속의 법정풍경을 한 번 검토해달라고 원고를 보내왔었다.&ldquo;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는데 예전 같으면 사장이 마음대로 했는데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먼저 팔릴 책인지 몇 부나 나갈 책인지를 담당자가 판단하고 그 다음은 평론가출신이 소설원고를 하나하나 꼬집고 파헤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소설을 출간해 주는 출판사는 거의 없어요. 출판을 해도 유명작가의 작품을 내지 신인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의 책은 내주지 않아요.&rdquo;그는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고교동기인 친구가 말했다.&ldquo;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재미없는 글만 써댄 우리 소설가들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지 뭐. 상당수의 작가들이 문장에만 매몰되어 스토리가 없는 거야. 끼리끼리만 서로 추켜세우고 끼리끼리만 문학상을 주고 그러니 일반 독자한테서 멀어지는 거지. 난 진 작에 글 쓰는 걸 때려치웠어.&rdquo;그는 소설가 김동리에 대한 논문을 썼던 문학청년이었다.같이 저녁만 함께 먹어도 그 사이에 머릿속을 충만하게 해 주는 친구들이었다. 이런 날은 행복하다. 다음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 논설위원한테서 전화가 왔다.&ldquo;어제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노년의 이 나이에 어디서 그런 문학얘기를 하고 즐길 수 있겠어요. 앞으로 친구하며 고정적으로 만납시다.&rdquo;노년의 작은 행복이었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재능의 벽, 사회의 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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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18 Sep 2017 10:05: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212996614.jpg"/> 대학을 다니던 생선가게 집 아들이 음악에 미쳤다. 그는 음악인생을 가기 위해 학교를 때려 치웠다. 그러나 그를 심사한 평론가들은 그에게 프로가 될 개성이나 재능이 없다고 했다. 테크닉을 가진 뮤지션들은 세상에 널려있었다. 그는 방향을 돌려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노래로 장애아나 노인들을 위로했다.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밤이면 혼자서 노래를 만들었다. 어느 날 밤 그가 묵게 된 시설에 불이 났다. 그는 연기 속에 있는 한 아이를 구하다가 안타깝게 죽었다.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복지시설에 있던 한 여자아이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가수가 된다. 그 여자아이는 무명으로 죽은 그 뮤지션이 만든 노래를 불러 대중의 가슴에 물결을 일으켰다. 죽은 무명의 뮤지션이 만든 노래가 소녀를 통해 살아난 것 같았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코의 &lsquo;나미야 잡화점의 기적&rsquo;이라는 소설의 한 장면이다. 땅에 묻혀 썩은 씨가 그렇게 싹을 틔우는 경우가 있다. 하늘은 그렇게 천천히 인간의 소망을 들어주기도 한다. 소년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은 &lsquo;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rsquo;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노년이 된 지금은 운명이 내 인생을 휘감아 왔다는 걸 깨닫는다. 하늘이 재능과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되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돌을 다루는 기술 나무를 다루는 기술 철을 다루는 기술 음악을 하는 재능을 각 인간에게 부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소설과 비슷한 한국의 가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미쳤다고 했다. 낡은 통기타 하나를 구해 밤이고 낮이고 노래를 불렀다. 대학을 포기하고 음악에 몰입했다. 결혼을 해도 그는 음악밖에 없었다. 단칸셋방의 보증금을 빼내 악기를 사서 지방무대로 갔다. 오디션을 볼 때 업주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무대에 서는 걸 거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음악에 인생을 걸었다.마침내 그의 노래가 히트를 하고 어느 날 아침 그는 최고의 가수로 올라섰다. 수많은 팬들이 그에게 열광했다. 그가 어느날 뉴욕에 갔다. 뉴욕의 뮤지션들을 돌아보면서 그는 절망의 벽에 부딪쳤다. 뉴욕의 삼류뮤지션들도 그 보다 실력이 좋은 것 같았다. 음악에 대해 정식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솔직히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기가수가 됐다.열등감과 절망 그리고 계속되는 라이브 공연을 이겨내기 위해 환각제를 복용했다가 그는 구속됐다. 그는 비 오는 날 감옥 안에서 노래를 만들어 내게 보내기도 했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뚫지 못한 벽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는 경우를 본다.한 원로 소설가는 문학계에서 권위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는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을 보면 자기는 삼류정도가 아니라 사류 오류도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글을 쓰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창조주는 재능의 벽을 만들어 예술가들의 품질을 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름대로 비슷한 고통이 있지 않을까. 사회적 제도의 벽도 있다. 법원을 보면 서기로 수십 년을 근무해도 판사가 되지 못한다.이 사회는 학벌과 돈이라는 두꺼운 벽이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한번 탈락되면 패자부활전이 쉽지 않다. 학벌은 지식이나 지성이 아니라 구름위로 올라갈 수 있는 연줄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세상은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해왔다. 여론의 물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법조문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걸 본다. 내가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또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느리지만 곱게 빻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진짜 혁명이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시젠타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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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17 Sep 2017 10:21: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5101187214.jpg"/> 화면에서 정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노조위원장과 미모의 여성국회의원과의 정책토론이었다. 일류대를 나온 변호사출신의 여성의원은 분장과 옷 그리고 토론을 진행할 자료까지도 완벽하게 갖춘 것 같았다. 토론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여성국회의원은 국제수지나 외환문제 물가안정 등에 관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날카롭게 정책적인 핵심을 얘기했다. 그녀가 쓰는 해박한 경제 전문용어들은 논쟁의 상대방인 중졸출신 노조위원장을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대응하는 중졸출신 노조위원장이 전문용어를 틀리게 말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이 꼬이고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여성의원의 표정에 순간 경멸이 스쳐지나갔다. 밀리고 있던 노조위원장이 태도가 바뀌었다.&ldquo;저는 무식해서 복잡한 전문용어를 몰라요. 그렇지만 공장의 바닥에서 평생 지낸 놈이니까 내 식대로 얘기할 께요.자동차를 양쪽에서 똑같은 바퀴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지근 월급을 반도 못 받아요. 그 기분이 어떻겠어요. 식당도 한사람은 좋은 식당가고 다른 한 사람은 개밥을 먹는 기분 이예요. 그게 좋겠습니까?&rdquo;그는 자기 방식대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다. 문제점이 투박한 용어로 정확히 지적됐다. 논쟁은 의외로 노조위원장의 승리였다. 우연히 본 정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그 며칠후 이웃에 사는 대학선배와 바둑을 두고 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기자출신인 그 선배는 정부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낸 경력이 있었다. 그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ldquo;유학간 아들이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 가서 면접시험을 봤는데 뜻하지도 않게 합격을 했어. 합격시키고 회사에서 기다릴 테니까 졸업하고 와서 일하라고 하더래.&rdquo;스펙을 잔뜩 요구하는 우리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았다.&ldquo;일본회사에서는 면접 때 어떤 점을 보더랍니까?&rdquo;내가 물었다.&ldquo;일본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정직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걸 일본에서는 &lsquo;시젠타이&rsquo;라고 부른다는 거야. 그게 합격의 동기지. 내가 얼마 전 홍콩에 묵을 때 호주방송을 비롯해서 영어권 방송을 여럿 봤는데 사회자랑 출연진들이 아주 자연스러워. 속에 있는 걸 솔직히 드러내고 감정표현도 진솔해. 연설이나 대중 앞에서의 인사도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 그 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그건 쉽게 되는 게 아니지. 끊임없이 내공을 닦고 속에 내용물이 꽉 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걸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질이 높은 거구나 하고 느꼈어. 그걸 보면서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후회를 하는 거야. 젊었을 때 대변인을 하면서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말 한마디라도 꾸미지 말고 진심으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rdquo;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삼십년 드나든 법정풍경을 떠올렸다. 법정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하는 법률용어와 공허한 관념만 가득 찬 것 같았다. 거짓말로 법정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었다. 눈물과 정직한 호소는 시궁창 같은 거짓 속에 매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법정의 변론태도를 바꾸었다.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말을 한마디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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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각자 제자리에서 꽃을 피우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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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at, 16 Sep 2017 10:58: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4830563201.jpg"/> 만리동 봉제공장 동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고 있다. 대여섯평 정도의 창고 같은 작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작업대에 재봉틀이 두 대 정도 놓여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주로 일감이 들어온다고 했다. 재봉틀 앞에 앉은 한 남자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ldquo;일감이 들어와서 바쁘게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일이 없어서 벌써 두 달 동안 쉬었어요.&rdquo;그 동네의 길가에 있는 또 다른 봉제공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 공장을 지키는 남자도 걱정을 한다.&ldquo;저는 어려서부터 30년을 봉제 일을 했어요. 집안사정 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영어공부를 해서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지. 왜 아침부터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에이&rdquo;그의 눈이 순간 붉어지는 것 같았다. 코 위에 얹힌 돋보기를 위로 올리고 눈물을 닦았다. 서민들의 사는 모습이었다. 일감은 가족이 밥을 먹게 해 주는 축복이었다. 화면 속의 모습을 보면서 초등학교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세평정도의 가게를 빌려 편물점을 했었다. 편물기계를 두 대정도 놓고 일감이 들어오면 세타를 짜주었다. 나는 더러 털실을 풀고 초를 먹여 깡통에 감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임가공비로 아들인 나는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상계동 빈민촌에 사는 목수인 숙부 집을 자주 갔었다. 창고 같은 수백채의 바라크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변소 앞은 오물이 항상 얼어붙어 번질거렸다. 가난했지만 아버지 오남매는 가장 가난한 동생 집에 모여 순대를 삶고 만두를 빚어 소주와 함께 한 밥상에서 나누어 먹곤 했다. 따뜻한 밥상은 가난을 녹여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거기에 가서 더러 묵게 하면서 가난한 삶을 공감하게 했다. 세월이 흘러 윗대들이 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잘해주라고 유언을 했다. 나는 가끔 친척동생들을 불러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듣는다. 힘들게 살면서도 나름대로 자기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오십대 말의 사촌동생이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ldquo;형님 제약회사 과장이 된 제 딸이 개인택시를 사줘서 영업을 시작했는데 욕심 때문에 스스로 통제가 안돼요. 밥 먹을 시간인데도 손님이 타면 또 가고 또 가고 해요&rdquo;동생은 평생 택시기사를 하면서 딸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딸 자랑이다. 쉬는 날이면 집근처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강남의 대형 백화점에서 이십년 이상 판매원을 한 친척여동생은 이렇게 자기 일을 말했다.&ldquo;백화점에서 오래 근무한 비결은 참는 거 였어요. 갑질을 심하게 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고객님하고 공손하게 대했는데도 &lsquo;너 이년 무릎 꿇어&rsquo;하는 고객이 있었어요. 그래서 무릎을 꿇었더니 단번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드는 거야.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야 해요. 한번만 그렇게 꾹 참아내면 그 고객이 오히려 내 단골이 되는 거야. 그게 오래 버틴 영업의 비결이야.&rdquo;나는 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그 친척 여동생의 남편은 포크레인을 오랫동안 몰고 있었다. 친척 여동생은 남편대신 이런 말을 했다.&ldquo;없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 남편같이 포크레인 기술자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목이 잘릴 염려 없이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남편말로는 깊은 산중에서 몇 달간 혼자 일할 때나 지하에서 땅을 팔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더라구. 그래도 그렇게 혼자 묵묵히 가는 길이 좋은 것 같아. 주위에 보니까 입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우선 돈을 만지려고 다단계를 거쳐 사기꾼으로 가는 수가 많아요.&rdquo;이번에는 간호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조카가 말했다.&ldquo;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는데 덩치 큰 사람이 환자로 들어왔을 때 나 같은 신참은 너무 힘들어요. 일으켜 목욕도 시키고 똥오줌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침대 옆에서 늘 구부정하게 엎드리니까 허리가 아파요. 그래도 얼마든지 참아내며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rdquo;조카는 어려서부터 가난 속에서 철저한 고생으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친척동생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여기고 번 돈으로 가족과 저녁에 따뜻한 밥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자 못지않은 행복감에 충만해 있다. 