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브라질 우승의 주역이 되었던 호나우디뉴, 히바우두, 호나우두(왼쪽부터). | ||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우승후보를 점치는 일은 예년에 비해 심장박동수를 증폭시키는 스릴이나 기대감, 긴장미가 훨씬 떨어진다. 별로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브라질 이외에 우리를 납득시킬 만한 팀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브라질은 어떤 팀인가? 호나우두, 호나우디뉴, 카카, 아드리아누, 호비뉴…. 호나우두는 세 번의 FIFA 최우수선수상과 두 번의 유럽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고 호나우디뉴는 두 번의 FIFA 최우수선수상과 한 번의 유럽최우수선수상을 석권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팀의 폭과 재능과 파워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브라질은 펠레 이후에도 90년 월드컵 단 한 차례 실패를 맛보았을 뿐, FIFA 월드컵 전 역사를 통해 가장 고른 성적을 보여 왔다. 94년 네 번째 우승한 이래 만약 이번에도 우승에 성공한다면, 월드컵 4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세 번의 우승(총 6회)을 낚아채는 셈이 된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함께 세계 축구시장에 끊임없이 우수한 상품들을 수출해대는 저력을 확보한 유일한 나라다. 단 한 번도 세대교체에 두통을 앓아본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예측조차 제기된 적이 없다. 테크닉과 템포, 전술적 다양성에 있어 세계 무대에서 뒤쳐진 적이 없었다. 아, 물론 1974년 요한 크라이프의 네덜란드에게 2 대 0의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지만 재빨리 토털사커의 논리에 대응하는 방안들을 강구하면서 이후 70년대 말, 80년대 초 정상에 가볍게 복귀했다.
▲ 지난 2002년 한국을 방문한 펠레가 공 차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 | ||
브라질이 1970년 줄리메컵을 영구 소장하게 되었던 때부터 이 나라는 여타 다른 국가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그 어떤 신성한(?) 대접을 받아왔다.‘아름다운 경기’(beautiful game)라는 수식어가 브라질 축구라는 명사와 동의어가 된 것이 이 즈음이다.
그런데 94년 미국에서 24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쥔 브라질을 향해 형편없는 팀이라고 혹평하며 브라질에 걸맞지 않는 우승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프랑스의 미셸 플라티니였다. 또 다른 비평가들은 브라질 역대 대표팀 중 가장 수비적인 스타일로 치부했고 급기야는 이제 브라질도 유럽식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비아냥거림까지 곁들여졌다. 물론 당시 페레이라 감독은 그러한 비난을 전면 부인했으나 98년 대회의 브라질은 정말이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는 요원하게만 보였다. 2002년 우승은 강팀들이 모두 나가떨어진 상태에서 건진 행운의 결과다.
▲ 지난 2002년 있었던 한국과 브라질의 친선전 모습. | ||
쉽게 말하면 지금의 축구팬들이 아무리 브라질 축구에 매료당해 있다하더라도 과거의 구세대가 어릴 때 경탄해 마지않았던 그 때 그 당시의 찬란한 감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붉은 악마’ 대부분의 멤버들과 박지성이나 박주영이 펠레나 자이르징요, 지쿠의 경기를 보고 자란 것은 아니니까.
지금의 젊은 축구팬들은 마치 아이스하키를 방불케 하는 아스날과 첼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속도전 경기를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축구다’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축구의 지나친 속도 위주의 경기 운영은 브라질과 같은 고전적인 테크닉의 축구가 살아남는 데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70년 월드컵 우승의 견인차인 ‘흰 펠레’ 토스탕은 작금의 유럽축구, 아니 세계 축구의 흐름을 보고 이렇게 설파했다.
“테크닉 없는 스피드 일변도의 축구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경주와 같다. 기본적인 패스도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무모한 속도전에 대응하는 길은 럭비식의 보디체크뿐이다. 따라서 요사이 축구에 파울과 경기 중단이 빈발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진실로‘아름다운 경기’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전 축구대표팀 미디어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