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그룹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일6대 재벌 그룹의 계열사 지원 등에 관한 조사에 전격 착수했기 때문이다. 조사대상 그룹은 삼성, LG, SK와 현대차, 현대상사, 현대중공업 등 총 6개 그룹.
사실 공정위가 이들 그룹에 대해 조사를 벌인다는 것은 지난 3월초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SK그룹 사태로 말미암아 대다수의 그룹들이 몸을 사리고 있어 왔던 데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때 재계 총수들이 앞장서는 등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당황스럽다는 것이 재계의 분위기다.
S그룹의 한 관계자는 “예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각오는 했지만, 재계와 정부의 화합이 한창인 지금 시점에서 돌연 조사에 착수한다고 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4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노 대통령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숨죽인 삼성]
공정위는 삼성전자, 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공정위 조사국의 조사 1과에서 맡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번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이미 상당한 대비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올초 조사와 관련해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졌으며, 자체 내에서 공정위 조사 대응법 등에 관한 ‘예행연습’도 끝났다는 말이 있더라”고 말할 정도.
공정위와 재계의 안팎에서는 실제로 이번 공정위의 6대 그룹 조사를 ‘공정위 대 삼성’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공정위가 문제를 삼았던 삼성SDS의 BW 저가발행 문제와 관련해 공정위가 2심에서 삼성그룹에 패소, 현재 대법원에 항고를 한 상태여서 서로 감정이 좋지 못하다.
이렇다보니 삼성으로서는 이번 조사가 무척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 삼성그룹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의 역할 및 계열사 지원 여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상무 등 오너일가는 비상장사인 에버랜드를 통해 타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들 오너 일가의 에버랜드 지분은 총 55.44% 정도.
삼성은 오너들이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다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삼성전자가 삼성 SDI, 삼성SDI가 다시 에버랜드에 출자하는 방식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각 계열사간의 지원 등이 시비거리가 되지 않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공정위의 조사대상인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5개 계열사가 또다른 그룹 부실 계열사를 우회적으로 지원했는지의 여부와 관련해서도 자체적으로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느긋한 LG]
LG그룹은 현재 노무현 경제팀과 가장 코드를 잘 맞추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다소 느긋한 표정이다. LG는 공정위 조사국 조사 2과에서 담당할 예정. LG전자, LG화학, LG건설, LG투자증권, 데이콤 등이 조사 대상이다.
LG는 LG전자와 LG화학을 통해 LG의 전 계열사를 묶어 지주회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계열사간 부당지원이 있었는지의 여부가 조사의 초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지주회사 설립 과정에서 몇몇 비상장 LG계열사 등이 동원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과 구본무 회장 오너 일가의 LG생명과학 주식 등을 둘러싼 내부자 거래 의혹 등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악 SK]
SK그룹의 분위기는 경악 그 자체다. SK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가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공정위의 조사가 착수되자 정신없는 모습이다.
SK그룹에 대한 조사는 조사기획과소관으로 SK(주), SKT, SK C&C, SK생명, SK해운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SK의 고민은 SK(주)를 정점으로 이뤄진 SK C&C, SK생명, SK해운 등 각 계열사간의 편법적 지원 여부다.
특히 이번 SK사태로 사실상 그룹이 해체될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가 겨우 회생 가능성이 열린 상황에서 공정위의 융단 폭격을 받을 경우 제 2의 위기가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으로 나뉜 현대그룹은 현대상사를 조사기획과가, 현대자동차는 조사2과에서, 현대중공업은 조사 1과에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계열사가 급증한 현대자동차그룹은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를 통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카드 등의 지원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