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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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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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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BuildDate>Sun, 22 May 2005 00:20:05</lastBuildDate>
        <pubDate>Sun, 22 May 2005</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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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요신문 | 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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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일본 검찰 vs 변호사 숙명의 대결(마지막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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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22 May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22/1116688805308770.jpg" alt=""/>   야스다 변호사와 일본 검·경간의 본격적인 대결은 지난 98년부터 시작됐다. 야스다 변호사가 자신이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는 부동산회사가 채권자로부터 회사 소유 빌딩 임대료를 압류당할 위기에 처하자 회사 임원진에게 유령회사를 이용, 임대료 2억1천만엔을 은닉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일본 경시청에 전격 검거된 것이었다. 그 후 5년간 치열한 법정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지난 2003년 야스다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 아직도 ‘힘겨루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후 야스다 진영은 약 1천3백 명 이상의 변호사까지 가세, “검찰이 사형제를 반대하고, 오움진리교 교주 변호를 맡아 검찰을 맹비난한 야스다 변호사를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있다”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검찰도 1심에서 짓밟힌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야스다 변호사는 일본 법조계 내에서 ‘절대 야인’으로 꼽힌다. 시민을 옹호하는 자세와 탁월한 변호 기술로 ‘변호사 중의 변호사’라는 칭호가 붙기도 했다. 그가 돌연 일본 경시청에 체포된 것은 98년 12월6일이었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강제집행방해죄. 야스다 변호사가 고문변호를 맡고 있던 부동산회사 ‘슨즈’사가 채권자로부터 회사 소유 임대 빌딩 임대료를 압류당할 상황에 처하자 회사로 하여금 유령회사(ABC사 등)를 이용해 임대료(총액 2억1천만엔)를 은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공교롭게도 야스다 변호사를 경시청에 고발한 것은 동료 변호사였다. 그를 낭떠러지로 민 사람은 정부 특수법인으로 예금보험기구에서 100% 출자한 일본주택금융채권관리기구(주관)의 사장이자 오사카 변호사협회 회장인 나카보 변호사였다.야스다 변호사는 왜 자신이 검거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검찰은 야스다 변호사의 공소 사실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슨즈사는 도심에 약 30채의 임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아자보 가든하우스와 시로가네다이 선플라자의 임대료가 주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이곳 임대 실적이 좋지 않아 슨즈사는 현금 유동성에 큰 위기를 맞았고 순즈사 빌딩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논뱅크’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게 됐다. 결국 93년 2월12일 논뱅크가 슨즈사에게 ‘연체 이자도 갚지 못하면 빌딩 임대료를 압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당황한 슨즈사 S사장은 야스다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그 쪽으로 빌딩 임차권을 넘기고, 유령회사가 입주자에게 빌딩을 재임대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하면 압류를 피할 수 있다’고 일러줬다. 또한 임대료 수납 계좌를 유령회사 명의 계좌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4일 후, 논뱅크는 ‘5일 이내에 연체 원리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기한(期限)의 이익을 상실한다’는 최고장을 슨즈사에 보내왔다. S사장은 2월19일 또 다시 야스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대료 은닉’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입주자에게 임대료 수납처가 변경됐음을 알리는 통지서 견본을 보여주면서, 유령회사의 계좌를 이용하라고 다시 조언했다. 그때까지 갈팡질팡하던 S사장도 야스다 변호사가 일러주는 대로 임대료를 유령회사 계좌에 은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검찰은 슨즈사가 강제집행을 피할 목적으로, 임대료를 은닉했기 때문에 강제집행방해죄를 적용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임대료 차압을 막기 위해 순즈사에게 유령회사를 만들어 임대료 은닉을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야스다 변호사는 첫 공판부터 검찰의 기소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92년 11월께 슨즈사 사장으로부터 임대료 차압에 관한 얘기를 들은 뒤, 내가 한 일은 슨즈사를 여러 계열사로 분리 독립시킨 뒤 슨즈 본사가 자산을 매각해서 채무를 변제하도록 제안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본사로부터 분리된 계열사에 본사 건물 기존 입주자에 대한 임대인 지위를 양도하고, 반면 새 회사는 입주자로부터 받은 임대료 중 대략 60%를 일괄 임대임차료 명목으로 본사에 지불하라고 조언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임대인 지위의 양도”라고 못 박았다. 거짓 양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애당초 강제집행을 방해할 목적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이처럼 ‘임차권의 계열사 양도’가 쟁점 화두로 부각됐다. 검찰측 입장대로 임대료 압류를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아니면 슨즈사의 생존을 위한 전략 차원이었는지를 놓고 재판 때마다 양측의 팽팽한 공방전이 계속됐다.접전 양상이 야스다 변호사쪽으로 기운 것은 공교롭게도 검찰이 증거로 내세운 슨즈사의 은행 계좌 입출금 기록 때문이었다. 야스다 변호사가 우연하게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던 중 93년 4월30일 다이치은행 교토구 지점에서 2백만엔이 인출돼 논뱅크에 지불된 기록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더욱 이상한 것은 이 2백만엔이 인출된 지점이 지바현 교토구 지점으로 도심과는 떨어진 은행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야스다 변호사는 수소문 끝에 슨즈사 경리를 오랫동안 맡아온 Y양이 교토구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야스다는 Y양이 무언가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고 Y양이 왜 회사 돈을 인근 은행에서 인출했는지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논뱅크 입금 계좌 내역에 슨즈사로부터 2백만엔이 입금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2백만엔이 인출된 뒤 어디론가 사라진 셈이었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의 회계장부를 다시 조사했다. 놀랍게도 슨즈사가 일본 수도국과 도쿄 전력에 지불한 수도광열비가 매년 약 9천만엔에 달한 사실이 발견됐다. 더구나 96년 12월17일의 지출 △전기료 64만9천5백72엔 △수도료 35만4백28엔(총 1백만엔), 같은 날 △전기료 1백8만3천4백66엔 △수도료 91만6천5백34엔(총 2백만엔) 등 내역별로 출금된 액수가 모두 ‘우수리’가 없었다는 점이 추가로 확인됐다. Y양이 회사 돈을 빼돌린 뒤 장부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무렵 도쿄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됐다. 먼저 검찰측은 슨즈사의 채권자인 논뱅크 담당자들을 소환하고 그들이 당시 슨즈사에 들어갈 임대료를 압류하려 했던 사실을 증언시켰다. 뒤이어 검찰은 Y양을 증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검찰 신문에서 Y양은 S사장으로부터 슨즈가 입주자로부터 받는 임대료를 슨즈사 계좌가 아닌 신규 개설한 ‘ABC’사 계좌로 입금시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기존 슨즈 계좌에 입금시켰다고 진술했다. ‘야스다 변호사와 S사장이 유령회사 계좌에 임대료를 은닉했다’는 검·경의 수사 결과가 재판부 앞에서 ‘허구’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애초부터 돈을 빼내기로 작정한 Y양은 새로 생긴 ABC사 계좌에 거액을 입금시켰다 인출할 경우, 금방 들통이 날 것을 우려해 기존 슨즈 계좌에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입금하고 바로 빼돌린 것이었다. 변호사의 반대신문에서도 Y양의 횡령 사실이 확인됐고, 최종적으로 일본 경시청과 도쿄지검의 자체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검찰은 Y양의 업무상 횡령 사실을 그대로 묻었다. Y양의 횡령 사실을 인정할 경우, 야스다 변호사와 S사장의 임대료 은닉 혐의가 부정되고 , 수사가 잘못됐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Y양은 자금 압박을 계속 받아온 회사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 퇴직금을 미리 받은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궤변을 늘어놓으며, 선고 전까지 Y양을 옹호했다. 이러던 와중에 검찰측이 공소장에서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라고 단정한 ABC사도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실체가 있는 회사로 밝혀진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슨즈사 회계 기록상에 ABC사의 스탬프 제작비, 전화 가설비 3건 등을 포함해 회사 간판 및 홍보자료 제작비 등이 1년여에 걸쳐 지불된 것으로 기재된 것이었다. 결국 야스다 변호사는 98년 경찰에 체포된 지 5년 만인 2003년 12월24일 동경지방법원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 첫 공판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야스다 변호사를 고발했던 나카보 변호사는 주택금융채권관리기구와 관련한 사건으로 기소돼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사형 폐지와 오움진리교단에 대한 파괴방지법 적용 문제로 검찰과 첨예하게 대립해온 야스다 변호사를 찍어 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적 수사’를 강행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스다 변호사는 경찰이 오움진리교가 도심에서 가스를 살포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그간 검·경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야스다 변호사 사건은 수사기관과 변호사들이 세대결을 벌인 상징적 사건으로도 볼 수 있다. 야스다 변호사가 오움진리교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도중 전격 구속 수감되고 결국 누명이 벗겨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많은 변호사들이 가세해 응원 사격을 해줬다. 그리고 야스다를 비롯한 변호사들을 이제 검·경과의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그리고 변호사 모두 ‘법전’을 들고 일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때때로 색깔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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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법정 뜨겁게 달군 음란물 공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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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15 May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15/1116084005308760.jpg" alt=""/>    ▲ 이현세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수사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외설 시비가 거론된 작품은 염재만의 소설 다. 이 소설이 문제가 된 것은 69년의 일. 의 13장과 1장이 시비의 대상이었다. 그 내용은 “당신 사타구니를 좀 봅시다. 얼마나 도도한지 봅시다. …그는 날쌔게 내 볼에 입 맞추고 내 얼굴을 온통 핥습니다. 서방님 내 마음에 이 오진 것이 ‘뚝보 곰새끼’ 하면서 미친 듯이 나를 쓰러뜨립니다. 자신의 옷도 벗고 내 옷도 익숙하게 벗깁니다. 서로의 나체만이 남습니다.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격이 요동쳐갑니다. …둘 사이에는 막막한 각고의 바다만이 있습니다. 그 감미로운 바다 심연 구렁텅이에 우리는 빠져갔습니다. ‘좋지 응? 여보 좋지?’ 그는 내 귀에 대고 흐느끼면서 속삭였습니다. ‘으응, 좋아’ 숨질리듯이 나는 응답했습니다. 어느덧 기진하여 둘은 널부러집니다”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소설이 형법상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고 하여 69년 4월 음란 문서제조 등의 혐의로 작가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이에 불복한 검사의 상고도 기각됐다. 