가난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가난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골짜기든 햇볕 좋은 곳이던 나무가 태어난 자리를 원망하지 않듯이 각자 제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게 행복을 찾는 길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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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여성 한방병원장의 초능력체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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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5 Sep 2017 07:48: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4771237365.jpg"/> 티벳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부부가 있다. 남편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고 부인은 한방병원을 경영하는 한의사였다. 히말라야의 계곡과 티벳의 사원을 함께 돌아다녔다. 한방병원장을 하는 여성한의사선생은 주변에서는 삼신할매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불임증인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해 주는 비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남편인 황교수가 이렇게 말했다.&ldquo;저 사람은 아이가 없는 가정 이만가구쯤에 아이를 낳게 해 줬어요. 인구가 줄어드는 대한민국에서는 공로자죠.&rdquo;서울대 교수고 옆에서 지켜봤으니 믿을 만 했다. 인공수정만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던 나는 한방에서는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ldquo;어떻게 아이를 낳게 하나요?&rdquo;라고 물었다.&ldquo;임신도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영향이 많아요. 인간의 두뇌에서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이 생성 되서 그걸로 몸 전체에 지시를 하듯 임신도 그렇게 봅니다. 불임의 원인에는 깊은 내면의 상처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죠. 제가 최면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그걸 불임치료에 적용하고 있어요.&rdquo;그러고 보니 상상임신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았다. 아이는 없는데 배는 불러오는 증상인 것 같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우주인 정신세계에 흥미가 끌렸다. 성경속의 마리아는 계시를 받고 예수를 홀로 잉태했다.&ldquo;어떻게 정신세계에 대해 공부하게 되셨죠?&rdquo;내가 물었다.&ldquo;제 아버지 역시 한의사셨어요. 아버지는 동양적인 기나 풍수 같은데 심취해서 공부를 많이 하셨죠. 저는 딸이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의대에 들어갔어요. 한의대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저를 보고 한번 옛날 스님들 같이 면벽수행을 해 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렇게 했죠. 매일 자시(子時)에 그러니까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벽에 찍어놓은 점 하나를 응시하면서 수행하는 거였어요. 저 역시 아버지같이 이상하게 그런 동양적 신비에 관심이 많았어요. 면벽수행을 꾸준히 했죠. 처음에는 몸이 뒤틀리고 다리가 아프고 그렇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날 보니까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몸이 붕 뜨는 것 같더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속으로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이 그런 신비로운 현상 때문에 그렇게 하는구나 싶었어요.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뇌파가 바뀌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되면 우주의 어떤 존재와 통하는 거죠. 아버지는 면벽수행을 해서 뭔가를 느끼게 되면 예습복습을 안 해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어요. 교수님들 강의가 그대로 머릿속에 들어와 박히고 굳이 암기를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 면벽 수행 덕으로 제가 한의대를 일등으로 졸업했습니다.&rdquo;신기한 얘기였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사막에서 수행을 하다가 셋째하늘로 올라가 여러 신비로운 것을 보고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만 혼만 올라간 것인지 아니면 몸도 올라간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불교에서 달마도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ldquo;그 다음으로 &lsquo;육경신&rsquo;이라는 수행방법이 있죠. 특정한날 특정한 시각에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면 접신을 하는 거죠. 그건 귀신이 나타날까봐 무서워서 못했어요. 그 외 강증산에 관한 것도 보고 여러 가지 정신세계에 관한 책들을 읽었죠. 그렇지만 천주교 신자인 우리부부는 하나님과 성령을 기본중심으로 삼고 정신세계를 공부했습니다.&rdquo;젊은 시절에는 정신세계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픽 웃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졌다.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다른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예수는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을 받았다. 너는 내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 사도 바울은 길을 가다가 예수의 영을 만났다. 예수는 그에게 직접 사명을 얘기해 주었다. 불경을 보면 부처도 깨달음을 얻는 순간 어떤 절대적 존재와 접신을 했다고 한다.마호멧도 동굴 속에서 수행을 하다가 천사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 동학의 최제우도 대순진리의 강증산도 어떤 영적 존재를 만난 장면이 그들의 경전에 나오고 있다. 육체가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이성이 지식과 논리를 파악하듯 인간의 영혼은 어떤 절대적 존재를 맞이하는 건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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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감옥 안의 자유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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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14 Sep 2017 08:33: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4689139166.jpg"/> 모처럼 약속된 일정이 없는 날이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 하다가 구치소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삼십대에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냈다. 겁이 났던 그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러다 근 삼십년 만에 잡혀와 감옥으로 들어갔다.도망을 한 괘씸죄가 적용되어 그는 징역6년을 선고받았다. 노년의 그의 삶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이었다. 가족은 외국에 있었다. 면회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가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문정역에서 내려 장방형의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차 있는 사이의 길을 이십분쯤 걸어 구치소에 도착했다. 초가을의 햇볕이 따가 왔다. 구치소 입구에서 신분증과 출입 전자텍을 교환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교도관들이 없어지고 이제는 무인 시스템이다. 철창마다 옆에 감지장치가 붙어있다. 목에 건 전자텍을 거기에 대면 철창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구치소 깊숙이 있는 접견실에서 친구를 만났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면 위로가 된다. 입시에서 낙방했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건 같이 떨어진 친구다.&ldquo;어떻게 지내냐?&rdquo;내가 물었다.&ldquo;잘 지내.&rdquo;그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lsquo;박근혜 대통령도 감옥에 계시는데 나 쯤이야 뭐&rsquo; 하던 친구였다.그래도 그의 미소의 뒤편에는 엷은 적막함이 담겨 있었다.&ldquo;요즈음은 대통령 말고 위로받는 죄인은 옆에 안계시냐?&rdquo;내가 장난기를 섞어 물었다.&ldquo;옆방에 부장검사출신 변호사가 들어와 계셔. 왜 들어와 있는지 주위사람들 한테 말하지 않는대.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불편해 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 네 시면 일어나서 공부한다면서 부시럭 대서 옆 사람들이 싫어하더라구. 자기는 집행유예로 곧 나갈 거라고 한 대.&rdquo;&ldquo;부장검사 출신이 왜 들어왔어?&rdquo;&ldquo;돈을 많이 먹었나봐. 왜 그런 변호사들 많잖아? 얼마 전에도 판사에게 로비해서 보석으로 풀어준다고 하고 오십억원인가 받은 판사출신 여성변호사도 있잖아?&rdquo;&ldquo;대통령도 뇌물죄로 들어가고 부장검사도 들어가고 그랬는데 너는 돈 먹은 게 아니고 사업하다 네 돈 다 털렸는데 억울하지 않냐?&rdquo;&ldquo;그게 내 팔잔데 어떻게 하겠어? 인간이 어떻게 운명을 이겨? 운명이 인간을 휘감아 버리는 거지.&rdquo;&ldquo;오늘아침에 감옥 독방에 있던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감옥에서 벽에 뚫린 식구통으로 식은 저녁밥을 받고 혼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쓸쓸하다고 하던데?&rdquo;가족과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건 행복이었다.&ldquo;그건 맞아. 여기 구치소를 보면 독방에서 혼자 밥먹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그래도 네 명이 있는 방에서 그 사람들 하고 같이 밥을 먹어. 다행이지&rdquo;&ldquo;영치금은 있냐?&rdquo;아무도 그에게 돈을 줄 사람이 없었다.&ldquo;돈 필요 없어. 내가 당이 있어서 밥도 조금만 먹으면 돼. 영치금으로 반찬을 사서 보탤 필요가 없어. 나라에서 주는 반찬만 먹어도 충분해. 뭐 짜장밥도 주는 데 뭘.&rdquo;&ldquo;변호사인 내가 경험하면 감옥 안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던데 말이야. 범털은 모포나 속옷도 새 거 입고 개털은 범털이 버린 걸 주워 입고 말이야.&rdquo;&ldquo;내가 입고 있는 옷하고 옆방 사람이 입은 옷하고 비교해 봐라.&rdquo;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접견을 하고 있는 옆의 죄수가 보였다. 얇아 보이는 청색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걸 같이 보면서 친구가 말했다.&ldquo;나는 법무부에서 주는 누런 죄수복을 입고 저 사람은 자기가 사서 입은 거지. 요즈음은 그게 감옥안의 빈부차이라고 할 수 있지. 운동할 때 신는 운동화도 고급을 신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 그리고 영치금으로 먹을 걸 사서 감방 안에서 혼자 먹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그게 감옥 안 부자들의 모습이지.&rdquo;&ldquo;빈 시간은 뭐를 하고 지내니?&rdquo;&ldquo;그 시간이면 성경 한번이라도 더 읽으려고 노력해. 간디나 그 제자들도 감옥이 수도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했잖아?&rdquo;철저히 외로운 그는 고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돈이 없어도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어도 바위처럼 묵묵히 앉아서 비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신경줄을 끊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는 어떤 다른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린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나 감옥에서나 마디가 굵은 손을 성경책 위에 얹음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자세가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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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조폭의 보스와 북한의 김정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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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13 Sep 2017 09:11: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60399108065.jpg"/> 변호사인 나는 폭력조직의 보스 몇 명으로부터 초대받아 강남의 고급 일식집에 간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그들의 태도는 오만방자했다. 권력자였다면 영화장면속의 건달처럼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들은 식사도 나오기 전에 양주를 큰 컵에 가득 채워 돌렸다. 여종업원에게 &ldquo;너&rdquo;라고 하면서 말도 함부로 했다. 대신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주면서 여종업원의 분기를 죽였다. 방 밖에는 건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그들의 원색적인 근육의 힘 안에서 나는 무시당한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변호사란 돈을 던져주면 허겁지겁 받는 그런 존재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것이 그들을 보스로 만들었는지 나는 순간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특별히 덩치가 크거나 격투기 선수처럼 싸움기술이 있는 아닌 것 같았다.&ldquo;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될까요?&rdquo;내가 끼어들어 그중 좌장격인 남자에게 물었다.&ldquo;뭡니까?&rdquo;그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ldquo;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여기 계시는 분들 전국적인 조직의 보스인 걸 지금 말 중에 자랑하시잖아요? 저는 여러분이 먹물이라고 부르는 문약한 변호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하나님한테 &lsquo;같이 죽게 해 주세요&rsquo; 하고 기도하고 한판 붙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되겠습니까?&rdquo;내 말에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보면서 진짜 궁금했다. 그들도 나이 먹은 나약한 한 인간으로 보였다. 허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정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중 한명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면서 말했다.&ldquo;잘못했습니다. 형님&rdquo;갑자기 호칭이 바뀌었다. 그 말을 들으니까 불안해 졌다.어떤 조폭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건달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니까 좋아서 진짜 우쭐하다가 나중에 구덩이에 묻혀 혼 줄이 나는 그런 모습이었다.&ldquo;형님이라고 부르시면 제가 상당히 겁이 납니다. 형님 형님하고 부르다가 때리면 저는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rdquo;&ldquo;저희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물으셨는데 각오하시고 맞 짱을 뜨면 어떠냐고 하셨는데 그런 각오라면 저희가 집니다.&rdquo;그중 좌장격인 남자가 정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다들 양같이 온순해 진 얼굴이었다. 내가 덧붙였다.&ldquo;저는 저녁식사에 초청받아 왔습니다. 아까부터 술들만 드시는데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제가 먼저 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밥을 안 먹었습니다. 제 밥만 먼저 시켜주세요. 저녁식사에 초청받았으면 밥은 먹고 가야 할 거 아닙니까?&rdquo;그중 한명이 여종업원에서 다급하게 초밥을 내오라고 주문했다. 잠시 후 나온 초밥을 먹었다. 