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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탐사보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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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탐사보도</description>
        <language>ko-KR</language>
        <lastBuildDate>Thu, 25 Mar 2021 18:12:00</lastBuildDate>
        <pubDate>Thu, 25 Mar 2021</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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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탐사보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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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일요신문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탐사보도 이달의 기자상 수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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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25 Mar 2021 18:12: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scourge@ilyo.co.kr | 김상래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의 &#39;낙동강변 살인사건&#39; 재심에 대한 탐사보도가 한국기자협회 &#39;이달의 기자상&#39;을 수상했다.   <img alt="2016년부터 이어져 온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의 '낙동강변 살인사건' 탐사보도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사진=일요신문 홈페이지 캡처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325/1616658836026534.jpg"/> 한국기자협회는 3월 25일 제366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middot;통신부문에 일요신문 일요신문i팀 문상현 기자가 보도해온 &#39;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39; 기사를 선정했다. 문상현 기자는 2016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 35편에 걸쳐 &#39;낙동강변 살인사건&#39; 재심에 대한 탐사보도를 했다. 문 기자는 사건 범인으로 몰려 21년 5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2인조가 과거 경찰의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내용의 최초 기사를 2016년에 낸 바 있다.이후 5년간 사건이 조작됐다는 2인조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증언부터 재심 재판 전 과정을 취재 보도했다. 결국 2인조는 지난 2월 4일 부산고등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 받았다(관련기사 모음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이번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수상에 앞서 &#39;낙동강변 살인사건&#39; 관련 보도는 2020년 11월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주관 &lsquo;2020 인터넷신문 언론대상&rsquo;에서 보도부문 수상을 한 바 있다. 문상현 기자는 &ldquo;형사 재판의 궁극적 목표는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100% 완벽할 수는 없다. 어긋난 형사재판의 이념을 형사재판으로 다시 바로잡는 게 재심&rdquo;이라며 &ldquo;2016년 첫 보도를 시작으로 5년에 걸쳐 추적보도했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 오랜 시간 보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회사에 감사하다&rdquo;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기자협회는 기자상 취재보도1부문에 쏘카 비협조 초등생 성폭행 사건(채널A), 육군 22사단 해안가 뚫렸다(채널A), 신현수 靑 민정수석 두 달 만에 사의 표명(CBS), 취재보도2부문에 아동성추행 실형 선고받은 동화작가의 책 출판, 대출 열람 관련(한겨례신문), 지역 취재보도부문에 접대 경찰과 청탁금지법, 6개월 추적기(kbc광주방송) 등을 각각 선정했다.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은 3월 31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릴 예정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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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기자수첩] 낙동강변 살인사건 탐사보도 5년, 진실 드러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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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08 Feb 2021 18:22: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분홍색 보따리를 든 두 남자를 만났다. 시각장애로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남자와 그의 팔을 꼭 붙잡고 있던 덩치 큰 남자. 기자를 알아본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억지로 연습한 듯한 어색한 미소였다. 들고 온 보따리 매듭을 풀자 수백 장에 달하는 서류 뭉치가 나왔다. 거칠게 만지면 부서질 듯한 누렇게 바랜 종이들을 넘기며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의 어머니가 유품처럼 남겨둔 것이라는 오래된 종이엔 피 냄새가 가득했다. &lsquo;강도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 특수강도, 특수감금&hellip;&rsquo; 강력범죄가 총망라된, 이른바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middot;재판기록이었다. 마주앉은 두 남자는 이 사건의 &#39;범인&#39;들이었다. &lsquo;살인범&rsquo;들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정확히 5년 전인 2016년 2월, 하얀 입김이 조금씩 옅어질 무렵이었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와 변호인. 왼쪽부터 최인철 씨, 박준영 변호사, 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5/1612515790313828.jpg"/> 긴 시간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과거 경찰은 고문&middot;폭행으로 두 남자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수사기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작을 통해 두 남자를 살인범으로 몰아 만들었다. 검찰과 법원에서 결백을 외쳤지만 바로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무기수가 됐다. 두 남자는 비록 감형을 받았지만 무려 21년 5개월이 지날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온 청춘을 감옥에서 하릴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사실일까,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들은 가석방될 때까지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보내왔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 생각만 하다보면 사실은 왜곡되고 거짓이 진실로 포장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다. 세 차례에 걸친 법원의 판단을 몽땅 부정하고 이를 완전히 뒤집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건네준 분홍색 보따리를 집으로 가져와 한 장 한 장 다시 읽기 시작했다. 꼼꼼히 읽어 내려갈수록 그들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커져갔고 신념이 돼갔다. 한 달 뒤, 당시 일면식도 없던 박준영 변호사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두 남자는 억울한 게 분명하고, 기록을 꼭 봐달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기록을 읽고, 두 남자를 만났다. 함께 분노하고 아파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변호인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첫 보도였다(관련기사 &ldquo;증거 없고, 알리바이도 있는데&hellip;무기징역 살랍디다&rdquo;). 이후 사건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와 정보에 더해 SBS &#39;그것이 알고싶다&#39; 팀이 두 남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전문가들의 증언을 더욱 풍부하게 확보했다. 공적 기구인 검찰 과거사위원회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올라 구체적인 조작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후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재심 본안 공판 등에선 앞의 과정들이 다듬어지며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2021년 2월 4일, 마침내 부산고등법원은 5년 전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기록상 확인되는 사건 조작뿐 아니라 고문과 폭행들에 의한 허위자백이 인정된다며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 재심은 &lsquo;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rsquo;로 통한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 법원은 재심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해석도 매우 까다롭다. 과거 확정 판결을 받기 전 제출할 수 없다가 판결 후에 발견된 &lsquo;새로운 증거&rsquo;가 필요하고, 그 증거는 기존 판결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lsquo;명백&rsquo;하고 &lsquo;고도의 개연성&rsquo;이 있어야 한다. 새 증거는 재심 청구인이 직접 수집해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의 수감 기간은 무려 21년 5개월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사건 현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출소 직후 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법률구조공단, 지역 언론사를 찾아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뒤 형을 다 살고 나온 &lsquo;살인 전과자&rsquo;가 스스로 재심 청구를 위해 &lsquo;새롭고 명백한, 고도의 개연성&rsquo;을 가진 증거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검찰이 대신 재심을 청구해줄 순 있다. 지난해 무죄 선고가 나온 이춘재 8차 사건 재심처럼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재심을 청구하면 증거 수집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수 있지만 이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시국 사건 등 과거사 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 사건에서 검사가 대신 재심을 청구해준 일은 거의 없다.여기서 언론&middot;기자가 역할을 할 수 있다. 취재 영역에서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증거들이 있고, 정부기관에 협조 요청 및 각 분야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삼례 3인조, 약촌오거리 등 앞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서도 언론사와 기자들이 이 같은 역할을 했다. 5년간 40여 건의 탐사보도 형태 기사를 통해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건을 발굴해 취재했고, 증거를 수집하고 검증하는 과정과 그 의미, 이를 토대로 제기한 주장들이 법원을 통해 사실로 인정되는 장면들을 전부 고스란히 담았다(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무죄 선고로 진실이 밝혀진 지금, 이 기록들과 결과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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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30‧끝] 법원의 시간 끝나고 그들의 시계는 다시 돈다]]></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9232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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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08 Feb 2021 18:18: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순식간이었다. 형제간 짧은 실랑이 끝에 불꽃이 튀었다. 격한 말이 오가기 시작했고 언성이 높아졌다. 함께 있던 일행들이 얼른 일어나 둘을 떼어 놨지만 흥분은 금방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형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재판이 중반부를 넘어선 지난해 가을 초 장동익 씨와 동생 장성익 씨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사소한 이유였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어갈 만한 일이었다. 동생 성익 씨가 혼자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 마신 게 발단이었다. 동익 씨는 그렇게 폭음하면 몸도 상하고 다른 일행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마시는 건 실례라고 타일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성익 씨는 그 다음 말에 바로 언성을 높였다. 동익 씨의 혼잣말이었다. &ldquo;안 그러던 애가 왜 이렇게 변했나.&rdquo;&ldquo;형이 나를 알아? 내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 나도 힘들었다고!&rdquo; 성익 씨는 형을 똑바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동익 씨는 동생의 낯선 목소리에 당황했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형에게 말대답을 하지 않았던 착한 동생이, 자신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동익 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img alt="지난 2월 4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8638049938.jpg"/> 동생이 그날 왜 그랬는지는 한 달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성익 씨는 그날 말대답에 대한 &lsquo;해명&rsquo; 대신 형이 복역하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려줬다. 성익 씨 삶의 초점은 형에게 맞춰져 있었다. 대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수사&middot;재판기록을 복사하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을 돌고 복사집에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때로는 형수와 조카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해야 했고 직장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휴가를 내 형의 면회를 다녔다. 결혼 약속을 한 사람의 집에 인사를 하러 갔다가 형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헤어진 이야기도 차분히 들려줬다.성익 씨는 그래도 형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형이 결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게 자신의 운명과 같은 거라고 여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 차곡차곡 쌓여왔던 상처가 그날 그런 방식으로 터져 나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동익 씨는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자신의 시계가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에 끌려간 그날 멈춰져 있었다는 걸 알았다. 동익 씨에게 성익 씨는 여전히 담배도 모르고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스무 살의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쉰 살을 훌쩍 넘겨 이제는 중년이 돼 버린 동생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다른 형제들과 아내, 딸이 떠올랐다. 다들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해왔다. 약 21년 복역 중 동익 씨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족들도 갇혀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익 씨를 생각해 각자 겪고 있는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짧은 면회 시간 동안 전해들은 이야기로 어림잡아 생각하고 상상한 게 전부였다. 서로 걱정만 하는 사이 오해와 상처가 쌓였다.2013년 출소 이후에도 마주앉아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면회에서 전해들은 서로의 이야기와 그걸 토대로 상상했던 모습이 달랐지만 그대로 뒀다. 동익 씨와 가족에겐 재심이 전부였다. 무죄를 선고받고 누명을 벗으면 끝인 줄만 알았다. 30년간 각자 속으로만 삭여온 마음을 서로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떨어져 지내며 벌어질 대로 벌어져 버린 간극을 다시 메워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img alt="지난 2월 4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최인철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8673676532.jpg"/> 최인철 씨는 지난 1월 2일 장동익 씨 집을 찾았다. 선고를 앞둔 새해가 왔고, 단 둘이서만 술잔을 기울여 본 기억도 아득했다. 둘은 아내가 만든 반찬과 김치 위에 지난 이야기들을 얹어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인철 씨는 동익 씨를 앞에 두고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동익 씨와 동생,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날 전부 들었다. 인철 씨는 동익 씨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의 탓 같기만 했다. 인철 씨는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에 동익 씨보다 일찍 끌려갔다.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를 더 먼저, 더 많이 받았다. 고통 끝에 수차례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면서도 버티고 버텼지만 끝내 동익 씨와 함께 범행을 했다는 취지의 자백을 했다. 그럼에도 더 버텼다면, 하다못해 동익 씨가 공범이란 취지의 자백만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동익 씨에게 지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30년 전 한 마디 자백은 인철 씨도 모르는 새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죄책감이 됐다. 동익 씨는 물론 아내와 두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인철 씨의 아내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92년 6월 남편처럼 구속됐다. 아내의 남동생이 &ldquo;매형(최인철 씨)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발생 당시 대구에 있었다&rdquo;는 취지로 법정에서 증언했는데, 이게 위증으로 몰렸다. 인철 씨 아내는 남동생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아내는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하며 집을 지켰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악착같이 21년을 버텼다. 이제는 몸 어느 한 곳 멀쩡한 데가 없다. 두 귀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큰소리를 내야 들릴 정도로 나빠졌고 눈도, 허리도, 무릎도 성하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부부들처럼 함께 여행도 가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하고 싶지만 인철 씨 부부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mg alt="30년 전 당시 '부곡하와이'에서 장동익·최인철 씨 가족.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8781993145.jpg"/> 동익 씨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가족들이 있어 괴로운 시간들을 참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잘못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런 동익 씨에게 미안하다. 인철 씨도 동익 씨와 가족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큰 잘못을 했다고 말한다. 2021년 2월 4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곽병수 부장판사)는 장동익&middot;최인철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두 사람이 고통스럽게 21년을 보냈다고 판단했다. 무거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인철 씨,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동익 씨와 가족들,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30년간 차곡차곡 쌓인 상처와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없다. 예전의 가족, 친구의 그때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대신 동익 씨와 인철 씨, 그리고 가족들은 벌어진 간극을 그대로 덮어두진 않겠다고 말한다. 아파도 함께 아프고, 이겨내도 함께 이겨내 보란 듯이 &lsquo;잘&rsquo; 살고 싶다고 했다. 길었던 법원의 시간이 끝나고 그들의 시계는 다시 돈다.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 시작됐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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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9] 무죄 선고, 다시 쓰인 판결문]]></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9232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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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08 Feb 2021 18:11: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법원이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판결문을 새로 썼다. 범인으로 몰려 약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동익&middot;최인철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들을 짓누르던 주홍글씨를 걷어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엔 진범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에게 누명을 씌웠던 가해자들의 자백도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앞선 유죄 확정판결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다.  <img alt="2월 4일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곽병수)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21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장동익·최인철 씨가 제기한 재심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왼쪽부터 최인철 씨, 박준영 변호사, 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6888104569.jpg"/> &lsquo;강도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 특수강도, 특수감금, 공무원자격사칭,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rsquo; 장동익&middot;최인철 씨가 받은 혐의다. 이들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결정적 증거는 장 씨와 최 씨의 자백인데, 과거 수사기관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광범위한 조작과 고문과 가혹행위 등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다며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박 변호사가 주장한 재심 사유 조항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1, 2, 5, 7호 등이다. 과거 유죄 확정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가 위조 또는 변조된 점(제1호), 증거가 된 증언 일부가 위증인 점(제2호), 새로 발견된 증거로 재심청구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점(제5호), 재심청구인들이 경찰관에게 고문 및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 사법경찰관의 직무상 범죄가 있었던 점(제7호)을 주장했다. 그리고 재심 청구 4년여 뒤인 지난 2월 4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곽병수 부장판사)는 박 변호사의 주장이 전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밝힌 무죄 판결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불법체포, 불법구금 △고문 등 가혹행위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들이다. 쉽게 말해 과거 수사 경찰이 불법으로 장동익&middot;최인철 씨를 체포, 구금한 뒤 물고문 등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냈고, 수사기록 조작 등을 통해 증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정됐다는 뜻이다.#불법체포 불법구금 인정이번 재심 판결문엔 광범위한 조작과 고문, 가혹행위 등 강압적인 수사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재판부는 먼저 경찰이 1991년 11월 8일부터 장동익&middot;최인철 씨를 불법으로 체포하고 가뒀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연행이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제연행된 점이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과거 수사경찰은 처음 낙동강변 2인조를 &lsquo;임의동행&rsquo; 형식으로 경찰서로 연행해 자백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 수사기록에는 &lsquo;잠복수사 중 검거했다&rsquo;고 기재돼 있었다. 연행 당시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앞선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수사 경찰관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2인조는 경찰에 연행된 이후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사실상 계속 감금돼 있었다는 점도 인정됐다. 구속영장이 불법체포 다음 날인 11월 9일 발부됐지만, 경찰은 장 씨와 최 씨를 경찰서 보호실에 유치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뒤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img alt="왼쪽부터 박준영 변호사, 최인철 씨, 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7049782154.jpg"/> #고문&middot;폭행 등 가혹행위 있었다물고문 등 가혹행위는 네 가지 사유를 종합해 판단했다. 장동익&middot;최인철 씨의 고문정황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이 첫 번째다. 재판부는 장 씨와 최 씨가 경찰 수사까지는 모든 범행을 인정했지만 검찰로 송치되고 더 이상 경찰 수사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일관되게 구타와 물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검찰 조사, 재판 과정,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후에도 각종 탄원서, 당시 수사 경찰을 상대로 한 고소 등을 통해 가혹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출소 이후에도 일관되게 주장해 온 사실이 확인된다고 했다. 재심청구인들이 진술하는 고문 방법 및 도구, 수사관들의 발언 등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묘사하기 어렵다고 보일 정도의 구체적으로 생생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장 씨와 최 씨의 주장은 이들이 구속돼 있는 기간 유치장에서 함께 있었던 A 씨와 B 씨의 증언으로 뒷받침된다고 했다. 이들은 과거에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가혹행위 정황 사실에 대해 증언했고, 20여 년 뒤인 2018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검찰 과거사위원회) 면담 과정에서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A 씨와 B 씨는 &ldquo;장 씨와 최 씨가 조사를 받고 들어올 때 손목, 발목이 부어 있거나 옷이 젖어 있었다&rdquo;고 말했는데, 이들은 당시 유치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고 일면식도 없으며 장 씨와 최 씨와 친분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만큼 그 진술들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했다.장 씨와 최 씨가 고문을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날짜와 수사기록 진술서 날짜를 비교해보면 느닷없이 앞에선 하지 않았던 말이 나왔거나 진술이 바뀌었다는 점, 두 남자가 구속되기 두 달 전인 1991년 9월 같은 경찰서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건 용의자가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뒤집힌 사실 등은 고문과 가혹행위 등 악습이 있었음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 사실 중 하나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 밖에 대검 진상조사단이 재조사 결과 당시 고문이 이뤄졌다고 결론 내린 점, 2020년 12월 10일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ldquo;장 씨와 최 씨의 자백이 경찰서 수사관들의 가혹행위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rdquo;며 무죄 구형을 한 점도 고문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고 했다.  <img alt="최인철(왼쪽)·장동익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7106655223.jpg"/> #불법체포와 가혹행위로 만든 증거들, 증거능력 없다이에 따라 불법체포, 구금 과정 및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던 시기 작성된 기록과 확보한 증거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검찰 송치 이후 장 씨와 달리 최 씨는 세 번째 조사부터 경찰에서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진술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는데, 앞선 사정에 비춰보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인정한 진술들이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아 자백했던 심리상태가 그대로 이어져 작성된 것으로 보이고, 이를 검사가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쟁점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lsquo;현직 경찰관 강도사건&rsquo;의 피해자인 경찰관의 진술도 전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현직 경찰관 강도사건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장 씨와 최 씨가 검거되기 2년 전인 1989년 12월에 발생했는데 물적 증거 없이 피해를 당했다는 경찰관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확정됐다.재판부는 과거 재판과 재심 재판에서 진술이 일관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반대의 내용으로 진술을 바꾸는 등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과거 검찰 조사에서 &ldquo;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윤곽은 확인했다&rdquo;고 했지만 재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ldquo;얼굴을 확실히 봤다. 제압하기 위한 기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똑똑히 봤다&rdquo;는 취지로 진술했다. 피해를 주장한 경찰관이 범행을 당한 당시 타고 있던 차량의 차종이나 소유자에 관한 진술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점, 피해를 당하고도 2년이 지날 때까지 신고도 하지 않았던 점, 같은 피해자인 함께 있던 여성의 신원을 밝히지 못한 점 등도 &lsquo;매우 부자연스럽고 이례적&rsquo;이라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밖에 재판부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과정 전반에서 경찰이 압수한 압수물도 모두 증거능력이 없거나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장 씨와 최 씨의 &#39;억울하다&#39;는 진술은 믿을 수 있다고 밝혔다.   <img alt="4일 무죄 선고를 받고 취재진 앞에 선 장동익(왼쪽)·최인철 씨. 사진=고석희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208/1612767665092882.jpg"/> #다시 쓰는 판결 이유재판부는 판결문에 &lsquo;다시 쓰는 판결 이유&rsquo;라는 소제목을 통해 장 씨와 최 씨에 대한 판단을 새로 했다. 장동익 씨에 대해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최인철 씨는 살인사건과 현직 경찰관 강도 사건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지만, 운전면허 없이 자동차를 운전한 이유로 도로교통법위반 혐의,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교통경찰관 자격 사칭과 함께 운전연습을 하던 남녀로부터 3만 원을 받은 혐의 등은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최 씨가 재심 법정에서 이 혐의들은 모두 인정하고, 피해액이 소액이며 무엇보다 허위자백으로 인해 장기간 복역하며 고초를 겪은 점 등을 참작해 선고유예를 하기로 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가 이 기간이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판결로, 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처다.재판부는 지난 2월 4일 재심 법정에서 준비해 온 판결문만 보고 읽는 대신 장 씨와 최 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설명을 마친 재판부는 그들에게 &ldquo;경찰에서 가혹 행위와 제출된 증거가 법원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21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하는 고통을 안겼다&rdquo;며 &ldquo;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rdquo;고 밝혔다. 그러면서 &ldquo;재심 판결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피해가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dquo;고 전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quot;장동익&middot;최인철 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확인됐다는 의미가 있다&quot;고 말했다. 그는 이어 &quot;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인철 씨의 알리바이를 증언했다가 구속됐던 아내와 처남에 대한 재심 청구부터, 사건 수사 과정에서 조작에 가담한 경찰관들이 재심법정에서의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것에 대한 형사 책임, 국가배상 소송 등을 진행할 것&quot;이라며 &quot;남은 절차를 통해 이 사건을 바로잡아가겠다&quot;고 덧붙였다.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낙동강변에서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장동익&middot;최인철 씨는 이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약 21년간 복역했다. 2013년 모범수로 출소한 뒤, 과거 경찰 고문으로 살인 누명을 쓰게 됐다며 재심을 청구했다.2019년 4월 이 사건을 재조사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quot;과거 경찰의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quot;는 결과를 냈다.