대법원은 75년 12월29일 “무릇 문학작품의 음란성 여부는 그 작품 중 어느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 논할 수는 없고 작품 전체와 관련시켜 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이 인간에 내재하는 향락적인 성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매듭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니 이 소설은 음란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그러나 20여 년 후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소설 와 장정일씨의 소설 가 되레 유죄판결을 받자 음란물 시비 논쟁은 다시 극에 달했다. 92년 음란 시비에 휘말린 는 3년여간에 걸친 지루한 공방전 끝에 유죄가 인정됐다. 92년 12월28일 1심 재판부는 마 교수에 대해 음란물 제조 및 배포죄를 적용,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검찰측과 피고인측에서 각기 추천한 ‘감정인’, 작가 하일지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민용태 교수가 재판부의 명령으로 소설에 대해 공동 감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위 감정인들은 이 소설의 음란성을 부정하는 감정서를 제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시 서울대 법학과 안경환 교수, 서강대 영문학과 이태동 교수, 신경정신과 의사 겸 시인 신승철 박사로 하여금 소설을 감정케 했는데, 안 교수와 이 교수는 ‘음란성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신 박사는 ‘음란성이 부정된다’는 취지의 감정서를 제출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소설의 음란성을 인정하고 94년 7월13일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95년 6월16일 대법원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15/1116084005308761.jpg" alt=""/>    ▲ 마광수  “이 사건 소설의 주인공인 ‘사라’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성충동이 강해 정상의 학생과는 달리 빗나간 학교생활을 한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화실에 나가 나중에 대학선배가 되는 화실 주인 미대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한다. ‘사라’는 이 경험을 되레 즐겁게 여긴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그와 가학적 심리 속에서 애욕 행각을 벌이고 나이트클럽 댄서, 룸살롱 호스티스로 생활하며 무차별하게 성관계를 즐긴다. 이러한 행각은 처음 만난 남자와의 섹스, 중학 동창생과 동성연애, 그룹섹스 등 기이하고 난잡한 성행위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라’는 한국과 한국인을 멸시하고,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우월하다고 찬미한다. 대학 교수를 변태성욕자와 음탕한 인물로 등장시키고, 여대생과 교수 간의 맞담배질을 미화시킨다. ‘사라’가 새로운 섹스 상대를 찾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 전체의 묘사 방법이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성행위를 선정적 필치로 묘사하고 있고, 더구나 이러한 묘사가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구성이나 전개에서도 예술성, 사상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않다.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우는 것으로밖에 인정되지 않는다.”재판부는 소설의 묘사 방법과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려는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작가 장정일씨 소설 도 음란성 시비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사건이다. 지난 97년 1월6일 오전 10시 서울지방검찰청에 소환돼 출판 경위 등을 조사받은 장씨에게 씌워진 혐의도 역시 ‘음란 문서 제작 및 판매혐의’였다. 장씨는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시 장씨의 변호를 받은 이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장씨도 마 교수의 경우처럼 유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38세 유부남인 작가 ‘제이’가 서울과 여러 도시를 다니며 18세 여고생 ‘와이’와 벌이는 괴벽스럽고 변태적인 섹스행각의 묘사를 크게 문제 삼았다. 변호를 맡은 강 전 장관은 장씨 소설의 주제를 고려해 달라고 재판부에 강력히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소설이 당시 사회의 개방된 성 관념보다 음란하지 않다고는 볼 수 없다며 장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마 교수나 장씨의 사례에서 나타난 법원의 음란물의 판단 기준은 소설 내용과 묘사가 ‘성적수치심과 성적 도의 관념을 현저히 해치느냐’의 여부였다. 그러나 당시 법조계 내에서는 유죄를 내린 재판부의 판단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검찰과 재판부의 시각이 일원화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무렵, 이현세씨의 가 도마 위에 올랐다. 는 이씨가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97년 1월 출간된 만화다. 이 작품도 출간되자마자 음란성 시비에 휘말렸다. 더구나 성인용과 청소년용으로 나뉘어 출간된 는 “비록 성인용이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른바 ‘청소년 유해론’ 시비까지 더해져 위기를 맞았다. 수사를 맡은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 소년전담팀 검사들이 ‘청소년 유해론’을 밀고 나선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검찰은 조사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성인용 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고, 청소년용은 전체면 중 29장면이 미성년자에게 잔인하고 난잡한 폭력과 성문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보호법을 적용, 이씨를 약식 기소했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15/1116084005308762.jpg" alt=""/>    ▲ 장정일  이씨의 만화가 음란성 시비에 휘말릴 무렵, 일본 만화에서 묘사된 학생 서클의 이름을 따서 폭력 조직을 만든 중·고등학교 일진회 가입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연이어 구속됐다. 중·고교생들이 직접 만든 일명 ‘빨간마후라’라는 섹스비디오가 전국적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청소년의 성문화 실태와 일본 폭력만화에 대한 위기감이 사회 전체로 퍼지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등에 업고 검찰은 성인용 만화를 제작하고 게재한 스포츠신문 고위층과 만화가들을 ‘미성년자보호법위반’으로 대거 기소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와중에 이씨에게도 1심에서 벌금 3백만원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씨는 2001년 6월 항소심에서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2003년 1월4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법원은 마 교수와, 정씨 판례와는 다르게 이씨의 만화에서 등장한 노골적 묘사들이 만화 전체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는 판단을 내렸다. 만화에서는 여자가 소변을 보다가 구렁이와 마주쳐 교미하는 그림과 여자가 곰, 호랑이 등 여러 짐승들의 아이를 낳는 장면 등 상상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이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장면들이 만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점 ▲만화의 구독 대상이 신화나 역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나 관심이 있는 약 15세 이상의 미성년자들이고 ▲이 장면들을 독자들이 신화 속에서나 원시시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고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 만화의 유해성을 부정했다.결국 만화가의 승리로 끝난 음란 논쟁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이 최대한 고려되기는 했으나 음란물의 규제가 느슨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경우, 작품에서 어떠한 성적인 행위묘사가 ‘사회통념’에 의해 ‘명백하게 음란한’(patently offensive) 것으로 지각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연구가 수행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음란성 여부에 대한 사회통념은 지역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특히 대도시 중심부에서는 음란이라는 단어에 아주 관대한 반면 시골에서는 엄격하게 반응한다는 결과가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경우로만 따진다면 ‘성적 도의 관념’이라는 잣대는 보편적 기준이 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점에서 도덕적 개념을 ‘포르노그라피’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포르노그라피’가 갖는 유해성을 ‘하드코어’와 ‘소프트코어’로 구분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전자에 대하여는 형법상 엄격히 금지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청소년이나 동의하지 않은 성인에게 배포하는 것만 처벌하자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음란물에 대한 정의의 객관화·합리화를 추구하면서 청소년의 효과적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복안인 셈. 음란물에 대한 기준과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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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과천 친부모 살인 vs 유영철 연쇄살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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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08 May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08/1115479205308750.jpg" alt=""/>    ▲ 과천 친부모 살인 범인의 책장.  지난 2000년 5월 일어난 ‘과천 친부모 토막살인 사건’. 당시 이 사건은 살해당한 부부의 둘째아들 이아무개씨(당시 24세)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동안 세상을 들끓게 했던 사건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명문대학에까지 진학한 이씨가 부모를 무참히 살해했다는 점에서 꽤나 충격적인 뉴스였다.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5월21일 새벽 5시 과천 별양동 J아파트에서 일어났다. 평소 엄한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의기소침하던 이씨가 열흘 전 부모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자 결국 부모를 살해한 것이었다. 이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이씨는 혼자 양주를 반 병 정도 마신 후 망치를 집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혼자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이마를 세 차례 내리쳐 숨지게 했다. 네 시간 뒤인 오전 9시에는 아버지 방으로 건너가 아버지 이마를 한 차례, 뒤통수를 두 차례 망치로 내려쳐 살해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아들은 이성을 잃고 톱과 가위, 칼 네 자루를 이용, 부모의 시신을 토막까지 냈다. 토막 난 어머니 시신과 아버지 시신은 결국 아들에 의해 서울 각 지하철 역 쓰레기통 및 아파트 및 주변 공원 쓰레기장에 나누어 버려졌다. 사건 발생 며칠 뒤 공원 쓰레기장에서 토막 난 시신을 발견한 환경미화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들의 ‘패륜 살인’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왜 부모를 죽여야만 했을까. 이씨가 세상 윤리를 다 저버린 것은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에 대해 상당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해병대에서 오랫동안 장교 생활을 해온 부친의 군대식 가정교육 방식을 무척 두려워 했던 것이다. 이씨는 해사 출신인 아버지와 명문 여대를 졸업한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86년 전역할 때까지 가족과 떨어져 지냈고, 이씨와 형은 어머니와 살았다. 멀리 떨어져 있었던 부모는 평소 자주 다투었고 급기야 각방을 썼다고 한다.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이혼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이씨는 언젠가부터 어머니에게서도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부모와 등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이씨의 부모가 99년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가출한 형의 아파트를 사준 일이었다. 그전까지 부친이 바라던 서울대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K대학에 진학했고, 살아오면서 부모님 말 거역한 적 없이 나름대로 효자 노릇을 해왔다고 자위해온 이씨로서는 당연히 분개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 이씨를 자극한 것은 부모님의 태도였다. 이씨가 난생 처음 어머니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자 어머니는 “정신병원에나 가보라”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고, 3일 후 아버지 역시 “너 같은 놈은 평생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라며 야단을 친 것.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08/1115479205308751.jpg" alt=""/>    ▲ 지난 2000년 5월 ‘과천 친부모 토막살인 사건’은 둘째아들이 무기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다. 