그중 좌장격인 남자를 다시 보니 초등학교 시절 알던 친구와 인상이 비슷한 게 원인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ldquo;대충 나이도 비슷한데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 어때요?&rdquo;&ldquo;예 알겠습니다.&rdquo;그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의 행동이 건달사회에서 흔히 보는 독기 품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기싸움이 아니었다. 하늘에 대고 마음속으로 남과 싸우기보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맞아죽을 각오를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사실은 장교 시절 철책선에서 순찰을 돌면서 유사시 포로가 되면 그 자리에서 차고 있는 권총으로 죽음을 선택해야 하지 않나 하고 마음을 먹었었다. 핵을 개발한 북한의 김정은이 이미 세계의 깡패가 되어있다.강력한 원색적인 폭력을 가지면 개인이나 국가가 마찬가지인가 보다. 중동에서 위축되어 있던 이스라엘은 핵을 개발하자 깡패가 됐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세 나라를 단번에 점령했다. 덩치큰 아랍권도 핵이 무서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도왔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었던 한 선교사 한테 직접 들었다.이스라엘의 헬기가 그들의 대상목표인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있는 빌딩을 보고 공중에서 미사일을 쏘니까 건물전체가 그 자리에서 먼지투성이 콘크리트더미가 되는 걸 목격했다는 것이다. 아랍권도 세계도 아무도 그런 인권유린을 도와주지 않더라고 했다. 북한이 세계적인 깡패국가가 됐다. 우리도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김정은은 빌게이츠보다 더 부자다. 햇볕정책으로 남쪽에서 받은 거액의 돈에 몇 천만 북한 동포를 노예같이 부리고 있는 왕이다. 세계에서 그런 부자가 있을까. 가진 게 있는 독재자는 약하다. 살라고 핵을 개발했지 망하려고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핵 한방 날리고 죽을 짓은 바보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문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우리의 각오가 아닐까. 죽는다는 각오가 있으면 사람은 산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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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미국과 천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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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ue, 12 Sep 2017 09:53: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29/1506653634937052.jpg"/> 많은 재산을 가진 한 여인을 만났다. 원래 부잣집 딸이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신문보도를 오르내리니까 내게 이런 의논을 했다.&ldquo;저희 집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인데요, 북한의 핵 위험이 더 심해지면 미국인들은 모두 철수한다는데 그런 상황이 오면 비행기 표를 제대로 살 수 있을까요?&rdquo;나는 그녀가 같은 한국인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은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ldquo;비행기표 걱정은 할 것 없을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 비행기들을 보내 미군 기지나 서울공항에서 미국시민들은 다 데려가지 않겠습니까? 미국시민권자시니까 가족을 데리고 그 때 비행기를 타고 가시면 될 겁니다.&rdquo;&ldquo;그게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한국에 미국 시민권을 딴 사람이 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가겠어요?&rdquo;&ldquo;북에 억류된 단 한명의 미국인도 미국의 전직대통령이 가서 구출해 비행기로 데리고 가는 나라인데 그게 걱정이겠습니까?&rdquo;나는 그 부인을 보면서 슬퍼지고 있었다.&ldquo;변호사님은 무서운 김정은이가 핵을 터뜨리면 어디로 피난을 가실 거예요?&rdquo;그녀가 물었다.&ldquo;저는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로 갈 겁니다. 거기가 더 안전하고 영원합니다.&rdquo;&ldquo;그게 어디인데요?&rdquo;&ldquo;천국입니다. 미국은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 유색인종으로 살면 결국 차별받는 밑바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망 하시는 것이 잘하는 행동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rdquo;&ldquo;저는 사업가인 아버지한테서 위기상황이 닥쳐오면 바로 금이나 달러를 가지고 멀리 피난하라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rdquo;그녀가 말했다.&ldquo;돈 없는 가난한 집 아들인 아버지는 6.25전쟁 때 군에 가서 6사단 병사가 되어 전투에 참여하고 살아남아 저를 나으셨죠. 아들인 저는 역시 철책선이 있는 그 부대에 장교로 가서 젊은 날을 보냈어요. 위기상황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우면 꼭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행위 그 자체가 벌써 패배한 겁니다. 미국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여기같이 대접받고 편안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rdquo;&ldquo;변호사님 얘기를 들으니까 나하고는 전혀 별세계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나 원 참. 그리고 전쟁이 나면 북쪽 사람도 무섭지만 여기 이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하던데요?&rdquo;그녀를 보면 이 사회에서 가진 사람들 상당수의 기본적인 의식을 솔직히 볼 수 있었다. 많은 외화를 미국으로 빼돌리고 먼저 미국으로 간 가족이 있었다. 그 집 부인이 한국 법원에서 남은 한국의 재산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 중에 있었다. 우연히 내가 그 사건의 대리를 맡은 변호사였다. 소송이 진행 중이던 어느 날 그녀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재판장님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가련한 여인의 모습을 보이던 여자였다.&ldquo;나 이제 시민권자가 됐어요. 미국인이란 말이예요. 한국법원이나 법관은 다 썩었어. 나 이제부터 미국법원에서 소송을 할 거예요. 그러니 당장 소송을 그만둬 줘요. 당장 집어 치우라구요.&rdquo;&ldquo;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구요?&rdquo;내가 되물었다.&ldquo;미국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가지고 한국에 오면 한국에서는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고 미국 변호사한테 들었어요.&rdquo;나는 그녀의 턱없이 오만해진 모습을 보면서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한국인에게는 열등한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느낀다. 개들을 보면 어떤 학대를 당하고 잡아 먹혀도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치기 전에는 원초적인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게 개의 운명이다. 일제시대에는 뼈까지 일본인이 되자고 한 친일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본제국의 시민권이 완장이었다.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도망을 가서 거기서 일생을 마친 사람들도 있었다. 약하고 가난해도 내 나라를 사랑하고 당당하게 세계와 맞설 수는 없을까. 핵무기보다 무서운 병기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자존심이 아닐까. 미국시민권을 따고 미국에 가서 한국의 전쟁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의 영혼의 프로그램을 바꾸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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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갑자기 닥친 죽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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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11 Sep 2017 16:11:32]]></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3882491159.jpg"/> LA의 어두운 밤길을 지친표정의 한 늙은 흑인 영감이 걷고 있었다. 그는 바퀴를 단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진 고행자였다. 물기로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의 불빛이 번들거렸다. 거리의 귀퉁이에 수상한 느낌이 드는 차가 세워져있다. 썬팅 한 유리창을 통해 세 명의 남자가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흑인 영감이 그 차 옆을 지나칠 때였다. 순간 검은 총구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인근 가게를 턴 강도였다. 현장의 목격자가 된 셈이었다. 강도가 그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흑인 영감은 순간 눈을 깊게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ldquo;저는 이미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rdquo;영감의 얼굴은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야비한 표정을 짓던 강도의 눈이 순간 고민하는 빛을 띄었다. 강도들이 탄 차가 그를 버려둔 채 끼익하고 타이어마찰음을 내면서 가버렸다. 며칠 후 그 강도가 총을 들고 한 교회의 백인목사 방에 들이 닥쳤다. 목사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강도가 소리쳤다.&ldquo;너는 예수를 믿으니까 죽을 각오가 되어 있겠지?&rdquo;순간 백인목사는 당황했다. 강도는 이번에는 그 백인목사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공범 중 한명이 뺏은 돈 가방을 그 교회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백인 목사의 표정에 여러 의미가 스쳐갔다.&ldquo;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rdquo;백인목사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대답했다. 강도가 순간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강도는 목사실에 숨겨둔 돈 가방을 찾아 가버린다. 밤늦게 혼자 보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죽음이 닥치면 나는 바로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죽음을 앞에 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했다. 검사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암에 걸린 고교선배와 나눈 대화가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ldquo;검사로 출세해 보려고 참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rdquo;그는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 장관이 되고 싶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고 세상 사닥다리의 끝까지 올라가 날개를 펼치고 싶던 사람이었다.마지막에 그는 의사에게 &ldquo;죽여줘, 죽여줘&rdquo;하고 사정을 했다. 너무 심한 고통 때문에 화장실을 급하게 가듯 저 세상으로 뛰어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영정 사진 속에서 그는 이승의 나를 쳐다보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장에서 그가 타고 있는 소각로 앞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평소 그의 주변에 들끓던 그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화장장까지 가게 했을까. 그는 모함에 빠진 나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그는 또 죽기 얼마 전 내게 전화를 걸었었다. 내가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제약회사의 약들을 자상하게 소개해 주었다. 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독학으로 약에 대해 통달해 있었다. 그런 정이 나를 그의 마지막 길까지 배웅하게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웃을 사랑한 흔적을 세상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걸 막연히 깨달았다. 죽음이 몇 달 안남은 의사에게 좋은 점심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만 했다. 돈을 벌어 비로서 해변가에 좋은 집을 사고 살만하니까 암이란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힘들게 번 돈을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미국병원에 쏟아 부어도 죽음의 천사는 그를 놓아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체념을 한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ldquo;평생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만육천장의 차트가 나의 인생이었어요.&rdquo;그의 그늘진 표정을 보면서 그가 아쉬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바닷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건 아닐까. 가족과 밤하늘에 뿌려진 보석 같은 별들을 바라보고 싶을까. 특별한 게 아니라 그런 일상의 자잘한 행복들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죽음을 얼마 앞두었을 때 더러 만나곤 했다. 죽음을 앞둔 그는 가족이 없었다. 아들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ldquo;문학을 나의 종교로 삼았죠. 문학을 하기 위해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었어요. 생활에 돈이 들지 않아야 문학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밥 대신 일생 많은 책을 읽었어요. 몸이 요구하는 음식보다 정신적인 밥이 내게 더 중요했으니까. 나는 죽어도 죽지 않아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일흔일곱권의 책이 바로 나니까.&rdquo;그 얼마 후 그의 영혼은 혼자 살던 집의 적막한 방을 빠져나와 저세상으로 갔다. 인간은 이세상의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삶이란 무엇일까. 평소에 하던 일의 집적일까? 주변에 뿌린 한줌의 사랑이 본질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언제든지 부르시면 &ldquo;예&rdquo;하고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걷는 행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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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11 Sep 2017 09:14: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8028020275.jpg"/> 변호사로 오랫동안 감옥을 드나들었다. 어느 해 겨울 눈덮인 교도소 접견실 안에서 한 죄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ldquo;비가 뿌리는 날 쇠창살을 통해 교도소 마당을 바라보면 담 밑에 피어난 작은 풀들이 촉촉이 젖는 게 보여요. 그럴 때면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죠. 그런데 그게 바로 몇 미터 앞인데도 그럴 수 없는 게 이 감옥이고 징역살이예요.&rdquo;소년시절 감옥에 들어온 그는 중년을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사먹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공기처럼 느끼는 평범한 것들이 갇힌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했다. 오랫동안 독방에서 징역생활을 또 다른 사람이 쓴 이런 짧은 글을 읽었다.&lsquo;눈을 감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반이면 이마에 섬뜩한 철문. 뒤로 돌아 한걸음 두 걸음 반이면 코 앞에 쇠창살. 그곳에는 이슬 젖은 산책길이 있나요. 그곳에는 저물어 가는 들길이 있나요. 시장 골목에 손님 부르는 소리 들려오나요. 거리에는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걷고 있나요. 나는 걷고 싶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끝도 없이 걷고 싶습니다.&rsquo;변호사인 나는 감옥생활을 하는 그들에게서 진한 감동으로 전해져 오는 걷는 행복을 배웠다. 어느 날 여의도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강변을 걷고 싶었다. 노을에 붉게 물들어 출렁이는 강물을 보며 걸었다. 