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국 중고생 바둑대회가 3월 29일 한국기원에서 열렸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날 바둑왕전은 전국 중, 고등학생이 참가해 고등 최강부, 중등 최강부, 고등부 갑조, 중등부 갑조로 나뉘어 바둑실력을 겨뤘다.
본격적인 시합에 앞서 신상철 한국중고바둑연맹 회장이 개회사를 했다. 신상철 회장은 “중고생 바둑왕전의 슬로건을 ‘Hello baduk’이라고 정했다. Hello에는 안녕이란 인사의 뜻도 있지만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다”며 슬로건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는 훈련이 끝나고 나서 유도복이 땀에 푹 젖어 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러분은 머리를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한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개회사가 끝난 뒤 예선리그 막이 올랐다. 예선리그는 4인 1조로 구성된 조가 풀리그를 통해 가려진 상위 2명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대회장 안 소리부터 달라졌다. 바둑알 부딪히는 소리와 “5분 남았습니다” “마지막 10초, 9, 8, 7…” 등 계시기(남은 시간을 계산해서 알려주는 기계)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승부에 임하는 긴장감과 집중력은 얼굴에까지 드러났다. 첫 판이 끝날 때가 되자 참가자들의 앳된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갔다.
풀리그를 거쳐 본선토너먼트에 오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대진을 짜기 위한 번호 추첨이 진행됐다. 확정된 대진표가 게시판에 걸리자 참가자들 얼굴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첫 경기부터 친구와 대결하게 된 한 참가자는 대진표를 보면서 “하필 너야?”라며 원망의 눈빛을 보냈고 강적을 피한 참가자는 “휴,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반면 “나는 더 이상 여한이 없어”라며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한 참가자도 있었다.
수상자들이 신상철 중고바둑연맹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및 대회 관계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대회장에는 남매가 같이 참가해 눈길을 끈 ‘바둑 꿈나무’도 있었다. 나란히 오전 대국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한 김상천 군(17)과 김상인 양(14)이 그 주인공. 남매는 모두 양천대일바둑도장 출신이다. 오빠인 김 군은 “우승하기 위해 참가했다”며 “자신의 스타일을 공격적인 전투형”이라고 설명했다. 동생인 김 양은 “오빠가 바둑 두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시작했다”며 “아침 9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까지 하루 15시간을 바둑을 둔다. 바둑 두고 밥 먹고 또 밥 먹고 바둑 둔다”고 말했다. 서로를 보며 까르르 웃는 남매의 모습이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유재성 한국중고바둑연맹 사무국장은 “연구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바둑대회는 1년에 두 번 정도밖에 없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실전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 심판위원장을 맡은 최철한 9단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보니 바둑을 진지한 자세로 대하고 있고 실력도 우수한 것 같다”며 “초등학생이 아닌 중·고등학생의 경우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통해 스스로 바둑이 나의 길이 맞는지 진로를 확인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국기원 연구생까지 참여하는 ‘고등 최강부’에서는 대회 시작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김기범 군(18)이 거론됐다. 본선에 진출한 한 참가자는 “김기범은 한국기원 연구생 랭킹 1위로 강력한 우승후보다. 너무 잘한다”고 말했다. 김 군은 예선과 본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고, 8강과 4강에서도 연이어 불계승(집 계산 전에 상대방의 항복으로 승리하는 것)을 거둬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고등 최강부 결승전에서 김기범 군(오른쪽)이 송규상 군을 꺾고 우승했다.
김 군은 결승에서 송규상 군(17)을 만났다. 김 군은 현재 한국기원 연구생 리그 랭킹 1위, 송 군은 랭킹 2위로 최강자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접전 끝에 송군을 반집 차이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김 군은 “8강도 가본 적 없어서 우승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결승전에서 형세판단을 잘한 점이 승부를 가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최근 김기범 군 실력이 물이 올랐다. 랭킹도 상승세가 이어져 1위까지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가 넘는 치열한 대국 끝에 우승자가 결정됐다. 고등 최강부 1위는 김기범, 2위는 송규상 군이 차지했고 심재익, 이승준 군(충암고1)이 공동 3위를 차지했다. 고등부 갑조에서는 이유빈 군(충암고3)이 우승에, 이철호 군(서대전고3)이 준우승에 이름을 올렸다. 최정찬 군(경성고1), 김강민 군이 공동 3위였다.
중등 최강부 결승에는 박상진 군(충암중2)과 채이현 군이 만났다. 경기가 반쯤 진행됐을 때 관전자들은 채 군이 박 군의 대마를 잡으며 사실상 승리가 유력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채 군이 사활을 읽는 데 실패하면서 박 군의 대마가 살아났고, 채 군은 그대로 돌을 던졌다. 중고바둑연맹 관계자는 “이번 대회는 10분 정도의 시간만 부여된 속기전 중에서도 초 속기전이다”라면서 “이럴 때는 프로라고 해도 아주 쉬운 사활이 눈에 보이지 않아 어이없는 패배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채 군을 지도하는 사범님이 ‘왜 그 수를 보지 못했냐’고 묻자, 그때서야 깨달은 채 군이 몹시 아쉬워하기도 했다.
중등 최강부 결승에는 박상진 군(충암중2)이 우승 상장을 받았고, 채이현 군은 아쉽게 준우승 상장을 받았다. 3위는 임진욱, 조성호 군이 이름을 올렸다. 중등부 갑조에는 윤민중 군(대전매봉중2)이 우승을, 정지
혁 군(목운중2)이 준우승을 따냈다. 박정헌, 김윤수 군은 공동 3위의 성적을 거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