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뉴하트>의 의사 김민정(왼쪽)과 <천하일색 박정금>의 형사 배종옥. 최근엔 ‘팔자가 드세 보인다’는 통념을 뒤엎고 능력있는 여성이 부각받고 있다. | ||
잘생긴 신랑 똑똑한 신부
지난해 또 다른 ‘장군의 아들’ 박상민이 동시 통역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토이남(토이의 노래 속 주인공처럼 여전히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취향 있는 남자)’이라는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데 한몫을 한 유희열의 부인도 동시 통역사다. 훈남 배우 김상경은 스케일링하러 갔다 만난 동네 치과 의사와 4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해버렸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던 박명수마저 피부과 의사라는 여자친구를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그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직업이 모두 ‘사짜’로 끝난다는 것.
연예인만 그런 게 아니다. 한때 잡지사 인턴으로 잠시 일한 남자 후배는 공익근무요원 주제에 여자 의사와 열애 중이다. 그것도 170cm의 키에 신민아를 닮은 예쁜 치과 의사와. “공부만 해서인지 똑똑하고 순진해. 공주병이 좀 있지만 눈에 다 보이니까 그것마저 귀엽다니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여자친구를 자랑하는 후배를 볼 때면 불과 몇 달 전까지 그에게 밥 해주고 재워주며 열과 성을 다한 그의 착한 여자친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물론 그녀들은 그렇게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후배는 여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로스쿨에 가기 위해 현재 ‘열공’ 중이다. 아, 사랑의 힘이란.
그들이 ‘사짜’ 찾는 이유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동시 통역사, 회계사…. 과거 1등 신랑감으로 꼽히던 직업들이 이제는 최고의 신붓감을 찾는 조건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런데 이 ‘사짜 와이프’를 찾는 남자들은 과거 일부 여성들이 그런 것처럼 마누라 잘 만나 팔자 한번 고쳐보겠다는 식의 제비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다. 이 남자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재벌 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집안이 좋고, 둘째, 여자는 이미 만나볼 만큼 만나봤다는 것, 셋째 능력 있는 여자에게 열등의식을 갖지 않아도 좋을 만큼 직업적으로 능력 있거나 외모와 재산이 좀 되는 편이다. 괜한 자격지심이 없으니 성격도 다정다감하다. 넷째, 그들의 나이는 대개 30대 초·중반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좀 여우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일단 부모님이 좋아하니까 괜히 결혼 문제로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잖아. 가장 귀찮은 일 하나가 해결된 셈이지.” 선천적 책임감 결핍 증후군을 보이는 후배 녀석과 카사노바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돈도 잘 벌고 똑똑하니까 나에게도 자극이 돼. 친구들도 부러워하고.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의 경우에 내가 일을 그만둔다 해도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결혼은 성적순이더라?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마다 여자 주인공의 직업은 죄다 ‘사짜’ 일색이다. <뉴하트>의 김민정은 의사, <엄마가 뿔났다>의 신은경은 이혼 전문 변호사, <천하일색 박정금>의 배종옥은 여형사, <그 여자가 무서워>의 유선은 대기업 이사, <아현동 마님>의 왕희지는 검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잘나가는 ‘사짜’ 여성은 드세고 털털한 성격으로 극에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감초거나 여주인공의 조언자, 또는 우리의 나이브한 여주인공을 시기하는 이기적인 성격의 악역에 지나지 않았다. 메디컬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늘 드라마 여주인공이란 자고로 청순가련해야 했고, 캔디인 척 굴더라도 결국 남자 주인공의 도움 없인 무엇 하나 혼자서는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존재여야만 했다. 그래야 왕자님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테니까. 멜로드라마라면 더욱 더.
그런데 TV 속 드라마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극한 이 능력 있는 여자들은 이제 현실의 러브 스토리에서도 주인공을 꿰차려 한다. 그래서 한 남자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가장 이상적인 건, 의사 와이프에 세컨드로는 예쁜 모델을 두고 잡지사 기자와는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는 거야.” 이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더니, 적어도 결혼은 성적순인가보다. 안정적인 미래와 세상 사는 즐거움, 본능적 쾌락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이 곰 같은 남자의 여우 같은 심보를 보라. 하긴 내가 남자라도 그렇겠다. 그러게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말씀 좀 잘 들을걸.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고 노래할 수 있을 때가 좋았다. 신문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요즘은 얼굴도, 능력도, 마음도 예뻐야 여자란다. 그리운 남진 오빠. 남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평균 결혼 비용만 1억 원이 넘는 시대, 여기에 청년 실업은 600만에 도달했고 시시때때로 불어 닥치는 구조조정까지 그야말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들에게도 나름 딜레마가 있다. ‘남자, 그저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말은 건강한 몸과 마음만 있으면 단칸방에서도 타워 팰리스의 꿈을 꿀 수 있던 새마을 운동 시대에나 통하던 얘기다. 남자란 자고로 능력은 기본이요, 재산은 필수인 데다 피부 관리에 대머리 방지를 위한 두피 마사지까지 받아야 맞선 시장에 겨우 명함 한 장 내밀 수 있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이제 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성형수술과 학업에 힘써 미모의 재원이 되기 위해 힘쓰든가, 아니면 눈 닫고 귀 막고 신애 언니의 노래처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사는 쪽’에 한 표를 던지든가.
어느 쪽을 택하건 분명한 건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도시락을 싸느니 그 시간에 본인의 스펙을 증진시키기 위해 힘쓰는 편이 훨씬 승산 있다는 사실이다. 못 믿을 감정보단 든든한 백그라운드로 상대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 ‘사짜 와이프’ 시대에 멜로드라마의 행복한 주인공이 만드는 건 사랑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더라.
에디터=이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