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이봉주는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해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동아일보 | ||
먼저 ‘은메달 따고 웃었다고 오해받은 이유’.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때 이봉주가 1위 조시아 투과니에 뒤진 3초는 역대 올림픽 마라톤 사상 최소 1·2위 격차로 남아 있다. 막판 숨 막히는 접전 끝에 2위에 그쳤으니 아쉽기도 했을 텐데 기력을 회복한 이봉주는 크게 기뻐했다. 이 장면이 TV카메라에 잡혀 ‘그렇게 아쉽게 지고도 좋아만 하면 되느냐’는 구설에 올랐다. 이 대목에 대한 이봉주의 회고는 이렇다.
“그때 내 마음은 아무도 몰라. 당시 상무(국군체육부대)로부터 영장을 받은 상태였어. 상무는 내 체형에 맞게 군복까지 맞춰놨었어.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입대였지. 그러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 결혼도, 그리고 이후 계속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그리고 보스턴 우승도 말이야. 솔직히 당시엔 ‘이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더라구.”
자연히 대화는 군대 얘기로 이어졌다. 이봉주는 애틀랜타올림픽 후 강원도의 한 부대에서 4주간의 군사기본훈련을 받았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군복무를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평생 달리기만 해온 내게 군대는 제법 힘들었어. 맨날 선착순만 했으면 편했을 텐데… 하하.”
호텔 로비에서 티타임을 갖던 중 이봉주는 ‘함봉실 구렁이 사건’의 내막도 자세히 알려줬다. 북한의 함봉실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세계선수권, 2004년 아테네올림픽 등을 통해 이봉주와 친분을 쌓았다. 함봉실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이봉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에 출전하면서 구렁이 두 마리를 밀반입했다. 암수 한 쌍을 먹어야 효험이 있다며 특별히 준비해온 것이었다. 상할까봐 삶아서 병에 넣어왔는데 더운 날씨에 그만 상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냄새는 잊을 수 없어. 너무 고약했거든. 주위에서 시체 썩는 냄새라고들 난리였어. 봉실이는 그 구렁이를 삶아서 젓가락으로 살점을 떼 먹으라고 했는데 난 도저히 못먹겠더라구.”
이봉주는 함봉실 얘기가 나오자 “현역 선수일 때 꼭 한 번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 내 선수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해 남북단일팀이 성사돼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