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 이후 법원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을 총 6차례 열었고, 2020년 1월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결정 1년 1개월 만인 지난 2월 4일, 재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8] 최종변론 "진정한 위로는 진실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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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1 Dec 2020 18:52: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법정에서 분노의 언어를 거침없이 뿜어내 왔다. 수사기관의 강압 수사와 잘못된 기소, 배려심 없는 재판부를 향해 날선 지적을 했다. 국가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한 마디라도 하라고, 피해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 속 시원한 말 한 마디라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12월 10일 부산고등법원(제1형사부, 곽병수 부장판사)에서 열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결심공판(관련기사 검찰 &ldquo;낙동강변 2인조, 진범 아니다&rdquo; 재심서 무죄 구형) 최종변론에서도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분노와 비판은 없었다. 대신 거대한 힘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진 재심 청구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들이 스스로 표현하지 못했던,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고통과 울분을 대신 토해냈다.  다음은 박 변호사의 최종변론 전문과 법정에서 공개한 사진 일부다.   <img alt="장동익, 최인철 씨와 가족들.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165205475.jpg"/> 어른 넷과 세 아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피고인 최인철, 장동익의 가족입니다. 1991년 10월 8일 부곡하와이로 놀러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 달 뒤, 두 남자는 경찰에 끌려갔고 무기수가 됐습니다. 그 후 두 가족은 무너졌습니다.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왔습니다. 국가 폭력으로 무너진 이 두 가족.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가족들 이야기로 최종변론을 하고자 합니다.피고인 최인철이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아내 정숙기의 나이 28세, 아들 최OO 7세, 딸 최OO 4세였습니다.   <img alt="최인철 씨와 아들, 딸.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228989863.jpg"/> 1991년 12월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일입니다. 정숙기는 혹시라도 남편을 볼 수 있을까싶어 딸을 등에 업고 검찰청으로 갔습니다. 검사는 정숙기에게 1990년 1월 4일 새벽 최인철이 어디에 있었는지, 혹시 옷에 피를 묻힌 채 집에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정숙기는 &ldquo;그때 우리 가족 모두 대구 친청집에 있었고, 남편이 옷에 피를 묻힌 채 집에 들어온 일도 없다&rdquo;고 말했습니다.검사는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오전이 가고 오후가 다가오는데도 집에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보여준 것도 아닙니다. 점심 무렵, 검사실 직원이 짜장면을 배달시켜 정숙기에게 내밀었습니다. 죄 없는 남편이 살인범으로 몰려 구속됐는데, 검찰청에서 짜장면이 넘어갈 리 없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옆에 있던 딸이 배고프다면서 그 짜장면을 먹는 겁니다. 정숙기는 아버지를 구속한 검사의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먹던 딸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맛있게 먹는 어린 딸을 그만 먹게 하지 못하고 황망하게 바라보던 그때 자신의 기분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딸을 바라보던 시절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피고인 최인철의 1심 재판이 한창이던 1992년 6월 정숙기도 남편처럼 구속이 됐습니다. 동생 정OO이 사건 당일 남편이 친정에 있었다고 증언했는데, 이를 위증으로 몰았고 정숙기는 위증을 교사했다며 구속했습니다. 죄 없는 남편이 구속됐고,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 정숙기와 동생 정OO이 거짓말을 했다며 구속됐습니다. 고문으로 살인범을 만들고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가족을 구속시킨 수사에 사하경찰서 경찰들과 검사 송OO이 관여했습니다.최인철 부부는 부산구치소 남자사동, 여자사동에 각각 수감됐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신세가 됐습니다. 엄마가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딸은 큰 삼촌 집에서, 아들은 작은 삼촌 집에서 살았습니다. 최인철이 무기징역이 확정된 후 두 아이와 함께 삶을 꾸려야 하는 건 온전히 엄마 정숙기의 몫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막힌 신세입니다. 남편이 죄 없이 교도소에 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도, 어떤 사람들을 통해 &lsquo;죄 없이 설마 무기수가 됐겠느냐&rsquo;는 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고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 도망갈 수도, 갈 데도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소금밭 같은 가슴을 다독이며 지옥 같은 세상을 견뎌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img alt="최인철 씨 아내 정숙기 씨와 아들, 딸.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323900310.jpg"/> 정숙기는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대파가 유명한 명지동에서 일당을 받으며 농사일을 했고, 명지항에서 물고기 실은 배가 도착하면 항구에서 바닷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도 일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종종 아이들과 함께 남편 최인철을 면회 갔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엄마와 함께 부산에서 광주교도소까지 오고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시간.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 최인철과 만나는 시간 10분. 무슨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고, 뭔 말을 끝내기도 어려운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교도소 면회실 투명 창 너머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숙기는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최인철은 어린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그렇고, 억울하다고 어린 아이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lsquo;엄마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라&rsquo;며 안부 인사 정도 한 것 같은데, 10분이 다 가버립니다. 그렇게 아내와 자식들을 보내고 &lsquo;감방&rsquo;으로 향할 때면 발바닥은 유리를 밟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자식들을 데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부산 집으로 향하는 아내 정숙기 가슴에는 모래 바람이 불었습니다. 무기수인 남편,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 막막함. 견디기 힘든 슬픔&hellip;.시간은 느리지만 꾸준히 흘렀습니다. 네 살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더니,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느덧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자라는 동안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면회실 투명 유리창만 더듬었습니다. 부녀 관계는 맞지만, 별다른 추억이 없는 아버지와 딸은 조금씩 할 말을 잃었습니다. 방황도 했지만 최인철은 모범수가 됐고 18년 만에 가족들과 교도소 내 만남의 집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네 살이던 딸은 22세 어른이 되어 최인철 앞에 나타났습니다. 최인철은 딸을 한 번 안아줬는데, 좀 어색했습니다. 경험이나 기억을 나눠 가진 게 없으니 대화는 자주 끊겼습니다. 세상에 나가더라도 친밀한 관계를 복원하는 게 참 힘들겠구나 싶어 두려웠습니다.출소 후 4년이 되던 해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21년을 떨어져 살다가 겨우 4년을 함께 살았는데 또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운명. 딸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하면서 기쁘고 서럽고 미안했습니다. 펑펑 울고 싶었지만, 고생한 아내가 울고 있어 눈물을 삼켰습니다.신랑, 신부의 인사가 끝난 뒤 최인철은 딸을 꼭 안아줬습니다. 교도소 만남의 집에서처럼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허했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기억 속에 아버지가 거의 없는 딸은 아버지 품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img alt="딸의 결혼식에서 최인철 씨.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375196719.jpg"/> 최인철은 2013년 6월 24일 자정 무렵 출소했습니다. 아들은 삼촌과 함께 광주교도소 앞으로 갔습니다. 교도소 철문이 열렸고, 문 안쪽에서 20대에 끌려간 아버지가 50대가 되어 걸어 나왔습니다. 일곱 살이던 어린 아들은 아버지보다 덩치가 큰 20대 후반의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맞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2016년 10월, SBS &#39;그것이 알고 싶다&#39;가 이 사건의 진실을 다뤘습니다. TV 속 아버지는 25년 전 겪은 고문에 대해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아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TV 시청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어렸지만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텅빈 집에 대한 기억, 아버지 이야기를 피하며 살아온 세월, 아버지가 당했던 물고문&hellip;.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img alt="최인철 씨가 당했던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493421827.jpg"/> 남편이 오기까지 혼자 남매를 키운 정숙기의 몸은 많이 망가졌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크게 이야기해야 들릴 정도로 두 귀는 나빠졌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생겼고, 무릎은 계단 한 층을 오르거나 50미터를 걷는 게 버거울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백내장 수술도 했습니다.(다음은 최인철 씨가 교도소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로 박준영 변호사는 편지들을 법정 화면에 띄워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최 씨 부인의 본명은 정숙기 씨인데 숙희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주)&quot;당신이 건강하고 용기를 잃지 않아야 나도 억울한 누명 속에서 지내는 인생이지만 자신을 가지고 지낼 수 있으며 또 당신과 가족들이 건강해야 훗날 한자리에 모여 살며 못다한 사랑 나눌 수 있음을 알기에 당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숙희. 날씨가 차가우면 신경통으로 많이 고생할 텐데 걱정이 됩니다.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고 건강관리 잘하세요.&quot; &quot;OO아(아들), OO아(딸), 건강하거라. 세월이 흘러가다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엄마 말씀 잘 듣고 아빠와 지낼 수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용기 잃지 말기를 바란다. 아빠는 항상 엄마와 너희들을 지켜보며 너희들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건강하거라.&quot;  <img alt="최인철 씨가 교도소에서 아내 정숙기 씨에게 보낸 편지.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633217946.jpg"/> &quot;어린이날 항상 건강하고 씩씩한 아빠의 아들, 딸이 되고 어머니날 엄마 가슴에 예쁜 꽃 한송이 꽂아주며 엄마를 위로하고 효도하는 아빠의 사랑하는 OO(아들)이 OO(딸)이가 되기를 아빠는 바란단다.&quot; &quot;제한된 삶, 제한된 공간, 하지만 생각까지 제한된 것은 아니니 마음으로나마 사랑하는 당신과 아이들을 떠올려봅니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당신과 OO(아들)이 그리고 예쁜 우리 OO(딸)이의 모습이 내게는 큰 힘이고 내가 지금의 답답하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언제나 내 마음 속에는 우리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밖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지금의 현실이 나를 어렵게 하는군요. 당신을 비롯한 우리의 소중한 두 아이들 우리 모두 절망과 슬픔보다는 희망과 즐거움을 갖고서 견뎌봅시다.&quot;피고인 장동익이 경찰에 끌려갔을 때 아내 박OO의 나이 27세, 딸 장OO은 2세였습니다.  <img alt="장동익 씨와 딸.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701642895.jpg"/> &ldquo;유리벽 하나를 두고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내 마음 아프지만 당신보다야 할까요. OO(딸)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OO이가 자기 이름도 알고요. 참 대견해요. OO이가 집안에 없으면 너무 조용해요. 다락방과 부엌은 마음대로 드나들구요. 막내 삼촌을 무척 따르는군요. OO이 아빠! 고생이 되더라고 참아주구려. 여보! 사랑해요 영원히 건강하세요.&rdquo;편지지에 적힌 글자는 굵은 사인펜으로 쓰였습니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배려입니다.   <img alt="장동익 씨의 아내가 보낸 편지. 어린 딸과 막내 동생의 메시지도 함께 적혀 있다.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9/1608364549329870.jpg"/> 장동익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부산에 있는 &lsquo;OO고무&rsquo;라는 신발공장에 어렵사리 취직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할 수 있는, 손에 익히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로 직원이 들어왔는데, 같은 라인 앞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유난히 어여뻐 보이는 아가씨였습니다. 아내는 밥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장동익의 눈에만 그랬는지 몰라도, 그때 아내는 참으로 예뻐 보였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아침마다 약국에 들러 박카스 한 병, 우루사 한 알을 꼬박꼬박 사다 바쳤습니다. 안 받으려고 하고 안 먹는다고 하고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그냥 놓고 와 버렸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퇴근 후에 만나자는 청에 &ldquo;예&rdquo;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연애를 1년쯤 했습니다.장동익은 눈이 안 보인다는 걸 들키기가 싫어서 약속 시간에는 무조건 먼저 나갔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일 때문에 조금 늦었는데, 아내는 뻔히 보이는 자리에 있는 자기를 몰라보고 엉뚱한 자리로 가는 장동익을 보고 장동익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장동익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들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무죄를 밝힐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은 장애입니다. 장동익은 처가에 인사를 갈 때도 눈 나쁜 거 들키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써야 했습니다. 반찬을 금방 못 집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밥하고 국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있는 모든 순간이 좋았습니다.  <img alt="장동익 씨.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865867769.jpg"/> 형님이 미혼이라 결혼식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년 뒤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꿈같이 행복했고, 사는 동안 나쁜 일은 더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생에 지은 죄가 있다면 잘 안 보이는 눈으로 다 갚지 않았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딸을 업고 교도소에 면회를 올 때마다 아내는 늘 울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면 장동익은 안에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장동익은 지금은 아이가 어리니 데리고 오더라도 좀 더 크면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딸은 안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 OO이(딸)를 데리고 왔습니다. 밖에서 하염없이 울고 가던 그날 아내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생각해 보니, 무남독녀 외동딸 데려와 몸고생, 마음고생 엄청 시켰습니다. &lsquo;어머니 성격 보통 아니신데 남편 없을 때 시어머니한테 듣는 말이 많이 다를 것, 남편 단속 제대로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원망도 들었을 것이다. 형과 동생들도 나 없는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을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위로 한마디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rsquo; 이런 데 생각이 미치니 아내를 잡아두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ldquo;면회 오지 마라.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데, 좋은 사람 만나 새 삶 살아라.&rdquo; 장동익은 이렇게 아내를 떠나보냈습니다.출소하던 날 딸이 살고 있는 셋째 동생 장봉익 집 앞에서 장동익은 망설였습니다. 문 너머에 딸이 있는데, 문손잡이를 잡고 차마 돌리지 못했습니다. 첫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lsquo;아빠 왔다!&rsquo; 너무 일상적으로 들릴까? &lsquo;보고 싶었다!&rsquo; 복받치는 내 마음을 전하기에 너무도 부족한 말이다. &lsquo;미안하다.&rsquo;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한테는 늘 미안하기만 하다. &lsquo;OO(딸)!&rsquo; 그냥 이름을 부를까? 그러면 우리 OO이는 달려와서 나를 안아 줄까? 나는 아빤데, 의연해야 하는데, 나부터 눈물을 쏟진 말아야지.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장면들이 소용돌이쳤습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은 손이 그저 허청대기만 했습니다.&ldquo;형님, 요새는 문 여는 방식이 다릅니다. 내 전화번호를 눌러야 합니다.&rdquo; 번호를 누르면 문이 열리다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딸 때문에 망설인 것도 있지만 문을 열 줄 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딸을 만나러 오는 데 걸린 시간, 21년 하고도 5개월 20일이었습니다.  <img alt="장동익 씨(오른쪽 아래), 막내 장성익 씨(아랫줄 가운데)와 형제들. 사진=박준영 변호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6948211746.jpg"/> 아비로서 딸에게 해 준 일이 없었습니다. 못 해 준 일들만 수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실수라도 할까봐 아이를 안아주거나 업어주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돌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딸은 어여쁜 옹알이 소리를 하면 장동익의 손을 끌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이제는 됐다는 듯이 가게를 나섭니다. 체육복 차림에 아무렇게나 나온 길이라 주머니에 동전 한 푼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ldquo;OO(딸)아, 안 돼! 이렇게 들고 나오면 안 되는 거야&rdquo;하며 과자를 빼앗다시피 해서 도로 내려놨습니다. 과자를 빼앗긴 딸은 서럽게 울었습니다.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체육복 주머니를 뒤집어 내보이며 &ldquo;아빠 돈 없어서 그래. 집에 가서 돈 가지고 오자.&rdquo; 그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30년도 훨씬 전의 어느 순간. 장동익은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환하기만 하던 햇살, 골목 가득 울려 퍼지던 딸의 울음소리, 그리고 아이의 슬픔이 가시기까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서툰 아비의 막막한 절망&hellip;. 집까지 날다시피 가서 돈을 가지고 가게로 돌아왔지만, 이미 OO이의 관심은 과자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절실하게 과자를 원했던 딸아이에게 아빠 장동익은 딸이 가장 원하는 무언가를 빼앗은 원망스런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장동익은 다시는 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살아왔습니다. 딸이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는 동안 딸의 인생에서 장동익은 늘 부재중이었습니다. 딸이 빛날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들에 어쩌면 심각한 걸림돌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빠를 대신해 딸을 살펴 준 셋째 동생 장봉익이 고맙습니다.장동익은 2003년 8&middot;15 특사 때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됐습니다. 앞으로 10년을 더 교도소에서 살아야 했지만,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엄마와 가족들 놀래키려 이 사실을 한동안 숨겼습니다. 엄마가 면회 오면 말하려 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합동접견으로 엄마를 초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ldquo;어머니가 다리에 깁스를 해 올 수 없다&rdquo;고 말했습니다.   <img alt="장동익 씨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사건기록. 재심 청구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일요신문DB"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7094661767.jpg"/> 장동익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장동익의 엄마는 위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엄마는 2003년 11월 2일 동아대학교에서 사망했습니다. 아들이 10년 뒤에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들에게 자기 눈을 주지 못한 게 서러워서였는지. 자유의 몸이 된 아들을 끝내 못 본 게 한으로 남은 것인지. 두 눈을 뜨고 허공을 응시한 채 사망했습니다.엄마는 유산으로 분홍 보따리 하나를 남겼습니다. 사건기록이었습니다. 셋째 동생 장봉익이 이 기록을 10년 동안 잘 보관했습니다. 이 기록이 재심의 근거가 되었습니다.피고인 최인철, 장동익이 살아나온 힘, 재심을 받을 수 있었던 힘 모두 가족이었습니다. 이 가족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는 &lsquo;진실&rsquo;뿐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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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검찰 "낙동강변 2인조, 진범 아니다" 재심서 무죄 구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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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1 Dec 2020 17:34: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검찰이 &lsquo;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을 복역한 재심 청구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진범이 아니라며 단호하게 무죄를 구형했다. 지난 12월 10일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곽병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재심청구인 장동익, 최인철 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재심 재판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img alt="검찰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결심공판에서 재심청구인들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지난 1월 6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재심 개시 결정 당시 모습.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7615420054.jpg"/> 재심청구인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에 대한 과거 유죄 확정판결의 결정적 계기는 △1989년 현직 경찰관 한 씨 특수강도 사건 △1990년 낙동강변 부녀자 강간 살인사건 △1991년 공무원 자격사칭 사건 △1991년 재심청구인 최인철 씨의 도로교통법 위반 등 총 네 가지다. 과거 수사기록과 공판기록 등을 종합해보면, 당시 경찰은 무면허 운전을 하며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한 2인조를 1991년 11월 검거했다.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lsquo;카데이트&rsquo;를 즐기던 남녀를 상대로 상습적인 강도 범행을 저질러 왔다는 자백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게 1989년 현직 경찰관 한 씨를 상대로 한 특수강도 사건과 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이다. 이후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2인조의 핵심 혐의가 됐고, 범행 장소와 시간, 수법 등이 비슷했던 현직 경찰관 강도 사건이 이들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가장 무거운 사건인 1989년 현직 경찰관 특수강도 사건과 낙동강변 살인사건에 대한 의견을 먼저 밝혔다.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 재심 개시를 위한 심문 기일, 재심 공판기일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들을 근거로, 두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인들의 자백 진술이 부산 사하경찰서 경찰관들의 고문에 의한 것이며 당시 객관적 상황과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특히 검찰은 &ldquo;경찰관 한 씨는 피해 사실에 대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나 증언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당히 모순된 진술과 증언을 했다&rdquo;며 &ldquo;한 씨에 대한 특수강도 범행은 실제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rdquo;고 밝혔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4] &ldquo;X팔려서 신고 안해&rdquo; 당당한 &lsquo;조작 의혹&rsquo; 경찰관).낙동강변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ldquo;재심 청구인들의 과거 자백 진술이 경찰관들의 고문에 의한 것이며, 법의학적 관점에서 당시 객관적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rdquo;며 &ldquo;과거 유죄 증거로 인정된 국과수 혈액형 감정결과도 &lsquo;다양한 혈액형으로 감정된다&rsquo;는 취지에 불과해 유죄 증거로 삼기는 부족하고, 경찰관이 작성한 현장검증조서는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된다&rdquo;고 말했다. 두 사건에 대해 검찰은 &ldquo;경찰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현장검증조서 등 증거에 오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면밀히 살피지 못해 결국 사건 실체 규명에 실패함으로써 피고인들이 각 약 20년 이상의 오랜 기간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게 한 부분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rdquo;며 &ldquo;피고인들에 대한 본 재심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위 죄명에 대한 진범이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실이 확인이 된 이상 피고인들에 대해 각 무죄를 선고해 달라&rdquo;고 말했다.     <img alt="1992년 12월 17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항소심 결심공판 조서. 최후변론 등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당시 검찰은 증거가 충분해 피고인들의 항소는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사형을 구형했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낙동강변 2인조의 항소심을 대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피고인들을 위한 유리한 변론'을 했다고 적혀있다. 28년이 지난 2020년 12월 10일 검찰은 낙동강변 2인조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211/1607668425279520.jpg"/> 공무원자격사칭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서는 장동익, 최인철 씨를 구분해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ldquo;장동익의 공무원자격사칭 등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부인하고, 최인철도 장동익의 가담 사실을 부인하며, 사칭 상대방(피해자)도 당시 장동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나머지 사칭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는 등 범죄 혐의를 증명할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rdquo;고 했다.최인철 씨에 대해선 공무원자격사칭 범행을 했다는 날짜, 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했다. 다만 1991년 11월 6일 발생한, 경찰이 2인조를 검거한 결정적 계기였던 공무원자격사칭, 공갈, 무면허 운전 혐의는 유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재심 과정에서 최인철 씨는 당시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같은 장소에서 운전연습을 하던 피해자들이 자신을 경찰관으로 오인해 3만 원을 건넸는데 이를 얼떨결에 받았고, 당시 면허 없이 운전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검찰은 &ldquo;피고인이 시인하고 보강 증거가 있으나, 약 20년의 수감 생활을 한 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형의 선고 유예 등 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선고해달라&rdquo;고 말했다. 선고유예란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가 이 기간이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판결로, 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종의 선처다. 구형을 마친 검찰은 &ldquo;마지막으로 검찰의 대표자로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rdquo;며 재심청구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최종변론을 통해 장동익, 최인철 씨와 이들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8] 최종변론, 가족을 향한 위로). 그는 &ldquo;국가 폭력으로 두 가족이 무너졌고, 저마다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왔다&rdquo;며 &ldquo;이들이 다시 회복돼야 한다&rdquo;고 강조했다.김예원 변호사는 &ldquo;결심공판이 열린 12월 10일이 세계인권선언 제정 기념일&rdquo;이라며 &ldquo;세계인권선언 8조에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특히 이 사건 피고인 장동익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이 사건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피고인에게 얼마나 가혹한 사법절차가 작동됐는지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부디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 선고를 해서 장애인들의 올바른 사법 접근법에 대한 중요한 초석을 세워주시길 바란다&rdquo;고 말했다.재심청구인 최인철 씨는 최후 진술에서 &ldquo;49번, 2203번, 80번, 1117번, 2267번, 800번,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대신 21년간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나의 왼쪽 가슴에 붙여졌던 번호들이다. 이 번호들과 가혹행위로 겪은 고통은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rdquo;이라면서도 &ldquo;과거 경험으로 수사기관, 사법부에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재심 개시 결정 심리와 본안 재판을 하면서 많이 달라진 법정의 모습을 목격했다. 진정한 인간을 위한 판결, 정의가 살아있는 판결을 해주시길 간청 드린다&rdquo;고 말했다. 장동익 씨는 &ldquo;범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문과 구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살기 위해, 가족들 생각에 불러주는 대로 썼다. 그렇게 살인자가 됐다&rdquo;며 &ldquo;21년 동안 증오하고 미워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가 너무 힘들었다. 과거 경찰관들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이들을 용서하겠다&rdquo;고 말했다.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재판은 3월부터 이날까지 모두 8차례 열렸다. 검찰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통상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번 재판에선 장동익, 최인철 씨의 무죄를 입증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양측이 사실상 협업을 했다. 선고 공판은 2021년 1월 1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7] 옛날 검사, 지금 검사]]></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8462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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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3 Nov 2020 20:45: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재판이 공전하고 있다. 마지막 증인으로 채택된 과거 사건 담당 검사가 수개월째 증인 출석을 회피하고 있어서다. 그의 거듭된 증인 불출석으로 인해 예정됐던 재심 결심공판이 미뤄졌고, 이에 따라 선고 역시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기록. 사진=일요신문DB"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113/1605254589020521.jpg"/> 지난 11월 12일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결심공판기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재판부는 마지막 증인신문과 함께 피고인(재심청구인) 신문과 검찰 구형, 변호인 최종변론, 피고인 최종진술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인 송 아무개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현 변호사)가 법정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계획 대부분이 무산됐다.  송 전 검사는 29년 전 부산지검 강력부 소속으로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와 공판을 맡아 2인조를 &lsquo;악질 범죄자&rsquo;로 규정하고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퇴직 후 현재 경남의 한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이 지역 시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법원은 7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송 전 검사에게 총 7차례 증인 소환장을 발송했다. 특히 증인신문기일이 결정된 9월부터 10월 사이에만 5차례 집중적으로 소환장을 보냈지만 모두 &lsquo;폐문부재&rsquo;(문이 잠겨있고 사람이 없음)로 전달되지 않았다. 