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엘류 감독의 ‘고행’은 언제쯤 끝날까. 사진은 지난 6월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 ||
아시안컵 예선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살펴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김동진(안양 LG)이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김동진은 지난 17일 올림픽대표팀 멤버로 출전한 한·일전에서 2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쿠엘류호’의 단골 멤버였던 김동진이 성인 대표팀에서 제외된 이유는 한 가지. 처음엔 ‘쿠엘류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올림픽대표팀측에서 ‘김동진만큼은 안된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올림픽대표팀 선수들 중 최성국(울산 현대), 최태욱(안양 LG) 등 몇몇 선수는 성인대표팀에 중복 선발돼 있다. 올림픽대표팀으로선 국제경기 스케줄에 따라 전술과 전력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협회에선 중복 선수의 마지노선을 5명으로 제한하고 김동진은 제외시켜줄 것을 특별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정조국의 탈락도 의외의 일이었다. 공격진에 포함될 이동국(상무)은 부상으로 누워 있고 믿었던 김은중마저 일본으로 뜨자 해외파 공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쿠엘류 감독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동안 ‘노장은 절대 불가’를 외쳤던 그가 김도훈(성남)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공격수의 열세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조국이 선발되지 않은 이유는 큰 키에 비해 파워나 스피드가 떨어지고 몸싸움이 약한 데다 문전에서의 골 처리 미숙으로 쿠엘류 감독의 깊은 신뢰를 얻지 못한 탓. 결국 정조국을 ‘버리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쿠엘류 감독은 김도훈, 우성용(포항), 조재진(광주), 김대의(성남) 등으로 공격진을 짤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예비 명단인 30명을 추리기에도 바빴다”면서 “마치 대표팀 2진이나 3진을 뽑는 기분이었다. 쿠엘류 감독도 이번에 한국 축구 시장의 열악함을 새삼 절감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25일 베트남전을 시작으로 2차 예선을 치르게 되는 쿠엘류 감독이 가장 포인트를 두고 있는 상대가 누구일까. 일반적인 정답은 ‘오만’이겠지만 쿠엘류 감독은 ‘세 팀 모두’이다. 대표팀의 A코치는 쿠엘류 감독이 오만은 물론 베트남, 네팔까지 쉬운 상대가 아니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지난 7월10일 정몽준 회장의 초청으로 만난 쿠엘류(왼쪽)와 히딩크. | ||
한국 코치 3인방은 예선을 치를 3팀 중 가장 전력이 강한 오만전에 승부를 걸고 다른 경기에선 당일 상황에 따라 주전과 후보 선수들을 골고루 섞어가며 출전시키길 바라지만 쿠엘류 감독은 첫 경기 때부터 베스트 멤버를 가동시킬 전망이다. 한편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쿠엘류 감독이 이끄는 성인대표팀을 ‘일반미’로, 김호곤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을 ‘아끼바리’라고 표현했다. 즉 히딩크 감독 때와는 달리 성인대표팀이 올림픽대표팀에 밀려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 선수 구성과 운영면에서 협회의 지원과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쿠엘류 감독마저 협회를 상대로 ‘맞장뜨기’를 주저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날수록 ‘쿠엘류호’의 무게감이 상실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밝히기 어려운 ‘원인’들이 있겠지만 쿠엘류 감독이 협회의 보이지 않는 ‘힘’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연줄’ 등 한국 축구 특유의 문화를 새롭게 체험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지난 6월11일 아르헨티나전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휴가를 떠나기 직전 쿠엘류 감독이 주재한 코칭스태프 미팅때의 해프닝 한 가지. 피지컬 트레이너로 있는 조세 산토스와 B코치가 쿠엘류 감독 앞에서 큰소리로 설전을 벌였다. 이유는 경기 전 몸을 푸는 워밍업에 대한 극단적인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산토스는 경기력에 지장을 주니까 선수들의 워밍업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B코치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바로 들어가면 근육이 경직돼 탓에 좋은 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 결국 쿠엘류 감독의 만류로 설전은 중단됐지만 ‘불씨’까지 꺼진 상태가 아니라는 게 대표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래저래 쿠엘류 감독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