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월 뮌헨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 낸 군터 폰 하겐스 박사. 뮌헨에서는 지금 ‘죽은 자의 안식을 해치는 범죄’로 박사를 기소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다고 한다. | ||
논란의 발단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온몸이 난도질 당한 채 전시장 곳곳에 서 있는 이 많은 시체들은 도대체 다 어디서 온 것일까. 생전에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누구’였을까. 전시장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을 이런 의문이 최근 하나둘 풀려 나가고 있다.
현재 독일 당국을 비롯하여 시체의 주된 출처로 지목되고 있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당국이 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시체 매매를 둘러싼 모종의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근거 있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고 있어 커다란 파문이 일고 있다.
“전시회의 표본들은 모두 생전에 기부할 것을 약속한 사람들로 국한되어 있으며, 모두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일일이 누구라고 밝히는 것은 죽은 이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인체를 살아있는 듯한 상태로 그대로 보존하는 획기적인 ‘플라스티네이션’ 기법으로 전시회를 주최하고 있는 군터 폰 하겐스 박사는 자신의 인체 연구가 철저한 ‘기부 제도’와 ‘신분 보장’이라는 두 가지 핵심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신 앞으로 기부된 시체만 2백60구가 넘으며, 이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밀매’ 따위는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원 미상의 시체가 불법 루트를 통해 하겐스 박사의 연구실로 보내진다는 소문에 대해서 그는 모두 자신을 음해하는 악성 루머라고 일축하며, 자신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위)비슈케크의 ‘의학 연구소’에서 찾아낸 신원미상의 시체들. (아래)3년 전 실종된 동생을 찾고 있는 한 키르기스스탄 남성. | ||
그렇다면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시체들이 표본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위치한 ‘플라스티네이션 연구소’로 보내지는 대부분의 시체들은 하겐스 박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의 ‘의학 연구소’에서 보내지는 것이다. 최근 이와 같은 제보를 받고 ‘의학 연구소’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경찰과 의회는 연구소의 지하실에 겹겹이 쌓여 있는 신원미상의 시체더미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선 사인이 정확하지 않은 시체는 반드시 부검을 통해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국가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지하실에는 부검은커녕 옷도 벗겨지지 않은 채 냉동상태로 쌓여 있는 시체가 여럿이었으며, 일부는 이미 수년 동안 그곳에 방치되어 있는 듯 심한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현재 이곳의 시체를 일일이 부검하고 있는 법의학자들은 머리에 심한 타격을 입었거나 또는 목이 부러졌거나 심지어 가슴이 짓눌린 채 사망한 의문의 시체들을 여럿 발견했다. 정황에 비추어 보건대 살해당한 시체들이라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었으며, 어떻게 해서 ‘의학 연구소’에 이처럼 살해당한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
한때 하겐스 박사와 함께 연구를 하다가 현재 손을 뗀 가비토브 박사는 “이곳에 보내지는 시체는 대부분 신원을 알 수 없거나 연고가 없는 것들이다. 또한 사형수를 묻을 여력이 없는 교도소에서 시체를 보내오는 경우도 있으며, 더러는 시체 한 구당 약 10유로(약 1만2천원)의 가격에 사오기도 한다”고 털어 놓았다. 이밖에도 비용 문제로 시체를 처리하지 못하는 병원이나 장례 비용이 없어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는 시체 또한 종종 ‘의학 연구소’로 보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체를 바탕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사업 환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