직원이 직접 주소지에 찾아가 건네주는 교부송달 역시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송 전 검사는 물론 가족, 사무실 직원 등이 4개월째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 문을 잠그고 하나같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얘기다.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으면 증인 소환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소환에 불응할 때 강제로 데려올 수 있는 증인 구인 등 강제 소환 수단이나 과태료 결정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재심 공판에 참석 중인 부산지검은 11월 12일 법원에 의견서를 내고, 송 전 검사가 &lsquo;의도적으로 재심재판에 불출석하고 있다&rsquo;고 밝혔다. 검찰은 의견서에서 &ldquo;송OO 변호사(전 검사)는 증인 소환장이 발송된 이후부터 본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변호사 사무실을 열지 않고, 그 사무실 소속 사무장이 간헐적으로 사무실을 열어 서류를 들고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rdquo;고 밝혔다.이어 &ldquo;송 변호사는 2020년 11월 초까지도 활동 지역 법원에서 진행되는 민사재판의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고, 일부 변호사는 같은 시기 소송 상대방 대리인으로 송 변호사를 본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rdquo;며 &ldquo;본건 재심 재판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무실을 닫고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rdquo;이라고 강조했다.재심청구인 2인조 측과 검찰은 모두 재심 공판에서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인조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서의 자백 경위 및 내용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으며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폭행 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 역시 2020년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 사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 증거서류 위조(왜곡,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등에 대해 송 전 검사 본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img alt="검찰이 11월 12일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첨부된 사진. 검찰은 송 전 검사가 사무실을 닫고 증인 소환장을 받지 않고 있으나 변호사 활동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1113/1605254464113141.jpg"/> 검찰 의견서를 확인한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측과 검찰 측에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신문 진행 여부를 물었다. 검찰은 단순 우편 및 교부송달 외에 송 전 검사에게 소환장을 전달할 수 있는 별도 방안을 강구했다며 재판부에 전달했다. 2인조의 변론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ldquo;증인 신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나 이로 인해 재심청구인들의 권리구제가 기약 없이 늦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rdquo;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송 전 검사에 대한 증인 신문 시도를 한 차례 더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기일은 오는 12월 10일이다. 결심공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구형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절차 가운데 하나다. 앞서 검찰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과정에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의 조사 내용과 결론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과거사위 결론은 부산고등법원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를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또 다음 기일에서 송 전 검사가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과거 이 사건에서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주장과 재심 재판을 맡고 있는 현직 검사의 새 구형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이날 증인신문과 변호인의 최종변론, 피고인 최종 진술, 검찰 구형 등은 무산됐으나 피고인(재심청구인) 신문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장동익, 최인철 씨는 둘 사이에 좀처럼 꺼내지 못해온 말을 꺼냈다. 박준영 변호사가 최인철 씨에 대한 신문을 마무리하며 &ldquo;장동익 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rdquo;고 했다. 과거 최인철 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해 &ldquo;장동익과 공범임을 시인하라&rdquo;는 다그침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장동익 씨가 공범으로 몰려 고문을 받았다. 최인철 씨는 &ldquo;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rdquo;며 고개를 숙였다. 이후 같은 질문을 받은 장동익 씨는 &ldquo;인철이를 너무나도 많이 원망했다&rdquo;면서도 &ldquo;고문과 폭행을 직접 겪었던 만큼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안다. 용서한다&rdquo;고 말했다.  그 밖에 장동익, 최인철 씨는 경찰에 끌려가기 전과 출소 이후의 자신들의 삶,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 놨다. 이들은 특히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최인철 씨는 &ldquo;오랜 시간 나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이제는 몸이 많이 상해 버린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rdquo;며 &ldquo;어린 아들 딸에게 과자 하나 사주지 못하는 등 아버지 역할을 못했다. 손주들에게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rdquo;고 말했다. 장동익 씨 역시 &ldquo;어머니의 유품인 과거 수사기록을 20여 년 동안 깨끗이 보관해뒀다가 출소한 뒤 건네준 셋째 동생 봉익이가 너무 고맙다. 이 기록들이 재심 청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rdquo;며 &ldquo;누명을 쓰기 전부터 믿어주고 따라준 아내와 다른 형제들도 고맙다&rdquo;고 말했다.]]></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6] "여보, 좋은 사람 찾아봐" 누명 쓴 남자 둘과 세 여자]]></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750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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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7 Jul 2020 17:48: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법정이 젖어들었다. 지켜보던 방청인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낮은 신음과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늘 차분히 증인들을 지켜봐왔던 검사도, 재판부도 그 순간엔 잠시 고개를 떨궜다. 수십 년 동안 묵혀있던 울분이 증인석에서 터져 나올 때였다. 고통은 살인누명을 쓰고 21년 5개월을 복역한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 장동익, 최인철 씨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시간이 세 평 남짓한 교도소에 갇혔을 때, 이들을 남편과 아들로 둔 사람들의 시간도 멈춰 섰다. 7월 16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형사1부 이흥구 부장판사) 세 번째 증인신문에 2인조의 가족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낙동강변 2인조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는, 기자가 낙동강변 2인조를 처음 만난 2016년부터 최근까지 그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쓴 기록과 재심 증인신문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img alt="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수사기록.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030319491.jpg"/> #사랑하는 당신께동익 씨의 아내 박성희(가명) 씨는 남편을 처음 봤던 &lsquo;123다방&rsquo;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직장 동료들과 늘 함께 다녔던 다방이었지만 그날은 혼자 앉아있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었어도 제대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남자를 소개 받기로 한 날이었다. 어색하고 긴장도 됐지만 자꾸 설렌 웃음이 나왔다.  그때 동익 씨가 들어왔다.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더니 구석 자리에 앉았다. &ldquo;나를 못 본 걸까.&rdquo; 멀리서 그를 응시하며 눈치를 줬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성희 씨는 직접 그에게 다가가 팔을 끌어 자리로 데려왔다.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동익 씨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열심히 바라보는 것 같은데, 눈동자는 자꾸만 다른 곳을 향했다. 성희 씨는 모른 체했지만 그때 알았다. &ldquo;이 남자, 눈이 잘 안 보이는구나.&rdquo;동익 씨를 만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의 눈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단 걸 알았다. 정확히 알게 된 건 동익 씨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갔을 때였다. 돌무더기 위를 걷는데 동익 씨만 자꾸 넘어졌다. 다리에 파란 멍이 들고 피가 나는데도 그는 웃기만 했다. 넘어지면 괜히 물을 떠 마시면서 &ldquo;아 시원하다&rdquo; 하거나 손을 씻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성희 씨를 보고 &ldquo;괜찮냐, 젖지 않았냐&rdquo;고 했다.성희 씨는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아 하고, 그래서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귀여웠다. 불편한 자신보다 나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좋았다. 성희 씨도 동익 씨 옆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1989년, 둘은 결혼했고 딸을 낳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둘은 사랑하고 있었고 또 사랑받고 있었다. 성희 씨는 이만하면 행복하다 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정확히 2년 만에 허공에 흩어졌다. 1991년 11월 8일 밤, 저녁밥을 짓고 있는데 누군가 바깥에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ldquo;여보, 나 잠깐 다녀올게.&rdquo;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남편은 밥이 식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집 바람 소리가 그날따라 더 무섭게 들렸다. 성희 씨는 딸을 업고 문고리를 붙든 채 새벽을 맞았다. 그 시간 남편이 부산사하경찰서에서 1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고문을 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일이다.  <img alt="성희 씨가 장동익 씨에게 보낸 편지. 코 앞에까지 종이를 가져와야만 글을 읽을 수 있는 남편을 위해 큰 글씨로 편지를 썼다. 편지 마지막은 &quot;여보, 사랑해요. 영원히.&quot;로 끝난다. 사진=장동익 씨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271846559.jpg"/> 경찰 조사 과정에선 남편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그를 보여주지 않았다. 성희 씨가 남편을 볼 수 있게 된 건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검찰에 송치된 이후였다. 검찰 조사를 마치고 포승줄에 줄줄이 묶여 호송차에 오르는 짧은 순간, 사람들 틈에 섞여 까치발을 들고 남편의 얼굴을 찾아야만 했다. 그마저도 둘은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동익 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성희 씨는 남편을 발견하기만 하면 등을 돌렸다. 그녀는 업고 있는 딸을 보여주며 안부를 묻는 대신 같은 말만 반복했다. &ldquo;여보 우리 딸 여깄어! 우리 딸 여깄어! 제발&hellip;&rdquo; 동익 씨에게 무기징역 확정 판결이 내려지고, 면회도 자유로워졌지만 성희 씨는 그때도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눈물이 쏟아져 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5년 뒤, 동익 씨는 성희 씨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ldquo;좋은 사람 찾아봐.&rdquo;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젊고 예쁠 때 얼른 다른 사람 찾아 가라는 뜻이었다. 짧은 말을 마친 동익 씨는 유리벽 너머 아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성희 씨는 이날 가장 많이 울었다. 동익 씨가 교도소에서 이혼 서류를 받아들고 봉투가 젖어 찢어질 때까지 놓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것 역시, 나중 일이다. #어머니의 유품기자가 낙동강변 2인조를 처음 만난 날, 두 사람은 분홍색 보따리를 건넸다. 때 묻은 매듭을 푸니 수백 장에 달하는 두툼한 서류 뭉치가 나왔다. 노랗게 물들어 잘못 만지면 금방 부서질 것만 같았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진한 피냄새가 났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이었다. 동익 씨는 &ldquo;엄마가 남겨주셨다&rdquo;고 말했다.엄마의 이야기는 동익 씨의 동생 성익 씨가 했다. 엄마가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된 동익 씨를 바라볼 때, 성익 씨는 엄마 뒤를 지켰다. 형이 교도소에 있을 때 분홍색 보따리를 맡아둔 것도 성익 씨였다. 동익 씨는 출소할 때까지 이 기록들이 남아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과거 수사기관의 조작과 위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엄마가 남긴 분홍색 보따리는 낙동강변 2인조 재심이 개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img alt="장동익 씨 어머니가 남긴 분홍색 보따리. 낙동강변 사건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이 들어있다.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438007552.jpg"/> 엄마가 동익 씨 시력에 대해 알게 된 건 그가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을 때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엄마는 깜짝 놀랐다. 동익 씨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단 말이었다. 동익 씨는 글자가 점점 흐릿하게 보인다고 했다. 자리를 한 칸씩 앞으로 옮겨봤지만 소용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학교 가는 일도 버겁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를 받아둔 날, 엄마는 동익 씨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동익 씨를 데리고 부산 전역의 안과와 한의원을 다녔다. 점을 보기도 했고, 유명한 뜸쟁이가 있다고 해서 서울까지 올라가 쑥뜸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시력은 점점 나빠져 가기만 했다. 원인은 시신경 위축이었다. 2020년 현재도 치료가 불가능 한 일종의 유전병이다. 동익 씨 외삼촌, 이모, 외사촌, 그리고 성익 씨까지 모두 시력이 좋지 않았다. 엄마 쪽 유전이었다. 엄마는 괴로워했다. 당신 때문에 아들의 앞날이 어두워졌다며 자책했다. 엄마가 짙은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뿜어낸 건 유전이란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다. 동익 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오랜만에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부산에 최초로 &lsquo;안은행&rsquo;이 있는 병원이 들어섰다. 엄마는 동익 씨와 성익 씨 손을 붙잡고 병원에 달려갔다. 안구를 이식하면 될 것 같았다. 병원이 처음 생겼으니, 혹시 동익 씨에게 &lsquo;맞는 눈&rsquo;이 없으면 엄마 걸 주겠다고 했다. &ldquo;엄마는 좋은 거 많이 보고 살았으니까, 이제 안 봐도 괜찮아.&rdquo; 이렇게 말하면서도 엄마는 기뻐했다.  <img alt="장동익 씨와 어머니, 아버지. 동익 씨는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해야만 엄마 얼굴을 볼 수 있다.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851384275.jpg"/> 병원을 나온 엄마는 다시 속 깊은 곳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뇌와 눈을 연결하는 신경에 문제가 있어 안구를 교체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었다. 엄마가 앞장섰고 그 뒤엔 동익 씨와 성익 씨가 따라 걸었다. 성익 씨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동익 씨와 성익 씨는 그날 엄마가 뿜어내는 연기의 냄새를 &lsquo;사람 속 타들어가는 냄새&rsquo;라고 표현한다. 결혼을 하고 손녀를 낳아 분가한 아들이 살인범이 됐다는 건 뉴스를 보고 알았다. 엄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경찰서로 달려갔지만 아들을 볼 수 없었다. 며느리와 함께 검찰 호송차에 오르는 아들을 보며 &ldquo;엄마 여기 있다&rdquo;만 외치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ldquo;우리 아들은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rdquo;고 외쳤지만 경찰관도, 검사도, 판사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가 탄원서를 쓰면 성익 씨가 법원과 다른 국가기관, 방송사, 신문사에 보냈다. 수십 장을 써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같았다. &ldquo;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도와드리기 어렵겠습니다.&rdquo; &ldquo;확정 판결이 내려져서 불가능합니다.&rdquo; 엄마가 수사기록을 모으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변호사 사무실과 검찰청, 법원을 오가며 한 장, 한 장 모으기 시작했다. 기록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으면 호통도 치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엄마가 서류를 받아오면 성익 씨가 복사를 해왔고, 엄마는 그걸 분홍색 보따리에 묶어 전국을 다니면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 기간만 10년이다.엄마는 세상을 떠나면서 눈을 감지 않았다. 마지막 날까지 동익 씨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성익 씨는 엄마가 분홍색 보따리를 들고 늘 해왔던 말을 떠올렸다. &ldquo;기록 꼭 남겨놔야 한다. 동익이 억울한 거 풀어줘야 하니까. 지금은 아무도 몰라줘도 나중엔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rdquo;성익 씨는 이사를 다닐 때도, 다른 지역으로 일을 하러 갈 때도 보따리는 꼭 챙겨뒀다. 전국을 떠돌았던 엄마의 유산 분홍색 보따리는, 마지막으로 현재 재심을 진행 중인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달됐다. 엄마는 아들에게 눈을 주진 못했지만 꼬인 삶을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남겼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기록.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660834874.jpg"/> #가족을 지킨 아내&ldquo;니는 살인자 마누라다. 니 이런 데서 마이(많이) 굴러먹었나.&rdquo; 최인철 씨의 아내 정숙기 씨는 1991년 검찰청에서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또렷이 남아 다른 기억들을 지웠다.검찰은 숙기 씨에게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1990년 1월 4일 새벽에 남편이 어디에 있었는지, 피 묻은 옷을 입고 오지 않았는지 캐물었다. 숙기 씨는 그날 남편과 함께 대구 친정집에 갔다고 했고, 옷에 피를 묻히고 들어올 일도 없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건 욕설과 호통뿐이었다. 아침 일찍 검찰청에 들어섰지만 점심이 지나가도 도돌이표 같은 말은 반복됐다. 수사관이 &ldquo;배 안고프나. 짜장면 하나 무라(먹어라)&rdquo;며 그릇을 건넸지만 숙기 씨는 젓가락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세 살 딸이 그 짜장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숙기 씨는 그날 그 황망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img alt="정숙기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717/1594964818942869.jpg"/> 그날 오후, 검찰은 숙기 씨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검사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숙기 씨는 함께 있던 딸이 어디로 갔는지, 집에 남아있던 큰아들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 채 부산 구치소에서 6개월을 보냈다. 최인철 씨는 같은 구치소 남자사동, 숙기 씨는 여자사동에 수감됐다. 출소 이후 친척집에서 맡아두고 있던 두 아이를 찾아왔다. 막막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숙기 씨는 그때부터 악착같이 일을 했다. 부산 명지동에서 일당을 받으며 밭일을 했고, 품앗이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김 양식장과 항구에 나가 바닷일도 했고 공장에도 다녔다. 평일엔 일을 하고 쉬는 날이면 왕복 8시간 거리에 있는 최인철 씨를 면회했다.시간이 흐를수록 숙기 씨의 몸은 점점 작아졌다. 뼈가 삭고 염증이 생겼다. 살이 빠지고 살짝만 부딪혀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멍이 들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은 이제 연례행사다. 숙기 씨는 이제 막 예순이 지났지만, 신체 나이는 그보다 더 약해졌다. 숙기 씨는 7월 16일 재심 재판부가 증인 신문을 마치고 &ldquo;더 할 이야기가 있느냐&rdquo;는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ldquo;속에 꽉 메어있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는 눈물도 말라서 나오질 않는다. 누가 작은 소리로 불러도 깜짝 놀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불안에 떤다&rdquo;고 말했다. 21년 동안 가족을 지켜왔던 숙기 씨를 이제는 최인철 씨가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성희 씨는 딸 결혼을 계기로 만나게 된 동익 씨와 다시 함께하고 있다. 증인 신문 내내 눈물을 보였던 그는 &ldquo;딸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하다&rdquo;고 했다. 당시 두 살이었던 딸이 지금은 서른한 살이 됐다며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성희 씨는 남편 대신 시어머니가 키운 딸을 보기 위해 몰래 학교에 찾아 가거나 살며시 다가가 1000원 한 장을 건네주곤 했던 일을 떠올렸다. 성희 씨는 재판부를 향해 &ldquo;우리 딸한테 따뜻한 아빠가 되는 걸 보고 싶다&rdquo;며 &ldquo;우리 남편 구해주세요&rdquo;라고 말했다.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던 성익 씨는 변호사가 갑작스레 꺼낸 분홍색 보따리를 보고 큰 소리를 내고 울었다. 보따리가 엄마라는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ldquo;과거의 수사기관, 법원과 다르게 이 수사기록을 제발 한 번만이라도 꼼꼼히 봐달라&rdquo;고 말했다.가족 증인신문을 모두 마친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부에게 인사했다. 박 변호사는 &ldquo;재심 재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 외에도 청구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치유의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rdquo;며 &ldquo;가족들이 그동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rdquo;고 말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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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5] 초동수사 경찰도 조작 개입? "기억 안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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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26 Jun 2020 20:38: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1990년 1월 4일 오전 6시 40분,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 붉은 새벽빛이 검정색 로얄프린스 한 대를 비추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세워져 있던 차량엔 사람의 온기는 없었다. 깨끗하게 닦인 트렁크 위, 흙과 함께 뒤엉켜 굳어있는 선홍색 핏자국만이 누군가 있었다는 걸 말해줄 뿐이었다.열려있던 운전석 사이로 보이는 차량 내부는 어지러웠다. 머리카락과 먼지, 양주병과 동그랗게 말린 장갑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뒷좌석에서 점처럼 찍힌 혈흔이 보였다. 점은 닫힌 뒷문 틈 사이로 흘렀다. 문을 열어보니 바닥엔 슬리퍼와 노란색 테이프, 그리고 피가 흥건한 모난 돌이 보였다. 돌에서 시작된 혈흔은 낙동강 갈대숲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 빨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차갑게 식은 여성이 누워있다. 두 팔은 머리 위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웃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갔다. 오른쪽 머리가 심하게 함몰돼 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고, 이곳까지 끌고 온 뒤 달아났다(1990년 1월 4일 부산 북부경찰서 &lsquo;엄궁동-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 현장검증조서 재구성).  <img alt="1990년 1월 4일 부산 북부경찰서가 그린 사건 현장 약도. 사진=수사기록"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626/1593158810822108.jpg"/> #지워졌던 수사기록 드러나다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초동수사는 당시 관할이던 부산 북부경찰서가 담당했다. 사건현장에서 800m 떨어진 엄궁동파출소에 수사본부를 두고 형사계, 부산시경찰국이 함께 수사했으나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편철했다. 그런데 1년 10개월 뒤인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낙동강변 2인조였다. 29년 후인 지난 6월 25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형사1부 이흥구 부장판사) 두 번째 증인신문에는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 경찰관 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재심 과정에서 사하경찰서는 살인사건의 증거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작성해 2인조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북부경찰서의 수사기록은 사하경찰서에서 범인이 &lsquo;만들어지기&rsquo; 1년 전 작성됐다. &lsquo;그날&rsquo;의 진실에 보다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북부경찰서 경찰관들의 증인신문은 단순히 초동수사 과정과 결과를 묻고 사하경찰서의 조작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을 대리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사하경찰서의 사건 조작에 북부경찰서가 깊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이날 법정에서 처음 제기했다.당초 2017년 재심 청구 시점은 물론 2년 뒤인 2019년 대검 진상조사단의 재조사 단계까지만 해도 북부경찰서에 대해 제기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증거 수집과 용의자 확보에 실패한 부실했던 초동수사 △살인사건임에도 사하경찰서로 전달된 사건기록이 129쪽에 불과했던 점이다. 이마저도 북부경찰서의 문제보다는 사하경찰서에서 낙동강변 2인조를 범인으로 짜맞추기 위해 증거와 기록을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렸다.북부경찰서의 사건 조작 개입 의혹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신문기일과 올해 본안 재판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서 사하경찰서 경찰관들이 증인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그동안 유지했던 주장과 진술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허점이 발견됐다. 2019년 대검찰청 산하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수사기록 컬러본에서 흐릿하게 지워졌던 내용들이 드러나면서 이 내용은 더욱 구체화됐다.#&quot;기억나지 않는다&quot;북부경찰서에서 초동수사를 담당하고 앞서의 현장검증 조서를 작성한 김 아무개 씨(당시 경장)는 1991년 11월 낙동강변 2인조가 사하경찰서에서 검거된 이후 경찰은 물론 검찰 수사, 이어진 재판에 증인으로도 출석하는 등 여러 차례 협조했다. 특히 &ldquo;사하경찰서가 진행한 낙동강변 2인조의 현장검증에도 참석해 범인들이 피해자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확히 지목하는 것을 봤다&rdquo;는 취지로 진술했다. 낙동강변 2인조가 범인이라는 사하경찰서 수사결과에 힘을 보태는 진술이다.김 씨는 당시 범행 도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 역시 검찰과 법정에서 초동수사 당시 &lsquo;피묻은 부러진 각목&rsquo;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사하경찰서가 &quot;피해자는 낙동강변 2인조로부터 각목에 맞아 숨졌다&quot;는 수사결과를 내린 이후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김 씨가 사건 발생 직후 작성한 현장검증 조서를 보면, 각목이란 단어는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현장검증 조서에 차량 내외부 상태부터 혈흔의 개수, 바닥에 떨어진 슬리퍼와 테이프 등 유류품과 그 물품들의 거리까지 꼼꼼히 기재했다.   <img alt="부산 북부경찰서 초동수사 당시 촬영된 사건 현장의 로얄 프린스. 사진=수사기록"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626/1593159151198376.jpg"/> 김 씨는 이번 재심 재판 증인신문에서 &ldquo;기억이 나지 않는다&rdquo;는 말로 대부분의 답변을 대신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건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ldquo;본인이 직접 초동수사한 사건이고, 범인을 잡지 못했던 사건이다. 다른 경찰서에서 검거한 이후 현장검증에 참여해 범행 재연도 지켜봤고, 검찰과 법정에서 증언까지 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가&rdquo;라고 묻자 그는 &ldquo;전혀 기억나지 않는다&rdquo;라고 대답했다.다만 &lsquo;부러진 각목&rsquo;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대답을 했다. 그는 각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ldquo;크기는 잘 모르겠다. 나무 받침대가 피 묻어 있던 게 확실하다. 현장에서 발견했다. 왜 검증조서나 유류품 목록에 없는지는 기억 안 난다. 사진은 세세하게 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rdquo;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가 &ldquo;현장검증 사진에는 각목 사진이 없다. 돌만 있다. 정확히 진술하는 게 맞느냐&rdquo;고 되묻자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라고 말했다. 낙동강변 2인조 검거 이후 현장검증에 참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한 대답을 했다. 그는 &ldquo;다른 경찰서에서 진행하는 수사에 참여한 일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rdquo;고 대답했다가, 변호인이 그가 현장검증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담긴 과거 수사기록을 제시하면서 재차 질문하면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고 말을 바꿨다. 검찰도 &ldquo;그런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정확히 말해달라&rdquo;고 하자 그는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고 대답했다. 사건에 관계된 경찰 관계자들의 인사기록카드를 종합하면, 사하경찰서 경찰관들과 김 씨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부산 중부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다. 6월 1일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과 같은 사례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4] &ldquo;X팔려서 신고 안해&rdquo; 당당한 &lsquo;조작 의혹&rsquo; 경찰관). 지난해 대검 진상조사단이 김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하경찰서 경찰관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김 씨는 &ldquo;사하경찰서 관계자들은 아무도 모른다. 형사과장만 상사로서 알고 있다&rdquo;고 답했다. 그러나 이번 재심 법정에서 김 씨는 &ldquo;사하경찰서의 한 경찰관을 알고 지냈다&rdquo;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사하경찰서 경찰관은 낙동강변 2인조를 직접 검거하고 사건 수사를 주도적으로 했던 인물이었다.한편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두 명의 북부경찰서 경찰관들 역시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고 증언했다. 한 명은 숨진 피해자와 함께 있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의 최초 진술을 받았던 경찰관이고, 다른 한 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등을 의뢰하고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만 이들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이후 본부장의 지시대로 업무 분담을 했고, 2개월가량의 수사를 하고 강력계 형사들에게 인계한 이후에는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24] "X팔려서 신고 안해" 당당한 '조작 의혹' 경찰관]]></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7127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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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03 Jun 2020 12:13: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dquo;피해자의 집 앞에 범인들을 데리고 오는 게 말이 됩니까? 왜 피해자를 찾아옵니까? 판사님, 그래도 되는 겁니까?&rdquo;증인 선서를 마친 남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2016년 재심 청구를 준비하던 낙동강변 2인조가 변호인과 함께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그의 집 앞에 찾아온 일을 떠올린 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재판부가 &ldquo;흥분하면 법원이 사실 관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들더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증언 해달라&rdquo;고 설득한 뒤에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남자는 31년 전 낙동강변 2인조에게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한, 당시 현직 경찰관이었던 한 아무개 씨다. 과거 경찰과 검찰, 법원에 각각 출석해 피해 사실을 진술했던 그는 6월 1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형사1부, 이흥구 부장판사) 첫 증인신문에서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인철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602/1591088815079748.jpg"/> #&quot;실제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 끼워 넣었다&quot;낙동강변 2인조 유죄 확정판결의 결정적 계기는 △공무원 자격사칭 사건 △낙동강변 부녀자 강간 살인사건 △현직 경찰관 한 씨 강도상해 사건, 이렇게 총 세 가지다. 