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청탁 수뢰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산 백 전 부의장은 “누명을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른쪽은 검찰에서 뇌물 수수 증거로 제시한 유 씨의 메모. 9번째 줄에 ‘백 40’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 2011년 2월,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는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백의종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4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6월 및 추징금 4000만 원으로 일부 감형됐으나, 백 전 부의장 측의 상고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은 확정됐다. 뉴타운 사업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잘나가던 서울시의회 부의장의 뇌물 수수 사건은 지역 사회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1991년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한 백 전 부의장은 마포구에서 내리 4선을 하며 지역의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6대 서울시의회에서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부의장을 맡아 남다른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변이 없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마포구청장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하지만 그의 정치생명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백 전 부의장은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 조합 관계자인 유 아무개 씨로부터 4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11월 3일 그의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백 전 부의장은 “당시 충격으로 부인이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무슨 일인 줄도 모르고 그저 끌려만 갔다”라고 전했다.
검찰에서 제시한 뇌물 수수 증거는 유 아무개 씨가 남긴 ‘메모’였다. 검찰이 확보한 메모에는 ‘7/16 한송 30’, ‘7/18 홍종 30’, ‘7/15 신봉 100’ 등 마치 암호 같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검찰은 이를 유 아무개 씨로부터 추궁해 7/16은 ‘7월 16일’임을, 한송은 뉴타운 사업 조합원 ‘한 아무개 씨’임을, 30은 ‘3000만 원’임을 밝혀냈다고 했다. 즉 ‘7월 16일에 한 아무개 씨에게 3000만 원을 줬다’는 뜻이 완성되는 것. 이렇게 적힌 사람은 총 10명, 유 씨가 전달한 금액만 해도 총 ‘4억 9900만 원’에 달했다.
백 전 부의장으로 추정되는 이는 9번째에 있었는데, ‘백 40’으로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두 글자가 아닌 한 글자일 뿐이었지만 검찰은 바로 백 전 부의장을 지목했다. 유 아무개 씨가 백 전 부의장을 확실히 지목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 아무개 씨는 백 전 부의장에게 돈을 전달한 시점을 지난 2005년 7월 15일, 장소는 백 전 부의장의 사무실에서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주장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백 전 부의장이 “당시 나는 사무실에 없었다”고 주장한 것. 실제로 당시 백 전 부의장의 일정표에는 행사를 위해 지역구 순방 일정이 잡혀 있었다. 백 전 부의장의 운전기사 정 아무개 씨는 사실확인서를 통해 “백 전 부의장님을 일정표대로 온종일 운전하여 수행했다”고 밝혔다. 백 전 부의장은 “당시에는 초복 날이라 노인위로잔치를 오전부터 진행하느라 사무실에 출근도 안했다”라고 전했다.
돈을 전달한 장소와 시점이 모호한 가운데, 의문스러운 점은 또 발견됐다. 유 아무개 씨에게 돈을 받은 사람 10명 중 백 전 부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검찰 조사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추후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 전 부의장은 “대체 왜 나머지 사람들은 수사도 안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다못해 검찰은 자금 출처나 흐름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메모지에 등장한 10명의 사람 중 처벌을 받은 이는 백 전 부의장을 포함해 경찰관 및 조합총무 홍 아무개 씨, 마포서 경찰관 박 아무개 씨 등 3명이었으나, 홍 씨와 박 씨는 다른 뇌물 수수 건으로 처벌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즉 유 씨가 돈을 전달했다고 한 사람 중에는 백 전 부의장밖에 처벌 받지 않은 셈. 메모지에 등장한 김 아무개 씨는 “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는데 왜 내 이름을 적어 놨느냐고 유 씨에게 따졌다. 유 씨가 ‘그냥 적어놓은 것이다. 의미가 없다’라고 하더라. 검찰 조사 또한 받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자신을 빼고 나머지는 검찰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백 전 부의장의 주장이 일부 확인된 셈. <일요신문>은 나머지 이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의혹이 이는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돈을 준 혐의로 수감됐던 유 씨의 감방 동료로부터 심상치 않은 증언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2011년 6월 유 씨가 남부구치소 수감 당시 감방 동료였던 김 아무개 씨는 “접견대기실에서 만난 유 씨가 말을 걸어왔다. 대화중에 자기가 백의종에게 돈을 준 것은 없으며 검찰 조사 중에 자기의 형을 감형해주겠으니 백의종에게 돈을 준 것이라고 말을 하라고 해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했다”라며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또 다른 감방 동료 김 아무개 씨는 “평소 유 씨가 허풍을 심하게 떨어 좋지 않게 봤는데 어느 날 백의종과 관련한 얘기가 나왔다. 유 씨가 ‘검찰에서 보석을 해준다고 백의종에게 뇌물 준 것을 진술하라고 해서 거짓으로 뇌물을 준 것처럼 불었는데 내가 생사람 잡은 것 같아서 미치겠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뭐든지 진실을 말해야지 왜 검찰에서 하는 대로 끌려가느냐’라고 따지자 유 씨가 ‘보석을 받기 위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는 유 씨가 사람 같지 않아서 상대하지도 않았다”라고 밝혔다.
백 전 부의장은 “당시 유 씨의 감방 동료로부터 자술서와 사실확인서를 다 받아놓은 상태다. 출소하고 나서야 이러한 진실과 마주했다”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유 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보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 역시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사안이다. 거기에서 다 다뤄졌을 것으로 본다”라며 말을 아꼈다.
한편 백 전 부의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해놓은 상태다. 유 씨가 뇌물수수와 관련해 위증을 했으며 4000만 원을 받은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게 주요 골자다. 백 전 부의장은 “지난해 5월 경찰에 이 사실을 고소해 송치까지 됐지만 검찰에서 모두 기각 처분됐다. 징역형까지 살고 나왔고 아내까지 충격으로 저 세상으로 보낸 상황에서 남은여생 오직 바라는 것은 진실 규명이다”라고 전했다. 백 전 부의장의 간절한 바람에 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