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테마주’ 매매에 나서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에겐 너무나 뼈아픈 증시 격언일 듯싶다. 신종플루가 멕시코 등 남반구에서 퍼지기 시작한 때인 5∼8월 사이의 신종플루 관련주(유가증권+코스닥의 약 34개 종목)의 주가는 19.82% 올랐다. 하지만 국내에 신종플루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9∼11월(지난 10일 주가 기준) 이들 관련주 수익률은 마이너스(-)4.42%에 그쳤다. 주식시장이 소문을 얼마나 빠르게 반영하며 뉴스에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장면 1# 직장 주위에서 추천을 받은 코스닥의 바이오 관련주 알앤엘바이오를 우연찮게 샀다. 그리고 단 3개월 만에 투자금액의 세 배 이상 수익을 거두는 뜻밖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알앤엘바이오는 줄기세포 관련주로 미국의 바이오 열풍의 가장 큰 수혜를 받으며 연초 900원대인 주가가 4월에는 장중 1만 1000원대까지 오른 이른바 ‘대박주’였던 것. 바이오 투자에 자신감을 얻은 박 씨는 신종플루 첫 사망자가 나온 8월 신종플루 테마주에 자금을 ‘몰빵’했다. 박 씨가 투자한 종목은 녹십자를 비롯한 제약주, 의료기기 관련주들이었다.
녹십자의 주가는 그러나 5∼8월에는 71.74% 올랐지만 9∼11월에는 -17.36%로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다른 신종플루 관련주 역시 대부분 비슷한 양상이다. 정작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심은 확대되고 사망자 수는 빠르게 늘어났지만 신종플루 테마주들은 ‘플루’에 걸린 듯 기력을 펴지 못했다. 신종플루 관련주의 주가는 5∼8월에 이미 꼭지를 친 셈이다. 언론에서 매일 톱기사로 신종플루 뉴스가 쏟아질 때 큰손들은 이를 이용해 차익실현에 나섰던 것. 박 씨의 기대와는 달리 신종플루 관련주는 손실폭이 커졌고 연초 벌었던 수익을 요즘 까먹고 있다.
장면 2# 대학생 김 아무개 씨는 9월 초 신종플루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신종플루 관련주 파루를 샀다. 신종플루 사망자가 매일 한두 명씩 나오고 있던 시기라 주식을 산 이후 30% 수익률을 거뒀다. 하지만 9월 초순 이후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4000원대에 샀던 주가가 2000원대로 곤두박질친 것.
10월 중순엔 금융당국이 “최근 증권시장에서 신종플루 테마주들의 주가가 실적과 상관없이 급등했다”며 “테마에 편승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시장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현재 김 씨의 수익률은 -30%대. 김 씨는 그동안 자전거와 4대강, 2차 전지, LED(발광다이오드) 등과 관련한 테마주도 급등했지만 금융당국이 신종플루 관련 테마주에 대한 감시 강화 계획만 밝혀 애꿎은 피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앞의 두 장면처럼 테마주 열풍이 지나가면 대부분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는 상황이 늘 반복되고 있다. 개미들이 테마주 열풍에 휩쓸려 주식을 사기 시작한 때는 대부분 주가가 8부 능선을 넘어섰을 때다. 수익은 잠깐이고 손실을 보기 시작한 개미들은 주식을 정리할 타이밍까지 놓치며 손실폭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매매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다’고 되뇐다. 다시는 테마주에 투자를 안 하겠다는 다짐까지 한다. 하지만 손해 본 주식을 팔 수 없어 그냥 들고 있는 일명 ‘비자발적인 장기투자자’가 된 개미들의 속은 이미 시꺼멓게 탄 상황이다. 이번 신종플루 테마도 마찬가지다.
국내 증시에 신종플루 관련주는 도대체 몇 종목이나 될까. 신종플루 테마주는 대략 백신을 만드는 제약업체와 세정제 체온계 등 의료기기, 외출 기피 풍조가 반영된 게임 및 온라인 쇼핑 관련주를 꼽고 있다. 반면 여행 및 항공 관련주는 피해주로 구분된다. 코스닥의 파루라는 기업은 에너지 업종이지만 최근 신종플루 영향으로 세정제 매출이 늘어나면서 순이익이 급증한 덕에 신종플루 테마주의 대표로 분류되고 있다. 파루를 포함, 신종플루 테마주는 어림잡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34개 종목에 이른다. 여기엔 코스닥시장의 연초 급등세를 주도했던 바이오 관련주도 상당히 포함돼 있다. 특히 바이오 관련주의 주가는 이미 연초 이후 고공행진으로 지난해보다 상당부분 많이 거품이 끼어 있던 상황이었다.
테마주 주식 보유자들은 잠재적인 주가 하락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 테마에 올라타 주가가 급등하면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기업이 적지 않은 것.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수가 증가함에 따라 주식 가치는 상당부분 할인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규모 자금 조달로 기업의 가치가 좋아질 수도 있으나 이것이 주가에 반영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신종플루 관련주인 지코앤루티즈는 지난 2일 200억 원대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의를 공시했다. 지코앤루티즈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통해 신종플루 마스크 관련 공장을 짓고, 캄보디아 공사와 관련해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캄보디아 공사 대금에 대부분의 자금을 사용하고, 나머지 자금은 신종플루 마스크 공장 건설과 운영자금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코앤루티즈의 이번 자금 조달 목적은 신종플루 관련 사업보다는 캄보디아 공사 관련 사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
파루는 지난 9, 10월 두 번에 걸쳐 자금을 조달했다. 총 금액은 500억 원대. 9월에 이어 10월에도 다시 주가가 급등하자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파루도 지코앤루티즈와 마찬가지로 조달한 자금을 신종플루 관련 설비보다는 주로 차입금 상환과 지급어음결제에 투입할 예정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테마주들 같은 경우 주가 급등을 기회로 차익을 실현하거나 자금 확보에 나서는 게 대부분”이라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의 대학생 김 씨처럼 신종플루 관련주에 대한 금융당국의 ‘뒷북 경고’에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불만도 들끓고 있다. 신종플루 테마에 뒤늦게 투자에 나섰다가 주가 이상과열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고 전후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는 것. 실제 지난 4월 말 국내에서 첫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한 이후 5월부터 관련주들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경고 시점에는 급등했던 일부 종목이 오히려 하한가를 기록하며 조정을 받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자 김 아무개 씨는 “신종플루주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한 상태”라며 “(금감원의 감시 강화 발표는) 뒷북대응이었다. 작전세력들이 저점에서 다시 살 수 있도록 악재를 띄우며 도와준 꼴”이라고 꼬집었다. 투자자 이 아무개 씨도 “신종플루주에 대한 감시 강화 발표 이후 관련주의 급락으로 30%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며 “피해를 본 개미 투자자의 손실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따졌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