과거 수사기록을 종합해보면, 당시 경찰은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한 2인조를 검거해 여죄를 추궁했고, 이들이 한적한 장소에서 &lsquo;카데이트&rsquo;를 즐기던 남녀를 상대로 상습적인 강도 범행을 저질러 왔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게 살인사건과 강도상해 사건이다.한 씨가 당했다는 강도사건은 범행 장소와 시간, 범죄 수법이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닮아있다. 판결문을 보면, 그는 1989년 12월 새벽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 강변도로에 세워 놓은 차 안에서 여성과 데이트를 하다 두 명의 남성에게 강도를 당했다. 두 남자는 한 순경에게 7만 원을 빼앗고 트렁크에 감금했지만 한 씨가 탈출하자 도망쳤다. 사건 발생 2년 뒤, 2인조를 구속한 사하경찰서 경찰관들이 한 씨에게 이들을 데려갔고 그가 단번에 알아보면서 이 사건은 두 남자의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핵심 사건이 됐다.그러나 검경 수사기록과 법원 공판 기록을 모두 종합해보면, 한 씨 사건엔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 씨는 당시 사건 정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면서도 강도사건 발생 이후 2인조가 구속되기 전까지 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살인사건 수사를 맡은 부산 사하경찰서 조사 과정에서도 강도를 당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와 같은 피해자인 여성은 그날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나 데이트를 했던 사람이라며 이름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씨는 사건 당시 타고 있었던 차량이 &lsquo;대우 르망&rsquo;이라고 진술했으나 재심 청구 과정에서 다른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에 차량 번호를 조회해본 결과 차종은 르망이 아닌 &lsquo;현대 스텔라&rsquo;였다. 트렁크에 갇혔던 한 씨는 &#39;힘껏 쳐서&#39; 탈출했다고 했는데, 이 방식으로는 탈출이 불가능 하다는 점도 확인됐다(관련기사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⑩] &lsquo;현직 경찰 강도사건&rsquo; 재연해보니&hellip;&lsquo;거짓 진술 가능성&rsquo;,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⑫] &lsquo;현직 경찰관 강도사건&rsquo; 국가기관 통해 조작 사실 확인됐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2017년 재심을 청구하며 현직 경찰관 강도사건은 &lsquo;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사건&rsquo;이라고 주장했다.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의 고문과 폭행에 따라 허위자백을 했다는 결론을 내린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2019년 4월 박 변호사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피해를 주장하는 한 씨 진술을 제외하면 실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이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설명이다. 조사단은 과거 경찰이 2인조의 살인 혐의에 힘을 싣기 위해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을 살인사건과 비슷하게 만들어 끼워 넣었다고 판단했다.  <img alt="2인조는 한 씨와 대질한 이후 강도사건을 '자백'했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이 강도사건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진=수사기록"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602/1591088973160528.jpg"/> #당당했던 경찰관, 변호인과 공방전재심 법정에 선 한 씨는 자신이 &lsquo;피해자&rsquo;임을 분명히 했다. &ldquo;모른다&rdquo;거나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는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피해자이자, 목격자라서 범인을 잘 안다고 했다. 강도사건 발생 당시와 전후 상황을 분명히 기억한다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변호인이 제공한 한 씨의 과거 진술조서 등을 확인하고 전후 관계를 다시 풀어놓거나 살을 붙였고, 당시 진술과 지금의 증언이 다르다는 변호인의 지적에는 &ldquo;말꼬투리 잡지 말라&rdquo;며 맞서기도 했다. 그는 과거 수사기록의 허점에 대해서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타고 있던 차량이 &lsquo;르망&rsquo;이 아닌 &lsquo;스텔라&rsquo;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ldquo;내가 탄 차는 르망이 분명히 맞다&rdquo;고 주장했다. 한 씨는 차를 술집 마담으로부터 그날 하루 빌렸다고 했는데, 술집과 위치, 마담의 이름을 뚜렷이 기억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가 &ldquo;차량 소유자를 모두 확인해본 결과 마담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rdquo;고 말하자 &ldquo;실소유주는 내가 알 바 없다. 나는 마담에게 빌린 게 맞다&rdquo;고 반박했다.변호인과 한 씨의 공방은 총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양측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변호인의 질문이 거듭되면서 한 씨로부터 모호한 답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씨는 변호인이 기록과 새롭게 확인된 사실관계들을 제시하자 대답 대신 언성을 높이다가 재판부에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특히 현직 경찰관이었음에도 피해를 당한 직후 물적 증거를 단 한 가지도 남기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한 씨는 2인조가 범행 당시 자신의 옷을 칼로 찢어 손을 묶었다고 했으나 그 옷은 경황이 없어 버렸다고 말했다. 빌린 차의 조수석 유리창이 깨져 유리를 새로 끼워 넣고 세차까지 하고 돌려줬다고 했지만, 피해 사실을 입증한 자료에 포함되는데도 영수증 등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았고 진술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ldquo;증거 수집은 수사기관에서 할 일이고  당시 수사 과정에서 별도로 증거를 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아서 주지 않았다&rdquo;고 말했다.사건 발생 직후 사라져 버린 여성의 행방도 모른다고 했다. 과거 사건 기록에는 2인조가 강도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직후부터 여성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한 씨는 도주하는 2인조를 잠시 쫓아갔다 현장에 돌아가 봤으나 여성은 그 자리를 떠났다고만 했다. 그는 같은 범행을 당한 피해자이자 목격자임에도 &ldquo;피해가 있으면 여성이 직접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생각했다. 직접 찾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rdquo;고 했다.     <img alt="현직 경찰관 강도사건 현장검증 사진. 사진=수사기록"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602/1591089045350309.jpg"/>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변호인과 증인의 공방을 지켜보던 재판부는 한 씨에게 &ldquo;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느냐&rdquo;고 물었다. 재판부가 지적한 지점은 한 씨의 &#39;신고&#39;다. 이번 재심 법정에서 &ldquo;트렁크에서 탈출한 직후 곧바로 파출소로 갔고, 피해 사실을 구두로 설명하긴 했으나 당시 인적사항이나 진술서 등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rdquo;고 했다. 그리고 이후 소속 경찰서는 물론 다른 곳에서도 신고를 하거나 피해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ldquo;현직 경찰관이 강도를 당했다고 하면 수사본부가 차려지는 등 일이 커지고 무엇보다 &lsquo;X팔렸다&rsquo;(창피했다)&rdquo;고 말했다.그런데 한 씨가 강도 피해를 당했다는 시점을 기준으로 한 달 뒤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수법임에도 한 씨는 초동 수사를 했던 부산 북부경찰서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다시 강도사건을 기준으로 2년 뒤 2인조가 구속되고 나서야 한 씨의 피해사실이 드러났는데, 한 씨가 먼저 사하경찰서에 알린 게 아니라 사하경찰서 쪽에서 한 씨를 찾아 2인조와 대질했다.재판부는 &ldquo;사건 발생 이후 파출소에 구두로 신고한 이후 창피해서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하경찰서는 어떻게 알고 재심청구인들을 데리고 증인을 찾아 갔을까요?&rdquo;라고 물었다. 그동안 목소리를 높여왔던 한 씨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조용히 입을 뗀 그는 &ldquo;수사기관이 어떻게 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rdquo;고 말했다. 북부경찰서와 사하경찰서 수사기록을 모두 확인한 결과, 한 씨 사건과 관련한 보고나 첩보는 없었다. 다만 사건에 관계된 경찰관계자 인사기록카드에서 과거 2인조를 검거하고 사건 수사를 주도적으로 했던 사하경찰서 경찰관과 한 씨가 앞서 중부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 씨는 2인조 검거 전부터 앞서의 사하경찰서 경찰관을 알고 있었다고 했으나 자신의 강도사건을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한편, 이날 재심 법정에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인 여성이 근무하던 공장의 사장 아내, 운전기사 등을 증인으로 불렀다. 이들은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났고 사건과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아 구체적인 기억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3차 공판은 6월 25일 오후 3시에 열린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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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23] 재심 첫 공판 '무죄'만큼 중요한 건?]]></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6681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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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0 Apr 2020 21:49: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에 따른 허위 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 2인조의 재심 첫 재판이 열렸다. 사건 발생 30년 만이다.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은 &ldquo;감춰져 있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rdquo;고 한 목소리를 냈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이 열렸다. 사건 발생 30년 만이다. 법정 앞에 선 장동익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410/1586497517253951.jpg"/> 부산고법 형사1부(이흥구 부장판사)는 4월 9일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 변론기일을 열었다. 법원 인사이동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열린 첫 번째 재심 기일이다.   법원은 재심을 열기 전까지 상당히 엄격한 심리를 거친다.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듣고 재심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한다. 본격적인 재심은 이 절차가 끝난 뒤에 열린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는 7개월 동안 총 6차례 진행됐고, 지난 1월 6일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문관)는 &ldquo;재심 사유가 충분하다&rdquo;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재심 재판에선 당시 사건의 발단부터 이후 과정, 결과 전반이 다뤄진다. 낙동강 2인조가 어떻게 용의선상에 올라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수사를 받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는지는 물론, 진범은 누구인지도 이번 재심에서 가려지게 된다. 앞선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에선 과거 수사 경찰의 고문과 폭행 등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가 중심으로 다뤄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재심 재판에서 총 15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이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들과 검사부터 낙동강 2인조가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리하거나 불리한 진술을 했던 사건 관계자들, 법의학, 안과 전문의 등이 포함됐다. 다만 진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이미 사망해 대신 그의 사건 전후 행적을 설명해 줄 주변 인물이 증인으로 신청됐다.이에 대해 재판부와 검찰은 한 목소리를 냈다. 재판부는 &ldquo;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이 법정에 출석할 수 있고, 사건과 관계가 있다면 모두 법정에 불러 심문하겠다&rdquo;고 밝혔다. 그러면서 &ldquo;재판부도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사건의 실체를 전반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재심 청구인 측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rdquo;고 말했다. 검찰도 &ldquo;많은 분들에 대한 증인 신청을 했는데, 검찰 역시 재심 청구인 측과 같은 의견&rdquo;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심문할 증인이 많은 만큼 당분간 특별기일을 열고 집중 심리를 하기로 했다. 증인들이 대거 출석할 재심 두 번째 재판은 오는 5월 25일 열린다.#&#39;사과, 용서, 위로&#39;...무죄 판단만큼 중요한 것&ldquo;재심 청구인들의 최종 목표는 무죄를 받는 것입니다. 다만 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한 채 무려 3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재심 청구인들은 자신이 왜,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재심 법정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rdquo; 박준영 변호사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말할 때면 늘 이렇게 강조한다. 그는 재심이 단순히 유무죄를 다시 가리는 데 그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지연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식의 거창한 의미도 담지 않는다. 사건 속 감춰져 있던 진실을 법정에서 확인하는 일은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재심 청구인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지금의 사법부와 변호인이 해줄 수 있는 &lsquo;유일한 위로&rsquo;라는 게 박 변호사의 생각이다.재심 청구인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제대로 알기를 원하고 있다. 특히 장 씨는 시각 장애를 갖고 있어 과거 수사, 재판 과정에서 기록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러주는 대로 듣기만 하다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심 법정이 아니면 장 씨는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과거 수사 경찰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사과를 한다면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과도, 용서도 역시 재심 법정에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박준영 변호사는 &ldquo;과거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고 재심 청구인들이 무죄 판단을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dquo;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ldquo;법정에서 사과와 용서, 위로는 물론 현재의 형사사법제도와 관련한 고민도 해볼 수 있을 것&rdquo;이라며 &ldquo;이번 재심은 당사자들은 물론 국내 형사사법절차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재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dquo;고 말했다.앞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문에서 소회를 밝히며 &ldquo;만약 사건 원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재심 사유가 인정될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rdquo;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재심을 위해선 청구인들이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기록이 폐기되면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해지는 점을 지적하며 &lsquo;증거보존&rsquo;과 &lsquo;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rsquo;에 대한 입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를 하던 남녀가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가 1년 10개월 뒤 장 씨, 최 씨가 다른 사건에 휘말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범인으로 지목됐다.이들은 해당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 지속적으로 &ldquo;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과 폭행 등을 견딜 수 없어 허위로 살인에 대한 자백을 했다&rdquo;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lsquo;허위자백&rsquo;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대법원은 1993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두 사람은 복역한 지 21년 만인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고, 2년 뒤인 2019년 4월,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한 뒤 당시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 검찰 항고 포기...재심 개시 확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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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13 Jan 2020 18:52: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검찰이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 재심 개시 결정에 항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최근 법원이 내린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된 만큼 28년 전 사건이 다시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됐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13일 검찰은 &lsquo;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항고하지 않았다. 이날은 검찰이 항고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이 있으면 결정을 고지 받은 지 7일 내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즉시항고를 하지 않으면 재심 개시 결정은 그대로 확정된다.  <img alt="검찰이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재심 개시 결정에 항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직후 기자들 앞에 선 낙동강변 2인조 장동익, 최인철 씨.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13/1578908677670645.jpg"/>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김문관 부장판사)는 지난 1월 6일 &ldquo;(낙동강변 2인조가) 고문과 가혹행위 등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따라 허위자백을 했고, 수사기관이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 돼 형사소송법 제420조 1&middot;7호 등 재심사유가 인정 된다&rdquo;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낙동강변 2인조와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결정이 사건 발생 30년 만에 이뤄진 만큼 &#39;늦어진 응답&#39;에 대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 역시 법원의 결정이 내려진 직후 2인조에게 &ldquo;대신 사과드린다&rdquo;고 전했다. 재심 개시가 확정됨에 따라 법원은 조만간 공판 준비기일을 열어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방침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ldquo;검찰에서 항고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rdquo;며 &ldquo;재심 본안 재판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rdquo;이라고 말했다.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1990년 1월 낙동강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993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1년 5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모범수로 감형 받아 2013년 출소한 이들은 2016년 5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1년 뒤인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2019년 4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발표했고 부산고법 형사1부는 이 발표를 근거로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절차에 착수했다. 재판부는 6차례에 걸쳐 심문을 벌였고, 재심 개시를 결정 했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22] 핵심은 가혹행위…재심 개시, 이렇게 결정됐다 ]]></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58483</link>
            <guid>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58483</guid>
            <pubDate><![CDATA[Thu, 09 Jan 2020 18:40: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leady@ilyo.co.kr | 신민섭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squo;강도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 특수강도, 특수감금, 공무원자격사칭,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rsquo; 낙동강변 2인조가 28년 전 받은 혐의다. 모두 재심 대상이다. 이를 위해 박준영 변호사가 주장한 재심 사유 조항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1, 2, 5, 7호 등이다. 구체적으로 재심 대상 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가 위조 또는 변조된 점(제1호), 증거가 된 증언 일부가 위증인 점(제2호), 새로 발견된 증거로 재심청구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점(제5호), 재심청구인들이 경찰관으로부터 고문 및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 사법경찰관의 직무상 범죄가 있었던 점(제7호)이다. 이 가운데 이번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조항을 보면 &lsquo;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 경찰관이 고문,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일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됐을 때&rsquo; 재심을 열 수 있다. 낙동강변 사건처럼 과거 수사 관계자들의 직무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엔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형사소송법 422조)이 있는데, 이번 심리에선 그 &lsquo;길&rsquo;의 근거는 공적기관인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부산고법 형사1부는 6차례 심문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심을 열 이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밝힌 근거는 크게 3가지로 △직권남용, 불법체포, 불법감금 △물고문 등 가혹행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이다. 쉽게 말해 과거 수사 경찰이 불법으로 낙동강변 2인조를 체포하고 감금했으며, 물고문 등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데다 수사기록을 조작했다는 점이 인정됐으니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직권남용, 불법체포, 불법감금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수사 경찰들이 1991년 11월 8일 낙동강변 2인조를 처음 연행할 당시 2인조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행해졌다는 사실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고, 오히려 강제연행된 점이 수사기록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과거 수사경찰은 처음 낙동강변 2인조를 &lsquo;임의동행&rsquo; 형식으로 경찰서로 연행해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살인범행 자백을 받았다고 했지만, 기록에는 처음부터 &lsquo;검거했다&rsquo;는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수사 경찰은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lsquo;미란다원칙 고지가 없었고 그게 관행이었다&rsquo;고 증언했다. 2인조는 경찰에 연행된 이후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사실상 계속 감금돼 있었으며 긴급구속으로 보일 여지도 없다는 점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ldquo;당시 수사 경찰들은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관행이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도 앞서의 행위는 구금이고 감금이었다. 수사목적 달성을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rdquo;고 지적했다.이번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 절차의 핵심이었던 물고문 등 가혹행위는 다시 8가지로 사유를 종합해 판단했다. 핵심 내용만 요약하면, 장동익, 최인철 씨의 고문정황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이 첫 번째다. 이들은 검찰로 송치되고 경찰 수사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줄곧 살인사건 혐의를 부인해왔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후에도 각종 탄원서, 당시 수사 경찰을 상대로 한 고소 등을 통해 무려 28년 동안 일관되게 가혹행위 재심사유를 주장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심청구인들이 진술하는 고문 방법 및 도구, 수사관들의 발언 등만으로도 실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생생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동익, 최인철 씨의 진술의 신빙성은 수사기록으로도 확인했다. 장동익, 최인철 씨는 현장검증이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직접 현장검증조서 사진을 검토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장검증조서 53, 54, 55, 56번 사진 등에서는 피해자 대역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고, 장소도 완전히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장동익, 최인철 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img alt=""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09/1578537079011641.jpg"/>   <img alt="재판부가 재심 사유로 밝힌 현장검증 54번, 56번 사진. 재판부는 피해자 대역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어있고, 장소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진=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수사기록 발췌"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09/1578536982118379.jpg"/> 재판부는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에 구속되기 50일 전 발생한 다른 고문 사건도 가혹행위가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당시 강도상해 사건으로 구속됐던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그 역시 2인조를 구속한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물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도 물고문 방법과 도구, 수사 경찰관의 발언 등에 대해 진술했다. 재판부는 &ldquo;매우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재심청구인들의 진술에 버금갈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A 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출석하고 이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까지 재심청구인, 또는 변호인과 만나거나 진술 내용을 본 적 없는데도 세부적인 사항이 일치한다. 이는 가볍게 볼 수 없다&rdquo;고 설명했다.가혹행위를 한 경찰들은 &ldquo;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rdquo;며 구체적인 진술을 피했다. 대부분 당시 수사과정의 적법성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일부 경찰관은 법정에서 자신이 한 구체적인 일은 기억했지만 고문과 가혹행위만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수사관들이 진술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서로 입을 맞췄다며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일선 경찰서에서 중대사건 용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악습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다른 관점으로도 고문과 가혹행위를 검증했다. 고문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 있는지 검증한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행위들을 장동익 최인철 씨가 거짓으로 꾸며내고 검찰에 송치된 이후 28년 동안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주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거나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에 참여한 A 씨와 동료수감자 등에게 허위증언을 종용하고 같은 내용을 진술하게끔 알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당시 수사 경찰관들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해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진술을 할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이를 상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허위 공문서 작성은 당시 수사 검사를 통해 이뤄졌다.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한 검사는 1991년 11월 18일 최인철 씨를 조사하면서 진술거부권을 미리 고지하지 않았음에도 조서에는 마치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것처럼 썼다. 허위공문서작성죄로,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것에 해당한다. 특히 당시 이 과정이 이례적으로 영상녹화로 이뤄졌고 녹취록이 작성됐다. 재판부는 피의자 신문조서 속 실제 신문 내용과 녹취를 비교해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고,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ldquo;이 내용은 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가 허위공문서임이 증명된 때에도 해당한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1호의 재심 사유에도 해당한다&rdquo;고 밝혔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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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21] “주문, 재심을 개시한다” 재판부 고민의 흔적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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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09 Jan 2020 16:07: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의 재심이 마침내 열리게 됐다. 2020년 1월 6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재판장 김문관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1990년 1월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 뒤집힐 수 있는 &lsquo;기적 같은 일&rsquo;이 일어난 것이다. 재심은 경찰과 검찰 수사, 세 번의 재판 끝에 나온 판결을 전부 뒤집는 일이다. 진실&middot;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정부기관이 재심을 &lsquo;권고&rsquo;한 과거사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에서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는 일은 드물다. 한국 사법 역사를 통틀어도 아직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낙동강변 2인조가 그 좁은 문을 열었다.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1990년 1월 낙동강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993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1년 5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모범수로 감형 받아 2013년 출소한 이들은 2016년 5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 1년 뒤인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2019년 4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발표했고 부산고법 형사1부는 이 발표를 근거로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 절차에 착수했다.  <img alt="부산고등법원 형사1부는 1월 6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09/1578536099457889.jpg"/> #과거사위 결론의 역설재심 개시를 결정한 당일, 재판부는 법정에서 이례적으로 입장과 소회를 밝혔다. 약 1시간을 할애해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느낀 부담감과 고민의 깊이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ldquo;장동익, 최인철 씨와 그들의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고려하면서 재판에 임했다&rdquo;고 하면서도 &ldquo;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 한계가 없지 않았다&rdquo;고 했다. &lsquo;과거사위 결론&rsquo;이 고민의 근본 원인이었다. 과거사위 발표는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리를 열게 한 이유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재판부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됐다. 과거사위는 2019년 4월 17일, 낙동강변 살인사건에 대해 &lsquo;고문에 따른 허위자백&rsquo; 등을 모두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lsquo;반성적 의미&rsquo;의 권고사항까지 발표했다. 과거사위가 공권력의 주체인 법무부의 산하 조직이며, 발표 내용의 근거는 현직 검사가 포함된 진상조사단의 조사였던 만큼 그 의미는 적지 않았다. 재판이 과거사위 발표 내용대로 진행되면 재심 개시 여부 결정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과거사위 결론에 비중을 두기 어려운 이유는 더 많았다. 