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올해 들어 M&A시장 유력후보군으로 떠오르는 등 공격적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최준필 기자
정지선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과감한 변화와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계열사별로 핵심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자”고 강조했다. 그룹의 최대 현안을 신성장동력 확보로 삼은 것.
정 회장의 신년사 이후 현대백화점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도심형 프리미엄아울렛과 복합쇼핑몰 개점 계획을 구체화했으며 현대백화점 자체 인터넷 쇼핑몰을 구축해 그룹 차원에서 온라인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면세점 사업에 대한 정 회장의 의욕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의 면세점 사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지난 2012년 충청점 개점 이후 조용했던 현대백화점이 최근 들어 갑자기 공격적인 자세로 돌변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프리미엄아울렛과 복합쇼핑몰 등을 수년 전 준비해왔다는 게 현대백화점 측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프리미엄아울렛과 쇼핑몰을 하루아침에 열 수 있겠느냐”며 “2~3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올해 모두 개점 예정이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2월 경기 김포에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을 열 계획이다. 또 오는 8월에는 판교에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복합쇼핑몰을 함께 개점할 예정이며 올 하반기에는 서울 송파구 가든파이브에 도심형 프리미엄아울렛 입점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정지선 회장의 공격적 변모에 다소 의아해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롯데·신세계도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유통업 강자임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정지선 회장이 워낙 나서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공격적으로 나선 이상 기존 업체들이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그리 많이 받지 않았을 뿐 유통업 강자로 인식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현대백화점그룹은 2013년 기준 연매출 12조 원을 넘어선, 재계 순위 20위권(공기업 제외)에 오르내리는 대기업이다. 전국 백화점 수에서 롯데의 30여 개에는 못 미치지만 신세계의 10개를 앞지른다. 현대백화점 측도 자기들을 빼놓고 ‘유통업계를 롯데와 신세계가 양분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백화점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은 까닭은 대형마트와 편의점 사업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유통업계의 문제점과 잡음이 일어난 진원지가 대부분 대형마트와 편의점이었던 터라 이 두 사업을 영위하지 않는 현대백화점이 상대적으로 롯데·신세계보다 관심과 비난을 덜 받았다.
지난 2010년 ‘비전 2020’ 선포식 모습.
현대백화점그룹은 대신 유통과 관련 없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 현대백화점그룹은 35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 외에 현대에이치씨엔 경북·부산·동작·서초방송 등 지역 유선방송업, 명성기업 같은 건축물 청소업, 현대캐터링시스템·현대푸드시스템 등 캐터링(외식)업도 영위하고 있다. 여기에다 2011년 리바트 인수, 2012년 한섬 인수를 통해 가구업과 여성 패션업에도 진출해 있다. 비록 포기하기는 했으나 지난해 위니아만도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도 있다.
재계에서는 정지선 회장의 파격적 변신 이유를 그룹 주력사업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데서 찾는다. 2000년대 초·중반 구조조정을 거친 후 신규 점포 개점이나 점포 확장을 자제해왔던 현대백화점이 백화점과 홈쇼핑의 성장 정체를 가구업·방송업·식품업 등으로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정 회장이 지난 2일 신년사에서 “100년 이상 장수한 글로벌 기업들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변신을 시도했다”고 강조한 점도 이에 기인한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러한 행보에 우려도 존재한다. 현대백화점이 진행 중인 신성장동력이 별다를 게 없는 데다 기존 유통업 강자인 롯데와 신세계가 이미 진출해 있는 분야다. 유통업계에서는 프리미엄아울렛 성장세를 높이 내다보고 백화점의 성장 정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롯데와 신세계는 수년 전부터 프리미엄아울렛에 중점을 두고 파주·여주 등지에 대규모로 영업 중이다.
다만 지역적으로 경쟁사와 겹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백화점이 개점 예정인 김포 프리미엄아울렛과 판교 복합쇼핑몰은 아직까지 롯데·신세계와 크게 경쟁할 일은 없다. 그러나 프리미엄아울렛과 복합쇼핑몰에 일찍 눈을 뜬 선두업체들이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이 불을 보듯 뻔하다.
현대백화점이 강화하겠다는 온라인 사업도 기존 업체들이 이미 시도하고 있는 데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분야다. 현대백화점이 어떤 식으로 특화된 자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해나갈지는 미지수지만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현대백화점이 구상하고 있는 도심형 아울렛에 대해 정치권에서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불리한 부분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 회장의 신년사처럼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 변신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현대백회점이 위니아만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국내 인수합병(M&A)에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것 외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만한 사항(신성장동력)은 없다”며 “갑작스레 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해온 분야니만큼 제대로 할 것이며 M&A에 대해서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