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한 장난쯤으로 여겼던 지구대 형사들은 칠곡경찰서 조사 결과 실제 서씨가 필로폰 양성 반응을 보이고 부산 폭력조직 Y파의 행동대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매우 놀랐다.
서씨를 조사한 칠곡경찰서측은 서씨의 자수 동기에 대해 그저 단순한 심경 변화였다고만 밝히고 있다. 칠곡경찰서 관계자는 “서씨는 자수 동기에 대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수를 결심하게 됐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씨의 구체적인 개인 신상에 관해서도 경찰측은 “서씨를 지구대에서 데려와 소변검사와 대구보건환경연구원의 정밀검사를 통해 필로폰 투여 사실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해 간단한 보강 조사만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서씨가 연고도 없는 칠곡경찰서를 찾아온 점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서씨를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만을 적용, 지난 3월31일 대구지검에 신병을 인도했다.
경찰이 검찰에 올린 서씨에 대한 혐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씨는 지난 3월25일 오전 10시 부산 남구 광안리 소재 A식당 화장실에서 필로폰 0.03g을 물에 희석해 1회용 주사기로 오른팔에 투약하고, 같은 날 오후 5시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역 화장실에서 똑같은 양의 필로폰을 오른팔에 주사했다는 것.
정황으로만 본다면 역 화장실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뒤 인근 유흥업소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면서 자수 결심을 하고 지구대로 발걸음 했다는 얘기다.
현재 이 사건의 핵심은 서씨가 왜 굳이 필로폰을 투약하고 자수를 했느냐는 부분이다.
경찰은 조사 과정 중 서씨가 폭력조직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점에서 서씨의 자수가 자신이 저지른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문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서씨가 필로폰이나 마약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경찰의 이 같은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이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한 다른 대형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위장자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경찰이 이 같은 추측을 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확인 결과 서씨는 부산 Y파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중 상대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업소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기물 파손 등 난동을 피워 부산지방경찰청의 내사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게다가 서씨가 폭력 전과 10범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부산지방경찰청 폭력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해 3월29일 부산 해운대구 범어동 소재 B주점에서 C파 조직원들에게 자신과 동료들이 폭력을 당하자 이튿날 곧바로 C파 조직원들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보복성 난동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력계 관계자는 “서씨는 각 폭력조직의 계보에는 올라와 있지 않은 단순 조직원”이라며 “서씨에 대한 수배령은 내리지 않은 상태지만, 현재 내부적으로 조사중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과 정황으로만 보면 서씨는 폭력 전과 혐의로 다시 체포돼 가중 처벌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필로폰 투약 초범으로 구속되는 편이 나을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스스로 자수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칠곡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대구지검은 아직 이 같은 구체적인 정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다. 칠곡경찰서에서 사건을 넘겨 받은 강력부의 이종근 검사는 “아직 본격적으로 서씨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고, 서씨가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현재 서씨는 대구지검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상태이며, 부산지방경찰청은 서씨가 체포된 만큼 폭력과 기물 파손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검사는 “현재로서는 검찰이 필로폰 투약 혐의 부분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 서씨의 추가 혐의가 밝혀질 경우 검찰이 여러 건을 병합해 가중처벌을 내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씨는 폭력 전과 10범인 처지에서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보다 다른 혐의의 범죄를 저지르고 초범으로 구속되는 걸 택한 어처구니없는 잔꾀를 부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앞으로 검찰과 경찰 양측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서씨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 주변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