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에서 악녀 연기를 펼치고 있는 정혜영은 벌써부터 이런 각오를 밝혔다. 그는 요즘 MBC <불새>에서 떠나가려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독하고 악하게 변한 ‘미란’에게 푹 빠져있다. 정혜영의 악녀 연기가 점점 물이 오름과 동시에, 드라마의 시청률도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지난주 KBS의 일일연속극 <백만송이 장미>를 따돌리고 드디어 시청률 1위로 올라선 것.
물론 이은주 이서진 에릭 등 나머지 주연배우들의 공로도 크지만,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는 정혜영의 연기에 제작진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과연 그의 어느 면면에서 이런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걸까. 그 자신도 놀랄 정도라는 ‘악한 여자’ 정혜영과의 솔직담백한 데이트를 공개한다.
사랑에도, 인생에도, 그리고 사랑과 인생을 다루는 드라마에도 역시 ‘악역’은 등장하는 법. 바로 정혜영이 연기하는 미란이는 전형적인 악한 여자다. 그런데 드라마 속 악역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욕을 하던 시청자들이 이번엔 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극중 미란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정혜영은 신이 난 듯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정말 다행이에요.(웃음) 드라마 반응도 좋고 미란이를 이해해 주시는 분이 많아 너무 감사해요. 처음 대본을 받고 좀 고민은 됐어요. 제대로 된 악역은 처음이거든요. 악역은 배우로서 결정하기 힘든 배역 중 하나인데, ‘이유있는 악역’이란 점에 매력을 느껴서 결정했어요. 시청자들에게 동정표를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미란이는 지은과 세훈의 관계를 모르고 그 남자를 사랑해버린 거잖아요.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어요.(웃음)”
“제가 어항을 깨는 장면을 많이 기억하시는데 그거 찍으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설탕유리 아니었냐고 하시던데, 진짜 유리로 된 어항이었어요. 설탕유리는 녹아서 안 된다고 그러 더라고요. 더구나 제가 이서진씨한테 밀려서 깨지는 설정이라 더 위험했거든요. 실은 첫 번째 찍은 게 마음에 안 들어 두 번 찍었어요. 어떻게 어항을 밀지 리허설도 하고 그 신만 밤새 찍었으니까요.”
‘휠체어 연기’도 어려움이 많았단다. 극중에서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미란은 얼마 전 감각을 되찾기 전까지 내내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연기를 소화해야 했다. 정혜영은 “다리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카메라에 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참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정혜영은 연기뿐 아니라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심지어 손톱 하나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 초반에 핑크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던 손톱은 극중 심리상태의 흐름에 맞춰 요즘은 짙은 청색으로 변화를 주었다. 또 웨이브를 준 긴 갈색머리도 얼마 전 검정색으로 바꾸고 일명 ‘클레오파트라’ 헤어스타일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갑자기 바뀐 머리모양이 더욱 섬뜩한 이미지를 자아낸다는 게 촬영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은주 이서진 에릭과는 모두 처음 호흡을 맞추는 사이지만 ‘분위기메이커’ 이서진으로 인해 촬영장은 항상 화기애애하다는 게 정혜영의 설명. 이서진은 상대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먼저 배려하는 아량을 베풀어 인기가 좋다. 특히 이서진은 ‘아줌마팬’이 많아 촬영장에는 항상 팬들이 싸오는 음식들이 넘쳐난다고. 정혜영은 “요즘엔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핑계로 회식자리도 자주 갖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93년 SBS 공채3기로 데뷔해 올해로 벌써 11년차를 맞는 정혜영은 경력에 비하면 그리 많은 작품을 한 편이 아니다. 정혜영은 지난 95년 <재즈>를 찍고 난 뒤 훌쩍 호주유학을 떠나 1년간 머물다 돌아왔고, 이후로도 2년 동안 연예계를 떠나 있었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탤런트가 되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연기에 대한 집착이나 열정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젠 정말 연기자가 되길 잘했다 싶어요.”
끝으로, 그녀의 연인 션(지누션의 멤버)과의 얘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누션의 콘서트장에서 션이 정혜영에게 깜짝 프러포즈를 해 화제를 모았는데 얼마 전 ‘정혜영이 연기 때문에 결혼을 연기했다’는 기사가 전해지기도 했던 터였다. 조심스레 밝힌 정혜영의 솔직한 생각은 이렇다.
“정말 잘 만나고 있어요. 바쁘지만 틈틈이 데이트도 빼놓지 않고요. 연기 때문에 결혼을 미룬 건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사귀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 주시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