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영이 자신의 한국기록을 5년 만에 0.07초 앞당기며 ‘10초 16’이라는 새 기록을 세웠다. 김국영은 날렵한 외모만큼이나 말솜씨도 경쾌한 청년이었다.
“빨리 달리는 데엔 자신이 있지만, 오래달리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스피드는 뛰어나지만 지구력은 빵점에 가깝다. 그래서 난 마라톤 선수들을 존경한다(웃음).”
―올해 초 안양시청에서 광주광역시청으로 소속팀을 옮겼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안양은 내 고향이고,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도시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안양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들어간 실업팀이 안양시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팀과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자꾸 삐거덕거렸다. 그러던 차에 대회 나가서 자주 뵈었던 광주시청의 심재용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게 됐고, 그 분 밑에서 달리기를 배우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의 추가 기울었다. 얼핏 보면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선수들을 진심으로 자식같이 챙기는 분이셨다. 심 감독님만 믿고 광주시청으로 옮긴 것이다.”
―2010년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10초 23으로 한국 신기록을 세운 후 5년의 시간이 걸려 10초 16으로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지난 5년은 기록 단축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기보다는 인생의 단거리를 뛰며 수차례 넘어지고 깨지고 다쳤던 시간들이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행복보다는 불행했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내 자신이 단단해졌고, 노하우도 생겼고, 실력도 향상됐다. 그래서 10초 16이란 숫자는 기록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2015년 1월 1일 광주시청으로 옮기면서 세운 목표가 10초 16이었다. 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10초 16을 목표로 한다는 메시지를 1월 1일에 기록해뒀다. 그런데 정확히 그 숫자를 달성한 것이다. 이것은 내 노력과 실력보다는 팀의 도움과 감독님의 지도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광주시청 소속인 선수가 한국 신기록을 달성했으니 얼마나 뜻 깊었겠나.”
지난 7월 9일 김국영이 한국 신기록을 작성한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그때의 일이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 대회를 준비하면서 성적에 대해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잊고 싶은 대회이기도 하다. 당시에 난 철저히 혼자였다. 어느 누구도 날 돌봐주고 챙겨주고 도와주지 않았다.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조차 나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인데, 그런 국제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은 한가득인데, 내가 더 나은 기록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심지어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내게 ‘100m는 어차피 기록 경신이 어려우니까 400m 계주에 전념하라’는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 난 100m 단거리를 더 크게 잡고 있는데, 대표팀에선 400m 계주 선수로 집중하길 바라는 엇박자로 인해 결국엔 부정출발이라는 악몽을 경험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에 대한 모든 화살이 내게 쏟아졌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이번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나온 한국 신기록은 기록 경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잊힐 뻔했던 김국영이란 선수가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국영 선수가 9초대에 진입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나.
“난 흑인 선수들의 경기 비디오는 보지 않는다. 신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영상은 동양인인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 가서 동양 선수들을 가르쳐 본 코치를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싶다. 중국의 쑤빙텐 선수가 미국인 코치의 훈련을 받고 9초대의 기록을 달성했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려면 좀 더 세밀한 훈련법이 필요하고, 그걸 알고 있는 분을 만났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려면 많은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중국의 쑤빙텐은 지난 6월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IAAF)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100m에서 9초 99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순수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9초대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다.
―지금 스물네 살인데, 앞으로 언제까지 뛸 생각인가.
“미국의 저스틴 게이틀린이 34세다. 그런데 최근에도 미국에서 열린 국제대회 100m 결승에서 9초 75로 우승을 차지했다. 뛸 수 있을 때까지 뛰고 싶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선배가 아닌, 후배들을 이끌어가는 선배가 돼 한국 육상의 발전을 위해 뛰고 싶다. 물론 한국 육상의 꿈인 9초대의 장벽을 허무는 첫 선수가 나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김국영은 더 좋은 기록을 통해 지금보다 더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래야 육상 선수도 매스컴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모으면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어린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육상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김국영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기-승-전-한국육상’이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