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사례가 대다수였지만 지난해 8월엔 MBC 시사교양국의 한 여성 작가가 남성 PD에게 강제로 성추행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MBC 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자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작가들이 업무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PD와 작가를 갑을 관계로 보긴 어렵지만 PD가 고용 안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 작가의 신분이 프리랜서인데다 사실상 방송국이 아닌 해당 프로그램에 소속된 상황이라 고용 여부의 결정권을 가진 이가 담당 PD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될지라도 담당 PD가 맡는 새 프로그램 합류 여부가 중요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도 담당 PD의 추천 및 소개를 신경 써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PD들은 이런 추악한 상황과 무관하다. 어느 사회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몇몇 문제가 되는 PD들이 늘 말썽의 주인공이 되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방송작가들은 문제점을 제기한다.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에서 메인 작가로 활동 중인 한 12년차 작가는 “고참 작가들은 문제가 되는 PD들이 누군지 다 알고 있는데 이는 동료 PD들도 매한가지”라며 “후배 작가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고도 돕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PD들이 동료 PD 감싸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는 작가들 사이에서 불신을 조장하기도 한다. 케이블 예능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6년차 작가는 “얼마 전 어느 외주 프로덕션에서 근무했는데 그 회사 대표가 새벽마다 치근덕거려 결국 그만뒀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한 방송작가는 “작가들이 성추행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단 어느 작가가 누구 PD의 꾐에 넘어갔다며 수군거리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방송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어 구조적인 문제점이 지속되는 데다 성추행 피해자가 될지라도 이를 호소할 곳조차 없기 때문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