멀리 도심의 빌딩위에 걸린 밝은 진홍색의 해가 황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무엇에 홀린 듯 계속 걸었다. 뚝섬 쪽 강가에 이르렀다. 기억의 영사막 속에서 강가에 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흑백사진 같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무심히 흐르는 강을 좋아했다. 강 길을 따라 걷다가 광나루의 강가 벤치에서 잠시 아픈 다리를 쉬었다. 어스럼 속에 물결치는 강가에 50년 전의 넓은 모래사장이 솟아오르는 상상을 했다.모래사장에서 텐트를 치고 놀던 햇볕에 까맣게 탄 소년시절의 내가 나타났다. 주변에는 키타와 간단한 스네아드럼 만으로 구성된 밴드가 연주하던 &lsquo;울리불리&rsquo;라는 곡이 머리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하남 쪽의 적막한 강은 말없이 내게 인생은 무엇이었던가를 묻고 있었다.나는 강변풍경에 취해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걸었다. 들꽃이 가득 핀 인적 없는 여주강가의 들판을 지나면서 홀가분한 자유를 느꼈다. 그렇게 충주까지 걸어갔었다. 밤이 되면 강가의 조용한 모텔에 들어가 자고 다음날 아침 또 걸었다. 발톱이 빠지는 바람에 걷기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걷는 길이었다. 내게 걷는 행복을 가르쳐 준 죄수가 이십년 만에 석방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세상에 나오니 그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감옥에서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성남에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고 했다. 저녁이면 쓰레기가 널린 뒷골목을 걸어도 좋기만 하다고 했다. 걸으면서 부부끼리 악다구니를 쓰고 싸움을 하는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말했다고 한다.감옥의 독방에 갇혀 있을 때 누구와 싸우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했다고. 미친 듯 걷고 싶다고 글을 썼던 또 다른 죄수는 사면이 된 후 인도로 티벳으로 이 지구별을 한없이 걸어 다니며 별같은 시를 쓰고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감옥을 드나들면서 작은 행복 하나씩을 낚시하듯 잡아 건져오고 있다. 행복은 발견하는데 있다. 반지하방의 가난한 셋방살이에도 따뜻한 햇살은 깨진 창으로 어김없이 들어온다. 그런 진짜 행복들은 부자와 차별이 없는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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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의병 같은 여성변호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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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10 Sep 2017 09:08: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7934715989.jpg"/> 변호사로 30년 세월을 흐르다 보니 사무실에 와서 일을 배워보겠다는 젊은 변호사가 여러 명 있었다. 로스쿨이나 변협에서도 실무공부를 시키기 위해 변호사들을 보냈다. 시작부터 참 여러 모습이었다. 기성변호사들의 나쁜 면부터 먼저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몇 마디 전문용어로 과시하고 싶어 하고 출근하면 온 몸에서 술 냄새가 풍기는 변호사도 있었다. 돈 벌어 잘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변호사로서의 양심은 따로 캬비넷에 빼두고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 진흙 속에서 아침이슬을 머금은 연꽃 같은 존재도 있었다.어느 날 서른 살 쯤의 여성 변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노숙자들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고 희망하면서 선배변호사들에게 의논을 하러 온 것이다.&ldquo;지금의 로펌에서 도저히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rdquo;&ldquo;왜요?&rdquo;내가 물었다.&ldquo;저작권사건을 많이 하는데 적발해서 내용증명 보내고 소송한다고 겁을 주고 합의명목으로 돈을 뜯는 일을 합니다. 저작권을 전혀 모르고 남의 간판이 멋있어 보여 그걸 비슷하게 베껴 식당 간판을 만든 영세한 음식점 주인들에게까지 내용증명을 보내 겁을 주는 거예요. 일부러 소송청구액을 높여 공포에 떨게 하고 봐주는 척 하면서 돈을 받아내 협회와 나누어 먹는 거죠. 공갈범 같아요.&lsquo;이건 아닌데&rsquo;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rdquo;토스토엡스키는 변호사를 &lsquo;고용된 양심&rsquo;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나쁜 변호사는 식인 물고기 &lsquo;피라니아&rsquo;같았다. 먹이만 보이면 떼를 지어 달려들어 다 뜯어먹는다. 그런 변호사들이 매년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ldquo;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rdquo;그녀가 말했다.&ldquo;어떤 때 살아있다고 느낍니까?&rdquo;&ldquo;일주일에 한번씩 탈북청소년 한 아이를 맡아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어요.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남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데서 제가 오히려 구원을 받는 느낌입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rdquo;&ldquo;탈북자들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죠?&rdquo;내가 물었다.&ldquo;우리사회가 통일을 부르짖는데 탈북해서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lsquo;와 있는 통일&rsquo;이잖아요? 그들을 잘해주지 않으면서 통일을 얘기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rdquo;무서울 정도로 핵심을 꿰뚫은 답변이었다.&ldquo;왜 변호사가 됐습니까?&rdquo;&ldquo;저를 변호사로 만든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고 슬픈 자를 위로하라고 하셨어요.&rdquo;작달막한 그녀의 마음속에 어떤 강한 존재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노숙자들을 변호하겠다고 했다.&ldquo;노숙자들의 냄새를 견딜 수 있습니까?&rdquo;내가 물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살았을 때 말이 떠오른다. 평생을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한여름 사람에게서 나는 악취를 견딜 수 없더라고 솔직히 고백했었다.&ldquo;할 수 있습니다.&rdquo;여성변호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ldquo;그들이 굶은 짐승같이 탐욕적인 눈길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데요&rdquo;&ldquo;저는 그런 가장 고통 받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믿습니다.&rdquo;신념에 찬 눈빛이었다.&ldquo;변호사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rdquo;내가 물었다.&ldquo;아픔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공감을 할 때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행동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dquo;젊은 여성변호사는 감상이나 공허한 관념으로 말하는 건 아니었다.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성녀 같았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그녀는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는 성녀 같았다. 이제 그녀는 횃불이 되어 이 사회의 어둠을 밀어낼 것 같았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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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입사시험에서 86번 떨어지고 변호사가 됐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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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at, 09 Sep 2017 08:25: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6826791783.jpg"/> 교대역 부근에서 칠십대 중반의 변호사가 부인과 함께 조그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독특한 부부였다. 그 부부는 인터넷으로 젊은 변호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그들이 고용해서 일을 시키겠다는 게 아니었다. 노숙자와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청년변호사에게 매달 2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부부는 이기적이고 부패한 변호사업계에서 진실한 변호사 한명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어 돈을 내놓은 것이다. 작은 &lsquo;변호사학당&rsquo;이라고나 할까. 신청자는 없었다. 어느 날 그 노 변호사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숙자의 친구가 되겠다고 신청한 청년이 있는데 같이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보내온 간단한 이력서를 봤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재벌그룹 산하의 대형백화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노부부의 사무실로 갔다. 시간이 되자 그 청년이 찾아왔다. 길게 찢어진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나오고 있었다. 다부진 인상이었다.&ldquo;재벌기업의 대형 백화점에 근무했는데 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까?&rdquo;선배 변호사가 물었다.&ldquo;영업을 담당했습니다. 빨리 대리로 승진했고 임원도 멀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삶의 가치관 자체가 달라지겠구나 하는 회의가 일었습니다.&rdquo;&ldquo;왜죠?&rdquo;&ldquo;대형백화점의 직원으로 있으니까 시스템상 계속 갑질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입점을 시키고 뒷돈을 받고 실적 없다고 쫓아내거나 협력업체에 무리한 목표를 부여하고 그게 되지 않으면 탈락시키는 행위가 모두 사실은 공정거래법위반인 겁니다. 직원으로 회사에 충성하는 행동이 세상에서는 나쁜 짓인 이중구조였습니다.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쓰고 나와서 로스쿨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rdquo;&ldquo;요즈음 일자리를 얻기 힘든 세상에 명문대를 졸업한 것도 직장을 얻은 것도 좋은 것 아니었습니까?&rdquo;노 변호사가 물었다.&ldquo;쉽게 얻은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렸는데 백군데 기업체에 지원했고 아예 서류전형에서 여든 여섯 번을 떨어졌습니다. 왜 떨어졌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서류전형을 통과해도 면접에서 이유도 없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아흔 일곱 번째는 서류와 실무진 면접을 통과했었죠. 마지막으로 임원면접만 남았을 때 였습니다. 마침 인사과직원이 대학 때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제가 사실상 지원자 중에 모든 성적이 일등이라고 했어요. 회장 앞에서 막말로 똥을 싸는 추태만 부리지 않는 한 합격이 틀림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면접날 가 보니까 회장님이 나한테는 단 한마디 질문도 하지 않는 겁니다. 이력서에 적힌 초중고교시설 직선제 전체 학생회장을 하고 대학교에서도 학생대표를 한 게 저한테는 자랑이었는데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과는 떨어졌죠. 나중에 간접적으로 알아보니까 제 인상이 고분고분해 보이지 않고 선동해서 노조투쟁을 할 것 같기 때문에 탈락시킨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위에서 눈높이를 낮추라고 해서 한 단계 낮은 기업들에 지원했는데도 역시 떨어졌어요. 정말 사회가 나를 요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사회의 경계인내지 주변인에 불과한가 하고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대형백화점 직원으로 채용이 됐었죠.&rdquo;&ldquo;자란 환경은 어떻습니까? 사표를 써도 먹고 살만 했습니까?&rdquo;노변호사가 물었다.&ldquo;아버지는 무학에 전라도 깡촌에서 남의 논을 소작하고 겨울에는 목수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모은 돈으로 논 한마지기를 샀을 때였죠. 아버지가 참 좋아했는데 누나의 사고로 그 논을 곧 처분해야 했죠.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사판 못에 찔려 그 독이 올라 돌아가셨죠. 어머니는 시골에서 품팔이로 우리 오남매를 먹여 살리셨죠. 처절한 삶이었어요.&rdquo;그의 가슴에 새겨진 응어리가 느껴졌다. 그 응어리를 보고 회장은 그를 채용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ldquo;세상에 분노한 적은 없습니까?&rdquo;&ldquo;있었습니다. 어릴 적 한번은 높은 사람들이 방송에서 말하는 게 나오는데 가난의 원인은 게으름이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반발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까지 남의 밭에 가서 품을 팔고 받는 게 돈 이 만원이었어요. 가난을 게으름 때문이라고 한 그 사람들에게 정말 화가 났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번질거리는지 몰라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서민의 마음을 알까 의문이었죠.&rdquo;&ldquo;그 환경에서 공부는 어떻게 했죠?&rdquo;노변호사가 물었다.&ldquo;아이들 모두 학원에 다니는 속에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책 한권이라도 혼자 반복하는 방법으로 중학교도 수석졸업하고 고등학교도 수석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도 합격했습니다. 가난 편모슬하의 가정의 고단함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몸으로 겪어 봤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저의 삶을 역경이라고 표현하는 데 그 글자를 거꾸로 읽으면 &lsquo;경력&rsquo;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rdquo;그의 이력서 끝에 그가 헌법소원을 신청한 서류가 붙어 있었다. 그가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변호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대답을 요구한 서류였다.&ldquo;이 헌법소원은 뭡니까?&rdquo;노변호사가 물었다.&ldquo;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정에 나가 방청을 한 적이 있는데 시신 없는 살인사건을 심리하는 법정이었습니다. 거기서 피고인의 가족을 만났는데 돈이 없는 그 사람들은 제가 변호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저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로스쿨출신 변호사는 일정기간 사건도 맡을 수 없고 구치소에 가서 접견도 할 수 없도록 한 겁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헌법소원을 한 겁니다.&rdquo;&ldquo;설사 그 헌법재판에서 이긴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리니까 본인이 혜택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rdquo;선배변호사가 되물었다.&ldquo;부당한 걸 뻔히 알고 가만히 있는 건 법을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물론 내가 이익을 보는 건 아니지만 다른 후배 변호사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거 아닐까요. 제가 로스쿨에 들어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건 우리 어머니 같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도 법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거 였어요. 노숙자를 위해 봉사할 변호사를 찾는다는 인테넷 공고를 보고 생각해 보니까 노숙자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변호사가 나 말고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의 역경이 이런 일에는 장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dquo;나는 그 청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처절한 환경 속에서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증오가 에너지일수도 있었다.&ldquo;한가지 만 묻겠습니다.&rdquo;내가 아들 같은 청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ldquo;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부딪치고 내가 무력하다고 생각할 때 당신의 시각은 수평적입니까 수직적입니까?&rdquo;&ldquo;그게 무슨 말씀이신지?