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아무나 다 타지만 밴이야말로 진정한 스타의 상징이었죠. 촬영 현장에 밴을 타고 오고 감독님 옆의 개인 의자에 앉아 모니터링하는 게 톱스타의 특권이었는데…. 이젠 다시 톱스타만 밴을 타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매니저의 이야기다. 외제 대형 밴, 누가 뭐래도 이는 톱스타의 상징물이다. 아예 ‘외제 대형 밴은 곧 연예인 차’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을 정도다. 실제 연간 250여 대가 수입되는 데 그 가운데 70%가량을 연예인이 구입하고 있다.
왜 연예인은 대형 밴을 선호할까. 편안함이 가장 큰 이유다. 연예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외제 대형 밴은 스타크래프트 밴과 익스플로러 밴, 그리고 스타 라인 밴(이는 내장회사 브랜드로 GM 등의 회사가 만든 차량을 내장회사가 개조했다는 의미다) 등이다. 이동 도중에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푹신한 의자가 구비돼 있는데 서로 떨어져 있어 다른 이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TV와 DVD 플레이어는 기본, 소형 냉장고까지 탑재된 차량도 있다. 담요나 의상 등을 둘 수 있는 수납공간이 많다는 것도 대형 밴의 특징. 대개 밴 안에는 협찬 받은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 고가의 물품들이 많이 담겨 있기도 한데 한동안 이를 전문적으로 노리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가수 이수영과 김원준 등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연예인으로 피해액이 둘 다 수천만 원대였다.
프레쉬 엔터테인먼트 한승조 이사는 “외제 대형 밴은 천장이 높아 고개를 숙일 필요 없이 서서 의상을 갈아입을 수 있다”면서 “야외 촬영의 경우 밴이 탈의실로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고 얘기한다. 지방 공연 등으로 이동 거리가 많은 가수 장윤정은 “하루 중에 밴에서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아 내겐 집과 같은 곳이다”면서 “늦은 밤이나 새벽녘 밴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큰 장점은 안전에 있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숨 가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는 터라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연예인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활동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만큼 안전한 차에 대한 필요성이 남다르다. 슈퍼주니어나 동방신기의 경우 차량이 반파되는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지만 슈퍼주니어의 규현만 큰 부상을 입었을 뿐 대부분의 멤버들은 경상에 그쳤다. 모두 대형 밴을 타고 있었는데 다른 차량이었다면 부상 정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이처럼 편의와 안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대형 밴이지만 연예인이라고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에게 대형 밴을 지급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현직 매니저들은 수익구조와 활동량이 가장 결정적이라고 설명한다. 로지트 엔터테인먼트 지명석 팀장은 “연간 5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야 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기준이었는데 요즘 유가가 급등해 그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스타와 연예기획사의 수익 분배 비율을 7:3으로 보면 연간 5억 원을 버는 연예인의 경우 연예기획사의 몫은 1억 5000만 원이다. 이 금액으로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등의 인건비와 밴 유지비 등을 해결하는 것. 상당수의 연예기획사는 세금 문제 등으로 인해 대형 밴을 리스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대형 밴의 가격은 대개 8000만 원대로 2500만 원 정도를 먼저 지불하고 리스해 매달 220만~260만 원 정도를 내는 데 250만 원 기준으로 1년이면 3000만 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연비가 낮은 수준이라 유지비 역시 최소 월 100만 원 이상이다. 결국 밴 한 대를 굴리려면 최소한 연간 4500만 원가량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 가수들은 지방 스케줄이 많아 안전을 위해 대형 밴을 이용한다. 사진은 인기 그룹 코요태가 밴에 오르기전 팬들에게 선물을 받고 있다. | ||
그런데 이 경계에 들지 못하는 연예인들도 대형 밴을 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속 연예인의 이미지를 격상시키기 위한 배려다. 주연급이지만 아직 A급은 아닌 이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며 대형 밴을 지급하는 것이 투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
문제는 연예인들의 대형 밴에 대한 로망에 있다. 계약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연예인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안이 바로 대형 밴 지급이다. 얼마 전에는 조연급으로 맹활약 중인 한 여자 연예인이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계약금 대신 대형 밴을 요구해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계약금 대신 대형 밴을 지급하면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없어 보이지만 차량 유지비를 감안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매니저들의 설명. 얼마 전까지는 연예인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대형 밴을 지급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유가 폭등으로 이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토록 연예인이 대형 밴에 집착하는 이유가 다만 편의와 안전 때문은 아니다. 연예계 각종 행사장에서 취재하다 보면 대형 밴과 승합차를 이용하는 연예인을 은근히 차별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차 공간이 다르고 안전요원들이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대형 밴을 이용하느냐 승합차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는 것. 이런 까닭에 연예인이 차량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취재가 시작되는 시상식장을 찾는 연예인의 경우 평소 승합차를 탈지라도 그날만큼은 대형 밴을 빌려서 타고 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요즘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대형 밴은 계륵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이에 따라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대형 밴을 LPG 겸용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는데 매달 수십만 원의 유류비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게 매니저들의 설명이다. 또한 연예인에게 개인용으로 대형 밴을 지급하지 않고 공용으로 몇 대를 구비해 스케줄에 따라 연예인들이 돌아가며 사용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형 밴에 선물이나 개인 사물을 두고 제2의 집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이 상당수라 마찰이 불가피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