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이승엽이 일본진출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보였다. 우태윤 기자 | ||
―일본행을 발표한 이후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젠 마음의 안정을 찾았나.
▲기자회견장에서 내 심정을 토해낼 때만 해도 마음이 너무 심란했는데 이젠 괜찮다. 입단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이젠 정말 떠날 때가 됐다는 생각에 떨리기까지 한다. 하루 빨리 한국에서의 이승엽을 정리하고 싶다. 난 더 이상 삼성 선수가 아니라 롯데 선수라고 최면을 걸어야 할 것 같다.
―일본 진출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분이 계시긴 하지만 말씀드리지 못하겠다. 그분을 밝히게 되면 삼성측에 너무 미안해진다. (야구인이냐는 질문에) 맞다. 그분의 말이 큰 힘이 됐다.
―해외진출을 추진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우선은 한국 야구가 메이저리그 팀들에게 크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해 불안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해결책은 한국 야구의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특히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경우 미국팀이나 일본팀과의 경기에선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뒤 항간에선 회의론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그런 반응들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그런 부정적인 여론도 잠잠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미국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진출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도 있었고.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선동열 코치만 빼놓고는 일본 야구에서 성공한 한국 선수가 없다. 그런 점이 부담이 될 것 같은데.
▲한국 선수라는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일본 선수들과 가족처럼 친근감 있게 지내고 싶다. 일본을 접해본 선배님들 모두 적응력이 관건이라고 조언해주셨다.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겠지만 초반에 호흡을 잘 맞출 수만 있다면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일본 특유의 ‘정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설령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당연히 이겨내야 하는 거 아니겠나.
―항간에는 아내 이송정씨의 연예계 생활을 위해 일본행을 결정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밝힌 대로 한국에 잔류할 경우 새로운 목표 의식을 찾기 힘들었고 인생의 꿈을 저버리기 싫었다. 일본은 최선이 아닌 차선책이었지만 차선에서 최선을 다한 뒤 잠시 보류한 꿈을 향해 노력할 것이다.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팀들과의 협상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조건을 제시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다. 내가 메이저리그행을 접었을 때, 메이저리그 진출이 불가능하게 됐을 때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만 말했다. LA다저스에서 제시한 것이 ‘마이너리그행과 벤치 기용’이라는 추측성 보도에 대한 확인 질문에 대해서도 웃음만 흘릴 뿐 “나중에 말하겠다”는 말만 거듭했다. 이승엽은 은퇴는 반드시 삼성에서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면서 “난 일본 선수를 ‘상대로’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일본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하러 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