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병지 최은성 이관우. | ||
처음 자리에서는 구단과 선수가 ‘수고했다’ ‘건강은 어떤가’와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자리에서는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다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후 한두 번 더 자리를 가져야 비로소 구체적인 액수가 눈에 보이며 다음 협상에서 사인할 여건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구단이나 선수 모두 100% 만족시키기 어려운 게 연봉협상이지만 반대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것 역시 연봉협상이다. 하지만 연봉협상은 선수와 구단의 은밀한(?) 작업이다 보니 쉽게 공개되지 않는 게 사실. 올해 ‘한방’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산전수전 다 겪은 FA선수들로부터 연봉협상의 노하우와 스타일 등을 들어봤다.
[꼼꼼한 자료제시형] 신태용 (성남 일화)
올해 프로축구 연봉왕에 올랐던 신태용은 연봉협상에 임할 때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있다. 그 시즌 자신의 득점이나 어시스트와 같은 포인트와 팀 기여도가 기록돼 있는 데이터베이스다. 구단에서도 이런 자료를 근거로 액수를 제시하지만 신태용은 이보다 더 세밀한 분석을 통해 자신의 ‘희망연봉’을 제시한다. 구단에서도 꼼짝할 수 없는 근거를 갖고 테이블에 앉다 보니 성공률(?) 95% 이상을 자랑한다고. 신태용은 “남이 얼마 받았다고 자신도 무작정 따라가려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성적에 대한 근거만 있다면 속전속결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 신태용 | ||
김병지 역시 개인기록과 지명도와 같은 데이터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신태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장고파’라는 것. 김병지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만족할 수 있는 타당한 결과를 얻어내는 스타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협상 마감일이 다가오더라도 결코 부담 갖지 않는 ‘여유’다. “다른 일보다 축구를 통해서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거지 축구화를 벗는다고 해서 굶는 건 아니다”는 것이 김병지의 지론이다.
[논리정연 설득형] 이숭용 (현대 유니콘스)
일상생활과 야구 모든 면에서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숭용이 협상 테이블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숭용은 구단이 제시하는 근거에 대해서 끝까지 경청하고 마지막에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그 모습이 워낙 진지하고 설득력이 있다 보니 후배들이 많은 조언을 구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후배들에게 이숭용은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매너를 강조했다.
[허허실실형] 최은성 (대전 시티즌)
최은성은 장고파에 가까워 보이지만 여기에는 ‘평정심’이라는 특유의 내공이 뒷받침돼 있다. 처음엔 무른 듯하지만 실상은 내실 있는 스타일이다. 일반적으로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선 구단의 일방적인(?) 요구가 많은 게 사실. 이 때문에 성격이 급하거나 다혈질인 선수들은 금세 얼굴을 붉히거나 심하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최은성은 “구단 얘기만 들으면 감정이 앞설 수 있다”면서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죽여야 끝까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조언했다.
[두둑한 배짱형] 김대의 (성남 일화)
지난해 7천5백만원을 받았던 김대의는 시즌을 마치고 4억원을 베팅해 선수등록 마감을 하루 앞두고 극적(?) 타협을 본 경험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딱 부러지는 스타일이다. ‘꼭 필요한 선수라면 구단에서 급할 것이고 구단에 남아야 한다면 그 선수가 급할 것’이라는 그의 배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으면 ‘다음에 뵙겠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문을 박차고 나온다. 김대의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의견을 주장하지만 부진했을 경우에는 먼저 액수를 낮춰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김대의 | ||
활발한 이미지의 정수근도 협상에 임할 때는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가로질러 가기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선호(?)하는 장고파이기도 하다. 협상 기간을 길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 동료들을 고려해서다. “선수들 중 누가 먼저 쉽게 도장을 찍어버리면 그것이 구단에서 다른 선수들을 압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수근이 설명.
하지만 개그맨 뺨치는 유머 감각이 있는 그가 이렇게 진지함으로 일관(?)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정수근은 사인하기 직전이면 “조금만 더 주면 바로 사인할 텐데”라며 시간을 끌어 구단 관계자와 밉지 않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고.
[백지수표형] 이관우 (대전 시티즌)
이관우는 구단을 믿고 모든 걸 맡기는 편이다. 여기에는 소속팀이 타 구단에 비해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고,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팀에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간판선수를 예우하려는 구단의 노력도 일조했다. 이관우는 “일단 구단에 전적으로 위임하는 편”이라면서 “조금 섭섭한 면이 있다면 그때 의견조율을 해나간다”고 밝혔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