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시집>의 갈라 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혜교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흥행과는 거리가 먼 독립영화였다. 정확히 1년 전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송혜교를 본 할리우드 유명 캐스팅 디렉터 수잔 숍메이커의 눈에 들어 캐스팅 제안을 받은 그는 이미 칸 국제영화제에서 검증된 손수범 감독과 만나 이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독립영화를 선택한 것도,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고른 작품도 아니에요. 다만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느낌이 좋았고 기존에 해보지 못한 캐릭터라 마음이 끌렸어요.”
영화 <파랑주의보> <황진이>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인 <시집> 역시 흥행에 대해선 기대감이 크지 않은 작품이다. 4년여의 충무로 도전이 거듭되는 흥행 참패라는 상처만 남긴 것. 브라운관에서 떠 스크린으로 진출해 계속된 흥행 참패를 기록하며 위기에 내몰린 톱스타의 선택은 단 한 가지뿐,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송혜교는 모험수를 던졌다.
<풀하우스>를 통해 송혜교에게 톱스타로서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해준 표민수 PD와의 재회인 데다 노희경 작가까지 가세했다. 상대 배역 역시 검증된 흥행 메이커 현빈. 그럼에도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흥행 드라마보다는 마니아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청률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간절하죠. 달라진 부분이라면 예전에 비해 여유와 편안함이 생겼다는 거예요. 어릴 땐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앞섰는데 배우가 평생 직업임을 깨달은 뒤 좀 달라졌어요. 배우는 성공보다 망할 때 더 많이 크는 것 같아요. 이제 흥행에 연연해하거나 초초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고독> 등의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표민수 PD와 노희경 작가는 방송가에서 ‘표노연합군’이라 불리는 최고의 조합이지만 흥행보단 마니아 드라마 전문이다. 표노연합군이 6년 만에 재결합한 작품에서 송혜교가 선봉장의 중책을 맡은 것.
“워낙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해 <풀하우스>를 촬영할 당시 표민수 감독님께 기회가 되면 다시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드디어 그 꿈이 이뤄졌어요. 그런데 정작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을 하게 되니까 부담이 크더라고요. 이번에 맡은 주준영은 지금껏 맡아온 역할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예요. 순종적이고 여성스런 캐릭터만 주로 소화해왔는데 이번엔 현실감 있는 인물을 그려야 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머리까지 싹둑 잘랐다. 20대 후반의 여성 드라마 PD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단발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긴 머리를 아낌없이 자르게 됐다고.
손수범 감독과 함께 한미합작 독립영화에 출연한 뒤 곧이어 표노연합군의 선봉장을 맡아 흥행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로 거듭나고자 하는 송혜교. 그의 차기작은 세계적인 거장 오우삼 감독의 신작 <1949>. 월드스타로 거듭나기 앞서 연기력 내실 다지기에 들어간 송혜교의 열정이 담긴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