&rdquo;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ldquo;저 역시 평생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벽에 부딪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서민을 위한다는 막연한 관념으로 진심을 쏟았는데 그들이 더 교활하기도 했습니다. 철벽같은 시스템의 한계에 부닥쳐 부서지기도 했습니다. 수평적 시각으로 인간이나 제도를 보면 분노와 증오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면 그렇지 않았죠. 내가 다 할라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어진 소명만큼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었으니까요. 당신의 시각은 어떤 것입니까.&rdquo;&ldquo;------&rdquo;청년은 침묵했다.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역경과 용기가 침묵의 체로 여과되어 사랑의 에너지로 승화될 것이라고 믿었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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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내가 본 마광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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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08 Sep 2017 08:05: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6665045510.jpg"/> 마광수 교수가 베란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일흔네살의 누님이 지키는 장례식장은 조문객이 없이 썰렁했다고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다. 1992년경 그의 책 &lsquo;즐거운 사라&rsquo;의 외설성을 두고 사회가 들끓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의 작품이 성관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성욕을 자극 한다&rsquo;고 했다. 그 무렵 호기심에 그의 책을 사서 읽었다. 나의 시각으로는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생 무렵 교실에서 은밀히 돌던 음란서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나이가 들어서 인지 성욕을 자극하기는커녕 혐오감 때문에 오히려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명문대 교수가 그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감옥에 들어간다는 게 파격으로 보였다. 민주화운동도 아니고 독립운동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술적 순교자라고 보기도 찝찝했다. 그가 근무한 연세대에 나와 고교동기가 교수로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ldquo;마광수교수의 방이 내 방과 가까이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 교수가 세상이 인식하는 것 같이 그런 야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다른 교수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끼니때가 되면 혼자 컵라면을 먹더라구. 성실하고 소심한 사람 같아 보여.&rdquo;1999년경 한 출판사가 마광수교수와 내가 &lsquo;이혼&rsquo;문제에 대해 공동 집필로 책을 낼 것을 제의했다. 마광수 교수는 &lsquo;사랑, 이별, 결혼, 이혼, 고독등에 대하여&rsquo;라는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원고를 보았다. 솔직한 자기고백이었다. 그중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있었다. 그 내용을 대충 간추리면 이랬다.&lsquo;나는 주로 글 쓰는 일을 핑계로 일요일이든 연휴든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지의 칸을 메워 나가는 게 정해진 일과처럼 되어 있다. 정말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이다. 남들은 내가 연애얘기나 성에 관한 얘기를 많이 쓰니까 아주 재미있고 신나게 일상을 때워가는 줄 아는데 정 반대다.나는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이나 피우고 매일 저녁마다 혼자서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다.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비사교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 관능적 상상력이 발달하게 됐다. 그리고 비현실적 공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야하고 과장적인 &lsquo;꿈&rsquo;과 &lsquo;일탈&rsquo;을 담은 시나 수필, 소설을 많이 쓰게 됐는데 문학이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구속도 되고 꽤나 시달림을 받았다. 거세게 비난하는 분들이 지적하는 것 같이 내 작품세계가 비현실적이고 변태적인 백일몽의 산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작가의 경우라면 야한 연애소설이나 솔직한 고백소설을 쓰기보다 교훈적 이념소설이나 종교소설 또는 민족대하소설을 써서 &lsquo;글쟁이&rsquo;가 아닌 &lsquo;지도층 인사&rsquo;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현학적인 포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다. 나는 보수적 권위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며 수구적 봉건윤리와 맞서 싸워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나는 1985년12월에 결혼해서 1990년1월에 이혼했다. 오랫동안의 교제 끝에 벼르고 별러 한 결혼이었지만 잘 맞지 않았다. 2년 만에 별거를 하면서 창피하고 고통스러웠다. 어렵게 맺어진 소중한 인연의 끈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린다는 것은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다. 가수 패티김과 길옥윤 두 사람은 이혼한 후에도 계속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lsquo;색&rsquo;을 마음껏 포식해 본 적이 없다. 담배나 술처럼 항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고 해봤자 뒷맛이 찝찝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늘 색에 굶주린 상태에 있다. 나는 연애를 못하고 있다. 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은 모두 유부녀들 뿐이다. 젊은 여성들은 나이가 많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대학교에서 많은 여대생을 상대하고 있으니까 혹시 여학생들 중에서 나를 흠모하여 따라다니는 학생이 많은 줄 안다. 그렇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여대생들은 절대로 선생을 이성으로 흠모하거나 짝사랑 하지 않는다. 주변에 쌔고 쌘 게 남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들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여자는 없다. 머리털이 미친 듯이 숭숭 빠져나가고 있는 나는 연애를 단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쓰는 문학작품들의 내용이 과장적으로 에로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안 되면 상상으로라도 충족시켜야 하는 게 사랑이니까 말이다. 나 자신의 경우 문학을 통해 &lsquo;사랑에 대한 탐구&rsquo;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럭저럭 대리충족감을 맛보면서 외로운 나날들을 지탱해나갔다. 사실 내게 가장 즐거웠던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나를 따라주고 격려해 주며 즐거운 사라 이후 복직운동을 열심히 해 준 젊은 학생들을 대하는 강의시간에 나는 진정한 기쁨을 맛보며 보람을 느꼈다. 선생으로서 또 작가로서 걸어간 나의 인생은 이만하면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한다.&rsquo;그해 늦가을 저녁 책이 나온 날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마광수교수를 만났다. 음식점 벽에 무릎을 세우고 쪼그리고 앉은 그의 모습에서 나는 강가에 혼자 외롭게 서서 시간을 쪼아 먹고 있는 두루미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작은 머리에 붙은 길고 뾰족한 코는 두루미의 부리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그의 눈은 겁먹은 새의 눈 같았다. 그는 사람을 대하면서 서먹해 하는 표정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자신에 대한 인상과 이름을 버거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친구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해 주었다.&ldquo;마교수님과 같은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제 친구예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마광수교수는 야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rdquo;내가 들은 말을 전해 주었다.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ldquo;그 말 들으니까 정말 감사하네요. 내가 왕따 당하고 있는데. 다음에 그 교수님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 겠어요.&rdquo;그의 눈까지 촉촉해 지는 것 같았다.&ldquo;구치소 생활은 어땠어요? 고생했죠?&rdquo;&ldquo;담요에서 먼지가 너무 많이 나와서 고생했어요.&rdquo;그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이 좀 열린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가 이런 말도 해 주었다.&ldquo;저는 원고를 써내고 돈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워낙 여러 번 당해서 선불을 받지 않으면 안 써요.&rdquo;그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내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ldquo;지금 앞에 예쁘지도 않은 사나운 여기자가 버티고 관찰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말도 못하고 있어요. 가면 얘기해요&rdquo;반어법의 농담이 섞인 듯한 말이었다. 그게 그날 이차로 간 까페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 여성 기자는 미인이었다. 그가 퇴직을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음 저쪽의 세계로 성큼 건너갔다. 늦가을 강가에 혼자 외롭게 서 있던 두루미가 훨훨 밤하늘로 날아가듯이 그의 영혼이 간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이 다시 사람들의 입술 위에 올려지고 있다. 자유로운 관능을 추구한 그의 작품은 사회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음란물의 바다 속에서 왜 그의 작품만 사회를 아프게 했을까. 왜 그만 감옥에 갔을까. 명문 대학교수였기 때문일까. 그의 참 모습은 허구의 작품속의 야한 주인공이 아니라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허구의 작품속의 주인공을 작가와 착각해 손가락질 하고 감옥까지 보낸 내는 게 정말 정의였을까는 잘 모르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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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종교왕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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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07 Sep 2017 08:22: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875225800.jpg"/> 사무실로 인터뷰를 하러 왔던 방송사의 피디가 있었다. 일이 끝난 후 차를 한잔 나누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의 특이한 성장과정을 들었다.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가난했던 육십년대 마음이 공허했던 서민들 사이에 메시아 같이 나타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었다. 그가 나타나는 한강 백사장에는 백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출현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나타날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전날 밤 거적을 쓰고 밤서리를 피하며 그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 사나이는 이 땅에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피디의 부모는 전 재산을 그 단체에 바치고 들어가서 살았다.그의 어머니는 그 종교왕국에서 신도가 생산한 양말과 캬라멜을 보따리에 싸들고 팔러 다녔다. 어렸던 그는 손을 잡고 어머니의 보따리장사를 따라다녔다. 그 왕국에서 신도들은 계시를 받는다는 사나이를 하나님으로 모시는 주문을 암송했다. 신도들은 인간의 즉각적인 부활을 믿고 사람이 죽으면 매일같이 시신을 생수로 닦았다. 신도들은 나이어린 그에게 시신의 피부가 살아난다며 만져보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그 걸 말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시신을 만지게 하느냐며 혀를 찼다. 그는 왕국이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일반학교로 진학했다. 그가 성장하면서 단체에서 나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 한 후 그는 큰 방송국의 이름 있는 시사프로 피디가 됐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ldquo;그 종교왕국 안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어요. 나오니까 비로서 보이더라구요. 내가 방송국 피디가 된 걸 보고 그 단체 임원들이 꺼림칙해 하는 것 같았어요. 거기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종교프로그램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은밀한 종교단체뿐 아니라 대형교회들도 사실은 대부분 왕국을 이루고 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무나 돌로 된 우상을 섬겼지만 지금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을 요구하죠. 예수의 자리에 목사들이 서 있는 거예요. 그들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제사장 노릇까지 해요. 자기를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신도들을 세뇌시켜 버리죠.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불교승려들의 도박을 방송으로 내보냈다가 고생을 좀 했죠.&rdquo;&ldquo;기독교 단체는 경험하셨고 불교단체는 어땠어요?&rdquo;&ldquo;거기도 역시 독립된 왕국이더라구요. 자체에 입법 행정 사법권이 있고 신도들의 시주로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었어요. 행정책임자가 되면 일 년에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육백억원이 넘더라구요. 그러니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거죠. 전국적인 큰 사찰들의 구조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돈을 만지는 승려들 중에 도는 닦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 도박을 하고 계집질을 하는 겁니다. 어느날 직접 도박에 참여하고 계집질을 한 승려가 제보를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겁니다. 언론에서 종교문제를 다룰 때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 끝까지 괴롭히니까요. 계집질을 한 건 방영할 수가 없어 빼놓고 프로그램에서 도박만 다뤘죠. 명확한 범죄사실인데도 검찰이 꿈쩍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 때는 방송한 사람은 맥이 빠지는 겁니다. 얼마 후에 보니까 도박을 한 승려가 종교계 대표자격으로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은 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검찰이 아는 척도 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죠.&rdquo;방황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잡아다 자신들 종교왕국의 노예로 만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 종교적으로 최면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노예가 된 줄을 자각하지 못한다. 썩어있는 왕국이 된 종교단체를 많이 경험했다. 그들의 표 때문에 정치권은 무릎을 꿇는다. 