재판부는 검토 결과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진실&middot;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했던 것처럼 &lsquo;특별재심사유&rsquo;가 별도로 규정된 특별법 적용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 발표 자체에 적어도 재심을 열 수 있는 조건인 &lsquo;확정판결에 준할 정도의 높은 증명력&rsquo;을 부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 역시 없었다고도 했다. 또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심리에 참여한 공판 검사는 증거조사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도, 다른 재심 사건(이춘재 8차 사건)에서 검찰이 보인 입장(이춘재 8차 사건을 직접 수사한 수원지검은 재심을 해야 한다고 밝힘)과는 달리 &ldquo;과거사위 발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rdquo;는 입장을 보였다. 재판부는 &ldquo;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에서도 가혹행위 주장이 나왔지만 모두 배척됐던 만큼 현재의 재판부가 얼마만큼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회의가 없지 않았다&rdquo;고도 말했다.  <img alt="박준영 변호사(왼쪽)는 재심 결정이 내려진 이후 기자들과 만나 &quot;재판부가 재심 개시 결정과 함께 재심 청구인에 대한 사과, 이번 사건의 의미, 수사기록의 보존방식의 문제점 등을 언급하고 그 개선책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quot;고 말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09/1578536408880782.jpg"/>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요즘 현재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재심 관련 논쟁이 뜨겁다. 형사소송법이 재심 대상을 엄격하게 규정할 뿐 아니라 대법원의 법리 해석 또한 까다롭기 때문이다. 재심을 확대하면 사실상 제4심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lsquo;법적 안정성 우선&rsquo; 주장과, &lsqu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rsquo;라는 형사재판의 원칙을 재심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lsquo;인권 우선&rsquo;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결국 재판부는 과거사위 결론을 중심으로 심리하는 대신 법정에서 직접 재심 사유를 가리기로 하고 심리를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과거사위 결론에 기대지 않고 직접 판단을 내리는, 결코 작지 않은 부담을 스스로 짊어졌던 셈이다. 객관적 정황이 충분히 뒷받침되면 재심을 개시하고, 주관적으로 상당한 의심이 있지만 증명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경우엔 입법적 조치를 촉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두 가지 상반된 주장 가운데 &#39;인권 우선&#39;에 가까운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재판부는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를 지난 2019년 5월부터 총 6차례 열었다. 통상 재심 개시를 위한 심리는 서면으로 이뤄지지만 이번 재판부는 검찰과 재심청구인, 변호인을 법정에 불러 직접 심문했고 과거 수사 경찰관들과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현직 검사 등을 증인석에 세웠다. 앞서 진행된 다른 재심 사건들의 재판과 견줘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판부는 심문을 마친 결과, 재심 사유가 명백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2인조가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번 심리 과정에서 다뤄진 고문과 가혹행위 외에 다른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내용이 상당하다고 했다. 조직적인 공권력의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상당한 의심이 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이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재심청구인들이 직접 입증해야 하고, 기록이 폐기되면 입증할 방법은 더욱 어려워지는 만큼 관련 내용에 입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img alt="장동익, 최인철 씨는 재심 개시 결정 고지일이 정해진 지난해 12월 23일부터 1월 6일까지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109/1578536575005374.jpg"/> # 늦어진 응답, 그리고 사과아무도 2인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의 고문과 폭행을 견딜 수 없어 허위자백을 했다고 몇 번이나 소리치고 읍소했지만 그저 반성 없이 뒤늦게 말을 바꾼 &lsquo;질 나쁜&rsquo; 살인범으로 볼 뿐이었다. 검사도, 판사도 &ldquo;경찰이 그럴 리 없다&rdquo;고 했다. 28년이 지나 두 남자가 다시 법정에 서서 말했다. 21년 5개월의 옥살이를 했던 그들은 &ldquo;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rdquo;고 외쳤다. 이번엔 답이 돌아왔다. 재판부는 재심청구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ldquo;사법부의 일원인 우리 재판부는 이제야 재심 개시 결정으로 응답하게 됐습니다. 재심청구인들과 모든 가족들에게 늦어진 응답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 재판부는 각기 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 사건의 여러 의미를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주문을 낭독합니다. 재심 대상 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rdquo;  재판부는 주문을 낭독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묵례를 했다. 김문관 부장판사는 묵례에 대해 &ldquo;재심청구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드리는 사과의 예로 받아주길 바란다&rdquo;고 말했다.검찰의 항고가 없으면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된다. 항고를 하면 대법원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 재심 본안 재판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검찰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판검사는 재판부가 법정을 떠난 뒤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있던 장동익, 최인철 씨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ldquo;대신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rdquo;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오는 1월 초 결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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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Mon, 23 Dec 2019 16:52: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경찰의 고문과 조작으로 살인죄 누명을 쓰고 21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의 재심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2인조가 2017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는 12월 23일 &ldquo;오는 2020년 1월 6일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rdquo;고 밝혔다. 부산고법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날 오후 3시 301호 대법정에서 재심청구인 측과 검찰을 모두 불러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법원이 별도의 기일을 열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img alt="법원이 오는 1월 6일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223/1577087019734556.jpg"/>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지만 1년 뒤인 1991년, 경찰은 돌연 장동익, 최인철 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고문과 폭행 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구속한 뒤 검찰로 송치했다. 이들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했다. 이후 무죄를 주장하며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19년 4월 17일엔 &lsquo;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을 재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ldquo;2인조는 1991년 사하경찰서 경찰관 4명에게 물고문과 폭행을 당해 살인 혐의를 허위 자백했다&rdquo;고 결론 내렸다.부산고법 형사1부는 과거사 위원회 결론이 내려진 직후 심문기일을 지정해 재심청구인과 검찰 측 의견을 직접 듣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문기일은 법원이 재심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보통 서면으로 심리하지만 필요한 경우 재판부가 별도의 심문기일을 지정할 수 있다. 재판부는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총 7차례 심문기일을 열었다. 일반 형사 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 절차에서 심문기일이 일곱 차례 열린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재심사유)에 규정한 &lsquo;공소에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경찰이 범한 직무상 위법 행위 등&rsquo;을 집중적으로 심리해왔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 심의 결과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도, 재심사유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들을 개별적으로 확인했다. 이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소속 현직 검사와 &lsquo;고문 경찰관&rsquo;으로 지목된 과거 수사 경찰 4명도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교직원 음주 강요하고 노래방 도우미 부른 경기 화성 초교 교장 해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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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ue, 03 Dec 2019 09:21: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교직원에게 음주를 강요하고 노래방 도우미를 부른 경기도 화성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해임 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동조했던 이 학교 행정실장이 솜방망이 처분을 받았다고 나타났다.  <img alt="사진=박정훈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203/1575306547877484.jpg"/> 교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도화성오산교육지원청은 11월 초 징계위원회를 열고 화성의 한 초등학교 교장에게 해임 처분을 내렸다. 이 교장은 회식 때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관사에서 술판을 벌이며 교직원을 계속 불러내 물의를 빚었다. (관련 기사: 애주가 교장선생님, 교직원에 음주가무 강요+노래방 도우미까지)문제는 이를 동조한 행정실장에게 감봉 1개월 솜방망이 처분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행정실장은 노래방 도우미를 실제 부르거나 노래방 도우미 비용을 결제했던 인물이었다. &#39;일요신문&#39;과의 인터뷰에서 &quot;업무 외 시간에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quot;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화성오산교육지원청 관계자는 &quot;개인정보 관련된 문제라 따로 말할 게 없다&quot;고 했다.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20] 스물여덟 번째 11월 ]]></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535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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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at, 16 Nov 2019 18:18:00]]></pubDate>
            <category><![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계절은 잔인하게 찾아왔다. 어김없이 찬바람이 불었다. 그날도 겨울의 문턱이었다. 정확히 28년 전 11월, 경찰은 낙동강변 2인조가 살인 혐의를 자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시계는 돌고 또 돌았다. 2019년 11월에도 차가운 공기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번의 겨울 문턱을 밟는 동안 달라진 게 한 가지 있다. 과거 &ldquo;우리가 하지 않았다&rdquo;는 2인조의 말을 외면했던 법원이 이번엔 다시 재판 받게 해달라는 요청에 귀를 기울였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을 법정에 불러 이야기를 들었고, 이제는 마지막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마지막 심문기일이 지난 11월 14일 부산고법에서 열렸다. 과거 사건이 발생한 낙동강변 앞에 선 재심청구인 장동익 씨(왼쪽)과 최인철 씨(오른쪽). 사진=탐사보도 전문 매체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1665166794.jpg"/> 모든 국민의 관심이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쏠려있던 지난 11월 14일 오후 3시,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판단을 위한 마지막 심문기일이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심문기일은 재심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보통 서면으로 이뤄지지만 필요한 경우 법원은 별도의 심문기일을 열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낙동강변 살인 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 갈대숲에서 두개골이 함몰된 여성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ldquo;덩치 큰 남자 한 명, 작은 남자 한 명&rdquo;이라는 목격자 진술 외에 별다른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대규모 수사본부까지 차렸지만 범인을 끝내 찾지 못했다.미제로 남는 듯했지만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뒤 부산 사하경찰서는 장동익, 최인철 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이들로부터 범행 자백을 받았고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들을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 씨와 최 씨는 21년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했다. 경찰 수사단계부터 출소 이후까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온 두 사람은 &ldquo;경찰의 고문 폭행으로 허위자백을 했다&rdquo;며 2017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lsquo;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을 재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4월 17일 장 씨와 최 씨가 1991년 사하경찰서 경찰관 4명으로부터 물고문과 폭행 등을 당해 허위자백 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7차례 심문기일, 증언대 선 과거 경찰들은 &#39;모른다&#39;고 했다이번이 7번째 심문기일이었다.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서 일곱 차례에 걸친 심문기일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검찰은 재심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진 사건을 뒤집는 일인 만큼 신중하고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재판부도 첫 심문기일에서 &ldquo;재심 청구인들이 이번 재판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재판을 통해서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는 법과 원칙에 맞는 재판을 하는데 중점을 맞추겠다&rdquo;며 &ldquo;다만 당시 경찰관의 직무상 고문, 가혹 행위 등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 이들을 불러 증언을 듣고 재심 여부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rdquo;는 입장을 밝혔다.재판부가 공언한 대로 과거 고문 폭행으로 허위자백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당시 경찰관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장 씨와 최 씨가 지목한 &lsquo;고문 경찰관&rsquo;은 총 5명. 당시 막내 경찰관부터 수사 책임자였던 형사 과장 등이다. 이들은 증인 출석을 거부하거나 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후 강제구인(피고인이나 증인을 신문하기 위한 법원의 강제 처분.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만 영장에 의해 집행)까지 언급되자 4명이 법정에 섰다. 이들은 과거 경력부터 그동안 자신들이 해결한 굵직한 사건들을 또렷이 기억했다. 유독 낙동강 살인사건은 &ldquo;기억나지 않는다&rdquo;거나 &ldquo;고문 폭행은 없었다&rdquo;라고 증언했다. 나머지 한 명은 건강 악화로 증인 출석이 불가능했다. 재판부가 출장 재판도 검토했으나 증언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려 최종 무산됐다.   <img alt="심문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과거 수사 경찰관 4명은 모두 낙동강변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고문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부산 사하경찰서 앞에 선 장동익 씨(왼쪽)와 최인철 씨(오른쪽). 사진=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1902242339.jpg"/> 낙동강변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현직 검사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재심 청구 검찰 과거사위원회 재조사 대상 사건에 올랐고, 조사 결과에 따라 최종 결론까지 내려졌던 만큼 위원회의 판단 내용이 재심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어서다. 과거사위원회는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 인권 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었던 사건들을 조사하고, 반성과 재발방지 등을 약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다만 법령이 아닌 훈령으로 시작된 만큼 한계가 지적됐다. 강제조사권이 없어서 자료 제출이나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거나,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의 내부 의견 대립 등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 심문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진상조사단 소속 현직 검사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사 과정과 내용을 증언했다. 어떤 방법으로 검증했고, 결론을 내릴 때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법정에서 나온 그의 증언을 모두 종합해 보면,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 검찰과 변호인단 &#39;신중한 판단&#39;의 간극이날 심문기일에서 검찰은 최종의견에서 재판부가 신중하게 판단을 내려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검찰은 &ldquo;재심은 예외적인 비상 구제 절차&rdquo;라며 &ldquo;이를 손쉽게 인정하면 형사재판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재심을 제4심으로서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판단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rdquo;고 밝혔다.이어 &ldquo;재심 청구인과 변호인은 당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 경찰관이 고문,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취지로 재심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형사소송법(420조 7호)에선 &lsquo;직무상 범죄를 범했다는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됐을 때&rsquo;로 제한하고 있다&rdquo;며 &ldquo;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을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형사소송법 422조), 그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한다&rdquo;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해 별도의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ldquo;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심의 결과는 존중한다&rdquo;며 &ldquo;다만 그 전에 검찰 과거사 조사 결과가 법률상 높은 증명력을 가진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rdquo;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에 &ldquo;청구인 측에서 제출한 여러 증거, 제반 사정, 법정에서 나온 증언, 증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rdquo;고 전했다.  <img alt="박준영 변호사는 최종변론에서 결과도 정의로워야 하지만 과정도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2325627906.jpg"/> 박준영 변호사는 최종 변론에서 어떻게 증거를 수집하고 검증했는지,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 등을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ldquo;SBS &#39;그것이 알고싶다&#39;, JTBC &#39;스포트라이트&#39;와 일요신문 등 신문사와 방송사가 직접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했다. 사건에 관계된 관계자들을 모두 만났으며 전문가 검증을 받았다&rdquo;며 &ldquo;엄격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이들이 수집한 증거와 감정에 더해 직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 원장과 의사 협회, 학계 등을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감정서를 받고 추가로 실험과 검증을 했다&rdquo;고 말했다. 이어 &ldquo;과거사위원회 조사 대상 사건으로 올라가기 전 이미 상당히 많은 증거가 수집돼 있었다&rdquo;며 &ldquo;과거사위원회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이 사건은 수사기관에 소속된 현직 검사가 주도적으로 조사했다. 또 위원회와 조사단 관계자들이 공적인 위치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심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rdquo;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ldquo;(낙동강변 살인사건은) 30년 전 사건이다&rdquo;라며 &ldquo;정말 억울하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정상이다. 이 사건이 그랬다. 재심청구인 최인철은 수감 시절 밖에 서신을 보내고 때로는 경찰을 고소해가면서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계속 주장했다. 감옥에서 계속 편지 쓰고 일기 쓰면서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른 재심청구인 장동익은 어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여러 국가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 국가기관이 받았던 진정서를 법정에 모두 제출했다&rdquo;고 강조했다.그는 &ldquo;시각장애가 있는 장동익은 조서에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서에 서명 날인했고, 최인철은 고문 때문에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했다. 서명 날인했다는 이유로 본인들이 자백한 것으로 규정됐고 그걸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법정에서 해명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다&rdquo;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ldquo;결과도 정의로워야 하지만 그 과정도 정의로워야 한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 달라&rdquo;고 덧붙였다.  <img alt="최인철 씨는 최후 진술에서 &quot;손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quot;고 호소했다. 사진=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2402321828.jpg"/> 또 다른 변호인인 신윤경 변호사는 최종변론에서 &ldquo;먼저 이 자리가 있도록 해준 재판부에 감사한다&rdquo;며 &ldquo;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변화된 사법부의 모습을 보여준 것에 대해 재심청구인들도 재판부에 감사하고 있을 것&rdquo;이라고 운을 뗐다.그는 이어 신속한 결정을 요청했다. 신 변호사는 &ldquo;현재 다른 재심 청구 사건을 맡고 있다. 그 사건의 재심청구인은 40년 동안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가족들에 해가 되고, 잘못되는 일이 생길까봐 주변 종교인의 오랜 시간 설득에도 움직이지 않았다&rdquo;며 &ldquo;그런데 재심 청구를 결정하고 나서 청구서는 접수했는지, 언제 어떻게 진행할지 하루가 멀다하고 물어온다&rdquo;고 말했다. 그는 &ldquo;이미 40년이 지났는데, 한두 달 못 기다리냐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희망이 없을 때는 몰라도 구제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순간 그 전과는 비교도 못하는 간절함과 초조함이 오게 된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rdquo;이라며 &ldquo;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달라&rdquo;고 말했다.   #&quot;손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할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quot;재심청구인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는 최후 진술에서 재판부에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 씨는 며칠 동안 고쳐가며 쓴 글을 차분히 읽으며 &ldquo;경찰들은 폭력과 고문을 행하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었다. 폭력에 의해 답했던 &lsquo;네&rsquo;라는 한 마디가 지금까지도 후회로 남아있다&quot;고 말했다. 그는 &ldquo;경찰은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던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악마였고, 재판 과정에서 외쳤던 저의 억울함과 주장들은 모두 배제됐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그저 책 속의 말이라는 심정으로 21년간 옥살이를 했다&rdquo;며 &ldquo;이제는 손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할아버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rdquo;고 눈물을 흘렸다.  <img alt="장동익 씨는 최후 진술에서 &quot;저희를 마지막으로 더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quot;고 했다. 사진=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2518543504.jpg"/> 장동익 씨는 &ldquo;눈이 잘 보이지 않아 뉴스를 자주 듣는다. 1990년 당시에는 경찰의 가혹행위도 있었지만 지금은 투명한 세상이 됐다. 투명한 세상에서는 진실이 밝혀지리라 생각한다&rdquo;며 &ldquo;거짓은 결코 진실을 덮을 수 없다&rdquo;고 말했다. 그는 &ldquo;저희를 마지막으로 더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rdquo;고 덧붙였다.재심 개시 여부 결정은 보통 별도의 기일은 열지 않고 법원이 결정만 고지한다. 재판부는 &ldquo;재판 성격상 신중한 검토가 불가피하지만 가급적 빠른 결정을 위해 노력하겠다&rdquo;며 &ldquo;관심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올해 안에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rdquo;고 밝혔다.최 씨와 장 씨의 변호인은 재판부에 &ldquo;다른 재심 사건인 삼례3인조 사건 등 결정 고지일을 미리 알려주거나 기일을 열어 개시 여부를 밝힌 전례가 있다&rdquo;며 &ldquo;어떤 판단을 내리든 날짜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달라&rdquo;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ldquo;선례가 있다는 점을 참고해 고려해보겠다&rdquo;고 답변했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전문] 김예원 변호사의 최종변론낙동강변 살인사건 변호인단 가운데 한 명인 김예원 변호사는 시각장애 당사자다. 장애 인권과 관련된 변호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장동익 씨를 대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장 씨를 중심으로 최종 변론을 했다. 다음은 그가 법정에서 한 최종변론 전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시각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권 일을 하면서 피고인 장동익을 알게 되어 이 재심청구 사건을 대리하고 있습니다.피고인 장동익이 일상생활 속에서 눈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운지에 대해서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이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사회가 장동익과 같은 시각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해 왔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저는 태어날 때 의료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나머지 한쪽 눈이 보여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아직도 제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피고인 장동익은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중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신경위축이라는 질병은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장동익과 같이 어릴 때부터 시력을 잃은 사람의 원만한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들과의 좋은 상호 작용입니다. 그 장애인의 특성, 기분, 동선을 아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시각장애로 겪게 되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피고인 장동익은 이 사건에 휘말리기 전만 해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에게는 헌신적인 어머님의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아내가 있었고 태어난 지 18개월이 된 딸이 있었습니다. 길을 갈 때 전봇대에 부딪히려고 하면 옆에서 손을 끌어 부딪히지 않게 잡아주는 사람, 밥상을 마주하면 젓가락을 잡아 툭툭 치며 여기는 김치 여기는 장아찌가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이 사건으로 피고인 장동익이 잃은 것은 단순한 평판이나 시간이 아닙니다. 장애인으로서의 불편한 삶을 지탱하고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준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img alt="1990년 재심청구인 장동익 씨의 모습. 1년 뒤 그는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구속된다. 사진=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116/1573892664209356.jpg"/> 장동익의 어머니는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장동익은 부산에서 진주교도소까지 5년을 왕복 7시간 매주 찾아오는 아내에게 언제 나갈지 기약이 없으니 재가 하라고 하며 편지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습니다. 딸은 할머니의 손에 컸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따뜻하게 손을 맞잡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출소한 아빠가 낯설었습니다.그리고 출소 후 10평 남짓한 집에 홀로 살고 있는 피고인 장동익은 이 모든 생활의 불편함을 혼자 감당하게 되었습니다.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1991년 11월 8일 밤 통닭이 되어 물고문을 당해야 했던 장동익은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압니다.그리고 더불어 이 법정에 나와서 증언을 했던 형사들도 자신이 한 짓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무렵에 본인이 진행했던 구체적인 사건들, 이송경위, 사건의 내용,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 막힘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없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ldquo;시신경위축으로 우안 0.04, 좌안 0.02. 검사 자체가 불가능, 교정 불능으로 렌즈도 도움 안 됨. 밝은 곳에서도 극히 가까운 물체만 구별. 3~4m만 떨어져도 물체를 구분하지 못함.&rdquo;이 내용은 피고인 장동익이 항소심 재판을 받을 때 재판부의 제출되었던 의사의 감정서입니다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 있습니다. 피고인 장동익이 밝은 곳 아래 가까이에 있는 물체를 제외하고는 시력이 없다는 것, 어두운 곳에서는 스스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피고인들이 이 사건 범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피고인이 장동익은 어머니께서 유물처럼 남겨주신 저 기록 속에 담겨 있는 진실과 억울함을 가지고 이 사건 재심청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지역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었던 피고인에게 부디 속히 재심을 개시하는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강도살인의 전과자가 아닌 떳떳한 시민으로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상현 기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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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은혜 장관, 국감서 안용규 한체대 총장 임명 관련 자료 제출 거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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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24 Oct 2019 10:59:00]]></pubDate>
