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분향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책임론은 비단 시민들 사이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말을 아끼고 있던 검찰 내부에서도 “과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인규 중수부장의 ‘오래된 인연’이 회자되고 있다. 과연 이 대통령과 이 중수부장 사이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98년 선거법 위반과 관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그해 11월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기성정치인과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워싱턴DC로 향한 그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계를 떠나 ‘도피’하듯 미국으로 출국한 상황이었지만 교민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꽤 높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높은 인기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 대통령은 워싱턴에 거주했던 정계 인사는 물론 여러 공직자들과도 인연을 쌓았다고 한다. 1999년 말 귀국하기까지 1년간의 워싱턴 생활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재기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것도 이때 관계를 맺은 인맥이 한몫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는 이 대통령의 자서전에서도 일부 비친다. <어머니>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등에서 이 대통령은 당시에 대해 “역경을 넘기고 정치적 재도약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기였다”고 적고 있다.
▲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김영호 행정안전부 차관, 김성환 외교부 차관 등이 그들이다. 당시 유 장관은 주미공사를 지냈고 김영호 차관과 김성환 차관 등은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생소한 직책으로 등장한 김상협 청와대 미래비전비서관도 <매일경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인회에서 우연찮게 만난 경우도 있으며 골프 모임이나 교회를 통해 알게 된 경우도 있다. 한 교민은 “이 대통령이 미국에 와서 우리 교회에 나와 간증을 한 적이 있다. 교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높았다”며 “교회에서 다양한 인맥을 형성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재민 문화관광체육부 제1차관도 이 무렵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난 후인 2008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에서 기자들, 공무원들과 함께 골프라운딩이 이뤄졌고 운동 후에는 함께 토론을 벌이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그런데 교민들은 신 차관과 더불어 당시 이 대통령과 절친했던 인사로 이인규 중수부장을 기억하는 이도 많았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해온 대검 중수부의 수장이다. 이 중수부장은 1997년 주미대사 법무협력관으로 파견돼 워싱턴에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다.
그 시절 한인회의 임원이었다는 한 교민은 “이 대통령이 처음 워싱턴에 왔을 때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함께 왔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인규 중수부장은 이 전 총재와는 이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전 총재가 골프 라운딩을 하는 자리에서 이 중수부장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개해줬고 이후부터 두 사람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1999년 말 이 대통령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 중수부장 역시 1999년 중순경, 법무부 차장검사로 돌아왔다. 이후 이 중수부장은 현 정권의 검찰 인사가 처음 이뤄진 2008년 3월,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대검 기획조정부장에 임명됐고, 올 1월에는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검찰 내 요직 ‘빅4’로 꼽히는 현재의 대검 중앙수사부장검사에 임명됐다. 그리고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해왔다. 그는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입을 열었고 이후 참여정부와 연관된 인사들을 거침없이 몰아붙이며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으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수사에 대해 “지나치게 이인규 중수부장의 뜻대로 흘러간 경향이 있다”는 말과 함께 “이 중수부장이 너무 나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임채진 총장의 말도 잘 안먹힐 때가 있다’는 등 뒷말들이 가끔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 역시 검찰에 소속된 사람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면서 “혐의점이 뚜렷하게 밝혀지면 빠르면 늦어도 일주일 안에 수사를 마무리짓는 게 정상이다. 이번 중수부의 수사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사를 하면서 윗선의 눈치를 볼 순 없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중수부장의 평소 스타일을 볼 때 설사 윗선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이 중수부장을 비난하는 건 맞지 않다.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특히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 중수부장의 업무 수행과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중수부장은 그런 일에 영향을 받거나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된 이후부터 점차 거세지고 있는 책임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이 같은 사태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은 것.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검찰 책임론에 대해 아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