사진은 현장검증 장면.  이때부터 이씨의 가슴 속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았던 심리적 압박 요인들이 점차 ‘살인의 욕구’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이씨는 , ,  등의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살인이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들. 결국 무기력한 자신에게서 탈출하는 길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부모를 살해하는 방법뿐이라는 점을 확신하고야 만다. 검찰 신문 내용에서도 이를 암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검사 : 피의자가 즐겨보던 영화 중 가 있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가요.이씨 : 이 영화는 ‘폴 슈레더’라는 사람이 각색한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인 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입니다. 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 전부터 저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월남전 퇴역 군인인 택시 운전사로 어린 윤락녀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결국 이 운전사는 윤락녀를 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포주들을 모두 총으로 쏴 죽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Taxi Driver’를 아이디로 사용했던 것입니다.검사 : 피의자가 가입한 이메일 가입자 정보수정과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을 보면 피의자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함’이라는 내용을 기재했는데 피의자가 기재를 한 것이 맞는가요. 이씨 : 맞습니다. 사실 저는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가를 한 사람만 말하라고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겠습니다. 검사 :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 피의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씨 : , , , , , , , , ,  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를 제일 먼저 읽었는데, 그 책이 재미가 있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들을 계속 읽었던 것입니다.검사 : 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요.이씨 : 경찰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문인 ‘범죄론’을 보고 라스콜리니코프를 의심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논문의 내용 중에는 ‘사람을 입법자와 범인(평범한 사람들)으로 나누면서 입법자는 법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은 법에 구속을 받지 않으며 다만 법에 의한 구속을 받는 사람은 범인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법은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법을 따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입법자는 그만큼 능력이 있는 소수이고 능력이 없는 다수는 그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검사 : 법률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만드는 것으로 결국 국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은가요.이씨 : 군대를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장교는 규정에 어긋나게 외박도 하고 비품도 마음대로 쓸 수가 있으며 장군이 ‘오늘은 일을 하지 말고 쉬어라’고 말을 하면 병사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쉽니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08/1115479205308752.jpg" alt=""/>    ▲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살인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제거하면서 자신의 무력감을 지워버리려 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언급하면서 한 쪽이 한 쪽을 억압하고, 억압당하는 쪽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바꾸는 내용을 강조했다. 에 대해 얘기하는 중간에는 아버지를 겨냥한 듯 군대의 부조리를 부각시켰다. 이씨는 상당히 내성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신 감정 결과, 이씨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며 ‘회피적 성격장애’도 있었다. 회피적 성격장애는 불안과 불신, 사회적 두려움, 당황하거나 바보스럽게 행동할지도 모른다는 자기의식을 갖는 등 불안한 행동 유형. 내성적 성격 때문에 현실 탈출의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하던 이씨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 무력감과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 방법은 결국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무려 11명의 출장 마사지 여성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토막 낸 유영철의 경우는 이씨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씨가 자신의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부모를 살해했다면, 유씨는 사회 전체를 ‘치유’하겠다는 ‘일념’으로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이었다. 실제 심리검사 결과 유씨는 반사회성이 평균보다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이씨와는 달리 우울증, 강박증, 내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규율이나 관습을 거부하고 권위적 대상에는 상당히 불만을 가졌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외도, 그리고 부재로 심기가 뒤틀려 있던 유씨는 어찌 보면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던 이씨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한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겼다. 도리어 그는 가정에서 스스로 아버지 역할을 자처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을 발견하면 무릎을 꿇게 하고 선생님처럼 야단쳤다”는 초등학교 동창들의 증언, 중학교에 다닐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과 ‘맞장’을 뜨거나 체육선생님에게 반항하던 같은 반 학생을 주먹으로 때려눕힌 일화 등에서 그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그러다 이혼과 약혼자가 떠나는 일을 겪으면서 스스로 세운 아버지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실감한 유씨는 자신의 처지를 곧 사회의 잘못으로 연결시켰다. 급기야 사회를 개조하겠다는 의지가 살인 욕구를 불러오게 되고 결국 끔찍한 범행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이씨와 유씨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느낀 것은 모두 사회와 부모의 부조리 그리고 개인의 무력함이었고, 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이씨는 부모를 죽여 토막을 냈고, 유씨는 자신이 사회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골라 살해하고 토막 냈다. 이씨가 자기에게 무력감을 안겨주는 부모를 제거함으로써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면, 유씨는 사회의 부조리를 제거한, ‘이상 세계’ 속에서 자기의 무력감을 지워버리려고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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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범죄해결사]거짓말탐지기의 '추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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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01 May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501/1114874405308740.jpg" alt=""/>    ▲ 영화 에서 거짓말탐지기 사용 장면.  과학수사의 한 방법으로서 거짓말 탐지기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지난 81년 발생한 ‘부산 여대생 살인 사건’에서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뒤부터다. 이 사건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부적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살인자로 몰린 피고인의 혐의가 무죄로 뒤바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거짓말탐지기 검사 방법과 분석법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81년 9월21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S식당 부근에서 한 여대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식당 동쪽 건축자재 야적장 인조석 더미 속에서 발견된 시신은 3일 전 오빠 집을 나선 뒤 실종된 부산산업대학 3학년 박아무개양이었다. 발견 당시 사체에는 타박상뿐 아니라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고, 목을 졸린 흔적도 뚜렷했다.경찰은 그 해 여름 박양과 함께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장아무개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박양과 장씨, 두 사람과 함께 어학연수를 다녀온 정아무개씨를 조사하던 중 그로부터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은 정씨를 살인, 사체 유기 및 절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정씨는 법정에서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도리어 검찰에서 했던 자백은 수사관들의 고문 압박을 못 이겨 했던 허위 진술이라고 주장했다.   이례적으로 정씨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서울 동부지원 형사부(재판장 양기준 부장판사)가 82년 7월9일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정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자백 내용 중 몇 가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나머지 증거들도 피고인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검찰의 항소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도 같은 해 11월20일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대법원도 피고인의 검찰 진술을 믿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주심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였다. 이 전 총재는 피고인 진술의 ‘임의성’은 인정했다. 자신의 생각을 진술했다고 본 것이었다. 그러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했다. 그 이유는 자백 내용 자체가 합리성을 띠고 있지 않다는 것. 특히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백을 한 동기가 거짓말탐지기 검사 과정에서 무심코 피고인이 던진 말을 수사관들이 확대해서 과대 포장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수사 당시 수사관들은 범행을 부인하는 정씨를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했다. 수사관들은 정씨가 검사 과정에서 “가슴이 떨린다”고 말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늘어졌다. 정씨는 검사 직전에 한 말이라며 부인했다. 그러자 수사관들은 이 말이 정씨가 주장하는 대로 거짓말탐지기 검사 직전에 한 것인지 아니면 검사 도중에 나온 것인지 정씨와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수사관들은 만약 후자일 경우, 정씨에게 “범행사실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압박했고, 정씨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과정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검사 도중 “가슴이 떨린다”고 말을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씨는 ‘약속’에 따라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 자백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수사관들은 거짓말탐지기에서 잡힌 피의자의 심리나 신체상 변화를 종합해서 범행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말 한마디에 집착해 혐의를 입증하려 했던 셈이다.  그러나 1, 2심 법원은 물론, 대법원도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한 뒤 줄곧 자신의 진술이 허위자백이라고 진술했던 정씨의 주장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다. “가슴이 떨린다”는 말을 실제 검사 과정에서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 진술을 했던 점도 그렇거니와, 실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서도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관들이 정씨에게 사용한 거짓말탐지기 기종은 ‘울트라스크라이브’였다. 여기에 긴장의 절정 여부를 판단하는 ‘피오티’(POT) 검사 방법도 동원됐다. 수사관들은 이러한 기법을 통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상의 및 피해자의 오빠 집 전화번호 등을 묻고 피고인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를 검사했다. 