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폭력배라는 과거를 벗어던지고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서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아 들과 아내를 위해 이종격투기의 챔피언이 되겠 다는 꿈을 향해 힘차게 뛰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서철은 1년 전만 해도 밤거리의 주먹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밤마다 유흥가를 누비며 환락을 즐겼다. 그가 주먹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열일곱 살 때. 우연히 대천해수욕장 부근에서 시비가 붙어 혼자 두 살 많은 상대 5명을 한꺼번에 때려눕히면서부터였다. 이 소식이 인근에 퍼지자 대천을 근거지로 하는 조직 T파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쳐왔다. 철없는 생각에 그는 조직에 들어갔고, 행동대원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타고난 신체조건에 권투를 연마한 그의 주먹은 거칠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연장’ 없이 맨몸으로 저와 붙어서 이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밥먹듯이 들락거렸지만 당시에는 뭘 잘못해서 잡혀왔는지조차 몰랐어요. 위에서 시키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죠.”
그러던 중 최한기 사범을 만나 본격적으로 복싱실력을 쌓아 재소자 신분으로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2000년과 이듬해 전국체전 헤비급에서 은메달을 따며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되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T파의 조직원이었다. 잇따라 ‘별’을 달고, 경력(?)이 쌓이면서 조직에서의 위치도 올라갔다. ‘큰형님’을 직접 모시는 위치가 됐고, 조직 내에서는 미래의 보스로 공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02년 초 몇몇 조직원들과의 갈등과 아들 현빈이(1)의 탄생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거기에 노모까지 병환으로 앓아 누웠다.
“잠을 잘 때도 ‘연장’을 옆에 두고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뛰어나가야 합니다. 만삭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리더군요. 태어날 현빈이에게 떳떳하게 아빠 직업을 이야기하고 싶다고요.” 아내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조직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서야 조직을 벗어날 수 있었다.
“죽도록 맞았죠. 그래도 홀가분하더군요. 그전에는 업소주인들이 슬슬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고, 술집에 가도 꼭 돈을 내고 술을 먹어요.(웃음)”
새로운 생활을 결심한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이 이종격투기. 배운 것 없고, 가진 것은 주먹밖에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합법적인 주먹대결이었던 것이다.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 ‘투혼’ 대회에 참가했다.
“국내 최고의 파이터가 되기로 맘먹었습니다. 일단 국내 이종격투기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뒤 일본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 세계 최고의 주먹들과 자웅을 겨루고 싶어요.”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서철은 처음 출전한 메이저대회에서 연승을 거듭, 8강전에서 특공무술 고수인 유명수 선수를 1라운드 20초 만에 KO시키고 준결승에 올랐다. 팬들은 경기시작 수십 초 안에 상대를 때려눕히는 그의 저돌적인 공격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핵주먹’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몇 경기 치르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이종격투기 선수 서철의 인기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는 오는 10월11일 스피릿MC ‘투혼’ 대회 준결승과 결승전을 앞두고 대천에서 주먹을 가다듬고 있다. 권투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그라운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레슬링과 유도 기술 연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그의 펀치력은 국내 최고로 공인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라운드 기술만 보강하면 적수가 없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 하지만 서철은 고된 훈련의 고통보다 지금도 계속되는 조직의 유혹 때문에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 조직생활을 청산한 뒤 사실상 그는 빈털터리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조직들이 은근슬쩍 유혹의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업소 관리만 해주면 한 달에 천만원을 주겠다고 하거나, 미수금을 회수하는 꽁지조직에서도 연락이 옵니다. 하지만 딱 잘라 말하죠. 이제 그 생활 정말 그만뒀다고.” 이번 대회에 거는 서철의 기대는 남다르다. 이종격투기선수로 처음 메이저대회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는 10월10일이 아들 현빈이가 태어난 지 꼭 1년 되는 날이기 때문.
“반드시 우승을 할 겁니다. 밤거리 주먹세계가 아닌, 링 위의 경기에선 한번도 1등을 해보지 못했어요. 아마추어 복싱선수로서는 이승배 선수(1996애틀랜타올림픽 라이트헤비급 은메달)의 벽을 넘지 못했거든요. 이번엔 반드시 1등을 해서 현빈이의 첫돌을 축하해 줄 겁니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