지역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이 누구는 안 되 하면 지적되는 인물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나 부처가 다시 이 땅에 오면 교회나 절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물건을 도둑질 하는 절도범보다 한 인간의 영혼을 훔치는 존재들은 더 사악한 나쁜 놈이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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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시장통의 늙은 변호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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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06 Sep 2017 09:47: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779678606.jpg"/> 전 대한변협회장이 요즈음은 &lsquo;변호사의 사기화&rsquo;라는 말을 했다. 늘어나는 변호사들이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더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내게 자신의 로펌에 대해 &ldquo;좋은 빌딩에 비까번쩍 하게 차려놓고 사기 쳐 돈 버는 거죠&rdquo;라고 자조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부장판사로 있었다고 또 부장검사로 있었던 전관을 팔기위해 변호사가 된 후 명함에 새겨서 뿌리는 사람도 있다. 돈만주면 살인을 해도 무죄로 만들어준다고 떠벌린다. 돈만주면 죄 없는 사람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계약을 한다. 그런 시궁창 속에서도 연꽃 같이 피어 후배들에게 경고가 되는 선배 변호사도 있다. 변호사 모임에서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ldquo;얼마 전 롯데호텔에서 그 분께 밥을 샀지. 이제 팔순이 넘은 그 분이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시더라구.&rdquo;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변호사가 그 말을 받아 인물평을 했다.&ldquo;그 변호사님은 박정희대통령 때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때 두 번이나 감옥에 들어갔어요. 평소에 글을 쓰시는데 정권에 저항하는 글이 문제가 된 거지. 전두환 대통령때는 그 분이 쓴 시가 문제가 됐어. 합수부에서 잡아넣고 변호사도 해 먹지 못하게 했지. 당시 내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는데 그 분을 살려내기 위해 환경을 살펴본 적이 있었지. 그 양반 지독히 가난한 집 아들이더라구. 지방의 명문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서울대에 다닐 돈 조차 없는 거야. 학비도 문제지만 먹고 잘 하숙비 자체도 댈 수 없었던 거지. 그렇다고 개인 가정교사 자리가 흔하게 있던 시절도 아니고. 그래서 그 분은 서울대를 포기하고 지방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했지. 그 양반이 감옥에 있을 때 옆방에 대학생들이 들어왔어. 그 분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속옷을 대학생들이 있는 방으로 보내줬다는 거야. 그 양반은 당시 옆방에 어떤 학생들이 있었는지 모르고 그랬는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쓴 책을 보니까 그 내용이 나와 있더라구. 그 양반 늙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변호사업을 했는데 늦게까지도 재래시장 골목의 초라한 집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어.&rdquo;변호사사무실 간판만 달아놓으면 여유로운 삶이 보장되던 시대였다. 야간의 큰 소리만 치면 가난한 사람들이 전제보증금이라도 빼서 변호사에게 바치던 때였다. 그 돈으로 요정에서 변호사와 판사들의 질탕한 파티가 열리기도 했었다.&ldquo;그래도 그분 김대중 정권에서 감사원장을 했잖아요?&rdquo;내가 물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선배가 대답했다.&ldquo;그 양반 감사원장의 월급이 얼마냐고 먼저 물어보더라는 거야. 그리고 자기가 매달 갚아야 하는 빚이 있는데 그 월급 가지고는 힘들겠다고 하면서 벼슬을 전혀 반가와 하지 않더라는 거지. 그렇게 감사원장을 했지.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기는 감사원장을 했어도 정부 내에서 또 비주류였다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386세대가 실세고 자기는 외곽이었다는 거지.&rdquo;&ldquo;그래도 그 양반 감사원장을 마치고 큰 로펌의 고문으로 들어갔잖아요?&rdquo;내가 다시 물었다. 감사원에 걸린 사건의 로비용이 아닐까 생각했다.&ldquo;그 양반 성격에 로비를 할 사람이 아니지. 그러니까 로펌에서도 의례적인 대접만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rdquo;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작은 눈이 쑥 들어가고 볼이 움푹하게 패인 주근깨가 가득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자기는 유머를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다면서 공책에 각종 유머를 써서 외우고 다닌다고 자랑했다. 그는 진열장에 내놓은 화려한 도기가 아니라 뒷골목 음식점 찬장에 포개진 뚝배기 같은 인상이었다. 퉁명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높은 관직에 있었어도 그만두고는 다시 허름한 집에 살면서 낡은 변호사 가방을 들고 다시 법정을 드나드는 이런 변호사가 반들거리는 사기꾼 변호사보다 많아야 하지 아닐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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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여기까지 그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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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ue, 05 Sep 2017 09:21: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699025701.jpg"/> 남해의 바닷가 근처 집의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손에 든 호미로 밭의 풀을 파내던 던 육십대 말쯤의 여자가 싱긋 웃으면서 &ldquo;오늘은 여기까지 그만, 이제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나도 내 몸을 사랑해줘야지&rdquo;라고 말했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낯익은 탈랜트였다.그녀가 수다를 떨거나 심술 맞고 교만한 부자집 시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장면을 본 것 같다. 나의 뇌리에는 화면에 나오는 그녀의 천박한 허상만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남편도 잃고 다 큰 아들도 교통사고로 죽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늙어서 외톨이가 된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던 나는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이라는 그 한마디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녀의 표정이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그녀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녹화를 펑크 낼 수 없어서 그냥 촬영했다고 했다. 하필이면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슬픔이 가득 한 채 채우고 가장 신나는 장면을 연기하는 건 매를 맞는 듯한 정신적 고통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이라고 순간 소리친 표현 속에는 더 이상 세상의 물결에 밀려 떠내려 무리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순간 나는 어떤가 하는 상념이 떠올랐다. 변호사인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변호사의 역할을 30년 해온 나역시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이라고 선언할 때가 없었던가. 젊은 날 한 달이 지나도 사건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었다. 직원 월급도 주고 임대료도 내고 가족들이 밥을 먹고 살아야 했다.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내야 했다. 몇 푼의 돈이라는 낚시 바늘에 꿰어 사기꾼, 도둑놈, 마약범, 강도, 조폭, 살인범들의 얘기를 한 없이 들어주어야 하는 때가 있었다.그들보다 더 힘든 건 한없이 건방진 졸부들이었다. 그들은 지난 세월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인지 배웠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를 일부러 머슴 부리듯 하는 것 같았다. 몸도 영혼도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찢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 자문을 하곤 했다.어느 날 나는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가난이 운명이라면 정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가난한 자의 역할도 하나님이 준 세상무대의 배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그만이 남보다 더 빨랐다. 그러고 보니 몇 번의 그런 기회가 있었다.30대 중반 잠시 공무원을 한 적이 있었다. 권한을 행사하는 공직은 갑의 위치였다. 그리고 안정된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승진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단번에 숨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가로세로 관료사회의 틀 속에서 오직 인생의 목적이 진급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삼십대 말의 어느 날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하고 사표를 내고나왔다. 출세를 포기한 순간이었다.방송국 쪽도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화면의 화려함과는 전혀 달랐다. 뜨거운 조명과 비릿한 냄새가 감도는 스튜디오는 부자연스러웠다. 거기서 검은 카메라가 무표정하게 뜬 눈을 향해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사회자는 방긋방긋 미소 짓는 마네킹 같았다. 그 마네킹들이 세상에 나오면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고 감탄을 했다.예전에는 돌이나 나무로 된 우상을 만들고 환호했다. 지금은 피와 살이 있는 마네킹을 사람들은 우상으로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속의 주인공인 그녀의 외침은 더 이상 남에게 행복을 가장하는 마네킹은 그만하겠다는 선언같이 내게 들려왔다. 화면속의 그녀가 서울나들이로 나섰다. 잠시 후 연극공연장이 많은 대학로의 한 골목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때 저쪽에서 낯이 익은 한 오십대 말쯤의 여자가 나타났다. 더러 텔레비전에 조역으로 출연하던 얼굴이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두 탈랜트의 늙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길거리 호떡을 파는 트럭에서 공연 중인 연극단원들에게 줄 호떡을 봉지에 싸들고 간다.내 본 모습은 이래,하고 부자집 시어머니역할을 하던 탈랜트가 말한다. 영원할 것 같던 젊음이 어느 순간 증발하고 잎을 다 떨구어 버린 늦가을 나무 같은 나를 발견한다. 삼십대의 나는 육십대 중반의 지금을 상상할 수 없었다. &lsquo;여기까지 그만&rsquo;하고 일찍 포기한 일들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 없는 마네킹의 삶을 살기 싫었으니까. 이건 단순히 내 시각에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주관적인 사견일 뿐이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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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검사장 부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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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04 Sep 2017 08:19: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463035099.jpg"/>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선배부부와 종종 만나곤 한다. 그 선배는 수십 년의 세월을 잘나가는 엘리트 검사로 또 청와대의 사정비서관으로 권력의 요직을 거쳤다. 고희의 나이가 된 지금도 역시 국책기관의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평생 권력주위에 있으면서도 그에게서는 전혀 검사직업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떤 환경에 있으면서 그 고유의 냄새가 배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남편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그 부인에게서도 자연 그 냄새가 나게 되어 있는 게 세상이었다. 그들 부부 때문에 나는 검찰이라는 기관에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도록 주의했다. 깨끗한 남편 뒤에는 좋은 아내가 있었던 것 같았다. 동네 까페에서 만난 자리에서 한번은 선배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ldquo;남편이 일선 검사로 일할 때 미제사건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밤새 보는 적이 많았어요. 저는 여자라 잘은 모르지만 남편의 기록을 들춰봤어요. 죄를 졌지만 인간의 삶이 경찰이 쓴 조서같이 단순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요.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면 연탄불 위에서 끓이는 냄비국수를 시켜 먹으면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세상돌아 가는 걸 남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죠. 장사하는 분들이 삶의 얘기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이 돈 때문에 싸우고 지지고 볶은 내용들이더라구요. 그런 환경 속에서 범죄가 일어나는구나를 알았죠. 그러면서 나는 남편의 월급이 또박또박 들어오는 걸 새삼 감사했어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 한 푼 벌기가 얼마나 힘드는지를 알았으니까요.&rdquo;고위직 검사부인들의 옷 로비 사건이 있었다. 대충의 내용은 고급 호화 양장점의 옷들을 뒤에서 검사 부인이 뇌물로 받아먹은 사건으로 기억한다. 부인이 정결해야 남편이 좋은 공무원이 될 수 있다.&ldquo;검사장의 부인도 하시고 남편이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있으면 부자들도 많이 접근하려고 했겠네요?&rdquo;내가 물었다. 권력근처에는 항상 돈의 유혹이 있는 법이었다.&ldquo;주변에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기도 했어요. 양평의 물가에 어마어마한 별장을 가진 사람을 보기도 하고 집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집도 가 봤어요. 보통사람들은 따라가기 힘든 부를 가진 거죠. 그래서 우리사회가 양극화 됐다고 하잖아요? 검사 부인들을 보면 권위적이 되고 건방져 지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검사장에서 남편이 장관이 되지 못하니까 스트레스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여자도 있더라구요.&rdquo;&ldquo;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자제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셨죠? 부자처럼 잘살고 싶지 않으셨어요?&rdquo;&ldquo;어쩔 수 없이 모임에서 부자집 사모님들을 만날 경우가 있는데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니까 대신 나를 특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옷을 한 벌 입더라도 남대문시장에 가서 나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면 될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집도 그래요. 남편의 은퇴를 생각하고 어디서 살 것인가 생각하고 전국을 돌아다녔죠. 그러다 남편의 고향인 백마강변의 낡은 농가를 사서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화장실 같은 일부만 바꿨어요. 도시의 아파트 하고 똑같이 살려면 왜 그런 집이 필요하겠어요?&rdquo;이제 나이가 지긋한 선배부인은 시간이 날 때면 구청의 문화센터에 가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성악을 배우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지낸다. 구청에서 낮에 노인들에게 주는 밥이 아주 맛이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선배부부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하나님은 그들 부부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돈보다 총명한 머리와 재능을 주셨다. 그게 진짜 순금으로 만든 금수저다. 그들은 거기에 욕심을 내지 않고 항상 아래로 내려가려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금수저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이라고 할까. 인생은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 같다. 머리를 빳빳이 들면 가라앉고 머리를 내리면 알 수 없는 힘이 몸 전체를 들어 올려주는 것 말이다. 