그런데 당시 검사 결과에는 피고인이 ‘모른다’고 한 답변이 모두 ‘거짓’으로 판정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즉 피고인이 질문에 대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른다고 대답한 것으로 해석을 했던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검사 결과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주심이었던 이 전 총재는 83년 9월13일 이러한 연유를 들어 상고심 판결에서 검찰의 상고를 과감하게 기각하고, 정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례적으로 이 전 총재는 거짓말탐지기가 정확한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거짓말탐지기가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서 첫째,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야 하고, 둘째, 심리 상태의 변동 과정이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으로 이어져야 하며, 셋째,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해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정확히 판정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명시했다.재판부는 △(해당) 거짓말탐지기가 생리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였는지 신뢰할 수 없으며 △특히 조사관들이 피고인이 모호하게 모른다고 대답한 부분에 대해 사실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검찰이 실시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증거 능력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거짓말탐지기 사용이 수사상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검사 과정에서 공정성과 결과의 정확성만 담보할 수 있으면 증거능력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거짓말탐지기는 용의자가 범행을 했는지 여부와 함께, 진술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장치로서 쓰임새가 커졌다. 교통사고 등 각종 민사사건에서도 효용가치가 높다. 거짓말탐지기의 검사 결과가 사건의 전말을 뒤바뀌게 한 사례도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자. 90년 10월 대법원 판결 사건이다. 이 사건 공소 사실은 ‘강아무개 피고인이 89년 6월 오후 9시50분경 자신의 오토바이에 피해자 김아무개를 뒤에 태우고 가다가 상주시 남성동의 약국 앞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피해자 양아무개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킨 뒤 위 피해자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1심, 2심 재판부도 모두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진상은 달랐다. 사고가 일어나던 날 피고인 강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피해자 김씨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김씨가 술이 많이 취하자 강씨는 김씨 소유 오토바이 뒷자리에 김씨를 태우고 갔는데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피고인 강씨가 오토바이를 몰던 도중, 김씨가 자기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자리를 맞바꾸었는데 그 뒤 사고가 난 것이었다. 피고인 강씨는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90년 7월 사건 재수사를 요구했고, 경찰은 사건 관계자들을 상대로 재수사를 시작했다. 재수사 도중 놀랍게도 김씨의 입에서 “내가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진술이 나오게 됐다. 곧바로 경찰이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 김씨를 검사한 결과 ‘진실’ 반응이 나타나면서 피고인 강씨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에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사망한 동승자를 음주운전자로 몰아세운 두 연인이 거짓말탐지기 때문에 혼쭐난 사건도 있었다. 그해 10월24일 새벽 4시50분경 대구시 동구 지묘동 공산터널 입구. 옵티마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 안에는 박아무개씨(23)와 애인인 권아무개씨(20), 그리고 박씨 선배인 차아무개씨(28)가 타고 있었다. 운전자 박씨와 애인은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 그러나 조수석에 타고 있던 차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실제 사건은 박씨가 음주상태(혈중알코올농도 0.079%)에서 선배의 옵티마 승용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낸 것이었다.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이 탄로날까봐 두려웠던 박씨는 애인 권씨와 “숨진 차씨가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고 입을 맞췄다. 차량 소유주는 숨진 차씨. 그대로 묻힐 수 있는 사건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운전자가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해당 조사 경찰에게 통보했다. 이들의 진술이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 거짓말탐지기가 ‘실력발휘’를 했다. 경찰은 두 사람에 대해 모두 7차례에 걸쳐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했는데, 두 사람 모두 ‘거짓’ 반응이 나왔다. 이를 토대로 집요한 추궁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마침내 범행사실을 자백했고, 경찰은 사고 1백24일 만에 박씨를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으로, 권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04년 8월 서울 사당동에서 택시를 타고 경기도 안양의 집으로 향하던 대학생 황아무개씨(여·22)는 과천 부근에서 요금 문제로 기사 강아무개씨(41)와 시비가 붙었다. 시비가 커지자 황씨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휴대전화에 부착된 카메라로 강씨의 택시기사 자격증을 찍으려했다. 그러자 강씨는 택시를 세우고 황씨를 끌어내려 얼굴 등을 마구 때린 다음 자리를 피했다.황씨는 곧 인근 경찰서를 찾아가 “강씨에게 맞았다”고 신고했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황씨는 얼마 후 서울지역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에게 “(강씨가) 내 지갑도 훔쳐갔다”고 말했고, 그 뒤 경찰은 강씨를 붙잡아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황씨를 때리기만 했던 강씨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보다 신중했다. 처음 폭행 사실만을 신고한 황씨가 뒤늦게 지갑을 뺏겼다고 진술한 점에 의문을 품었던 것. 검찰이 황씨에게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자 황씨는 소환에 불응하는 한편 뒤에서 강씨와 합의를 시도했다. 게다가 얼마 후 황씨의 지갑이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 어디선가 지갑을 잃어버린 뒤 강씨에게 덮어씌울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황씨는 결국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의 경우, 검찰이 “거짓말 탐지기를 쓸 것”이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도 피의자가 지레 겁을 먹었던 셈이다.이처럼 거짓말탐지기의 위력이 입증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용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용 적체 현상’까지 빚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일선 경찰서가 수사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려면 신청 후 평균 2개월이나 기다려야 할 정도라는 얘기도 들린다. 쓰임새가 늘고 있지만 실제 거짓말탐지기는 그 수요를 다 충족할 수 있을 만큼 보유량이 많지가 않다. 전국 경찰이 보유한 거짓말탐지기는 불과 36대. 최근 일반 형사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조사 과정에서 사용 신청이 늘면서 지난달부터는 거짓말탐지기 7대를 아예 교통사고 조사 전용으로 따로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를 보유하지 못한 지방경찰청은 각 1대씩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 한다. 잘만 활용한다면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수사관의 심리수사능력과 첨단장비가 결합된 과학수사의 결정체로서 앞으로 범죄 수사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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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뇌물 무죄의 추억] 김제시 산업과장 뇌물수수 월드컵휘장 로비 의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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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24 Apr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24/1114269605308730.jpg" alt=""/>    ▲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특히 뇌물 사건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수수나 공여 자체가 어떠한 약속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필요적 공범’으로 볼 수도 있고, 돈의 요구와 공여가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 표시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보면, 한 사람만 처벌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 쪽에서 상대방이 범행을 했다고 몰아세우고, 범인으로 몰린 사람이 적절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경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뇌물 사건에서는 특히 뇌물을 공여한 피의자가 혐의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하거나 제3의 인물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경우, 수사 기관은 대체로 뇌물을 제공한 사람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믿는다. 더구나 돈을 받은 피의자가 공여자 진술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영락없이 ‘코너’로 몰릴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92년 발생한 ‘김제시 산업과장 뇌물 수수 사건’과 지난 2003년 ‘월드컵휘장사업 로비 의혹 사건’을 꼽는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공무원이 기소된 두 사건은 뇌물 공여자의 불명확한 진술로 인해 공무원들이 누명을 쓴 사건이다. 결국 수년에 걸친 재판에서 이들이 검찰의 공소 사실을 제대로 반박해 결국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기도 하다. 김제시 산업과장 뇌물 수수 사건은 자동차 정비업 관련 시설 허가 문제가 빌미가 된 사건이다. “시의 중간 간부가 업무 관련 청탁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은 검찰은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를 조사한 끝에 김제시청에서 교통행정 업무를 총괄하던 A과장이 윤아무개씨로부터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A과장을 기소했다. 소환조사 과정에서 검찰은 뇌물 공여자 윤씨의 진술이 신빙성을 갖췄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A과장이, 김제시에서 92년 1급 자동차정비업 허가를 받은 윤씨로부터 ‘정비업 허가증 발급 및 토지 용도변경 허가와 행정 단속 과정에서 업소를 잘 봐달라’는 명목으로 92년11월23일 김제시 요촌동 S다방에서 2백만원을 받았다며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A과장은 줄곧 혐의를 부인했으나 검찰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다.   뇌물 수수 액수가 2백만원에 불과한 이 사건이 법조계 내에서 회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건의 재판이 무려 4년 가까이 진행됐기 때문. 지루한 공방전이 펼쳐진 이 사건은 결국 1심과 항소, 상고심에서 모두 A과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막을 내렸다. 법원은 세 가지 측면에서 ‘뇌물 공여자’ 윤씨에 대한 수사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먼저 법원은 윤씨의 진술 오류를 꼬집었다. 특히 법원은 윤씨가 93년 6월24일 전주지검 1차 조사에서 ‘92년 11월24일 오전 10시 A과장에게 2백만원을 주었다’고 진술하는 등 줄곧 뇌물 공여 시점을 바꾸지 않다가 A과장과의 대질심문에서 ‘11월23일에 뇌물을 주었다’고 진술한 점을 주목했다. 또한 ‘A과장이 직접 허가장을 교부했다’는 윤씨의 진술과,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시 공무원 강아무개씨가 직접 윤씨에게 허가장을 교부한 것으로 진술한 부분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덧붙여 법원은 윤씨가 A과장에게 돈을 주게 된 동기를 진술한 부분도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씨는 줄곧 “시에서 정비업 관련 업무를 담당한 A과장이 나의 일로 수고했기 때문에 돈을 줬다”고 주장했으나 A과장은 실제 농지 변경과 정비업 허가 관련 업무를 맡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실제 윤씨의 토지가 용도 변경된 시점과 정비업 허가가 난 것은 각각 92년 3월28일과 7월25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A과장은 각종 인허가 업무와 관련 없는 기획감사실에 있다가 8월27일에서야 산업과장으로 발령받았다. 