            <category><![CDATA[정치]]></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종합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손아래 동서의 한체대 총장 인사 개입 의혹 관련 국회의 자료 공개 요구를 거부했다.   <img alt="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및 소관 공공·유관기관 종합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024/1571869382473131.jpg"/> 10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및 소관 공공&bull;유관기관 종합감사에서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 동서인 김한수 배재대 부총장의 한체대 총장 인사 개입 의혹을 다시 한 번 제기했다. 김한표 의원은 &quot;안용규 한체대 총장은 1990년 &#39;구기 종목 선수의 체격 및 체력에 관한 분석적 연구&#39;라는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1979년 정선태 씨의 동아대 석사 학위 논문에 담긴 실험 결과와 똑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른바 베꼈다. 안 총장은 정 씨 논문의 데이터 가운데 일부를 쪼개 자신의 논문에 담았다. 표절에 그치지 않고 1978년 데이터를 1988년에 시행했다고 조작했다. 문재인 정권의 7대 인사 검증 원칙에 논문 표절이 들어있는데 안 총장이 총장으로 임명됐다&quot;며 운을 띄웠다. 이에 유은혜 장관은 &quot;인사 검증 절차를 밟았다. 논문 표절은 2012년 이후에 문제 된다&quot;고 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교육부 연구규정 지침이 강화되고 표절의 정의가 분명해진 건 2007년이다.김한표 의원은 이 부분을 파고 들며 2007년 이후 있었던 안용규 총장의 표절 의혹도 제기했다. 김 의원은 &quot;2007년 2월 이후부터 유효하다. 안 총장은 2012년 한국체육철학회 학회지에 &#39;태권도 도복의 철학적 고찰&#39;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1998년 권관배 씨의 용인대 석사 학위 논문 &#39;태권도 수련복의 변천 과정에 관한 고찰&#39;이란 논문과 똑같다&quot;고 강조했다.총장 임명 과정에서 있었던 한체대의 문제도 제기됐다. 김한표 의원은 &quot;안용규 총장 관련 표절 및 연구비 부당 수령 문제 등 제보 총 6건이 한체대로 접수됐다. 한체대는 2018년 11월 연구윤리위원회를 열었다. 연구윤리위원회에 참여한 연구윤리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안 총장과 공동저자였던 이해관계자였다. 제보된 6건 가운데 1993년 논문 표절 딱 1건만 가지고 회의가 진행됐다. 나머지는 모두 깔아뭉개졌다. 같은 해 11월 30일 연구윤리위원회는 &#39;문제 없음&#39;이란 결론을 내렸다. 올 1월 3일 제보자에게 이의 신청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4일만인 1월 7일 총장 추천을 추진했다&quot;고 했다.김한표 의원은 이와 관련된 자료를 제출 않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김 의원은 &quot;연구윤리위원회 회의록을 요청했는데 교육부는 제출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는 거다. 떳떳하고 자신 있으면 제출 못할 이유가 없다.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달라. 한체대 연구윤리위원회 회의록과 교육부 인사위원회 회의록을 같이 제출해야 의혹이 해소된다&quot;며 &quot;안용규 총장은 2012년 제6대 총장 선거 때 인사 검증에서 통과 못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9;문고리 3인방 같은 연줄이 없어서 총장이 못 됐다&#39;고 했다. 그런데 올 1월 대통령 손아래 동서를 만나고 바로 총장이 됐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국민이 가진 의혹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의혹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quot;고 말했다. 유은혜 장관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유 장관은 &quot;만약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인사검증과정에서 밝혀졌을 거다. 지적된 문제가 연구윤리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정 났고 인사검증과정에서 반영돼 교육부는 안용규 총장이 총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하지 않다는 판단했다&quot;며 &quot;국립대 총장 임용 제청 관련 인사위원회는 후보자의 여러 가지 신상 등이 종합적으로 심의돼 회의록에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다. 회의록이 공개될 경우 인사위원회에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어렵게 돼 제출하기 어렵다&quot;고 했다. 한편 종합감사 질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은혜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 동서를 알고 있었다고 드러나 한체대 총장 인사 개입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김한표 의원은 질의 초반 &quot;김한수 배재대 부총장과 통화를 하거나 만난 적 있는가, 누군지 아는가&quot;라고 질문했고 유 장관은 &quot;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quot;라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quot;대통령 처남인 것으로 안다&quot;고 말했다.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quot;맞다 틀리다만 말하라&quot;고 지적 당한 안용규 총장이찬열 교육위원회 위원장의 따끔한 지적도 눈길을 끌었다. 안용규 총장은 자신과 관련된 추가 의혹이 거듭 제기되자 종합감사 말미에 &quot;김한수 부총장과 나는 대학 동기다. 한동안 못 보다가 한체대 외부 실기평가위원으로 우연히 왔다는 걸 유덕수 교수에게 들었다. 그래서 후배 포함 4명이 함께 식사했다. 4명이 있었기에 총장에 관련된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만났던 것에 대해 사과 드린다. 공인으로 앞으로 모든 부분에서 주의하겠다&quot;며 &quot;총장 선거에 나선 2018년 11월 당시 25년 전 또는 29년 전 논문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에 확인하지 못했던 부적절한 내용이 있었던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권관배 씨 논문 표절은 처음 듣는다. 권 씨는 제가 용인대 있을 때 제자였다. 2006년에 내가 썼던 논문을 도와준 게 권 씨였다&quot;고 해명했다.이에 이찬열 위원장은 &quot;내용이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라고 해야 한다. 자꾸 친구고 제자고 해봐야 의미 없다&quot;고 꼬집었다.최훈민 기자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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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김한표 의원, 국감에서 안용규 한체대 총장 비리 의혹 제기하며 사퇴 권유]]></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5056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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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17 Oct 2019 11:17:00]]></pubDate>
            <category><![CDATA[정치]]></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용규 한체대 총장을 상대로 날 선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대한민국 체육계와 후배를 위해 스스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img alt="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10월 15일 오후 경남 진주시 경상대학교 가좌캠퍼스 GNU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2019년도 부산·울산·경남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017/1571253233890279.jpg"/> 10월 10일 서울대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한표 의원은 안용규 총장에게 논문 표절과 부적절한 해명, 아들의 한체대 편입, 청와대 인사 개입 의혹 등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김한표 의원은 먼저 논문 표절 의혹을 짚고 넘어갔다. 그는 &quot;안용규 총장의 논문은 충남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A 씨가 1993년에 작성한 논문 구조를 쏙 빼닮았고 통째로 같은 문단도 발견됐다. 또 다른 한 석사생의 논문은 각주와 인용 표시조차 없이 설문조사를 그대로 도용됐다. 한 석사생의 학위 논문 설문 조사 결과가 쪼개진 뒤 도용돼 타인의 연구결과로 세상에 나온 꼴이 됐다&quot;며 &quot;이건 단순 표절 시비가 아니다. 안 총장은 이걸 &#39;미덕&#39;이라고 표현했다&quot;고 말했다.안용규 총장은 이에 대해 &quot;미덕이라고 표현한 적 없었다&quot;고 주장했다. 김한표 의원은 바로 &quot;만약 표현했다면 위증으로 책임을 지겠냐&quot;고 안 총장을 몰아붙였다. 안 총장은 즉시 자신의 의사를 번복하며 &quot;대화 과정이나 이야기할 때 잘못 표현됐다. 사과 드린다&quot;고 했다. 안 총장은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된 뒤 있었던 &#39;일요신문&#39;과의 인터뷰에서 &quot;2007년 교육부 연구규정 지침이 강화되고 표절의 정의가 분명해지기 전까지 학계는 많은 연구자가 뛰어난 학자의 연구 결과를 많이 인용하고 원문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시절이었다. 논문을 작성하는 &lsquo;기법&rsquo;의 일부였다&rdquo;고 말한 바 있었다. (관련 기사: 제자까지 답습? 안용규 한체대 총장 당선인 논문표절 의혹 앞뒤)김한표 의원은 안용규 총장 관련 추가 의혹도 연이어 제기했다. 아들의 한체대 편입 문제가 중심이 됐다. 그는 &quot;안 총장은 2012년도 제6대 총장 선거 때도 당선된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 승인을 못 받아 임용 제청까지 가지 못했다. 투서를 기초로 한 안 총장의 도덕성이 문제가 됐다&quot;며 &quot;특히 아들의 편입 문제가 큰 의문으로 남았다. 안 총장 아들은 2005년 조지아공과대학에 입학한 뒤 2010년 한체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아들이 미국종합대학학부 공대 순위 미국 전체 4위를 기록할 만큼 좋은 대학에서 3학년 때 왜 한체대로 편입했는가&quot;라고 물었다. 이어 &quot;안용규 총장 아들은 윗몸 일으키기는 2분 동안 140개 이상 만점에 58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제자리 멀리뛰기 만점이 280㎝인데 240㎝, 왕복달리기는 8.2초 만점에 9.3초로 일반 고등학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체력이다. 여성 체대 입시생과 비교해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한체대는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체육대학으로 최고의 운동량을 가진 학생이 모인 곳이다. 운동량이 이렇게 형편 없이 떨어져도 영어만 잘하면 한체대에 들어갈 수 있는가&quot;라고 질의했다.청와대의 한체대 총장 인사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김한표 의원은 &quot;안용규 총장은 2012년 제6대 총장 선거 때 당선되고도 &#39;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인사와 인연이 없어서 총장이 못 됐다&#39;고 발언한 적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2018년 11월 제7대 총장으로 선출된 이후 청와대 승인을 못 받던 차에 안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동서인 김한수 배재대 교수와 식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 승인이 떨어졌다. 절묘한 우연이라 하기엔 석연치 않다. 청와대 줄타기에 성공한 것인가&quot;라고 했다.김한표 의원은 이어 &quot;당시 관행이었다고 해도 안용규 총장의 재임은 마땅치 않다. 국민 정서상 맞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청와대 인맥을 운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총장직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게 대한민국 체육계와 후배를 위한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quot;고 덧붙였다. 이에 안용규 총장은 &quot;아들 편입 당시 배점이 그랬다. 아들이 군대를 가겠다고 한국에 왔다가 이승국 당시 한체대 총장을 만난 적 있었다. 이 전 총장이 아들과 대화한 뒤 &#39;너 한국어 표현이 안 되니까 한국에서 학교 좀 다녀라&#39;라고 조언을 해 그대로 따랐다&quot;며 &quot;김한수 교수와는 대학 동기다. 김 교수가 실기 평가위원으로 한체대에 방문해 오랜만에 저녁 한 끼 먹었던 것일 뿐&quot;이라고 해명했다. 총장 사퇴 권유에 대해서는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quot;고 말했다.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무너진 '전명규 캐슬' 빙상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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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1 Oct 2019 13:47: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전명규 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파면된 뒤 빙상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인의 전횡으로 독점됐던 구조가 하나둘 개혁되고 있는 것. 2018 평창동계올림픽 후에도 끊임없는 구설수에 몸살을 겪었던 빙상계가 차츰 자리를 되찾으며 재계에서도 빙상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lsquo;탈 전명규화&rsquo;에 맞춰 빙상계 정상화가 이뤄질 거라는 예측이 무게를 얻고 있다.   <img alt="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섰던 전명규 전 한체대 교수. 사진=일요신문DB"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1010/1570688126464087.jpg"/> 안용규 한체대 총장은 지난 8월 28일 전명규 전 교수를 파면했다. 6일 전인 8월 22일 학교 징계위원회가 의결한 파면안을 그대로 승인했다. 사실상 &lsquo;전명규 시대&rsquo;의 종말 선언이었다. 전 전 교수가 2018년 4월 평창동계올림픽 사태 직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직을 사퇴했을 때만 해도 &ldquo;한체대 교수직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물러나는 거라면 별다른 의미 없다&rdquo;던 빙상계의 우려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실제 전명규 전 교수는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내려왔을 때도 한체대 교수가 가진 권력으로 배후에서 계속 빙상계를 움직인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리단체가 된 빙상연맹에도 여전히 친전명규파가 중심에서 버티고 섰던 까닭이었다. 2018년 5월 23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리단체 지정을 권고했고 넉 달 뒤인 9월 27일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했다. 빙상연맹과 같은 체육 종목단체는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고 대한체육회 인사와 외부인사로 구성된 관리위원회가 대리 운영한다. 지난해 10월 11일 빙상연맹 관리위원회 9명이 구성되고 2명이 친전명규계로 분류됐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학위를 모두 한체대에서 받은 김관규 용인대 교수와 성백유 씨였다. 2명이라 다소 적은 숫자처럼 보였지만 관리위원회는 법조인 2명과 대한체육회 인사 5명을 포함해 구성됐다. 실제 빙상연맹 문제는 김 교수와 성 씨 2명이 모두 담당하는 셈이었다. 김관규 교수는 빙상연맹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이사 출신으로 전명규 교수가 부회장이던 시절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다. 아들이 2016년 한체대에 입학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다.성백유 씨는 미주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알려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대변인이었다. 그는 2013년 전 전 교수를 예찬한 책 &lsquo;대한민국 승부사들&rsquo;의 공저자기도 하다. 성 씨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뒤 전 전 교수가 사퇴하자 그를 이순신에 비교하기까지 했다. 2014년 3월 17일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ldquo;오늘 빙상연맹은 전명규를 칼로 베었다.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옥에 가둔 꼴이라고 해야 할까&rdquo;라며 &ldquo;실력 있는 제자를 키우기 위해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다. 그런데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rdquo;는 글을 올렸다. 구성 자체가 이렇다 보니 빙상연맹 관리위원회는 1년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운영을 하지 못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건넨 징계안을 일부만 소화하고 묵혔으며 선수 관리에 구멍이 생겨 계속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8월 전명규 전 교수의 한체대 교수직 파면이 확정되며 빙상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빙상연맹 관리위원장과 성백유 씨가 전 전 교수 파면 확정 하루 전 사퇴한 까닭이다. 친전명규계가 아니라고 거듭 부인했던 성 씨였지만 전 전 교수 파면에 맞춰 관리위원 자리에서 내려오자 빙상계에는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빙상 개혁의 시작이란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체육회는 빙상연맹 관리위원회 구성에 골몰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쪽에서는 빙상계 개혁을 주도한 젊은빙상인연대 소속 여준형 회장과 권순천 부회장을 관리위원으로 밀고 있다고 알려졌다. 다만 정치권에 따르면 한 체육계 고위급 인사가 친전명규파를 또 다시 관리위원으로 들이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 빙상계는 &ldquo;또 다시 친전명규계가 관리위원으로 온다면 빙상연맹이 살아나기 어려울 것&rdquo;이라고 했다.재계의 눈치 때문이다. 빙상연맹은 회장사가 나타나야 관리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옛 회장사인 삼성이 나간 빈자리를 채우려는 대기업이 몇 있지만 전명규 전 교수 관련 위험 부담 때문에 최근 빙상연맹 후원을 꺼린다고 전해졌다.실제 빙상연맹 후원에 적극적이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ldquo;빙상연맹 회장사가 되는 건 매우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전명규 전 교수라는 사람의 입김이 닿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rdquo;며 &ldquo;우리 외에도 몇몇 대기업에서 빙상연맹 회장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다만 전 전 교수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미친다면 또 다시 구설에 오를까 싶어 관망하고 있는 것뿐&rdquo;이라고 했다. 이번 관리위원회의 탈전명규 구성이 빙상연맹 정상화에 핵심으로 부각된 셈이다. 재계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둔 내년쯤 빙상 관련 예산을 풀어 낼 전망이다. 스포츠 후원을 담당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ldquo;아직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가시권으로 들어오지 않아 재계에서 큰 관심을 쏟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빙상은 효자 종목이고 특히 중국에서 사업을 펼치는 기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다.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지나면 내년부터 재계에서 빙상연맹 후원에 적극 뛰어들 것&rdquo;이라고 했다. 빙상계의 구도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 빙상 메카로 불리는 목동실내빙상장이 새 주인을 찾으며 가장 먼저 개혁의 신호를 보냈다. 반전명규계로 분류되는 &lsquo;와이키키목동아이스링크&rsquo;가 관리위탁 운영기관으로 선정되며 빙상계는 한숨 돌렸다. 전 전 교수의 눈 밖에 났던 선수도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까닭이다. 한편 전명규 전 교수는 교육부에 징계 불복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징계에 대한 소청심사와 행정소송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결과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고 노진규 선수 사망 관련 발표가 예정돼 있고 2018년 초부터 계속된 경찰 및 검찰 조사 결과 역시 아직 나오지 않은 까닭에서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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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한체대, 전명규 파면 의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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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22 Aug 2019 22:50: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가 전명규 교수 파면을 의결했다.  <img alt="긴급 기자회견 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는 전명규 교수. 사진=YTN 갈무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822/1566481536992762.jpg"/> 한체대는 8월 22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최고 수위인 파면을 의결하고 이 내용을 안용규 총장에게 보고했다. 총장의 재가가 나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파면이 확정되면 전명규 교수는 향후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퇴직 급여가 2분의 1로 깎인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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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마이더스의 손→마이너스의 손' 전명규 우호세력 전명규와 선긋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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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6 Aug 2019 11:01: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jipchak@ilyo.co.kr | 최훈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수많은 금메달을 일군 &#39;마이더스의 손&#39; 전명규 교수가 &#39;마이너스의 손&#39;으로 전락할 조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전 교수와의 친분을 자랑했던 주변 주요 인사의 선 긋기가 시작된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를 받은 뒤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던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 수뇌부조차 다시 받아 든 중징계 요구안을 들고 고심에 빠졌다. 이번에는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무게를 얻는 형국이다.   <img alt="지난해 국정감사장에 섰던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DB"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815/1565814932640750.jpg"/> 전명규 교수에 대한 정부의 칼날은 2018년 초 시작됐다. 왕따 주행 등 곪았던 빙상계 내부의 문제가 드러나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특별 감사가 시작됐다. 문체부는 2018년 3월 26일부터 4월 30일까지 5주간 50명에 이르는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나온 전 교수의 전횡 대부분을 확인했다. 페이스 메이커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한체대 출신 특정 선수에게 특혜를 제공해 온 부분 역시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대표 지도 개입은 일상다반사였다.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으로 전 교수 징계 요구가 갔고 배임 및 공정거래 위반 의혹은 경찰청으로 수사 의뢰가 들어갔다. (관련 기사: &lsquo;빙상 대부&rsquo; 전명규, 삼성이 쥐어준 칼 마음껏 휘둘렀다)문체부가 빙상연맹 문제에 집중했다면 빙상 선수의 생애를 전부 장악할 수 있었던 전명규 교수 중심의 한체대 카르텔 문제는 교육부가 맡았다. 전 교수 문제가 언론에서 지적되자 교육부는 2018년 4월 23일부터 이틀에 걸쳐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 뒤 2018년 5월 23일 문체부가 특별감사 때 추가로 조사해야 할 부분을 정리한 사실통보를 교육부에 보내자 교육부는 5월 28일부터 사흘 동안 한체대 추가 조사에 나섰다. (관련 기사: &lsquo;한체대-국대-실업팀&rsquo; 손아귀에&hellip;전명규가 쌓아 올린 &lsquo;빙상 캐슬&rsquo;의 실체)2018년 7월 5일 교육부는 전명규 교수를 중징계하라고 한체대에 일렀다. 조사 결과 전 교수는 2013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모두 69번에 걸쳐 수업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섰다. 89시간 수업 결손이 발생했다. 빙상장 부당 사용에 개입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조교에게 학교발전기금 기탁을 강요하고 골프채 구매 비용을 대신 내도록 한 &lsquo;갑질 의혹&rsquo;은 검찰로 넘어갔다. 교육부는 다시 나섰다. 올해 2월 11일부터 17일간 추가 감사를 벌였다. 심석희 성폭행 의혹으로 비롯된 감사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명규 교수는 빙상장 라커 룸에서 사설 강사가 수강생을 폭행한 사건을 무마하려 피해자 학부모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거나 피해자의 지인을 동원해 피해자가 합의토록 압박했다. 피해학생과 격리조치를 통보 받았지만 제3자를 거쳐 피해학생과 소통해 졸업 뒤 거취를 거론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접촉했다. 2018년 문체부 특정감사 직전 폭행 피해 학생의 아버지를 만나 감사장에 출석하지 말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최근 15년 동안 부양가족 변동신고를 하지 않고 가족수당 및 맞춤형 복지비 총 1252만 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도 확인됐다. 빙상부 학생이 훈련용으로 협찬 받은 400만 원대 자전거 2대를 빼앗고 가품 스케이트화 24켤레를 납품 받은 뒤 정품 가격인 5100만 원을 지급 받게 한 부분은 아예 검찰로 고발됐다. 정부 기관의 한 차례 조사와 두 차례 감사에도 전명규 교수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문체부 감사 뒤 징계를 받기 전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사퇴해 급한 불을 껐다. 2018년 교육부 조사 뒤 중징계 요구를 받아 결국 &#39;정직 1개월&#39;의 징계를 받았지만 훈장 감경을 이용해 &#39;감봉 3개월&#39;로 바꿔 받았다.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포상 감경을 받을 수 있다. 전 교수가 받은 체육훈장 &#39;청룡장&#39;은 1차 방어막이 됐다.올해 있었던 교육부 감사를 통해 한체대는 또 다시 중징계 요구를 받았다. 전명규 교수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한체대에서 수업 배제 조치를 받았지만 지난 7월 초 학교 빙상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날 정도였다. 보호막이 된 건 안용규 한체대 총장이었다. 안 총장은 총장 선거 때 우호 세력이 돼줬던 전명규 교수에 대한 처분과 관련해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 된다는 식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안 총장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안 총장이 청와대 인준을 받기 직전 함께 식사를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동서 김한수 배재대 부총장까지 한체대의 최근 행보에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까닭이다. 김 부총장은 &#39;일요신문&#39;과의 통화에서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최근 한체대의 움직임에 대해 &quot;난 그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고쳐야 할 점,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기득권 때문에 난관이긴 하다. 단호한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quot;고 말한 바 있었다. 안 총장과 한체대 동기 출신인 김 부총장은 최근 교육계의 큰손으로 불린다.결정적인 건 최근 전명규 교수를 중심으로 관찰된 미묘한 기류다. 전 교수 거취 문제가 이번에는 대충 수습되기 힘들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7월 초 정부 최고위직 후보군에 한체대 교수 2명이 하마평에 올랐다. 두 교수 모두 7월 중순에 있었던 1차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안용규 한체대 총장 선거 운동을 7년 동안 해온 인사로 안용규 총장의 후한 지원을 받았으나 제자의 논문 바꿔 치기를 총지휘했다는 윤리적 문제로 탈락했다.   <img alt="긴급 기자회견 때 전명규 교수 주변에 섰던 한체대 교수 2명. 이 장면은 인사 검증 때 주요 검증 자료로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사진=YTN 갈무리"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815/1565815063346318.jpg"/> 특이한 점이 발견된 건 하마평에 올랐다가 인사 검증에 실패한 또 다른 교수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교수는 전명규 교수와의 인연으로 퇴짜를 맞았다고 알려졌다. 전 교수의 기자 회견 때 이 교수가 동행했다는 부분이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까닭이었다. 1월 2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때 이 교수가 실제 전 교수를 비호하며 주변에 맴돈 장면이 YTN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와 같은 사실이 정부와 정치권에 전해지자 전명규 교수의 최고 우호 세력이었던 인사의 선 긋기도 하나씩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역시 최근 전명규 교수와의 선 긋기에 나섰다는 게 체육계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이 회장은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국빈급 IOC 위원이 된 이기흥 회장의 꿈은 이걸로 멈추지 않는다. 불교계와 정치권 복수 이상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기흥 회장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체육계 인사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데에 필요한 건 비단 그가 가진 세력 크기만이 아니다. 윤리성은 기본이며 최근엔 친여성적 행보가 필요조건이 됐다. 이기흥 회장은 이 부분에서 유독 취약한 인물이다. 심석희의 부친 심교광 씨에 따르면 이기흥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전명규 교수와 심석희를 만난 자리에서 심석희를 폭행해 문제가 된 조재범 전 코치의 귀환을 약속한 바 있었다. 이 회장은 &#39;일요신문&#39;이 이를 보도하자 &quot;그런 적 없다&quot;고 말했다. 하지만 전 교수가 긴급 기자회견 때 &quot;이 회장이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었다&quot;고 이 회장의 해명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렸다. 각종 로비 등으로 꾸준히 구설수에 오른 이 회장에게 전 교수와의 깊은 관계는 일촉즉발의 폭탄인 셈이다. 전 교수와의 거리 두기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관련 기사: [단독]심석희 앞에서 &ldquo;조재범 살려주겠다&rdquo;고 말했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상황이 이렇게 급변하던 7월 한체대는 전명규 교수의 직위 해제 소식을 알렸다. 한체대는 7월 17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전명규 교수를 직위 해제했다고 8월 6일 밝혔다. 포상 감경 카드를 재활용하더라도 최소 정직, 해임, 파면 등의 중징계가 예고된 셈이다. 지난해 교육부의 1차 중징계 요구 때 한체대는 직위 해제 없이 처분을 내렸다. 포상 감경을 거친 경징계 &#39;감봉&#39;이었다. 이와 같은 한체대의 공식에 따르면 지금 조치된 직위 해제는 최소 정직을 의미한다. 한체대는 9월 16일까지 징계위원회를 열어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img alt="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란히 선 전명규 교수(가운데)와 이기흥 회장(왼쪽). 사진=일요신문 DB"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815/1565814978934567.jpg"/> 하지만 아직도 한체대 내부에서는 전명규 교수를 보호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알려졌다.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는 교수라 한체대 자체의 명성을 높여줄 가장 큰 카드인 까닭이다. 또한 한체대 내 전 교수 비호 세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문제는 전명규 교수가 맞닥뜨려야 파고가 교육부 징계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올 초 준사법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 구성된 &#39;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39;과 긴밀한 협조를 거쳐 학생 선수에 대한 폭력&middot;성폭력 피해 실태를 철저한 조사 등을 약속한 바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최근 빙상계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문체부 특별 감사 뒤 경찰로 향했던 수사 의뢰와 교육부 조사와 감사에 따른 고발은 현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지휘 아래 여전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전명규 교수가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으면 퇴직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간 닥쳐올 후폭풍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특히 고 노진규의 골육종 사망 관련 과실치상 및 과실치사, 폭력 등에 대한 추가 조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전명규 교수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알려졌다. 이번에 합당한 징계가 나오지 않을 경우 한체대 총장이 곧 있을 국정감사장에 설 수 있다는 게 여야 주요 의원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전명규 교수는 최근 나름의 방어막 구축에 힘쓰고 있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일부 언론인에게 전화를 돌려 자신의 억울함을 알렸다고 전해졌다. &quot;교육부 감사가 잘못됐다&quot;, &quot;검찰은 내 편&quot;이라는 식의 항변이었다. 몇몇 언론사는 전 교수의 이런 해명을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전명규 교수는 언론에 이를 알리는 동시에 감사 결과에 대해 재심의를 요구했다. 징계를 감경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육부의 반응은 싸늘했다. 중징계를 요구했던 최초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9월 16일까지 있을 한체대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온 국민의 눈이 쏠리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전명규 나비효과에 청와대까지 흔들려전명규 교수의 날갯짓이 청와대를 덮친 태풍이 됐다. 7월 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동서인 김한수 배재대 부총장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ldquo;배재대는 2012년 이미 부실 대학으로 선정됐고 작년에도 교육부 1차 평가에서 탈락됐는데 최종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바뀌었다&rdquo;며 &ldquo;이렇게 평가가 뒤바뀐 데는 대통령 동서인 김한수 교수의 역할이 있었다&rdquo;고 의혹을 제기했다.이어 &ldquo;교육부는 대학별 등수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김한수 교수는 어떻게 등수를 알았겠느냐&rdquo;며 &ldquo;상식적으로 교육부나 청와대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입수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겠느냐&rdquo;고 했다. 또한 &ldquo;건양대에서 학과장까지 했던 김 교수가 배재대에서 교양 과목 한 강의만 가르치는 교수로 작년에 이직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부총장으로 승진했다&rdquo;며 &ldquo;이런 파격 인사는 자율개선대학으로 변경된 것에 따른 대가가 아니냐&rdquo;고 말했다. 김한수 부총장은 &#39;일요신문&#39;과의 인터뷰에서 배재대의 평가 점수를 언급한 바 있었다. (관련 기사: 대통령 동서 행보에 시끄러운 교육계&hellip;한체대 총장 인준에 쏠리는 눈)곽상도 의원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평소 품위 있는 답변으로 유명했던 이낙연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ldquo;의원님의 억측력은 제 상상을 뛰어넘는다&rdquo;고 반박했다. 이튿날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곽 의원을 향해 &quot;이쯤 되면 스토커 아니냐&quot;며 &quot;곽 의원이 어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 동서의 대학평가 개입 의혹 등을 주장하며 공작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아들&middot;딸&middot;사위&middot;손자에 이어 동서까지 불법적인 뒷조사로 근거 없는 &lsquo;신상털기&rsquo;에 집착하고 있다&quot;고 말했다. 곽 의원의 의혹 제기 토대가 된 언론의 취재를 불법적인 뒷조사로 낙인 찍을 정도로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했다.전명규 교수의 이승훈, 김보름 특혜설이 2017년 최초 제기됐을 때 이 사건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 의혹까지 이어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전 교수의 전횡 문제가 빙상연맹에만 국한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중심에는 한체대가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전명규 교수의 문제는 한체대의 구조적 문제로 재조명되며 곪은 엘리트 체육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났다. 전 교수 외 한체대 교수진의 전횡이 폭로됐다. 자연스레 교수진의 자격 논란으로 불은 옮겨 붙었다. 논문 표절과 조작으로 실적을 쌓아 임용된 교수가 차례로 도마 위에 올랐다. 안용규 총장도 논문 표절과 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시기는 안 총장이 교육부의 임용 제청과 청와대 인준을 기다리는 시점이었다. 이때 안 총장은 김한수 부총장의 식사 자리가 확인됐다. (관련 기사: 또? 추가로 발견된 안용규 한체대 총장 당선인 표절 정황)전명규 교수에서 쏜 작은 공은 그렇게 대한민국 권력 최정점으로 향했다. 