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원정 도박에 참가한 사람들은 소위 ‘롤링업자’라고 불리는 알선 브로커들을 통해 외화를 밀반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
문제의 핵심은 과연 연예인의 해외 원정도박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해외 원정도박을 즐기는 연예인이 많다면 반드시 여론 환기용이 아닐지라도 수사 당국의 수사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이 계속돼 외환 위기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유명 연예인이 외화를 반출해 도박으로 탕진하고 있다면 하루 빨리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예관계자들에게 두루 문의한 결과 대부분 “몇몇 그런 연예인이 있을 수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다만 연예인은 현금 수입이 많은 데다 유흥업계나 사행업계의 유혹이 많이 따르는 게 사실이라고 얘기하는 이도 있었다.
현실은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두세 차례 해외로 원정도박을 다녔다는 사업가 이 아무개 씨는 “마카오나 필리핀 등에 위치한 카지노 VIP 룸에서 종종 연예인을 만났고 함께 게임을 한 적도 있다”고 얘기한다. 이 씨는 해외 원정도박이 일반인보다 연예인에게 훨씬 더 위험하다고 얘기한다. 그 까닭은 연예인은 얼굴이 곧 담보이기 때문이라는 것.
“외국 카지노 VIP룸에서 게임을 하려면 최소 억 단위는 들고 와야 되는데 그 돈을 다 잃은 뒤에도 아쉬움이 남으면 뭔가 담보를 맡기고 돈을 빌리곤 한다. 그런데 연예인의 경우 유명 인사라는 이유로 담보 없이도 돈을 빌려주곤 한다. 이럴 경우 밑도 끝도 없이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매니저들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도박으로 돈을 잃는 것도 큰일이지만 만약에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걷잡을 수 없게 일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얘기를 소속 연예인들에게 종종 들려주곤 할 정도란다.
보통 해외 원정 도박은 소위 롤링업자라 불리는 알선 브로커들을 통해 이뤄진다. 해외 원정도박이 이뤄지려면 충분한 외화를 들고 해외 카지노를 찾아야 하는데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외화는 1만 달러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보통 20만 달러 정도는 있어야 해외 카지노 VIP룸에서 큰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소위 ‘불법 환치기’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을 돕는 이들이 바로 롤링업자들인데 그들은 왕복항공권이나 체류 경비까지 제공하며 도박참가자들을 모아 해외로 나간다. 해외 원정도박 참가자들은 보통 4~5명이 그룹을 이뤄 함께 움직인다. 매달 한두 차례 롤링업자가 같은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연락해 동참을 유도하는 것. 행여나 수사기관의 눈에 띌 수 있어 카지노가 있는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떠나면 카지노 측에서 전용헬기 등을 보내 이들을 영접한다. 물론 VIP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연예인은 해외 원정도박에 오는 루트가 일반인과 다소 다르다고 얘기한다.
“일반인과 그룹을 지어 함께 이동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얘길 들어보니 여행이나 업무로 해외를 찾았다 재미삼아 카지노를 찾은 연예인에게 현지 브로커들이 접근해 돈을 빌려주며 자기 손님을 만들곤 한다고 들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게 도박이다. 이런 탓에 시간 날 때마다 며칠 씩 시간을 빼 해외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아예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 해외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연예인들의 해외 활동이 급증하면서 해외 현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늘고 있는데 이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서 직접 관리하며 보다 손쉽게 해외 원정도박을 즐기는 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또한 최근 들어 연예인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늘고 있는데 투자 목적 해외부동산 취득한도까지 폐지돼 이를 악용해 해외 원정도박을 하는 이들이 등장할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사안은 도박에 심하게 중독된 일부 연예인이 여전히 불법 카지노 바를 찾고 있으며 국내 카지노에서 불법적으로 도박을 즐기기도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강남에서 직접 카지노 바를 운영했던 김 아무개 씨는 “평소 도박을 즐겨 카지노 바를 자주 찾다 직접 운영하게 됐는데 최근 카지노 바를 정리하며 발길을 끊었다”며 “카지노 바에서 매우 많은 연예인을 만났는데 재미 삼아 따라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요즘에도 많이들 온다고 하더라”고 얘기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그리고 이로 인한 형사처벌이 가능할지의 여부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범죄 사실이 입증되면 사법처리를 피하기 힘들다. 해외 원정도박의 경우 상습도박도 문제지만 외환거래법 위반이라는 중죄가 추가된다. 다만 수사 당국 관계자들은 대대적인 수사가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해외를 오갈 때마다 다 챙겨볼 수도 없는데다 그렇다 해도 다른 나라를 경유하는 등 수법이 교묘해 수사가 쉽지 않다”면서 “요즘 들어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재 특급 카지노까지 가서 원정도박을 한다는데 가까운 동남아가 아닌 미국에서의 원정도박은 수사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검찰 측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취재에 응한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내부적으로 입수하고 있는 알선 브로커 조직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는 것은 가능하다”면서도 “그들에게 관련 연예인의 혐의를 입증할 증언과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해외 원정도박의 경우 워낙 큰돈이 오가는 편이라 연예인처럼 특급 고객에 대한 정보는 수사 과정에서 끝까지 함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해외 카지노 등에서 이들 브로커들에게 돈을 빌린 뒤 갚는 과정에서 신용이 좋지 않았던 이들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수사 선상에 오른 알선 브로커들이 신용도가 좋지 않은 연예인 관련 정보를 흘려 자신들의 살 길을 모색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순 없다.
따라서 괴담으로 떠도는 내용처럼 여론 환기용의 대대적인 수사는 사실상 어려움이 많다는 게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이런 수사의 어려움을 악용해 해외 원정도박을 상습적으로 즐기는 연예인이 많아지고 있음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