법원으로서는 “허가에 대한 수고비 명목”이라는 윤씨의 주장을 선뜻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법원이 결정적으로 무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윤씨가 A과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던 시점인 11월23일 아침 A과장이 서울로 3박4일 출장을 떠났다는 사실에서였다. 특히 이날 정비공장 개업식을 연 윤씨가 오전에 손님들을 맞은 뒤 동분서주하던 상황에서, 서울로 출장을 간 A과장을 다방에서 따로 만나 돈을 전해주었다는 것은 사실 관계가 매우 어색하다고 본 것이었다. 또다른 예가 지난 2003년 초 정계를 뒤 흔든 ‘월드컵 휘장사업권 로비의혹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현재 대법원 상고심을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공직자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02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0년부터 3년간 대회기나 로고 등을 각종 사업에 활용하는 이권을 놓고 C사 등 여러 업체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의혹이 불거지면서 로비에 관련됐을 것으로 지목된 정계 인사만도 약 20여 명에 달했다. 자칫 거대 게이트로 확산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을 공여했다고 진술한 당시 C사의 김아무개 사장, G사의 심아무개 사장, K사의 또 다른 심아무개 사장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주요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24/1114269605308731.jpg" alt=""/>    ▲ 지난 2002한일월드컵 개막식 때 대회 휘장이 입장하고 있다. 1년 뒤 이 휘장은 ‘로비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검찰이 구속 기소한 인물은 김아무개 당시 월드컵조직위 사업국장, 이인제 당시 민주당 의원 특보였던 송아무개씨, 김아무개 당시 한국관광협회장 등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은 로비의 ‘중간 기착점’으로 간주됐던 인물들이었다. 공무원인 김 국장의 경우, 2000년 4∼9월 C사 사장 김씨로부터 사업권 유지 청탁 명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8천만원을 받는 등 월드컵 휘장사업 관련 업체로부터 모두 1억1천3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3년 5월 구속 기소됐다. 김 국장은 1심에서 3천3백만원의 뇌물 수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천3백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사장으로부터 받은 8천만원은 무죄가 선고됐으며 항소심에도 결국 두 명의 심 사장으로부터 받았다는 3천3백만원 수수 혐의까지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김 국장에게 돈을 주었다는 세 사람의 진술에 문제가 많다고 봤다. 특히 김 사장의 경우, 김 사장이 김 국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특정한 네 날짜가 모두 뇌물을 주고받기에 적절치 못한 날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공소 기록상 처음으로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기재된 2000년 4월28일은 공교롭게도 김 국장의 환갑날이었다. 법원으로서는 김 국장이 환갑날 김 사장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었던 것.  김 사장이 김 국장에게 두 번째로 2천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시점인 ‘2000년 8월5일’ 역시 법원의 의심을 샀다. 김 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 국장이 ‘(G사) 심 사장이라는 사람이 폭력배가 아니고 사업가니 안심하고 동업을 해도 좋다’라는 얘기를 전하러 자신을 방문했기에, 그 자리에서 2천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몽준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장 지시에 따라 C사(김 사장의 회사)가 유령회사인지를 파악하러 김 사장 사무실에 갔다’는 김 국장의 진술에 무게를 실어줬다. 김 국장이 단지 다른 업체 심 사장 얘기를 하기 위해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갔다는 게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 국장이 김 사장을 불시에 찾아갔는데,  김 사장이 그 자리에서 2천만원을 줬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김 사장이 지난 2000년 8월18일 월드컵조직위 최아무개 사무총장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김 국장 사무실에 들러서 2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법원으로서는 매우 찜찜한 부분이었다. 법원은 2000년 8월 당시 조직위 공문철을 확인한 결과, 김 사장이 최 총장을 방문한 날짜가 8월22일 이후였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김 사장이 9월1일 김 국장에게 마지막으로 2천만원을 제공했다는 검찰 공소 사실에 대해서도 법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법원이 눈여겨본 부분은 김 사장과 김 국장이 식사를 한 이후 지불한 돈의 액수였다. 김 사장이 계산했다는 식대와 실제 식대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김 국장이 9월1일 김 사장을 만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김 사장은 이날 H식당에서 김 국장을 만나 한정식을 먹었다면서 식대 4만~5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 식당은 실제 한정식 가격이 1인당 3만5천원이었으며, 손님의 90% 이상이 신용 카드로 계산하는 곳이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차를 주차했다는 지점도 애매모호했다. 김 사장은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강남 역삼동 이면도로에 차를 주차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지점은 테헤란로와 직접 연결되는 곳인 데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곳이었다. 주차를 하려면 인도에까지 진입할 수밖에 없는 곳인 셈. 더구나 법원으로서는 유동 차량이 많은 저녁 시간에 인도와 접한 차도에 승용차를 주차했다는 김 사장의 진술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G사 심 사장의 경우에도 진술상의 허점이 발견됐다. 특히 그는  2000년 8월27일 골프라운딩을 하고 오후 7시 김 국장의 아파트 부근에서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당일 전국적으로 태풍이 몰려와 폭우가 내려 골프장이 다 문을 닫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심 사장 진술을 그대로 공소장에 옮긴 검찰도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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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죄수의 딜레마’] 속초 40대 남자 피살 ‘창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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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17 Apr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17/1113664805308720.jpg" alt=""/>    ▲ 영화 의 한 장면을 그래픽 처리한 이미지.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강력 사건에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본의 아니게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에는 수사관들의 압박, 심리적 불안 등의 요인으로 인해 ‘자포자기’식으로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인정해 버리는 사례도 있다. “수사에 협조하면 정상 참작하겠다”는 수사관들의 회유, 혹은 유도신문에 걸려들어 사실과는 다른 진술을 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구체적인 공소 사실로 꾸며지고 ‘창작’되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01년 발생한 강원도 속초 40대 남자 피살 사건을 꼽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은 피고인들의 허위 진술에 따라 수사 기관이 가공해낸 사건이다. 다른 강도 혐의로 붙잡혀 조사를 받던 20대 남성 세 명이 경찰의 유도 신문과 회유를 못 이겨 속초에서 40대 남자를 피살하고 암매장했다고 허위 진술했다가 되레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 용의자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2000년 6월. 강원도 속초의 H콘도에서 40대 남자가 피살됐다. 이 남성을 살해한 것은 20대 남자 세 명. 이들이 40대 남성을 미행하다 이 남자가 콘도 3층 객실로 들어서자 “콘도 직원”이라며 벨을 누른 뒤 남자가 문을 열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복부를 찌른 것. 40대 남성과 함께 있던 여인은 소화기로 머리를 내려쳐 실신시켰다. 곧바로 이들은 정신을 잃은 40대 남자를 5층 옥상으로 끌고 간 뒤 밑으로 떨어뜨려 숨지게 했고, 시신을 인근 공동묘지에 묻었다. 이것이 경찰에서 정리한 속초 사건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경찰이 만들어낸 가상의 사건이었다. 경찰이 이 같은 사건 스토리를 ‘창작’한 것은 2001년 10월의 일이었다. 경찰은 이 무렵 강도 혐의로 검거된 황아무개씨(당시 20세·무직)와 이아무개씨(당시 23세·노무자)의 여죄를 추궁하다 이들에게서 “속초 콘도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암매장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뒤이어 이들이 공범으로 지목한 방아무개씨(당시 26세)를 구속한 경찰은 이들을 집중 추궁, 발생하지도 않은 속초 살인 사건의 각본을 하나둘씩 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H콘도 주변 공동묘지에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이들의 진술대로 실제 11월18일 그 공동묘지에서 40대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되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경찰은 20대 남성 3명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실제 속초 H콘도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검찰도 그해 11월 이들 3명을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검찰은 2000년 6월 범행을 했다는 경찰 조서 내용을 바꿔 이들이 2001년 7월 범행을 저질렀다고 공소 기록에 기재했다. 나중에서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 3명 모두 2000년 6월 교도소에 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시점을 고쳤던 것이다. 결국 1심 재판부인 속초지원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받아들여 이씨에게 무기징역, 황씨에게 징역 20년, 방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당시 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2003년 1월28일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 3명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오히려 재판부는 “공소사실만으로는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소설과 같은 사건”이라며 검찰과 1심 재판부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 해 5월에는 검찰의 상고도 기각시켰다. 재판부는 ▲범행 시점은 여름임에도,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겨울 점퍼가 걸쳐져 있었고 또한 백골 상태인 점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를 감정한 국립수사연구소와 서울대, 고려대 의대가 시체의 부패 시작 시점이 1년 전이라고 결론내린 점 ▲살해당했다는 피해자의 차량이나 남은 물건, 미반납 열쇠 등이 발견되지 않은 점 ▲피해자가 콘도 5층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피고인들의 진술과 달리 실제 묘지에서 발견된 시체에서는 골절 흔적이나 칼로 찔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피해자들로부터 갈취한 반지와 목걸이를 처분했다는 상점 등에서 그 장물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주목했다. 또한 재판부는 사체가 발견된 지점과 근접한 곳에 깊이 1m, 직경 5m 크기의 웅덩이가 있었다는 경찰 현장 검증 결과 기록과 관련,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건 간에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는 땅을 파기보다는 기존의 웅덩이를 사용했을 것”이라며 현장 정황과 범행 스토리가 상식적으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의문도 함께 제기했다.또 피고인들이 진술한 유기 지점에서 경찰이 여러 차례 사체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황씨, 이씨가 다른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된 이후 변사체를 발견하게 된 점도 피고인들이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정황으로 해석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 3명이 일반인들보다 ‘지적 수준’이 낮다는 점에서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검찰 공소 기록의 신빙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황씨는 초등학교 졸업자로 특히 인지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고, 방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방송통신고를 졸업한 이씨의 경우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으나, 그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교도소에 들락날락하면서 심각한 정신 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러한 피의자들의 진술이 그대로 공소 기록에 옮겨졌다는 점에서 선뜻 유죄를 내리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17/1113664805308721.jpg" alt=""/>    ▲ 피의자 황아무개씨는 검거 전날 본 영화 의 장면을 그대로 진술하기도 했다.  