최훈민 기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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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19] '고문 의혹' 경찰 "나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4196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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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9 Jul 2019 17:07: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그는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28년 전, 경찰로 근무할 당시 담당했던 &lsquo;그 사건&rsquo;의 시작과 끝을 또렷이 기억했다. 변호인과 검찰, 재판부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단어 하나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옛 기억을 토대로 바로잡았고, 구체적인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유독 한 가지, &ldquo;수사 당시 고문과 폭행을 했느냐&rdquo;는 질문에는 다르게 답했다. &ldquo;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을(낙동강변 2인조) 인간적으로 대했습니다.&rdquo;7월 18일 부산고등법원 301호 대법정(형사1부, 김문관 부장판사).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세 번째 심문기일에 참석한 장동익, 최인철 씨의 표정이 굳었다. 법정 밖에서 한 남자를 본 뒤부터다. 장 씨와 최 씨는 이날 남자와 마주치기 직전까지도 그가 법정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는 전직 경찰관(이하 A 씨)이다. 그리고 이번 재판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핵심이 될 증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1991년 11월 8일, 낙동강변 2인조를 직접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다음날 이들을 구속했고, 검찰에 사건을 넘길 때까지 수사 전반을 주도했다. 당시 작성된 경찰 조서 등 수사기록을 보면 이 남자의 이름과 서명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장 씨와 최 씨는 고문과 폭행도 이 남자의 손끝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해 왔다. 3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심리에서 재판부도 A 씨의 증언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여부 결정에 앞서 당시 경찰관의 고문과 폭행이 합리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결론을 냈지만, 법원의 공정한 판단 없이 과거사위 결과만으로 재심 개시가 결정되면 3심제 형사소송법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A 씨의 증언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을 풀 열쇠였던 셈이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세 번째 심리가 열렸다.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719/1563520365006723.jpg"/> # &quot;나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quot;&ldquo;최인철 씨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기억나시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rdquo; (박준영 변호사)&ldquo;당시 부산 사하구 을숙도 유원지에서 경찰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빼앗겼다는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함께 신고된 차량 번호를 토대로 최인철 씨를 특정했고, 양식장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최 씨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습니다.&rdquo; (A 씨)증인석에 앉은 A 씨는 낙동강변 사건의 시작부터 구체적으로 기억했다. 그는 최 씨를 &lsquo;검거&rsquo;하기 직전 그의 부인을 만나 나눴던 대화부터 경찰 복무규정과 당시 사건에 적용한 법리를 지체 없이 설명했다. 자신이 근무했던 부산 사하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의 구조도, 소속 팀원 8명이 2인 1조로 나뉘어 수사를 진행했던 일도, 낙동강변 사건을 넘겨받은 검사의 이름도 금방 떠올렸다. 지난 6월 두 번째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현직 경찰관의 증언을 직접 뒤집기도 했다. 현직 경찰관은 사건 수사 당시 자신은 막내경찰이라 조사에 참여하지 않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수사 보고서와 조서 등에 적힌 본인의 이름과 서명은 자신도 모르게 선배들이 임의로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lt;관련기사-[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18] 법정 선 당시 수사 경찰, 그들은 &lsquo;기억&rsquo;하지 못했다&gt; 그러나 A 씨는 &ldquo;그(현직 경찰관)와 함께 수사를 했고, 기록에 남은 모든 서명과 날인은 당시 조사를 벌였던 담당자가 직접 남겼다&rdquo;고 증언했다. 둘 중 하나는 자칫 &lsquo;위증&rsquo;을 의심받을 수 있는 답변이었지만 A 씨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A 씨는 유독 고문과 폭행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앞선 질문들에 전후 사정과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설명했던 것과 달리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관련해선 모두 &ldquo;기억이 나지 않는다&rdquo;고 대답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고문이 일어났던 장소와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ldquo;사건이 방대했던 만큼 당시 팀장이 조원들에게 업무를 나눠줬다&rdquo;며 &ldquo;나는 기억나지 않는다&rdquo;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ldquo;최 씨와 장 씨를 조사하면서 범죄 경력을 조회해 봤는데 깨끗했다. 당시 전과자도 아니고 무엇보다 자백을 했던 만큼 수사 과정 내내 그들을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rdquo;고 말했다. 변호인에 이어 재판부도 &ldquo;고문 여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rdquo;고 재차 물었지만 A 씨는 &ldquo;기억이 나지 않는다&rdquo;라고 대답했다.# &quot;거꾸로 매달아 놓고 탕수육 시켜 먹었다&quot;이날 재판에는 A 씨에 앞서 낙동강변 2인조가 검거되기 2달 전,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는 남성(이하 B 씨)도 증인으로 나왔다. 앞서 이 남성의 사례는 지난 2017년 6월 박 변호사의 재심 청구 준비 및 &#39;일요신문&#39; 전수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1946년 설립된 &#39;부산일보&#39; 사옥에 직접 방문해 공개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발생한 시점인 1990년 1월 1일부터 1992년 12월 31일까지 총 3년 치 신문을 대상으로 조사했다.&lt;관련기사-[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9] 그때 부산 경찰 고문‧폭행 더 있었다&gt;조사 내용에 따르면, 3년 간 부산에서 총 33건의 경찰의 가혹행위 사건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낙동강변 2인조가 구속된 1991년부터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1992년까지 2년 사이엔 총 15건의 경찰의 가혹행위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B 씨는 이 시기에 경찰에 검거돼 경찰로부터 가혹행위를 받았다.   <img alt="낙동강변 살인사건 전,후에 경찰의 고문, 폭행, 사건조작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출처=부산일보 데이터베이스  "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719/1563520922692492.jpg"/> B 씨 사건은 1992년 8월 4일자 &#39;부산일보&#39;에 실렸다. 보도 내용을 보면, 그는 1991년 9월 대구원정소매치기단 공범으로 지목됐다. 당시 부산 사하경찰서는 물고문과 폭행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 검찰에 넘겼다. 1심까지 유죄 판결이 내려졌던 B 씨는 당시 &lsquo;피해자&rsquo;가 고령으로 숨지기 직전 &ldquo;B 씨는 범인이 아니다&rdquo;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B 씨는 이날 법정에서 당시 경찰의 고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ldquo;그때를 떠올리는 것조차도 힘들어 증언도 하지 않으려 했다&rdquo;며 입을 열기 시작한 그는 &ldquo;당시 경찰이 쪼그려 앉은 다리 사이에 쇠파이프를 꽂고 거꾸로 매달았다. 수건을 얼굴에 덮은 뒤 코에 겨자가 섞인 물을 부으면서 혐의를 인정하면 손가락을 &lsquo;까딱&rsquo;하라고 했다&rdquo;고 증언했다. 이날 B 씨가 증언한 경찰의 가혹행위 수법과 장소는 낙동강변 2인조가 주장한 내용과 모두 일치한다. 당시 B 씨에 대한 고문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형사과장은 낙동강변 사건을 지휘했던 형사과장과 같은 인물이다. B 씨와 낙동강변 2인조는 사건 발생 당시는 물론 이번 재판에서 마주치기 전까지 한 차례도 접촉한 적이 없다. B 씨의 소재는 최근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그동안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비슷한 시기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여기에 B 씨는 증언 과정에서 중국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ldquo;고문 받을 당시 경찰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웃옷을 벗은 채로 탕수육과 짜장면 등 중국음식을 시켜 먹었다&rdquo;며 &ldquo;그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중식은 먹지 못한다&rdquo;고 말했다. 낙동강변 2인조 최인철 씨도 겨자 섞인 물고문을 받은 이후 최근까지도 겨자를 먹지 못한다.재판부가 증인 신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찰관 가운데 아직까지 법정에 나오지 않은 경찰관은 총 2명으로 줄었다. 고문 지시 의혹을 받는 앞서의 당시 형사과장과 팀장이다. 형사과장은 현재까지 구체적인 소재자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팀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이 어렵다는 의사를 법원에 전해왔으나 재판부는 가능하면 증언을 들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18] 법정 선 당시 수사 경찰, 그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963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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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28 Jun 2019 17:05: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dquo;힘든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만큼 책임 있는 증언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rdquo; 법정 증인선서를 위해 증인석에 선 두 남자를 향한 재판부의 당부였다. 짧은 대답을 마친 그들은 오른손을 곧게 폈다. 굵고 우렁찬 목소리가 법원청사에서 가장 넓은 대법정을 가득 채웠다. &ldquo;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rdquo; 지난 6월 27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301호 대법정(형사1부, 김문관 부장판사). &lsquo;낙동강변 살인사건&rsquo;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두 번째 심문기일이 열렸다. 증인석에 선 두 남자는 전&middot;현직 경찰관이다. 이들은 28년 전 부산 사하경찰서 강력팀에서 막내 경찰관과 선임 경찰관으로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과거 &lsquo;살인범과 수사관&rsquo;으로 만났던 이들이 법정에서 &lsquo;고문 피해자와 가해자&rsquo;로 다시 만난 것이다.  <img alt=" 28년 전 '살인범과 수사관'으로 처음 만났던 이들이 법정에서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로' 다시 만났다. 재심을 청구한 최인철 씨(왼쪽)가 포승줄에 묶여 당시 피해자 역할을 맡은 경찰관과(가운데, 흰색셔츠)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사진=당시 수사기록. 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628/1561706066273213.jpg"/> 이번 재판은 살인사건의 누명을 쓰고 21년간 수감됐다고 주장한 장동익, 최인철 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열렸다. 앞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지난 4월, 이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당시 수사 경찰이 고문과 폭행으로 허위 자백을 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고법은 과거사위 결론이 내려진 직후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듣고, 그 사유가 합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심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재판부는 예단을 엄격히 경계하고 있다. 28년 전 &lsquo;디케의 저울(공정과 형평을 상징)&rsquo;이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취지로 재심이 청구된 만큼 이번 재판에선 수평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지난 5월 첫 기일에서 재판부는 &ldquo;재심 청구인들이 이번 재판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본인들의 억울함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재판을 통해서 풀어달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rdquo;며 &ldquo;과거사위 결론을 비중 있게 다루겠지만, 공정한 판단을 위해선 당시 경찰관의 직무상 고문, 가혹 행위 등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 이들을 불러 증언을 듣고 재심 여부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할 것&rdquo;이라고 밝혔다.# &quot;당신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quot;&ldquo;증인은 재심 청구인의 옷을 벗기고 손목을 묶은 후 무릎과 팔 사이에 쇠파이프를 꽂아 거꾸로 매달은 적이 있습니까.&rdquo;(박준영 변호사)&ldquo;그런 적 없습니다. 당시 경찰로 임용된 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수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rdquo;(현직 경찰관)가장 먼저 증언에 나선 건 현직 경찰관이다. 앞서 증인선서를 큰 목소리로 읽었던 그는 변호인의 질문에도 굵고 큰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는 고문과 폭행 사실을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를 검거하게 된 사유와 장소 등은 기억했지만, 그외 구체적인 사실은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은 &ldquo;당시 막내라 잔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선임들이 커피 타오라고 하면 타오고, 식당에서 밥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는 일밖에 하지 않은 때였다&rdquo;고 말했다.그는 당시 수사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간단한 조서조차 쓸 줄 몰라 최 씨와 장 씨에 대한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39;일요신문&#39;이 취재과정에서 확인한 당시 수사기록에는 이 현직 경찰관은 총 6번 조사에 관여했다. 최 씨, 장 씨의 진술조서 등을 보면, 펜으로 적은 그의 실명과 서명, 날인이 기재돼 있다. 수사기록에서 확인되는 그의 &lsquo;흔적&rsquo;에 대해 박 변호사는 물론, 검찰 측에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은 &ldquo;조서를 쓸 줄 모르고 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수사 기록에 본인의 서명과 날인이 있는 사유를 설명해 보라&rdquo;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직 경찰관은 &ldquo;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다른 선임이 한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았다&rdquo;고 답했다.그는 재판부의 허락을 구해 질문을 한 장 씨와 최 씨에게 자신을 기억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장 씨는 &ldquo;나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청각이 예민해 증인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rdquo;며 &ldquo;물고문을 받고 나와 젖어있던 나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말을 걸었던 당시 목소리가 지금의 그 목소리다&rdquo;라고 말했다. 장 씨와 최 씨는 질문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이 있었던 날짜와 장소,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지만 그는 &ldquo;조사에 참여하지 않아 모른다. 30여 년이 지난 만큼 기억도 나지 않는다&rdquo;고 말했다.다음 증인으로 나선 전직 경찰관도 고문과 폭행을 부인했다. 전직 경찰관은 &ldquo;어떤 사건을 맡든 확정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수사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고문이든 폭행이든 할 이유도 없고 생각도 해본 적 없다&rdquo;며 &ldquo;38년 4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단 한차례의 징계도 받지 않고 정년을 맞아 퇴직했다.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한 적 없다&rdquo;고 말했다.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 사건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모른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처럼 당시 수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변호인과 재심청구인들의 거듭된 고문과 폭행 묘사와 질문에도 전직 경찰관은 &ldquo;그런 일은 하지도 않았고 주변의 사례도 듣지 못했다&rdquo;며 &ldquo;변명같이 들리겠지만 30년 전 일을 어제처럼 기억할 순 없다&rdquo;고 강조했다. 똑똑히 기억한다는 재심 청구인과 기억나지 않는다는 증인들의 공방이 거듭되면서 재판은 공전했다. # 현장검증, 그리고 &#39;국방색 옷&#39;이 과정에서 사진 한 장이 분위기를 바꿨다. 먼저 수사기록을 보면, 장 씨와 최 씨가 저지른 범행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외에도 총 20여 건이다. 이 가운데에는 당시 부산 중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을 상대로 저지른 강도 범행도 포함돼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의 수법이 비슷하다며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비슷하다며 장 씨와 최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전직 경찰관은 이번 재판에서 경찰관을 상대로 한 강도사건에 대해 &ldquo;장 씨와 최 씨의 수사가 끝나고, 검찰에 넘겨진 이후에나 그 사건을 알게됐다&rdquo;며 &ldquo;그 수사에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강도를 당했다는 경찰관과는 일면식도 없다&rdquo;고 말했다.그러나 최인철 씨가 질문 과정에서 &lsquo;경찰관 강도사건&rsquo; 현장검증 과정에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승용차가 사용됐는데, 전직 경찰관의 소유였으며 특히 그가 피해자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최인철 씨는 전직 경찰관이 현장검증 당시 &#39;국방색 옷&#39;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최 씨가 묘사한 이 인물은 누구였는지 특정되지 않고 있었다.박준영 변호사가 곧바로 수사기록에서 최인철 씨가 묘사한 당시 현장검증 사진을 찾았고, 법정에 설치된 화면에 비췄다. 사진을 확인한 전직 경찰관은 &ldquo;내 차가 맞다. 사진 속 인물도 내가 맞다&rdquo;고 시인했다. 그러나 &ldquo;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았다&rdquo;고 주장했다. 그는 증인신문을 마친 이후 &#39;일요신문&#39;과 만난 자리에서 현장검증 사진에 대해 &quot;모른다. 할말 없다&quot;고 말했다.  <img alt="최인철 씨(왼쪽)와 이번 재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전직 경찰관(국방색 점퍼, 가운데). 경찰관이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아 재연하고 있다. 전직 경찰관은 증인 신문 초반 조사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장했으나 사진을 확인한 이후 자신임을 시인했다. 사진=당시 수사기록. 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628/1561705833653311.jpg"/> 재판부는 증인으로 출석한 두 경찰관에게 공통적으로 &ldquo;당시 고문과 폭행이 있었다는 과거사위원회 결론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rdquo;라고 물었다. 현직 경찰관은 &ldquo;처음 조사를 하겠다고 하고 해서 협조하려고 했지만,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rdquo;고 말했다. 전직 경찰관은 &ldquo;고문이 있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지만 어떻게 항변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rdquo;고 주장했다.이번 재판에서 장 씨와 최 씨가 지목한 &lsquo;고문 경찰관&rsquo;은 총 5명이다. 다른 세 명의 경찰관은 건강이 악화됐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출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사건 책임자였던 형사과장과 팀장, 조장이다. 장 씨와 최 씨는 이들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와 가혹행위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세 명의 경찰관 가운데 일부는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긴 이후 특진했다. 이번 증인으로 출석한 두 명의 경찰관은 특진하지 못했다. 재판부 역시 출석하지 않은 세 명의 경찰관에 대한 증인 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시 증인 소환장과 함께 집행관 송달을 시행할 방침이다. 그래도 출석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부터 구인까지 등 순차적으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18일 열린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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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17] 27년 만에 법정 선 2인조 …정말 '기적'은 일어날까?]]></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595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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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24 May 2019 16:32: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두 남자가 나란히 걷는다. 말이 없다. 얼굴도 보지 않는다.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5월 13일 부산고등법원 앞. 잠시 멈춰 한숨을 내쉰 그들은 조심스레 문을 연다. 심장이 조여온다. 헛구역질이 나온다. 셀 수 없을 만큼 떠올렸던 순간이지만 견디기가 어렵다. 27년 전, 그들은 이곳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두 남자는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울 만큼 높게 쌓인 서류 뭉치 2개를 나눠 들었다. 하나는 1990년 1월부터 1993년 4월까지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이 작성한 서류다. 1000쪽이 넘는 이 서류엔 두 남자가 무기징역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빼곡히 담겨 있다. 다른 하나는 최근 3년 간 모은 새 자료들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쓴 서류보다 3배 가량 많은 이 서류에는 앞서의 이유들이 모두 잘못됐고, 그래서 다시 재판을 받아야만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img alt="낙동강변 2인조 사건 재심 청구에 관한 심리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최인철 씨(왼쪽)와 장동익 씨(오른쪽)가 부산 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24/1558680994335074.jpg"/> # &#39;좁은 문&#39; 들어선 법원과 2인조낙동강변 2인조가 다시 법정에 섰다. 대법원 판결은 1993년 전에 내려졌지만 마지막으로 법정에 선 건 1992년 항소심이었으니, 정확히 27년 만이다. 그때도, 지금도 &ldquo;나는 하지 않았다&rdquo;라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대로다. 과거 그들을 처음 경찰서에 데려간 경찰과 수사결과를 토대로 재판에 넘긴 검찰, 선고를 내린 법원, 수사와 재판을 감시할 언론 중 어느 하나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법원이 2인조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로 했다.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김문관 부장판사)는 지난 5월 23일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 재심 청구에 관한 심문기일을 열었다. 2017년 5월, 2인조가 재심을 신청하고 올해 4월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ldquo;경찰관에게 물고문과 폭행을 당해 살인 혐의를 거짓으로 진술했다&rdquo;고 결론 내린 데 따른 것이다.법원은 재심을 열기 전까지 상당히 엄격한 심리를 거친다. 특히 &lsquo;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rsquo; 등의 권고로 재심이 이뤄진 &lsquo;과거사 사건&rsquo;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에서 법원이 다시 재판을 하기로 결정하는 건 극히 드물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내린 결론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원도, 낙동강변 2인조도 이번 심문기일을 통해 그 좁고 좁은 문을 열었다.아직 재심이 결정된 건 아니다. 심문기일은 재심을 해야할 지, 하지 말아야할 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재판부는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듣고 그 사유가 합당한지 확인한다. 재심 개시 결정 여부는 자칫 재심 청구인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어 보통 서면으로 심리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별도의 심문기일을 지정해 낙동강변 2인조와 검찰 측 의견을 직접 듣고 판단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날 심문기일을 열면서 먼저 2인조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최인철 씨는 &ldquo;실타래처럼 꼬여버린 사건을 우리의 힘으로는 풀 길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상 사람들을 향해 할 수 있었던 말은 &lsquo;억울합니다&rsquo;뿐이었습니다&rdquo;라며 &ldquo;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자녀들에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은 &lsquo;저는 하지 않았습니다&rsquo;입니다. 부디 저희들이 이야기를 세심하고 면밀하게 살펴주셨으면 합니다&rdquo;라고 울먹였다.장동익 씨는 &ldquo;처음 경찰서에 간 날부터 대법원 판결이 내려질때까지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눈 감는 날까지 저를 지켜 주리라 믿었던 법이 저를 외면 했습니다&rdquo;라며 &ldquo;21년을 복역하고 출소한지 6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라도 진실을 꼭 밝혀주셨으면 합니다&rdquo;라고 호소했다.   <img alt="지난 23일 낙동강변 2인조 사건 재심 청구에 관한 심리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최인철(왼쪽), 장동익(가운데) 씨와 이들의 법률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오른쪽)가 부산 고등법원을 향하고 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24/1558680878888999.jpg"/> 재판부 역시 약 10분 가량 별도의 입장을 밝혔다. 첫 심리기일인 만큼 향후 심리 과정 등을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재판부는 &ldquo;아직은 이 재판의 최종 결론을 내릴 단계가 아닌 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입장&rdquo;이라며 &ldquo;하지만 1991년 기소 이후 2019년 심문기일에 이르기까지 재심 청구인과 그 가족들이 겪었을 말 못할 고통과 어려운 과정들은 조금은 알고 있다. 재판부는 그런 과정과 사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가능한 한 신속히 이 재판을 진행할 예정&rdquo;이라고 밝혔다. 심리 방향에 대해선 &ldquo;재심 청구인들이 이번 재판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건 본인들의 억울함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재판을 통해서 풀어달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는 법과 원칙에 맞는 재판을 하는데 중점을 맞추겠다&rdquo;며 &ldquo;재판부는 과거사위원회 발표를 비중 있게 다루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재심사유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들을 개별적으로 확인하겠다&rdquo;고 설명했다.재판부는 다음 기일부터 고문과 폭행에 대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ldquo;당시 경찰관의 직무상 고문, 가혹 행위 등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rdquo;며 &ldquo;이들을 불러 증언을 듣고 재심 여부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한다&rdquo;고 말했다. 이에 대해 2인조의 법률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ldquo;출소한 뒤 고문 경찰관을 찾아 갔지만 모두 부인했다&rdquo;며 &ldquo;반드시 이들을 불러 고문 사실을 말하고, 위증하면 책임을 묻게 해달라&rdquo;고 요쳥했다. 2인조 역시 &ldquo;재판부가 고문 경찰관을 불러준다면 감사할 것&rdquo;이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증인 신청에 동의했다.박 변호사는 1991년 당시 경찰관에게 고문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 2명도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앞서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을 재조사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결과 발표에서 &ldquo;2인조가 경찰에 체포되기 2개월 전인 1991년 9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했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을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했다&rdquo;고 밝혔다.  <img alt="최인철 씨(왼쪽)과 장동익 씨(오른쪽).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24/1558681097434855.jpg"/> # 나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최인철 씨는 전날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법정에서 혹시라도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어 글을 쓰기도 하고, 찬물로 몸을 씻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잠든 아내 곁에 한참을 머물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된 남편 대신, 아내는 21년 동안 갓난아기 둘과 가정을 홀로 지켜야 했다. 김양식장부터 공장, 농장 등을 전전해야 했고 그때 하나 둘 씩 생긴 지병은 몸을 심각하게 망가 뜨렸다. 지금 아내가 가진 병은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다. 안과 밖, 최 씨 가족에겐 모두 감옥이었다.장동익 씨는 머리 맡에 두고 자려던 서류 뭉치에 절을 했다. 과거 경찰과 검찰, 법원이 작성한 낙동강변 사건 기록들이다. 장 씨의 유죄가 확정된 이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며 이 서류들을 모두 복사했다. 그리고 분홍색 보자기에 서류를 메고 10년 동안 전국을 돌았다. 2003년 11월, 장 씨의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ldquo;죽어서라도 억울함을 밝히겠다&rdquo;는 유언을 남기면서 두 눈을 감지 못했다는 게 가족들의 전언이다. 장 씨 어머니가 확보한 사건 기록들은 재심 청구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결론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로선 사건 기록 보존 기한이 20년인 만큼 2인조가 출소한 뒤엔 이미 폐기됐을 터였다. 당시 경찰과 검찰 수사 기록에서 광범위한 조작 사실이 발견됐고, 이를 근거로 현재 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다시 재판받을 수 있는 &lsquo;기적&rsquo;은 없었다. 장 씨의 어머니는 그의 마지막 뜻대로 아들의 억울함을 밝히고 있다.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심리기일에서 재판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ldquo;1993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억울함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 법정에서 다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이 사건, 당초 사형이 구형됐던 사건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복역하던 중에 감형이 이뤄져서 2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습니다. 삶은 이어지지만 이들의 그것은 이미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남은 시간, 얼마를 더 살진 모르겠지만 재심을 통해 두 분이 이제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rdquo; 한편,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지만 1년 뒤인 1991년, 경찰은 돌연 장동익, 최인철 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고문과 폭행 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구속한 뒤 검찰로 송치했다. 이들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한 뒤 2017년 5월,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39;낙동강변 살인사건&#39;을 재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4월 17일 최 씨와 장 씨는 1991년 사하경찰서 경찰관 4명에게 물고문과 폭행을 당해 강도살인 혐의를 거짓으로 진술했다고 결론 내렸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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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단독인터뷰] 인천 중학생 추락사 유가족 “가해자들 7년 뒤엔 잘 살고 있을 것”]]></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500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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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Thu, 16 May 2019 18:27: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perrier08@hanmail.net | 최희주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dquo;너희들과 노는 것보다 게임이 중요하다&rdquo;, &ldquo;너희 아버지는 인터넷 BJ를 닮았다&rdquo; 두 마디 말은 14세 소년이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야 하는 이유가 됐다(관련기사 :[피의자 단독 인터뷰] &lsquo;인천 중학생 추락사&rsquo; 직전 폭행의 전말 &ldquo;사망 학생은 그들의 물주였다&rdquo;). 5월 14일 인천 중학생 추락사 가해자 4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가운데 &lsquo;일요신문&rsquo;이 어렵게 피해자 유족과 인터뷰했다. 피해자의 어머니 B 씨는 &lsquo;일요신문&rsquo;과의 전화 통화에서 &ldquo;법이 왜 그런 것이냐. 왜 그렇게 (형량을) 조금 받은 것이냐&rdquo;고 억울한 마음을 드러냈다. A 군은 러시아 출신의 어머니 B 씨와 한국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자녀였다.   <img alt="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가해자 4명."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16/1557980453206287.jpg"/> 5월 14일 인천지법에서 동급생을 폭행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가해자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피해자의 어머니인 B 씨도 참석했다. 재판이 끝난 뒤 많은 취재진이 B 씨의 뒤를 쫓았지만, 그는 눈시울만 붉힌 채 말없이 법원을 떠났다. &lsquo;일요신문&rsquo;은 이날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어렵게 유가족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B 씨의 첫 마디는 &ldquo;어디서 판결문을 볼 수 있느냐&rdquo;였다. B 씨는 판결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의 양형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ldquo;피고인들이 나이가 만 14~16세에 불과한 점,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뒤늦게나마 피고인의 부모들이 보호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점&rdquo;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가해자 C 양의 경우 A 군의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노출시키는 등의 성추행을 했지만 이후 피해자의 용서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도 밝혔다.  B 씨는 &ldquo;그 누구도 용서한 적이 없다&rdquo;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ldquo;합의한 적도 없고, 용서한 적도 없다. 판결문을 듣다가 &lsquo;용서&rsquo;라는 단어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가해자 부모로부터 &lsquo;합의를 하자&rsquo;고 자꾸 연락이 오는데 나는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다&rdquo;고 했다.실제로 가해자 4명은 4월 23일 예정된 선고 공판을 앞두고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를 하겠다며 선고 기일을 미뤘다. 성추행 혐의가 추가된 C 양의 경우 반성문을 43차례 제출하기도 했다. 범행을 반성하는 점을 호소해 형량을 줄여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반성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가해자 4명이 구치소에 수감된 동안 면회를 다녀온 지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과자를 먹거나 누워서 TV를 보는 등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가해자 4명 가운데 2명은 조사 기관 조사 때부터 줄곧 피해자 사망과 관련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없다며 상해 치사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상해 치사죄는 인정하지 않은 채 유가족과 합의를 하려고 하고 있다.B 씨는 &lsquo;합의하자&rsquo;며 연락해오는 가해자 부모의 태도에서 반성의 기미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반성이라기보다는 요구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또, &ldquo;가해자 부모가 &lsquo;생활도 어려운데 합의를 하시는 게 낫지 않냐&rsquo; &lsquo;앞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합의를 하실 수 없다&rsquo; 등의 말로 합의를 요구했다. 합의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지만, 선고 공판 직전까지도 합의 금액을 올려주겠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자기 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합의를 하자고 한다. 사람 목숨 가지고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rdquo;고 말했다. 형량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4명 가운데 누구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재판부는 가해자 4명에게 각각 징역 장기 7년 단기 4년, 장기 6년 단기 3년, 장기 3년 단기 1년 6월, 장기 4년 단기 2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소년법상 최고형인 징역 10년에도 미치지 못했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른 미성년자에게는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middot;하한을 둔 부정기형(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복역 성적을 보아 석방을 결정하는 것)을 선고할 수 있다. 단기형을 채우면 교정 당국의 평가를 받고 조기에 출소할 수도 있다. 가장 적은 형량을 받은 가해자는 1년 6개월 만에 출소할 수도 있는 셈이다.B 씨는 &ldquo;왜 이렇게 (형량이) 조금 나왔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 소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너무 화가 난다. 아마 가해자들은 7년 뒤에 잘 살고 있을 것&rdquo;이라고 말했다. 옥상에서 이어진 78분은 지옥이었다. 이미 새벽까지 공원 두 곳을 돌며 폭행을 당한 상태였다. A 군이 한 가해자 아버지의 외모를 험담하고 &quot;너희들과 노는 것보다 게임이 더 중요하다&quot;고 말한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A 군에게 &ldquo;30대만 맞자. 피하면 10대씩 늘어난다&rdquo;고 협박했다. 이들은 A 군의 종아리를 걷어차 넘어뜨린 뒤, 배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온몸을 때렸다.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은 &quot;시간은 많고 사람은 없었다. 아마 밤새도록 때릴 수 있었을 것&quot;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A 군이 &ldquo;이렇게 맞을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rdquo;고 호소하자 가해자들은 옥상 난간 쪽으로 끌고 가 떨어뜨리려는 시늉을 하며 위협했다. 무릎을 꿇게 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발로 차기도 했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 A 군이 잠시 기절한 척하기도 했으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져 &ldquo;살려달라&rdquo;고 외쳤으나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더 심한 폭행을 당했다. 끝나지 않는 구타 속에서 A 군이 선택한 것은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옥상 난간 3m 아래에 위치한 에어컨 실외기로 도망치려 한 것이다. 재판부는 A 군이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보았다. 실외기에서는 A 군이 발을 디딘 흔적이 나왔다. 발자국은 1개였다. 재판부는 &ldquo;키 158cm의 피해자가 시도하기에 다소 극단적이고 무모한 탈출 방법이었으나 장시간 성인도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quot;고 밝히며 4명에 대한 상해 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한편 가해자 4명 모두 선고 공판 다음 날인 5월 15일 항소장을 제출했다.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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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빙상 1번지’ 쟁탈전 본격화…목동빙상장 새 운영업체 누가 될까?]]></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409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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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08 May 2019 15:34:00]]></pubDate>
            <category><![CDATA[스포츠종합]]></category>
            <author><![CDATA[hardout@ilyo.co.kr | 이동섭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5월 1일 서울시가 '목동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모집'  입찰을 공고했다. 사진=일요신문"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08/1557290013325473.jpg"/> [일요신문] &lsquo;한국 빙상의 메카&rsquo;라 불리는 목동빙상장이 새로운 위탁운영업체를 찾는다. 5월 1일 서울시는 &lsquo;목동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 모집&rsquo; 입찰을 공고했다. 현재 목동빙상장을 위탁운영하는 기관은 서울시체육회(회장: 박원순 서울시장)다. 서울시체육회는 2017년 1월 1일부터 목동빙상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2018년 빙상계 각종 논란이 불거지며, 목동빙상장에도 불똥이 튀었다. 목동빙상장은 소장 갑질 논란, 소장실 CCTV를 통한 직원 감시 논란, 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강매 논란 등 각종 잡음에 휩싸였다. 서울시 산하기관이 운영하는 목동빙상장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서울시가 움직였다. 서울시는 2018년 8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lsquo;목동빙상장 특별감사&rsquo;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에 따라 서울시는 목동빙상장 유태욱 소장을 비롯한 임직원 6명을 징계처분했다. 감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 이외에도 목동빙상장의 부실한 운영실태 6가지를 추가 지적했다. 서울시 감사팀은 &lsquo;경기장 사용허가(대관) 업무처리 부적정&rsquo;, &lsquo;경기장 부대시설 임대계약 부적정&rsquo;, &lsquo;경기장 내 유휴공간 사용료 징수 부적정&rsquo;, &lsquo;예산&middot;회계 처리 부적정&rsquo;, &lsquo;빙상장 관리&middot;운영 위&middot;수탁사항 미준수&rsquo;, &lsquo;서울특별시체육회 정관 미준수&rsquo; 등 총 6개 항목에서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다. 감사를 마친 뒤인 2018년 11월 8일 서울시체육회장 직을 겸직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목동빙상장 관련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ldquo;감사결과 사실로 확인된 비위사항(인권침해, 회계처리 부적정 등)이 서울특별시 목동실내빙상장 관리&middot;운영 위&middot;수탁 협약서 제20조 &lsquo;협약의 해지&rsquo; 사유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검토 후 해당할 경우 관련 절차에 따라 협약 해지 조치하고, 신규 위&middot;수탁 협약을 체결하도록 통보하라&rdquo;는 내용이었다.   <img alt="서울시체육회 회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2017년 1월 1일부터 목동빙상장을 관리해온 서울시 체육회는 2019년 7월 1일부로 목동빙상장 관리에서 손을 뗄 예정이다. 사진=일요신문"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508/1557290076754361.jpg"/> 박 시장의 지시 내용을 접한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ldquo;박 시장 지시엔 &lsquo;이번 감사 결과로 문제된 사안들로 위&middot;수탁 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협약을 해지하라&rsquo;는 함축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rdquo;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빙상계 복수 관계자의 분석은 맞아 떨어졌다. 서울시체육회는 7월부터 목동빙상장 관리에서 손을 떼게 됐다. 이제 관심은 무주공산이 된 &lsquo;빙상 메카&rsquo;의 새 운영업체에 쏠린다. 새롭게 선정될 목동빙상장 운영업체는 2019년 7월 1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3년간 목동빙상장 관리&middot;운영 권한을 얻는다. 여기엔 경기장 사용허가, 매점 등 승인된 재임대시설 관리&middot;운영, 공공체육시설 목적에 반하지 않는 수익사업 권한까지 포함돼 있다. 한 빙상인은 &ldquo;목동빙상장은 우리나라에서 장사가 가장 잘 되는 빙상장 중 하나다. 종로가 &lsquo;정치 1번지&rsquo;로 불리는 것처럼 목동은 &lsquo;빙상 1번지&rsquo;인 셈이다. 목동빙상장을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한국 빙상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까닭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많은 업계 관계자가 목동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 모집 입찰에 주목하고 있다&rdquo;고 전했다. 빙상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입찰엔 빙상은 물론 아이스하키 유력 인사들까지 &lsquo;총력전&rsquo;을 예고하며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인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 민간 운영업체들 역시 목동빙상장 입찰에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lsquo;목동빙상장 관리위탁 운영기관 공개 모집&rsquo; 입찰 신청은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이어질 계획이다. 그리고 5월 24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서울특별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회의실에서 수탁자 선정심의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수탁자 선정심의위원회는 입찰 신청 업체 중 최고 득점자를 선정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2019년 봄 &rsquo;목동빙상장 운영권&lsquo;이 빙상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lsquo;빙상 1번지&rsquo;를 차지할 새로운 운영업체로 누가 선정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16] 낙동강변 2인조, 다시 법정 선다]]></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22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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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Fri, 19 Apr 2019 12:37: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가 26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다. 1993년, 강도살인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두 남자의 재심개시 절차가 시작됐다.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김문관 부장판사)는 오는 5월 23일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rsquo; 재심에 관한 심문기일을 열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심문기일은 재심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다. 재판부가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직접 듣고 그 사유가 합당한지 확인한다. 통상 재심 개시 여부는 서면으로 심리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별도의 심문기일을 지정해 낙동강변 2인조와 검찰 측 의견을 직접 듣고 판단하기로 했다.  <img alt="지난 2017년 5월 장동익, 최인철 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419/1555644640752509.jpg"/> 이번 법원 결정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 발표 하루 만에 내려졌다. 과거사위는 지난 4월 17일 &ldquo;2인조는 당시 경찰의 고문과 폭행으로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검찰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다&rdquo;고 밝혔다.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과거사위 발표 직후 부산고법에 관련 자료와 재심 심문기일 지정 요청 의견서를 다시 제출했다.법원이 낙동강변 2인조 장동익, 최인철 씨 측 변호인과 검찰에 각각 보낸 &lsquo;석명준비명령&rsquo;을 보면, 재판부는 &ldquo;이 사건의 신속하고 적정한 진행을 위해 재판부가 예정하고 있는 &lsquo;구체적인 심리방향&rsquo;을 밝힌다&rdquo;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먼저 과거사위가 발표한 &lsquo;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rsquo;에 대해 검찰 측에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고, 장동익, 최인철 씨 변호인 측에는 과거사위 발표내용을 포함해 재심사유의 요지를 다시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재판부는 또 심문기일에서 검찰 과거사위가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증거를 중심으로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사유에 따라 사건 발생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부분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그밖에 과거사위 발표의 구체적인 근거가 된 증거들에 대해 재판부가 직접 &lsquo;개별적인 증거조사&rsquo;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지만 1년 뒤인 1991년, 경찰은 돌연 장동익, 최인철 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고문과 폭행 등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구속한 뒤 검찰로 송치했다. 이들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한 뒤 2017년 5월,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목동빙상장 특정감사 결과보고’ 문서로 드러난 ‘빙상 메카' 둘러싼 각종 의혹 실체]]></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1958</link>
            <guid>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1958</guid>
            <pubDate><![CDATA[Wed, 17 Apr 2019 17:09:00]]></pubDate>
            <category><![CDATA[스포츠종합]]></category>
            <author><![CDATA[hardout@ilyo.co.kr | 이동섭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 <img alt="'한국 빙상의 메카', 서울시 양천구 소재 목동 실내빙상장. 사진=일요신문"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417/1555471840379503.jpg"/> [일요신문] &lsquo;한국 빙상의 메카&rsquo; 목동빙상장을 둘러싼 숱한 논란이 일단락됐다. 서울시가 목동빙상장 유태욱 소장 등 임직원 6명에 대해 징계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 가운데 유 소장을 비롯한 임직원 4명은 중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018년 여름, 목동빙상장은 &lsquo;소장 채용비리 의혹&rsquo;, &lsquo;직원을 향한 소장의 폭언 의혹&rsquo;, &lsquo;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강매 의혹&rsquo; 등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여러 의혹이 고개를 들자, 서울시는 2018년 8월 17일 목동빙상장 유태욱 소장을 업무배제 조치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8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2달에 걸친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서울시는 특정감사를 통해 여러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 파악에 주력했다. &lsquo;일요신문&rsquo;이 입수한 &lsquo;목동빙상장 특정감사 결과보고&rsquo; 문서에 따르면, 언론보도를 통해 불거진 6가지 의혹 중 4가지 사안에 대해 문책이 요구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관계 확인 이후 문책이 요구된 사안은 &lsquo;소장의 강사 및 직원들에 대한 막말&rsquo;, &lsquo;소장실 CCTV를 통한 직원 근로감시&rsquo;, &lsquo;엠스플뉴스 취재 관련 경비원 겁박&rsquo;, &lsquo;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강매&rsquo; 등 항목이었다. &lsquo;소장의 강사 및 직원들에 대한 막말 여부&rsquo; 항목에선 목동빙상장 유태욱 소장에 대한 문책이 요구됐다. 직원들에 대한 반말 및 욕설 등으로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로 인해 시체육회 품위를 손상한 사실이 인정된 까닭이다. &lsquo;소장실 CCTV를 통한 직원 근로감시 여부&rsquo; 항목에선 &quot;소장이 CCTV를 통해 직원들의 근무상황을 모니터링했다&quot;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밝혀졌다. 특정감사 결과보고 문서에 따르면, 유 소장은 CCTV 모니터를 통해 빙상장 청소 상태 등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해 직원을 질책하거나 인터폰을 통해 업무지시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시 감사팀은 감사에서 밝혀진 사실에 근로자의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이 사안에 대해서도 유 소장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다만 감사 결과 &ldquo;CCTV 카메라 각도를 수시로 바꿨다&rdquo;는 언론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lsquo;엠스플뉴스 취재 관련 경비원 겁박 여부&rsquo;와 관련해선 목동빙상장 시설부장의 문책이 요구됐다. 서울시 감사팀은 &ldquo;경비원을 겁박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지만, 시설부장이 업무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행동으로 언론에 보도됐다&rdquo;는 이유로 시설부장의 문책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lsquo;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강매 여부&rsquo; 관련 항목에선 강사 채용 담당자에 대한 문책이 요구됐다. 문서에 따르면, 해당 음료수 구매자들이 자의로 음료를 구매했다고 진술해 강매 사실에 대해선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강사 채용 담당자가 특정 업체 스포츠 음료수를 소개한 행위는 서울시체육회 임직원 행동강령 위반 사항으로 지적됐다.&lsquo;서울시체육회의 소장 공개채용 관련 의혹&rsquo;, &lsquo;쓰레기봉투 빌려준 직원 사직 강요 의혹&rsquo; 등 2개 사안과 관련한 내용은 내부종결 처리됐다. 문서에 따르면, 서울시 감사팀은 해당 의혹들과 관련해 &ldquo;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거나(쓰레기봉투 빌려준 직원 사직 강요 내용 관련), 행정조사의 한계로 언론 보도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소장 공개채용 관련 의혹)&rdquo;고 코멘트했다.이 밖에도 목동빙상장 특정감사에선 빙상장 운영실태 관련 지적도 이어졌다. 서울시 감사팀은 &lsquo;경기장 사용허가(대관) 업무처리 부적정&rsquo;, &lsquo;경기장 부대시설 임대계약 부적정&rsquo;, &lsquo;경기장 내 유휴공간 사용료 징수 부적정&rsquo;, &lsquo;예산&middot;회계 처리 부적정&rsquo;, &lsquo;빙상장 관리&middot;운영 위&middot;수탁사항 미준수&rsquo;, &lsquo;서울특별시체육회 정관 미준수&rsquo; 등 총 6개 항목에서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다.감사 결과에 따르면, 목동빙상장은 대관비 청구나 단체와의 계약시에 사용하는 관인을 회장의 사전 승인 없이 임의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서울시체육회 이사회 의결 없이 &lsquo;목동실내빙상장 처무규정 및 취업규칙&rsquo;을 소장 전결로 제정 및 시행한 사례 역시 확인됐다. 서울시나 서울시체육회의 공식적인 승인 절차를 건너 뛴 행정사례 역시 다수 포착됐다.한편, 서울시 감사팀은 2018년 9월 7일 &lsquo;목동빙상장 상조회 통장의 현금 입금액 출처와 납부받은 현금 대관료&rsquo; 관련 내용에 대해선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39;제100회 전국 동계체전 쇼트트랙&#39;, &#39;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39; 등 굵직한 대회가 빈번하게 열리는 목동빙상장은 &#39;한국 빙상의 메카&#39;라 불린다. 현재는 서울시체육회(회장-박원순 서울시장)가 목동빙상장을 위탁운영하고 있다.서울시에서 진행한 이번 감사결과에 따르면, 2018년 11월 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quot;&#39;감사결과 사실로 확인된 비위사항(인권침해, 회계처리 부적정 등)이 &#39;서울특별시 목동실내빙상장 관리&middot;운영 위&middot;수탁 협약서&#39; 제20조 &#39;협약의 해지&#39; 사유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검토 후, &#39;협약의 해지&#39; 사유에 해당할 경우 관련 절차에 따라 &#39;협약 해지&#39; 조치하고, 신규 위&middot;수탁 협약을 체결하도록 통보하라&quot;는 지시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description>
        </item>
                <item>
            <title><![CDATA[[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⑮] 이젠 "그래서 내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3195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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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Wed, 17 Apr 2019 16:26:00]]></pubDate>
            <category><![CDATA[사회]]></category>
            <author><![CDATA[moon@ilyo.co.kr | 문상현 기자  ]]></author>
            <description><![CDATA[[일요신문] 1991년 11월 11일 오후, 최인철 씨는 경찰차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겐 작은 희망이 있었다. 3일 전 경찰에 체포돼 이곳에 앉아 있지만 사실대로만 얘기하면 풀려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탄 차가 처음 보는 길을 따라 달린다. 최 씨는 창문에 비치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낯선 풍경을 바라본다. &ldquo;내려&rdquo; 경찰이 팔을 잡아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부산 하단 1동 파출소. 1층 사무실을 지나쳐 2층, 3층으로 오른다. 옥탑방 같은 가건물이 보인다. 문틈 사이로 시큼한 쇠 냄새가 퍼진다.&ldquo;옷 벗어&rdquo; 최인철 씨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덩치 큰 경찰관이 뒤에서 그의 머리채를 잡아챈다. 앞에 선 다른 경찰은 그를 밀어 넘어 뜨린다.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쪼그린 채로 무릎을 감싸 쥐게 한다. 쇠파이프가 최 씨의 무릎과 팔 사이에 들어온다.세상이 뒤집어 진다. 책상과 책상 사이에 무릎과 팔에 낀 쇠파이프가 걸리면서 최 씨의 머리가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눈앞엔 경찰관들의 구둣발이, 불과 몇 초전까지 자신의 발로 딛고 서있던 바닥이 보인다.주전자에서 쏟아지는 노란색 물이 최 씨의 코 속으로 들어온다. 겨자 냄새다. 코 속이 따갑다. 숨도 쉬지 못한다. 견딜 수가 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때,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ldquo;낙동강에서 하나 더 했지? 낙동강에서 죽은 여자, 니가 때려 죽였지?&rdquo; 그 순간 최인철 씨는 직감했다. &ldquo;이곳에선 작은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rdquo;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은 친구 장동익 씨와 함께 살인범이 된다.   <img alt="'낙동강변 2인조' 최인철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417/1555471451158000.jpg"/> # 검찰 과거사위 &quot;낙동강변 사건, 경찰 고문 있었다&quot;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시신 외에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지만 1년 뒤인 1991년 전환점을 맞았다. 경찰이 &lsquo;낙동강변 인근에서 공무원을 사칭하는 남성 2명이 있다&rsquo;는 신고를 받고 이들을 임의동행으로 연행하면서부터다. 경찰은 범행 수법과 장소 등이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비슷하다며 2인조를 용의자로 지목해 검찰로 송치했다.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 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한 이들은 &ldquo;당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허위자백이 있었다&rdquo;며 무죄를 주장해 왔다. 경찰의 기소 의견에 검찰은 사형 구형, 그리고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당시 수사기관과 사법부 모두 &lsquo;낙동강변 2인조&rsquo;가 범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기관들의 판단에 따라 낙동강 2인조는 21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고, 지금도 &#39;살인범&#39;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족쇄에 묶여 있다. 하지만 2019년 4월 17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정반대의 결과를 내놨다. 과거사위는 &quot;최인철&middot;장동익 씨는 살인범이 아니다. 경찰은 고문으로 이들에게 허위자백을 받았고, 검찰은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quot;고 결론 내렸다. 과거사위는 최 씨와 장 씨를 비롯해 사건 관계자들과 전문가 등을 조사한 결과, 2인조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간 직후부터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ldquo;경찰의 물고문 등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rdquo;고 주장했다.과거사위는 2인조가 설명하는 고문의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객관적으로 확인한 내용과도 일치해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여기에 2인조가 경찰에 체포되기 2개월 전인 1991년 9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했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을 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또 과거사위는 2인조가 고문을 통해 받은 또 다른 혐의 가운데 하나인 &lsquo;현직 경찰관 특수강도 사건&rsquo;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2인조의 살인 혐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을 살인사건과 비슷하게 만들어 끼워 넣었다는 얘기다. 실제 당시 부산 중부경찰서에 근무하던 한 경찰관 A 씨는 &ldquo;낙동강변 살인 사건 한 달 전인 1989년 12월 낙동강변에서 한 여성과 차에서 경치를 감상하던 중 칼을 든 괴한 2명에게 돈을 뺐겼다&rdquo;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사위 조사 결과, 사건 발생 당시 A 씨가 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lsquo;르망&rsquo; 차량에 해당하는 차량번호는 없었고, 트렁크에 갇혀 비상탈출 장치를 눌러 탈출했다는 A 씨의 주장과 달리 이 장치도 없었다.피해를 주장하는 현직 경찰관의 진술 외에 실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과거사위의 설명이다. 그밖에 과거사위는 당시 경찰이 최 씨와 장 씨에게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참고인들의 진술조서를 왜곡하고 은폐한 정황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img alt="과거사위는 현직 경찰관 특수강도 사건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2017년 4월, 르망 자동차를 수소문해 피해를 주장하는 현직 경찰관의 진술을 그대로 재현했지만 비상탈출 등은 불가능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417/1555471518806484.jpg"/> # 위원회 &quot;검찰 부실수사, 2인조 고문 주장 외면&quot;위원회는 검찰에도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2인조가 검찰 수사과정에서부터 고문 등 가혹행위로 어쩔 수 없이 자백하였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수사 검사는 이 진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재판에 넘겼다는 이유다.  위원회는 &ldquo;2인조가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한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자백진술과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들 사이에는 여러 모순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백진술에만 기대 수사를 진행했다&rdquo;며 &ldquo;특히 당시 수사검사는 국과수로부터 회신 받은 감정서의 내용조차 왜곡했다. 이는 검사의 객관의무를 저버린 것일 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처벌에만 급급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원칙을 외면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rdquo;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이번 낙동강변 사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할 경우 이를 검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강력사건의 경우 주요 증거물에 대해 기록 보존 또는 공소시효 만료까지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피조사자의 실질적인 조서 열람권 보장, 수사기록 진실성 확보 절차를 위반한 검사 및 수사관 등에 대한 징계 절차 마련 등도 함께 권고했다.이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위원회 발표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17일 &#39;일요신문&#39;과의 통화에서 &ldquo;과거사에 대한 정리는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rdquo;며 &ldquo;이번 조사 결과에는 2인조의 한을 풀어주는 의미와 위원회 권고 사항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적 개선 방안이 담겨 있다&rdquo;고 말했다.한편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소속 이정화 검사가 주도적으로 조사를 이끌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관련자들을 직접 면담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내가 하지 않았다낙동강변 2인조 장동익, 최인철 씨는 지난 2017년 5월 8일 재심을 청구했다. 이번 검찰 과거사위 공식 발표로 이들의 재심 개시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앞서 낙동강변 2인조 사건 재심을 담당하는 부산지방검찰청은 법원에 &ldquo;검찰 과거사위 판단을 존중하겠다&rdquo;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고, 법원 역시 최근 과거사 위원회에 공식 발표 일정을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img alt="'낙동강변 2인조' 장동익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19/0417/1555471718873549.jpg"/> 지난 4월 8일 오후, 장동익 씨는 산책을 했다. 자주 다니는 익숙한 길이지만 시각장애 1급인 그는 지인들이 한 시간이면 다녀올 거리를 두 시간에 걸쳐 걸어야 한다. 그날은 유난히 걷고 싶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날은 과거사위가 앞서의 내용을 담은 대검찰청 진상 조사단의 최종 보고서를 채택한 날이다. 그는 &ldquo;이제 끝나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 왔나하는 생각도 들고, 이게 기쁜건지 서러운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rdquo;며 &ldquo;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거란 막연한 생각만 해왔다. 그날이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rdquo;고 말했다.집으로 돌아온 장 씨는 몸을 씻었다. 역시 늘 해오던 일이지만 이날 만큼은 다른 것도 씻어 낸 기분이 들었다. 그게 어떤 건지 말로 설명할 순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고 했다. 그동안 &ldquo;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다&rdquo;고 말하던 그가 이제는 &ldquo;그래서 내가 하지 않았다&rdquo;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1991년,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서에 처음 들어간지 무려 29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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