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과 일시적 제휴관계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2일 김 대표가 당 소속 국방위 위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를 찾아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을 업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최근 김무성 대표 언행을 들여다봤을 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전 친DJ행보를 보였던 점과 흡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YS로부터 정치를 배운 김 대표로서는 과거 박근혜식 대권행보보다는 ‘통 큰’ 이미지로 각인되려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어찌됐든 새누리당 유력주자가 되려면 영남권에선 확실한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TK에서만큼은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을 업고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이 이명박 대통령과 현안마다 각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TK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김 대표는 그런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정가에서는 최근 몇 가지 사례에서 김 대표의 ‘친박 행보’를 읽을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 8월 25, 26일 이틀간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연찬회는 이튿날 일정이 대폭 축소되면서 종결됐다. 첫날 일정을 마친 저녁자리에서 김 대표가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당 소속 의원 전원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기로 했으며 참석하기 위해서 오전 9시 30분에 전원이 청와대로 출발한다”는 깜짝 발표를 한 탓이다.
이를 두고 비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당 소속 의원 전원이 이렇게 모여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장이 열렸는데 대통령이 불렀다고 쏜살같이 달려갈 수 있느냐. 소통이 그렇게 필요했다면 오히려 박 대통령이 여기 오는 것이 여러모로 보기에도 좋고 우리도 편한 것 아니냐”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다음날 있을 토론 과정에서 발언을 신청했던 한 의원은 “맥이 탁 풀린다. 대통령 한마디에 며칠간 준비했던 원고가 쓸모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문제는 정작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이 헤드테이블에 앉은 당 중진들과만 인사를 나눴을 뿐 나머지 다수 의원이 ‘들러리’서듯 밥만 먹고 왔다는데 있다. 한 참석자는 “역대 대통령이 테이블을 오가며 일일이 인사한 적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적어도 오찬장에 들어설 때 악수 정도는 해왔는데 이번에 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상경한 의원들의 낙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청와대 오찬을 넙죽 받은 김 대표의 즉석 결정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도 나왔다. 오찬 아이디어를 내놓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탓하는 의원들도 보였다.
# 일부 의원들은 최근 걸핏하면 열리는 당정협의를 두고 “당정과잉이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며 인상을 쓴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으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실제 당정청 회동이나 당정협의는 눈에 띄게 늘었다.
사진제공=청와대
고위 당정청 회동, 당정청 정책협의회, 상임위별 당정협의까지 이름을 달리하며 국회와 청와대를 넘나드는 통에 일각에선 “당이 제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하달만 받고 있는 것 같다. 예스만 하다보면 총선에서 새누리당 확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정이 협의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당이 정부의 말만 전폭 수용한 목소리만 낸다는 것이다.
8월 27일 내년도 예산안 당정협의를 마친 한 참석자는 “우리는 내년 총선을 위해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 그랬는데 정부에서는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면서 말을 자르더라”며 “당이 도로 ‘청와대 연락소’ ‘청와대 파출소’가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 당이 주도하는 이슈가 부재하다는데 대한 의원들 불만도 예상보다 컸다. 김 대표 역시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새누리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최근 공사석에서 김 대표가 역설하는 노동개혁, 경제 활성화는 박 대통령이 당에 내준 숙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노동개혁은 어느 이슈보다 표를 갉아먹는 마이너스 이슈라는 데 걱정을 늘어놓는 의원들도 많다.
당권을 쥔 직후 정부를 향해 건전한 재정건전성을 요구하며 각을 세웠던 김 대표는 최근 친박계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돈을 풀어 내수를 살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야기하자 “좋아질 때까지 확장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김 대표의 이런 로우키 전략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정한 바 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가지 위기가 있었습니다마는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죽이고 전체 조직을 위해서 절충과 타협을 하는 방향으로 일을 매듭지어 왔습니다.”
그러나 김 대표의 ‘박근혜 프렌들리’ 기조는 내년 총선까지가 데드라인인 시한부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내년 7월까지가 임기인 김 대표가 19대 대선에 나설 수 있으려면 20대 총선 승리가 필수조건인데 사실상 내년 총선은 ‘박근혜의 선거’다. 현 정부가 잘하면 총선 필승이 가능하고 잘하지 못한다면 필패라는 계산에서 지금은 당청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라고 김 대표가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경기활성화를 위해 돈을 푸는 ‘초이노믹스’를 인정한 것도 그 때문이란 관측도 있다.
김 대표 스타일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김 대표는 좋은 게 좋다는 스타일이 아니다. 최근 사례에서 보듯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럭’할 때가 많은 경상도 사나이”라며 “정부가 하는 일이 다 좋을 리는 없겠지만 지금은 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저자세로 인내해야 할 시간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무성대장’의 ‘박근혜 프렌들리’ 진위는 김 대표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고자세로 돌아설 날이 올지 주목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