포스터.  이들이 공범으로 몰린 상황이었다는 점도 재판부는 주목했다. 2001년 10월30일 강도 혐의로 황씨, 이씨가 입건된 이후 이들을 포함한 20대 3인조가 H콘도 살인 사건 용의자로 둔갑한 것은 황씨가 2001년 11월3일 ‘콘도 범행’을 자백하면서부터다. 밤샘 조사와 허기, 각종 고문 등의 위협을 견디지 못한 황씨가 허위 진술을 하고 만 것이다. 여기에 강압 수사에 버거워하던 이씨 역시 3일 후에 범행 자백을 하고, 두 사람이 엉겁결에 공범이 되어 버리자 수사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황씨가 “이씨가 당신(황씨)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는 경찰의 유도신문에 “이씨가 죽였다”고 발끈하면서 소설 같은 범행 사실이 계속 추가됐다. 결국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이씨와 황씨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연이어 서로에게 불리한 허위 자백을 늘어놓는 사이 조서는 그럴듯하게 꾸며졌다.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인 방씨가 공범으로 구속됐다.특히 황씨는 어처구니없게도 경찰에 검거되기 전날 본 라는 영화 장면을 그대로 진술하기까지 했다. 하는 수 없이 사건에 대해서 진술을 해야 할 황씨로서는 주 무대가 사건이 일어난 속초 H콘도이고, 내용 역시 결혼한 부부가 속초에서 연쇄살인범을 만나는 이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재판부로서는 이들 세 사람이 1심 재판에서 ‘수사 당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줄곧 항변한 부분을 지나치기 힘들었다. 황씨는 “여죄를 추궁받던 중 ‘이씨가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는 경찰관의 유도신문에 발끈해 ‘내가 아니고 이씨가 사람을 죽였다’라고 자연스럽게 범행 사실을 지어냈다”고 고백했다. 이씨 또한 “고성경찰서에 있을 때 황씨가 먼저 거짓말을 해 나로서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씨는 “범행을 부인하자 경찰관으로부터 봉으로 1백여 대를 맞고 전기고문 등을 하겠다는 위협을 받아 겁이 나서 범행을 시인했다”며 일부 수사관의 ‘물리적 압력’ 또한 경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주장했다. 정신지체 장애인 방씨는 두 사람이 이러한 취지로 자백하자 수사 과정에서 덩달아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일반적으로 공범 사건의 경우, 서로의 책임을 피하고 형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허위 진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의 회유에 넘어가 허위 진술을 하게 됐고, 결국 그것이 되레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법심리학에서 공범들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죄수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동일한 사건에 연루된 경우, 수사관들은 “두 피의자 중 한 사람이 자백하고 다른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는다면 자백한 사람은 수사에 도움을 준 대가로 석방되고, 다른 피의자는 최대의 형량을 받게 될 것”이라고 회유 작전을 펴는데, 이에 대다수 피의자들은 심리적 동요를 일으켜 본능적으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사건임에도 마치 자신의 범행인 것처럼 구체적으로 자백을 한다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 이론의 골자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 따르면, 한 피의자의 자백을 지켜본 다른 피의자도 모종의 피해 의식 때문에 자백을 한다.피의자들이 일체 자백을 하지 않아도 두 공범은 무거운 형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법심리학 연구 결과, 공범들은 70% 이상 수사 과정에서 공범들끼리 ‘경쟁적 전략’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존 법칙이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피의자들이 수사관들의 회유, 압박으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본의 아니게 서로를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스스로 소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낸 이번 사건은 ‘죄수의 딜레마’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건인 셈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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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유아 증언의 힘] 후암동 방화살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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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10 Apr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10/1113060005308710.jpg" alt=""/>    ▲ 지난 96년 ‘후암동 방화살인사건’ 현장 인근에서 어른 품에 안겨 진술하고 있는 김아무개양(당시 4세).  96년 8월22일 자정 무렵. 서울 후암동 다세대 주택 3층에서 갑자기 불길이 타올랐다. 용산소방서가 화재 신고를 받은 것은 10분 후.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주택 안 세 개의 방과 거실은 불기둥에 휩싸였고, 한쪽 방에선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이는 다른 방을 가리키며 연신 “엄마”를 불러대고 있었다. 곧바로 소방대원은 다른 방을 뒤졌으나 아이의 엄마 김아무개씨(당시 28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누전이나 가스 누출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방 곳곳에는 발화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김씨의 머리 쪽에선 커다란 골절상이 발견됐다. 더욱이 방 안에는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누군가 김씨를 타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떠올릴 만한 광경이었다.경찰은 김씨의 주변 인물을 탐문 조사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김씨는 일본인 사업가와 동거중이었다. 일본인 사업가 사이에서 낳은 딸은 엄마의 성을 따랐다. 사건 발생 3일 후, 현장 증거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경찰은 김씨의 네 살배기 딸인 김양에게서 ‘뜻밖의’ 단서를 확보했다. 사건 다음날부터 범인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기 시작한 김양이 이날 경찰 수사진 앞에서 “엄마하고 나를 때린 아저씨는 ‘애기아저씨’”라는 말을 털어놓은 것. 아이의 얘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은 곧바로 새로운 용의자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김양은 “그 아저씨가 엄마 목을 졸랐다”, “아저씨는 낮에도 오고 밤에도 왔다”, “아저씨 집에 갔는데 애기도 있었다”라며 사건 전후의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9월7일 김양은 “애기아저씨는 하얀 옷 입었어. 머리는 짧았어. 점 있는 아저씨. 점이 하나 있었어”라며 범인의 인상착의도 상세히 떠올렸다.  경찰은 곧 이아무개씨(당시 32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씨가 사망한 김씨에게 8백만원을 차용한 사실이 있고, 김양의 진술과 비슷한 외모인 데다 슬하에 어린 아이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씨가 “내 장모와 사망한 김씨의 모친이 서로 친하나, 나와 김씨는 장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아는 사이”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데다 현장에서도 이씨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추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결국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그후 경찰은 약 2년여간 검찰과 이씨의 혐의 인정 여부를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경찰은 김양의 진술이 상당한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이씨가 살인·방화범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검찰은 어린 아이의 진술은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며 경찰의 영장 신청을 연달아 기각시켰던 것이다. 검찰의 재조사 지시를 받고 보강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결국 일본으로 간 김양을 다시 불렀다. 김양은 경찰의 신문에서 “엄마와 나를 때린 아저씨는 애기 아저씨다. 애기아저씨가 불을 질렀다”며 2년 전 말한 내용을 똑같이 진술했다. 경찰은 “애기아저씨가 불을 지르기 전에도 집에 온 적이 있었다”는 김양의 추가 진술을 확보하고, ▲사건 당시 이씨가 머리, 목, 팔, 겨드랑이, 가슴 부위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는 점과 ▲이씨가 김씨로부터 돈을 빌려 카드사용대금을 일부 변제하였음에도 다시 카드 사용대금 채무가 1천만원으로 늘어났고, 이씨의 카드대금 연체로 김씨의 차명 예금통장이 지불 정지된 정황도 추가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빚을 진 이씨가 사건 직전 김씨로부터 빚 독촉을 받은 사실까지 확인되자 이씨를 사건 발생 2년 만에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에서도 이씨는 결백을 주장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오후 9시쯤 햄버거를 사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남영동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샀으며, 곧이어 과일과 소고기 등을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게임을 했다며 경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검찰은 이씨가 뒤늦게 자신이 사온 햄버거를 아내가 먹었다고 진술한 점 등 이씨와 이씨 아내의 진술이 불일치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추가 증거 확보에는 실패한 채 1심 재판을 맞게 됐다. 1심 재판부는 이씨의 진술과 사고 직후 머리, 목 등에서 발견된 상처, 그리고 김씨와의 관계 등을 철저하게 검증했다. 일단 재판부는 사건 당시 행적에 대한 이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 의견과 마찬가지로 ▲당초 이씨가 자신이 사온 햄버거를 어떻게 했는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하지 않다가, 98년 10월20일에서야 아내가 햄버거를 먹었다고 진술한 점 ▲96년 8월27일 작성한 이씨 아내의 진술 조서에서 사건 당일 남편 이씨에게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한 내용이 나타나지 않은 점 ▲98년 11월11일에서야 아내가 남편이 사온 햄버거를 먹었다는 내용을 진술한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상처에 대해서도 이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 상처가 사건 무렵에 각각 다른 경위로 동시에 발생하였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이씨가 사건 당시 왼쪽 눈썹 부위에 멍이 생긴 경위에 대해 적절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점을 들어 이씨의 상처는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그러나 네 살짜리 아이의 진술을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있던 재판부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재판에 출석한 김양이 경찰 조사 때와는 달리, 사건 당시 상황을 묻는 신문에 “모른다”고 하거나 처음과는 다른 내용을 진술한 것. 99년 1월2일 법정에 나온 김양은 일본어 통역을 통해 먼저 검사의 신문을 받았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말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김양은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답했다. 검사: 애기아저씨가 낮에 놀러온 적도 있어? 김양: 모르겠어.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10/1113060005308711.jpg" alt=""/>    ▲ ‘후암동 방화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김아무개양(오른쪽)과 일본인 아버지. 김양은 지금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애기아저씨 이마에 점 있지? 김양: 있어.검사: 애기아저씨가 엄마와 ‘미○○’(김양의 일본 이름)를 때렸어? 김양: 때렸어. 검사: 그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기억나? 김양: 잘 모르겠어.검사: 병원에서 퇴원해서 96년 9월7일 경찰관에게 엄마와 미○○를 때린 사람이 애기아저씨라고 얘기한 것 기억나?김양: 모르겠어. 검사: 작년에 경찰관하고 검사아저씨에게 가서 엄마와 미○○를 때린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거 기억나?김양: 모르겠어. 이후 김양은 변호인의 신문에도 대부분 “모른다”고 일관했다. 애기아저씨가 집에 온 사실에 대해서만 “그렇다”라고 답변하면서도 범인의 말이나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  변호인: 엄마와 미○○를 때린 사람(애기아저씨)이 (사건 당일) 아침에 집에 왔었어? 김양: 왔어. 변호인: 아침에 (애기아저씨가)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나? 김양: 모르겠어.변호인: 애기아저씨가 집에 여러 번 왔었어? 김양: 모르겠어. 변호인: 아저씨가 엄마와 손도 잡고 껴안은 적도 있었어? 김양: 모르겠어.변호인: 아저씨가 엄마한테 반말을 했어? 존댓말을 했어? 김양: 보통 말을 했어.변호인: 아저씨가 엄마를 때릴 때 엄마이름 부르며 때렸어? 김양: 잘 모르겠어.변호인: 아저씨가 엄마를 때리기 전에 무슨 이야기 했어? 김양: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변호인: 엄마를 때린 아저씨가 무슨 색 옷을 입고 왔었어? 김양: 모르겠어.변호인: 애기아저씨가 미○○ 집에 몇 번 왔었어? 김양: 두 번 왔었어.재판장 신문에서도 김양의 대답은 같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기억을 상실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애기아저씨가 엄마를 때렸다는 진술에는 처음처럼 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 하나, 김양의 무의식적인 행동 하나가 결정적이었다. 재판장이 김양에게 “애기아저씨의 얼굴을 보면 지금 알 수 있니?”라고 물은 뒤 곧바로 법정에 출정한 이씨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애기아저씨니?”라고 묻자 김양이 기겁을 하며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김양의 말과 행동이 매우 솔직하고 진실되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99년 4월20일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곧바로 이씨가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김양의 진술은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그해 8월11일 항소를 기각했다. 99년 11월26일 상고도 기각돼 결국 이씨의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1심 판결은 유아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사건이 발생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유아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질 때 유아의 ‘직접경험 기억’이 일정하게 유지되느냐의 여부를 가장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진술의 일관된 선(線)’이라는 얘기다. 사건 당시 네 살 6개월이었던 김양은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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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불완전한 기억의 실수] 구로동 연쇄 강도·강간]]></title>