대통령부터 대한민국 공직자 부인들이 이렇게 하면 나라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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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대한민국의 자신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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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03 Sep 2017 08:11: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396108446.jpg"/> 김훈의 역사소설 &lsquo;남한산성&rsquo;의 한 장면이다. 북에서 온 군대의 &lsquo;홍이포&rsquo;가 왕의 행궁을 조준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기술이 전해진 여러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신병기였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저항도 없이 국토가 유린됐다. 지도자들은 안보불감증이었다. 적이 압록강을 넘어왔을 때 비상봉화가 타올랐지만 도원수는 &ldquo;설마 이 추운 겨울에 공격하겠는가?&rdquo;라며 무시해 버렸다. 사대부 집 여인들이 적의 군막에서 노리개가 됐다. 위력적인 신병기의 공포 아래서 왕은 구세주 같이 생각했던 명나라를 향해 살려달라는 슬픈 춤을 추고 있었다. 북쪽에서 온 군대는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 명을 잡아가서 노예로 팔았다.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기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안보불감증이다. 미국을 향해 &lsquo;어떻게 좀 해 봐 주세요&rsquo; 하는 의식들이 퍼져있다. 미국은 과연 구원의 천사일까. 한미동맹은 등뼈 같은 안전보장책일까. 우리를 도와준 미국에 대해 감사할 건 감사한다. 그러나 6.25전쟁시 중공군이 개입하자 백악관회의에서는 어떻게 하면 국제적으로 망신당하지 않고 빠져나갈 것인가를 궁리했다. 모택동에게 평택을 경계로 휴전을 하자고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베트남전쟁에서 패배도 굴욕적인 상처로 남아있다.핵개발에 성공한 북한이 미국과 맞서고 있다. 백악관은 한국을 제치고 미군철수카드를 꺼내들고 협상에 나선다는 얘기가 돈다. 국민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나라라는 자조적인 의식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아왔을까. 어린 시절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나라였다. 거지가 우글거리고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나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병사로 전방고지에서 싸웠다. 아들인 나는 아버지가 지키던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근무했다. 얼어붙은 밤하늘의 별 아래서 순찰을 돌면서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개개인이 존중받는 자유로운 민주사회였다. 내가 차고 있는 권총은 유사시 비굴하지 않게 삶을 마감하는 도구라고도 여겼다. 보기 전에는 적에게 유령처럼 겁을 먹어도 막상 마주 대하면 그들 역시 보통사람이었다. 적이 총을 한방 쏘면 화력 좋은 발칸포를 사용해서 백배 보복을 하겠다는게 전방군인들의 의지였다. 유사시 고지에서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죽음으로 이 나라를 사수하겠다는 의식이었다.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 잘 살아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품삯을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그곳에 온 대통령과 함께 짙은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세계8위의 수출대국이 되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발전모델이 됐다. 나 같은 베이비 붐 시대가 치열하게 공부하고 피땀 흘려 만든 나라다. 더 이상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야 할 친일파와 지주의 나라가 아니다. 반세기 동안 보통사람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눈부신 성취가 국가의 정신적 정체성이다.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운명은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터 대통령이 미군철수를 통보했을 때 우리대통령은 핵과 미사일 개발해 나라를 스스로 지키겠다고 했었다. 전쟁수행능력도 현대에서는 결국 돈이다. 북쪽보다 잘 사는 우리가 그들에게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자신감이 아닐까.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이 핵보다 더 무서운 병기라고 생각한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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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천국고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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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31 Aug 2017 08:43: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198074041.jpg"/> 며칠 전 탈북자들을 돕는 목사를 만났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처참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고 했다. 목사는 비참한 삶의 마지막 기간이라도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야지 죽어서 다시 더 나쁜 지옥에 가면 얼마나 슬프겠느냐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천국이나 극락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아마도 경전이 그 길의 안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예수는 자신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예수의 삶과 진리를 기록한 게 성경이다. 부처는 그가 남긴 법을 따르면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설파한 진리를 담은 게 불경이다. 경전들을 보면 유치해 보이는 신화와 기적이 가득하다. 역사적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 과학적 증명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천 년을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어느 호텔을 가도 또 감옥 속에서도 경전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지성들이 삶의 황혼에 귀의하는 게 경전이었다.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가는 안내서임을 감지하는지도 모른다.고려대 총장을 지냈던 김상협 교수의 평전을 쓴 일이 있다. 그가 살았을 때 남긴 여러 자취를 살폈다. 평생 정치학을 공부하던 그의 독서여정의 종착역은 경전이었다. 칠십을 넘기자 그는 성경과 불경 그리고 사서 삼경등 경전을 섭렵했다. 다음세상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길안내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다가 조용히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의사들은 그의 죽음이 통증이 없는 심장의 정지였다고 했다.내가 알던 강태기시인은 자동차수리공시절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천재였다. 그는 일생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내게 젊어서부터 읽던 모든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래도 죽기까지 옆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 뭔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 것은 성경과 논어라고 했다.다석 류영모 선생은 젊어서 교사도 하고 사업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북한산 자락에 집을 짓고 경전을 읽는 삶에 들어갔다. 한 신문의 종교 면에서 &lsquo;도전 성경 천독&rsquo;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현실의 교회활동에 회의를 느낀 한 목사가 일 년으로 예정하고 길을 떠났다. 조용한 산속 오두막에 방을 얻은 그는 성경을 펼쳤다. 열 번 백번 읽어도 특별히 깨닫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읽는 재미가 생겼고 그래서 계속 읽었다. 로마서를 천번 읽었다. 어느 순간 그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을 뚫고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그는 그 순간 눈 껍질이 벗겨지면서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졌다고 했다. 성경읽기는 눈을 뜨는 작업이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는 잡은 것이다.그는 성경을 거듭해 읽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해 삶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대기업을 경영하는 회장인 고교동창 한명이 차 안이나 집에 경전을 두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전에서 좋은 기운이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원불교를 믿는 그는 경전은 어떤 종류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토스토엡스키의 책을 보면 러시아의 엄마들은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면 복음서의 한 장을 아들의 옷 속에 몰래 부적같이 숨겨 실로 꿰매어 주었다는 내용도 나오고 있다. 나이 먹은 나는 요즈음 천국고시를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이십대 고시공부 시절 암자의 뒷방에 틀어박혀서 법서를 읽고 또 읽었다. 십년 가까이 되니까 법서 안에서 들끓던 수많은 말들이 몇 단어로 압축됐다. 뭔가 보이는 그때가 합격하는 순간이었다.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면 어느 순간 눈앞에 어떤 정경과 그 속의 길이 보이지는 않을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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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불나방 변호사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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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30 Aug 2017 16:10: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4048488705.jpg"/> 오랜 세월 시간을 함께 한 변호사 친구들이 역삼역 부근의 자그마한 참치 집에서 만났다. 육십대 중반인 지금은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 변호사들이었다. 한 친구가 백세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고 나서 걸걸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ldquo;국회의원 세 번 떨어진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거지신세가 되고 무슨 사기를 칠지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 로펌에 판사를 하다가 나온 변호사가 있는데 말이야. 국회의원에 두 번 출마를 했는데 다 떨어진 거야. 형편이 안 좋아 졌지. 다시 선거를 치르려면 큰 돈이 필요한데 말이야. 그 친구가 어느 날 캄보디아의 철도부설회사 바지사장으로 간다고 하더라구. 그 앞날이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구. 밑의 놈들이 돈을 안 빼먹겠어? 예상대로 그 친구가 횡령죄로 걸려 들었나봐. 몇 년 중국에 도피했다가 서울로 돌아왔어. 요즈음 초췌하고 기가 없어. 너무 권력이나 자리에 욕심을 내면 인생에 그런 균열이 생기는 것 같더구만.&rdquo;판검사들을 보면 출세욕이 강한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변호사가 끼어들면서 이렇게 말했다.&ldquo;우리 고향출신 검사장 한 분이 출마를 한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솔직히 말해줬지. 현직에 있을 때 &lsquo;영감&rsquo;이라고 높이며 굽실거리던 사람이 막상 출마하면 정말 표를 찍어줄 것 같으냐구. 그 사람들이 앞에서 기니까 모두 자기표 같겠지. 그 이면에 굴욕감을 숨기고 있어. 절대 선거 때 표를 찍지 않아. 판검사출신들이 그걸 몰라.&rdquo;제대로 익은 사회의식 없이 국회의원 자리만 탐해 불나방 같이 덤벼드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석을 해 주겠다며 수임료로 50억원을 받은 판사출신 여성변호사가 의뢰인에게 구치소에서 얻어맞고 구속된 사건도 화제로 나왔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무지막지하게 사건을 휩쓸면서 번 돈으로 오피스텔 백개를 사 두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변호사가 말했다. 그는 국선변호사를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ldquo;우리 빌딩에 이번에 구속된 검사장출신 황변호사가 있어. 왜 몇 백억을 벌어 오피스텔을 백개나 샀다는 친구 있잖아? 자기를 씹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걸 눈치 챘으면 사무실을 접고 몇 년간 미국에 있다가 와야 하는 데 그 기회를 놓친 거야. 적당할 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과속을 하니까 그 친구한테 돈을 받거나 향응을 받은 검사들도 다 걸려들게 된 거지. 요새 검사들은 청와대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선배고 뭐고 작살을 낸다고 하더구만. 그래야 권위가 서고 출세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요새는 툭하면 특검으로 넘기니까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먼지를 미리 털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검찰에서는 자체적으로 연루된 검사들을 소리 없이 정리했다고 하더라구.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검찰에 부탁할 때 맨입으로야 했겠어. 실무검사에게 위에서 무리한 지시가 내려오니까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거지.&rdquo;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근처까지 갔다가 그 열기 때문에 추락을 한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처럼 권력과 돈 가까이 가고 싶어 날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변호사들이 많다. 작고 소박한 사무실에서 의뢰인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가난한 변호사도 괜찮지 않을까. 법정에 나가 돈에 팔린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진정이 담긴 말 한마디를 해 주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은 아닐까. 피곤해 진 몸을 이끌고 저녁에 돌아오면 책상위에 읽다 놔 둔 오래된 성경이 있는 모습의 법률사무소 그게 바로 신성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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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판사의 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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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ue, 29 Aug 2017 17:52: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3971659447.jpg"/> 젊은 시절 군판사를 몇 년 한 적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밤이 늦도록 결정을 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사건 기록들은 하나하나가 시험문제 같았다. 중형을 선고할 때면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법대위에서는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이 잘 보였다. 살려 주세요 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기도 하고 증오의 눈빛이 깨진 유리조각 같은 사람도 있었다. 살려 주세요 해도 못 살리는 경우가 있었고 미워해도 그걸 감수해야만 했다. 나는 판사는 절대 할 게 못된다고 생각했다. 시국사건이나 종교사건을 만날 때면 내게 역사지식이나 철학의 빈곤을 느꼈다.며칠 전 오랜 판사생활을 하다가 로스쿨 교수로 전직한 친한 친구가 사무실로 놀러왔다. 그는 대학 재학시절 고시에 합격하고 삼십대에 지방의 법원장을 두 번이나 한 수재였다. 그의 법정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젊어도 그는 타고난 판사인 것 같았다. 