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원 행장의 와병으로 신한금융그룹에서는 사실상 대권 레이스가 시작된 상태다. 사진은 신한은행 본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한 달이 넘도록 출근하지 못했다. 시무식이 끝난 뒤 감기몸살 증세가 있다며 입원한 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서 행장은 2월 초 퇴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동안 통원치료는 불가피한 상태로 전해진다. 신한은행 측은 그의 상태에 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지난 1월 15일 임영진 부행장을 행장직무대행으로 선임하며 서진원 행장의 공백이 길어질 것임을 공식화 했다.
서 행장의 임기는 오는 3월 끝나지만, 건강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그의 연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한금융 안팎의 신뢰가 두터웠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행장대행 체제가 시작된 뒤에도 “투병 중에 후임을 논의하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다”며 방어막을 쳤다.
내부적으로는 ‘한동우 회장-서진원 행장’ 체제가 한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17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한 회장은 2017년 70세가 되는데, 신한지주는 ‘신한 사태’ 이후 회장 나이를 7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이때가 되면 한 회장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후 서 행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자연스럽게 회장직에 오른다는 게 모두가 인정하는 신한금융의 후계구도였다.
이 때문에 적어도 향후 5년여 동안 신한금융에서 대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들이 많았다. 그러나 서 행장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신한금융의 안정된 권력구도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내부에서도 후임자 선임 작업이 사실상 시작되면서 ‘잠룡’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행장이 되면 오는 2017년 공석이 되는 회장 자리까지 이어받을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이들 입장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권’이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어느 때보다 강한 권력의지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행장으로는 내부 CEO(최고경영자) 양성프로그램에 따라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조용병 신한BNP파리바 사장, 김형진 신한지주 부사장, 그리고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들 후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성골로 불리는 이른바 ‘라응찬 라인’과 지금은 숨을 죽이고 있는 ‘신상훈 라인’ 등이다.
신한 사태 이후 신한금융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라응찬 라인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즐비하다. 위성호 사장, 강대석 사장, 조용병 사장, 김형진 부사장 등이 모두 같은 계열로 분류된다. 한동우 회장과 서진원 행장 역시 라응찬 라인이다.
반면 하마평에 오른 인물 가운데 신상훈 라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는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 정도다. 그는 신한사태 당시 라응찬 회장과 대립했던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따랐지만 한동우 회장이 실시한 ‘탕평인사’로 계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결국 라응찬 라인 가운데 한동우 회장의 낙점을 받는 인물이 차기 행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회장은 신한금융의 리더일 뿐 아니라 차기 행장을 뽑는 자회사경영위원회(자경위) 멤버 4명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한 특유의 군대식 문화와 강력한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전통을 감안할 때 신상훈 라인은 배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라응찬 라인 가운데는 김형진 부사장과 위성호 사장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은 지난해 카드 고객 정보유출 사태 당시에도 신한카드를 잘 방어하며 ‘관리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안정된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카드사들의 이익이 급감하는 와중에도 그는 신한카드의 순이익을 19%나 늘렸다. 위 사장은 신한은행 경영관리담당 상무, 신한지주 부사장, 은행 WM그룹 부행장 등을 지냈고, 신한카드로 옮겨간 뒤 리스크관리부문 부사장에 이어 2013년 8월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김형진 신한금융 부사장은 지주사에서 한동우 회장을 가깝게 보좌해왔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1983년 신한은행에 입사한 뒤 인사를 주로 담당하다 2009년 부행장에 올랐고 2013년 5월부터 신한금융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신한금융 내부에서는 한 회장의 의중과 함께 재일교포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이 결국 행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식적인 행장 선임 절차는 한동우 회장과 3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자경위가 맡지만, 최종후보 선임 전에 재일교포 주주들의 재가를 얻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의 한 관계자는 “여러 사안에서 증명됐듯 결국 신한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것은 재일교포 주주들”이라면서 “자경위의 발표가 있기 전에 한동우 회장이 일본을 방문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신한금융의 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차기 행장 후보에는 자회사 CEO와 해당 자회사 임원이 포함된다. 자경위는 이들을 대상으로 1차 후보군을 정하고, 은행 이사회가 논의를 거쳐 차기 행장을 결정하게 된다. 이어 3월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으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조만간 퇴원하는 서진원 행장이 우려를 털고 재집권에 들어갈지, 새로운 대권주자가 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