            <link>https://www.ilyo.co.kr/?ac=article_view&amp;entry_id=3087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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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03 Apr 2005 00:20:05]]></pubDate>
            <category><![CDATA[김병준 변호사의 범죄의 재구성]]></category>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03/1112455205308700.jpg" alt=""/>    ▲ 기억 지운 공포 강간 피해자는 공포 때문에 범인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영화 의 한 장면.  이처럼 국내에서도 피해자의 잘못된 진술로 억울하게 처벌을 받은 피해 사례들이 적잖다. 그 중에서도 지난 2002년 발생한 이아무개씨(당시 23세) 강도·강간 사건이 법조계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이씨와 전혀 관련 없는 사건이었다. 평범한 젊은이였던 이씨는 강도·강간을 하지 않았음에도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해 공소가 제기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제 강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제2의 용의자를 체포했음에도 검찰이 이씨의 강간과 특수강도 혐의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먼저 사건 피해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당시 작성된 검찰의 공소장을 보자. 공소 사실에 따르면, 범행은 2002년 5월6일 오후 2시께 일어났다. 첫 피해를 당한 여성은 최아무개씨(23)였다. 범인(피고인 이씨)은 서울 구로2동의 일반주택 2XX호에 사는 최씨 집에 은밀히 침입했다. 범행 대상을 노리던 중 최씨의 집 문이 잠기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범인은 거실에 있는 최씨를 발견하고 뒤에서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끌어안았다. 뒤이어 범인은 방으로 최씨를 끌고가 침대에 엎드리게 한 뒤 이불로 최씨의 얼굴을 뒤집어씌웠다. 그리고는 예리한 도구로 이불 위를 가볍게 찌르는 방법으로 최씨를 위협한 뒤 최씨 뒤에서 성폭행하고 지갑에서 15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2시간 뒤 범인은 인근 다세대주택 1층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잠긴 문을 도구를 이용해서 열어 젖힌 뒤 주방에 있던 과도를 꺼내들고 갈취할 물건을 물색했다. 그러다 방 안에 놓인 이아무개씨(여·22)의 가방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현금 15만원과 신용카드, 지갑, 휴대폰 등을 꺼냈다. 그 뒤 범인은 방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씨를 목 뒤에서 흉기로 위협해 추가로 금품을 요구하고 강간하려 했다. 그러나 이씨가 ‘곧 남자친구가 집으로 올 것’이라고 하자 범인은 부리나케 줄행랑쳤다는 게 검찰의 공소 사실이다.   사건 당시 강도·강간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피해자들이 진술한 인상착의와 비슷한 젊은 남성 이씨를 피해자들의 집 주변 골목길에서 발견했다. 그 뒤 이씨는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됐다고 한다. 출석 통보를 받고 7월9일 경찰서로 자진 출석한 이씨는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몇몇 수사관들이 “네가 죄를 지었다는 내용으로 ‘반성문’만 쓰면 구속하지 않고 내보내 주겠다”고 회유하자 엉겁결에 범행을 시인하는 글을 남기고 말았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약속’과는 달리 그를 법정까지 내몰았고, 결국 검찰에 기소된 이씨는 뒤늦게 후회하면서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1심에서 이씨는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말았다.항소심이 진행중이던 2002년 11월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강아무개씨가 긴급 체포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증거품으로 압수된 강씨의 가방 안에서 강도를 당했다는 피해 여성 이씨의 주민등록증이 발견된 것. 뒤이어 강씨가 강도 범행을 자백하면서 수사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나 검찰은 이때까지도 피해자들이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씨에 대한 강도 혐의와 최씨에 대한 강간 혐의가 담긴 공소 사실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씨가 억울한 누명을 계속 뒤집어쓸 가능성이 다분했으나 2심에서 판결은 결국 뒤집히고 말았다. 2003년 2월1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박해성 부장판사)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이씨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객관적 증거 없이 신빙성을 부여하기 어려운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한 원심은 ‘증거의 가치판단’을 그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장판사의 단호한 결정에 검찰도 상고를 포기하여 이 사건은 무죄로 확정됐다. 결과적으로 피고 이씨는 반 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해왔던 셈이다. 그렇다면 피해여성들이 무고한 이씨를 ‘범인’으로 여겼던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 이씨가 범인으로 지목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수사 초기에 유력한 용의자로 이씨를 지목하면서 이씨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했다고 한다. 잠복중 피해자 이양에게 이씨의 모습을 확인시켰더니 이양이 “범인이 맞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곧바로 경찰은 이씨를 불러 사진을 찍은 뒤 또 다른 피해자 최씨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역시 최씨에게서도 “그렇다”는 진술이 나왔다. 삼자대면에서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이씨를 범인으로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또 다른 피의자 강씨가 검거된 상황에서 경찰이 강씨를 두 피해자에게 대면시키자 한결같이 “전혀 모른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부분 강간 사건 피해자는 매우 긴박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범행을 당하고 상황을 목격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범행 당시 각종 스트레스와 긴장, 불안, 공포 등 정서적 동요를 경험하게 된다. 법심리학적으로 보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는 시야에 근접한 사물에 대해 집중력이 떨어져 범인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 입수에 대부분 실패한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403/1112455205308701.jpg" alt=""/>    ▲ 기억의 변질 강간 피해자는 또 수사진의 잘못된 용의자 제시에 쉽게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진은 영화 의 한 장면.  이번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워낙 급박한 상황에서 범행을 당한 나머지 정확하게 범인의 인상을 기억하지 못했다. 더욱이 피해자들은 ▲경찰에 출두한 용의자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증언’했고 ▲경찰과 검찰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말을 번복할 기회를 주지도 않자 서서히 자신이 지목한 용의자가 진짜 범인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특히 강간 피해자 최씨는 범인이 자신을 범하는 등 꽤 오랜 시간 집에 머물렀음에도, 범인의 외관상 특징을 기억하지 못한 채 오로지 용의자 사진만 보고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보여준 용의자의 사진에서, 범행 현장에서 본 범인의 인상보다 더욱 또렷하고 명료한 자극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최씨는 이미 이양에 의해 용의자로 간주된 이씨의 사진만 제시받았다고 한다. 용의자를 하나로 압축한 경찰의 무언의 암시가 현장의 범인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강간 등의 피해자가 수사관의 주관적인 수사 절차에 이끌려 범인의 인상이나 특징을 잘못 진술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특별한 지침이 마련돼 있다. 지난 99년 만들어진 미국 법무성 지침에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을 듣는 수사관들이 지켜야 할 규정이 제시돼 있다.  이 지침은 4가지 절차적 요건을 골자로 한다. ▲목격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관의 요건 ▲피해자나 목격자에 대한 수사관의 지시 요건 ▲용의 인물(혹은 사진)의 구성 요건 ▲피해자 확신에 대한 요건 등이 그것이다. 하나씩 자세히 설명하면, 목격자로부터 진술을 받아내는 수사관은, 사건의 용의자로 제시된 인물(사진) 중 사건 담당 수사관들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간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수사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3의 수사관이 목격자 진술을 받고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사관은 진술을 받기에 앞서 목격자에게 제시되는 인물들 속에 진범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목격자에게 누군가를 반드시 용의자로 지목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하는 용의자의 두드러진 특징이 제시된 사진 등을 피해자가 범인을 지목하기 전에 반복적으로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목격자나 피해자가 범인을 지목한 직후 지목 인물에 대한 추가 정보를 다시 보여주기 전에 목격자로 하여금 자신이 확신한 정도를 명백히 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수사관들이 지켜야 할 요건이다. 일반적으로 범인을 처음 지목할 당시 느끼는 확신감보다 법정에서 나타난 확신감이 월등히 높을 경우, 목격자나 피해자 진술은 신뢰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법심리학적 근거와 지침의 내용이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이 지침은 ‘무기효과’(weapon effect)라는 심리학적 현상의 중요성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무기효과’란 범행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범인이 들고 있는 총, 칼 등의 무기나 흉기에 대해서만 기억이 또렷이 남는 현상을 말한다. 이씨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흉기의 모양과 크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흉기 자체가 가져다준 두려움 등이 범인의 또 다른 외관상 기억을 제한한 셈이다. 피해자 이씨는 범인이 들고 있던 칼에만 정신이 쏠려 범인의 인상이나 신체상 특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불이 씌워진 채 뒤에서 강간을 당했던 최씨도 범인이 들고 있던 흉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틈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강간 사건은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둔갑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수사 시스템, 특히 피해자 진술에 대한 더욱 철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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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범죄의 재구성 '허위지백의 추억' K순경살인누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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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CDATA[Sun, 27 Mar 2005 00:20:05]]></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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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CDATA[]]></author>