피고인들이 아무리 중언부언해도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구경하는 사람이 들어도 짜증이 나는데 그는 조금도 흔들리는 경우가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원의 재판장으로 있을 때 그를 천사재판장이라고 했다. 그가 있는 판사실이 1004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 사무실 근처의 김치찌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ldquo;판사생활을 하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즐거웠어?&rdquo;내가 끓는 김치찌개의 국물에 라면을 넣으면서 물었다.&ldquo;별로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네. 판사라는 지위 때문에 남들과 거리를 두고 일생 방에 갇혀 있었지. 재미없었어. 항상 처신을 조심해야 하고 소통이 없는 삶이었어. 판사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 오히려 망신당한 기억만 나네.&rdquo;뭐가 뇌리에 떠올랐는지 그가 씩 웃었다.&ldquo;뭔데?&rdquo;내가 되물었다.&ldquo;여주법원의 원장을 할 땐데 톨게이트 부근에서 교통경찰한테 걸려 딱지를 떼게 됐어. 법원장인데 좀 봐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가벼운 걸로 봐드리겠다고 하면서 스티커를 한 장 주더라고. 그걸 자동차 대시 보드 안에 넣고 잊어버린 거야. 어느 날 법원 사무국장이 나한테 와서 원장님 큰일 났다는 거야. 원장님이 우리법원 즉결심판에 넘어와 있다는 거야. 경찰에서 벌금을 내지 않으니까 노상방뇨로 즉결심판에 넘겼다는 거지. 그때야 생각이 나서 경찰이 줬던 스티커를 찾아보니까 내가 길거리에서 오줌을 싼 것으로 한 거야. 그게 벌금이 가장 싸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아. 아래에 데리고 있는 판사한테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지.&rdquo;&ldquo;그러면 판사생활이 하나도 안 좋았어? 사회에서 그렇게 대접을 해주는 데 말이지?&rdquo;내가 다시 물었다.&ldquo;판사를 처음 시작할 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으쓱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게 일상이 되니까 둔감해 지더라구. 나중에는 대접받는다는 걸 전혀 느끼지를 못해. 진짜 좋기는 우리 어머니가 좋으셨을 거야. 아들이 판사라고 자랑하고 다니셨으니까. 어려서부터 공부를 좀 하는 바람에 명문학교를 나오고 판사가 되는 걸로 효도를 한 셈이지. 자식을 키워보니까 이제 그건 알겠어.&rdquo;&ldquo;요즈음 교수생활은 어때?&rdquo;&ldquo;교수를 해보니까 이것도 절간 같은 생활인 것 같아. 혼자 교수실에서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하고 싶은데 팔자가 그런가 봐&rdquo;인생도 숲과 같은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숲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헐렁한 나무들만 서 있다. 판사실도 교수실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적막감을 느끼는 것 같다.&ldquo;우리가 살면서 놓친 게 뭘까?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게 무엇이어야 할까?&rdquo;내가 그에게 물었다.&ldquo;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맛있는 걸 함께 먹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가족이고 그 다음은 좋은 친구들이고 만나는 여러 사람인 거지. 나는 그게 진짜 즐거움이고 쾌락이라고 생각해. 내 와이프는 이미 그길로 들어선지 오래야. 남편인 나는 와이프한테 삶의 질에서 한참 밀리는 형편이지.&rdquo;&ldquo;와이프가 어떤 길로 들어섰는데?&rdquo;&ldquo;와이프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어. 십년 전부터 서울시에 소속된 문화센터에 가서 노인들에게 가곡을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어. 돈 한 푼 받지 않는데도 즐거운 가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나가는데 얼마 전에는 사십대반 오십대반도 새로 편성했다고 하더라구. 남편인 나하고 같이 여행을 할 시간도 없다니까.&rdquo;부나 지위는 생활의 일부가 되면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lsquo;관계&rsquo;인 것 같다. 예전에 판사실에 들렸을 때 법관생활을 오래한 고교선배가 넋두리같이 이렇게 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ldquo;내가 돈이 더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경험한 세상을 얘기 듣고 싶어. 그런데 돈도 없고 이렇게 판사실에 갇혀있어.&rdquo;세상은 그런 판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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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갑자기 닥친 죽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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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28 Aug 2017 18:31: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3882491159.jpg"/> LA의 어두운 밤길을 지친표정의 한 늙은 흑인 영감이 걷고 있었다. 그는 바퀴를 단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진 고행자였다. 물기로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의 불빛이 번들거렸다. 거리의 귀퉁이에 수상한 느낌이 드는 차가 세워져있다. 썬팅 한 유리창을 통해 세 명의 남자가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흑인 영감이 그 차 옆을 지나칠 때였다. 순간 검은 총구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인근 가게를 턴 강도였다. 현장의 목격자가 된 셈이었다. 강도가 그를 그냥 둘 리가 없었다. 흑인 영감은 순간 눈을 깊게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ldquo;저는 이미 각오가 된 사람입니다.&rdquo;영감의 얼굴은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야비한 표정을 짓던 강도의 눈이 순간 고민하는 빛을 띄었다. 강도들이 탄 차가 그를 버려둔 채 끼익하고 타이어마찰음을 내면서 가버렸다. 며칠 후 그 강도가 총을 들고 한 교회의 백인목사 방에 들이 닥쳤다. 목사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강도가 소리쳤다.&ldquo;너는 예수를 믿으니까 죽을 각오가 되어 있겠지?&rdquo;순간 백인목사는 당황했다. 강도는 이번에는 그 백인목사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공범 중 한명이 뺏은 돈 가방을 그 교회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백인 목사의 표정에 여러 의미가 스쳐갔다.&ldquo;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rdquo;백인목사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대답했다. 강도가 순간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강도는 목사실에 숨겨둔 돈 가방을 찾아 가버린다. 밤늦게 혼자 보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죽음이 닥치면 나는 바로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죽음을 앞에 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했다. 검사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암에 걸린 고교선배와 나눈 대화가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ldquo;검사로 출세해 보려고 참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rdquo;그는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 장관이 되고 싶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고 세상 사닥다리의 끝까지 올라가 날개를 펼치고 싶던 사람이었다.마지막에 그는 의사에게 &ldquo;죽여줘, 죽여줘&rdquo;하고 사정을 했다. 너무 심한 고통 때문에 화장실을 급하게 가듯 저 세상으로 뛰어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영정 사진 속에서 그는 이승의 나를 쳐다보면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장에서 그가 타고 있는 소각로 앞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평소 그의 주변에 들끓던 그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화장장까지 가게 했을까. 그는 모함에 빠진 나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그는 또 죽기 얼마 전 내게 전화를 걸었었다. 내가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제약회사의 약들을 자상하게 소개해 주었다. 그는 입원해 있는 동안 독학으로 약에 대해 통달해 있었다. 그런 정이 나를 그의 마지막 길까지 배웅하게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을 통해 이웃을 사랑한 흔적을 세상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걸 막연히 깨달았다. 죽음이 몇 달 안남은 의사에게 좋은 점심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만 했다. 돈을 벌어 비로서 해변가에 좋은 집을 사고 살만하니까 암이란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힘들게 번 돈을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미국병원에 쏟아 부어도 죽음의 천사는 그를 놓아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체념을 한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ldquo;평생 진료실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만육천장의 차트가 나의 인생이었어요.&rdquo;그의 그늘진 표정을 보면서 그가 아쉬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바닷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건 아닐까. 가족과 밤하늘에 뿌려진 보석 같은 별들을 바라보고 싶을까. 특별한 게 아니라 그런 일상의 자잘한 행복들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원로 소설가 정을병씨가 죽음을 얼마 앞두었을 때 더러 만나곤 했다. 죽음을 앞둔 그는 가족이 없었다. 아들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ldquo;문학을 나의 종교로 삼았죠. 문학을 하기 위해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었어요. 생활에 돈이 들지 않아야 문학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밥 대신 일생 많은 책을 읽었어요. 몸이 요구하는 음식보다 정신적인 밥이 내게 더 중요했으니까. 나는 죽어도 죽지 않아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일흔일곱권의 책이 바로 나니까.&rdquo;그 얼마 후 그의 영혼은 혼자 살던 집의 적막한 방을 빠져나와 저세상으로 갔다. 인간은 이세상의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돌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삶이란 무엇일까. 평소에 하던 일의 집적일까? 주변에 뿌린 한줌의 사랑이 본질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언제든지 부르시면 &ldquo;예&rdquo;하고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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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작은 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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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27 Aug 2017 20:20:00]]></pubDate>
            <category><![CDATA[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category>
            <author><![CDATA[webmaster@ilyo.co.kr | 엄상익 변호사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7/0911/1505113781084440.jpg"/> 연남동의 골목길에 동네시장이 섰다.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내다 놓기도 하고 주부들이 틈틈이 익힌 기술로 만든 공예품들이 좌판위에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한 여성이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ldquo;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만들어 쌓아둔 공예품들이 이렇게 상품이 되고 팔린다는 게 너무 신기해.&rdquo;생기가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 옆의 좌판에는 작은 액자에 담은 그림들이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머리가 긴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가 말했다.&ldquo;제가 화가로 등단하는 게 꿈인데요. 그동안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여기 이 그림들은 이 연남동 일대를 그 특징에 따라 그린 거예요.&rdquo;골목의 깊은 안쪽에 팔십대쯤의 할머니가 손때 묻은 오래된 작은 재봉틀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뒤의 돌축대에는 낡은 원피스 몇 벌이 걸려있었다.&ldquo;할머니 이 옷 파는 거예요?&rdquo;지나가는 여자가 물었다.&ldquo;아니 예요,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rdquo;&ldquo;돈을 받지 않고 그냥요?&rdquo;&ldquo;그럼요, 별거 아닌 것 같은 바느질 기술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rdquo;노인의 얼굴에 사명을 수행한다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스친 풍경이었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하는 일 자체가 기쁨이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닐까. 세계에서 최고의 크루즈선인 영국의 &lsquo;퀸 엘리자베스&rsquo;호를 잠시 타본 적이 있다. 떠다니는 천국으로 알려진 그 호화유람선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게 서양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턱시도를 입은 제임스 본드 같은 미남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매일같이 흥겨운 연주음악 속에서 춤을 추고 은촛대와 투명한 와인글래스가 놓인 식탁위에서 사람들은 최상의 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뉴욕에서 출발한 배는 파나마 운하를 지나 하와이와 타이티 그리고 뉴질랜드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었다. 카지노 영화 쑈등 최고수준의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종업원들이 예전의 하인같이 승객들을 섬기고 있었다. 먹고 자고 놀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배가 이주일 정도 태평양을 흐르자 승객들의 표정이 시큰둥해졌다. 더 이상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승객들의 행동이 변하고 있었다. 어떤 영국인남자는 구석에서 둥그런 나무틀에 하얀 천을 끼워놓고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 어떤 여자는 가지고 온 스케치 북에 그림만 그렸다. 티타임이 되면 주변의 승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는 영국여인이 있었다. 평생 고등학교에서 선생을 했다고 했다. 파티보다 사람들은 자기가 해 왔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걸 발견했다. 사건사고가 없는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무료함을 견뎌내지 못했다. 일부러 작위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그걸 선내 방송과 티브이로 중개하기도 했다. 수영장 옆에서 몸에 페인팅을 한 사람을 누가 뒤에서 밀어 물에 떨어뜨리는 이벤트였다. 그 작은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다.근심 걱정이 없고 일도 없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편안한 지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에서 희랍인 조르바는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말썽을 향해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편안한 지옥을 구경하고 나서 일의 소중함을 느꼈다. 세상에 특별히 큰 일은 없다. 자기가 익숙하게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소명이자 축복이다. 사람에게는 외부에서 그를 눌러주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그런 압력이 없으면 인간은 내부로부터 터져나가게 되어 있으니까.엄상익 변호사]]></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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