            <description><![CDATA[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327/1111850405308690.jpg" alt=""/>    ▲ 검찰은 'k순경사건' 이후 백서를 제작하는 등 '과오'를 씻기 위해 철치부심했다.  허위자백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논란이 돼 왔던 문제다. 특히 유영철 사건을 비롯, 각종 대형 강력 사건 뒤에는 피고인의 허위자백 여부가 항상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허위자백이란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거짓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범죄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간혹 영웅 심리가 발동해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사기관의 압박을 심리적으로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법조계에서는 허위자백 사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지난 1992년 11월에 발생한 K순경 사건을 꼽는다. 이 사건은 살인 혐의 피의자로 몰린 K순경이 실제 살인을 하지 않았으나 ‘폭행치사로 혐의를 낮추어주겠다’는 경찰의 회유를 못 이기고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허위자백을 했다가 검찰과 법정에서 실제 살인자로 몰린 사건이다. 일이 꼬인 것을 알게 된 K순경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열흘 전에 진범이 잡혀, ‘무죄’라는 보기 드문 명판결(?)이 내려지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복잡한 ‘스토리’가 전개됐던 만큼 사건이 가져다준 상처는 너무나 컸다. 엉겁결에 허위자백을 하다 살인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K순경은 그 후유증으로 백혈병까지 걸리는 불운을 겪었으며, 이 허위자백에 놀아난 검찰과 법원도 망신을 당했다. 특히 당시 최고의 강력계 검사를 사건에 투입시켰으나 오히려 스타일만 구긴 검찰은 ‘K씨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사건의 문제점’이라는 1백23페이지짜리 백서를 제작하는 등 치명적인 ‘과오’를 씻기 위해 한동안 절치부심했다. 이 사건은 1992년 11월29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A여관 203호에서 카페 종업원 이아무개양(18)이 목이 졸려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이양과 함께 그날 새벽 3시30분쯤 여관에 투숙했던 B파출소 소속 K순경이었다. K순경은 경찰에서 “오전 7시쯤 혼자 여관을 나가 인근 파출소에 출동했다가 오전 10시쯤 이양을 깨우기 위해 여관방으로 돌아와 보니 이양이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K순경은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되고 말았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K순경이 여관방에서 출근했다가 이양이 여관에 있는지 전화로 확인도 하지 않고, 이양을 깨우기 위해 10시에 돌아왔다는 게 어색하다”며 그의 범행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K순경과 이양이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어왔고 ▲이양이 K순경의 아이를 낙태한 사실도 그가 범인으로 지목될 만한 이유였다. 투숙 당시 ‘아침 8시에 인터폰을 해달라’는 K순경의 부탁을 받은 여관 주인이 실수로 7시에 인터폰을 했으나 K순경이 즉시 응답을 한 점도 그와 사건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요한 대목이었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이 사건의 범인은 따로 있었다. 재수생인 S군이 낮에 여관 열쇠를 훔쳐, 밤새 당구장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날 아침 7시께 훔친 열쇠를 이용해 이양이 자고 있던 여관방에 몰래 잠입했다. S군은 핸드백에서 수표를 훔치다가 이양에게 들키자 침대로 올라가 이양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말았다. 진상과는 다르게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K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한 검·경의 수사 결과에서 눈여겨볼 점은 법의학적 소견이다. 경찰의 시신 감식 결과, 이양 시신의 시강(사체 경직 현상)이 전신에 걸쳐 나타난 점이나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 직장의 온도 등으로 미루어 사망시각은 오전 5시 이전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이 같은 법의학적 소견과 오전 7시에 여관을 나갔다는 K순경의 진술을 근거로 K순경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것이다.경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법의학적 소견을 내세우면서 약 이틀간 K순경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양의 사망시간이 새벽 3시에서 5시로 나왔어. 오후 1시 반에 잰 이양의 직장 온도가 24도래. 사망한 지 10시간이 경과됐다는 계산이야. 이양의 위 속에서 뭐가 나왔는지 알아? 새벽 1시경에 먹었다는 음식이 그대로 나왔어. 음식을 먹은 지 3시간쯤 지나면 그렇게 된다는 거야. 자네도 경찰관 생활을 해서 알겠지만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은데….”K순경은 도저히 결백을 입증할 만한 길이 보이지 않자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 상황에서도 수사진은 회유와 압박이라는 카드를 번갈아 내세우면서 K순경을 옥죄어갔다. 결국 수사진은 “살인이라도 실수라고 인정되면 과실치사나 폭행치사가 되어 집행유예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하면 폭행치사로 만들어 주겠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피의자를 이처럼 대접하는 것도 자네가 동료 경찰이니까 그러는 거야”라며 은근히 허위자백을 종용했다. 더 이상 부인을 할 힘조차 없던 K순경은 결국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K순경 나름대로는 경찰관 생활을 하면서 살인과 폭행치사는 수사관 말대로 하늘과 땅 차이로 배웠고, 폭행치사죄는 합의만 하면 집행유예도 가능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단 허위자백이 시작되면서 수사 속도는 무척 빨라졌다. 막히는 부분이 있을 경우에는 K순경의 과거 경험 또는 현장에서 수사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섞여졌다. 피의자 신문조서가 무려 7차례나 변경, 작성됐을 정도로 내용이 다듬어진 후 최종적으로 범행 내용이 확정됐다. “피의자(K순경)는 1992년 11월29일 03:30분경 신림6동 여관에 이양과 함께 들어가 목욕을 한 후 성교를 1회 했다. 성교를 한 후 04:00경 피의자가 다시 성교할 것을 요구하자 이양이 거절하여 피의자는 화가 나 손으로 그녀의 턱 부분을 1회 때렸다. 이에 이양이 피의자에게 화를 내며 ‘당신이 뭔데 나를 때리느냐,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인데, 왜 자꾸 성교를 요구하느냐’고 하자, 피의자도 ‘결혼하여 딸을 낳으면 너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악담을 하는 등 맞섰다. 이때 피의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격분하여 순간적으로 이양 상체에 올라타 양쪽 무릎으로 팔을 누르고 왼손으로 이마를 누른 채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피의자는 맨손으로 이양의 입을 막으니까 이양이 자신의 손바닥을 물려고 하여 성교할 때 접어둔 휴지조각으로 입과 코를 동시에 짓누르면서 힘을 가하였다.그 후 1분 정도가 지나 이양이 일어나지 않고 얼굴이 창백해져 숨을 안 쉬기에 당황한 피의자가 인공호흡을 시킨 다음 가슴을 양손으로 눌러 보았으나 숨을 쉬지 않았다. 놀란 피의자는 이양이 죽은 것으로 알고,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이양의 핸드백, 점퍼, 치마 등을 욕조에 던져 놓고 베개 두 개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이양 지갑에 있던 수표 중 3매를 빼내어 가지고 여관에서 나와 택시를 탄 피의자는 수표가 추적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수표를 택시 창 밖으로 모두 던져버렸다. 화장실에 있던 휴지는 변기에 넣어버렸다. 이양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빼서 여관 책상 서랍 위에 놓았다. 피의자는 현장을 수습한 후 07:10분경 S파출소로 복귀해 일을 하던 중, 10:10경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밖에서 20대 남자가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카운터로 내려와 이양이 자살하였다고 112신고를 했다.”그러나 이 같은 경찰 수사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우선, 성관계를 거절한 것이 살인 동기가 됐다는 부분부터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더욱이 ▲휴지를 입에 넣은 채 인공호흡을 시도했다는 점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수표를 택시 밖으로 버렸다는 점도 상식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수표는 사건 발생 후 은행으로 돌아왔고, 교환 당시 수표의 외관은 깨끗하고 조금 구겨진 정도에 불과했다. 또 수표에는 ‘수한남’이라는 제3의 이름이 배서되어 있었다.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검찰과 경찰은 수표 추적 조사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변사체의 직장 온도 및 사체 경직상태 등을 측정한 수사관은 현장 감식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아니었다. 직장 온도의 감정도 사체 발견 직후 즉시 한 것이 아니라 직장온도계를 구하지 못해 사체 발견 후 약 5시간이 지나서야 온도를 측정했다.  직장 온도는 30분이나 60분 간격으로 3회 이상, 그리고 최소한 20cm이상 넣어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수사관은 온도계를 7cm 정도만 삽입, 단 한 번 측정했다고 한다. 더구나 사체 경직상태 등의 검시는 부검의사가 현장에서 직접 해야 하는 것임에도 경험 없는 수사관이 맡았다. 위의 소화 상태에 대해서도 당시 이양이 음주 상태에서 성행위를 하면서 육체적인 흥분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소화기능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범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사건은 수사관의 과도한 의심이 본질을 훼손하는 결론을 낳고야 말았다. 이양을 다시 깨우기 위해 여관으로 갔다고 말한 K순경을 처음부터 의심한 경찰은 부검의사의 시신 부검 결과가 도착하자마자 그를 범인으로 확신한다. 그때부터는 증거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확신이 증거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양상이 돼 버렸다. 곧바로 범행 현장에서의 K순경의 몸짓(7시에 여관방에서 전화를 금방 받았다는 것), 행동(이양의 낙태, 결혼요청을 거절) 등이 하나하나 더해져 진실과는 다른 범행 스토리가 구성됐다. 다급해진 K순경은 급기야 동료 경찰관으로서의 온정을 보이면서 살인 혐의를 폭행치사로 감경해 주겠다는 수사관들의 회유에 못 이겨 ‘슬픈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 ‘서글픈 거짓말’에 속지(?) 않으면서 사태가 더욱 커진다. 검찰이 폭행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K순경을 기소한 것이다. K순경은 급히 진실을 밝히고자 몸부림쳤으나 1심과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상고심 직전 구치소 내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K순경은 더 이상 미련 없이 상고심 판결을 기다리던 중 진범인 S군이 잡히고서야 어렵게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법조계 내에서는 이 사건이 적잖이 회자됐었다. 상고심 판결 후 2심 당시의 주심이었던 판사(현재 변호사)는 당시 무죄 판결을 내리려 했으나 판결 합의 중 다른 판사가 “K순경이 자신에게 불리한 자백을 거짓으로 할 리가 없지 않느냐”고 유죄를 고집해 부득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고백했다. 그 판사는 유죄 판결을 내리고 법원을 나서는데 뒤에서 ‘그것도 판결이냐’고 꾸짖는 환청을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김아무개 검사는 사표를 제출했다가 주위의 만류로 철회했다고 한다. 그 후 김 검사는 ‘자나 깨나 자백에 기대지 말자’는 수사철학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고 한다.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진범이 검거된 뒤 내려진 판결이기 때문이다. 정황상 1, 2심 판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당시 주심관인 박아무개 대법관은 진범이 잡히지 않았어도 그런 판결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법원이 K순경의 주장을 인간적으로 경청하고, 사망 시간 등 과학적 증거의 한계에 대해 면밀한 검토했던 점은 상당히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img src="https://www.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05/0327/1111850405308691.jpg" alt=""/>    ▲ 김병준 변호사  김병준 변호사는?김병준 변호사(57)는 제물포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13기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부산지방법원과 전주지방법원 등지에서 판사로 재직한 뒤 1977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4년에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뒤 쌍용해운 법률고문과 한국무역연수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최근까지 한·중 법학회 회장, 한국 법 심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부터는 ‘연쇄살인 피고인’ 유영철 사건의 변론을 맡아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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