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생인터뷰’를 하고 있는 엄정욱. 그는 지금 일본에 있는 이승엽을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타자라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프로 데뷔 초 평균 구속 154km의 광속구로 인해 본의 아니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엄정욱은 그동안 제구력 난조로 ‘새가슴’이란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1군과 2군을 오락가락하다 올 시즌 처음으로 SK의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한 후 상대 타자들을 110km의 슬로커브로 농락하는 배짱을 부리게 되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엄정욱(엄): 일본 스프링캠프 때부터 감독님께서 계속 선발로 세우시더라고요. 깨지든 부서지든 자꾸 마운드에 올라가다 보니 불안함이 없어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자신이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게 다 두려웠으니까요.
엄: 예. 공을 잡으면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포수 혼자일 때는 미트 안으로 정확히 꽂아 넣는데 타자만 옆에 서면 컨트롤이 안되는 거예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죠.
이: 당시 강병철 감독이 너의 소심함을 치료하겠다며 마운드에 세워놓고 노래시킨 거 기억나니?
엄: 그럼요. 절대 못 잊죠. 스프링캠프 때의 일인데 한번은 ‘남행열차’를 부르다가 가사를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부르곤 했어요. 감독님께선 저에게 도움을 주시려고 행한 방법이었지만 전 그때 절망스러웠어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마운드에 오르기도 싫었고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었으니까요. 수십 번도 더 야구를 포기할 생각을 할 때였죠.
이: 프로 5년차면 이젠 능글능글해질 때도 됐는데 지금은 어떠니? 좀 많이 나아졌냐?
엄: … 다른 건 좋아졌는데 여전히 이런 인터뷰는 부담스러워요. 말을 잘 못하니까. 이 위원님도 많이 답답하시죠? 제가 속시원히 대답하지 못해서.
이: 너, 친구들 만날 때도 이렇게 ‘힘들게’ 말하니?
엄: 친한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조금 다르죠. 편하니까. 술 한잔 먹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곧잘 어울려요. 3년 전에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그후로 조금씩 나아진 것도 같고….
엄: 지금은 이곳에 없지만 이승엽 선배를 상대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와 처음 맞이했던 타자가 이승엽 선배였는데 2이닝 동안 2안타 중 홈런 1개까지 맞고 5점을 내줬거든요. 제 공을 겁내지 않고 마구 휘두르셨어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꼭 다시 한번 맞붙고 싶어요.
이: 너, 최고 속도가 160km였지? 물론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엄: 그렇다고 얘기는 들었어요. 타자들이 처음엔 스피드 때문에 제 공을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손목보호대 안 차던 선수들이 갑자기 손목보호대를 차고 나오질 않나, 타석에서 멀리 떨어져 서는 바람에 투수의 부담을 훨씬 줄여주기도 하죠. 제구력만 뒷받침된다면 이젠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아요.
이: 포수 박경완 선수가 내는 사인이 많니? 아니면 네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니?
엄: 지금까지 경완이형이 낸 사인에 내가 고개를 흔든 적이 두세 번밖에 안 돼요. 그만큼 경완이형의 판단을 믿는 거죠.
이: 아, 참. 어느 기사를 보니까 네가 탤런트 김태희를 좋아한다고 나왔는데 사실이냐?
엄: 어휴, 말도 마세요. 그 기사 나간 이후 여자친구한테 시달려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은 안 그래요. 오로지 일편단심이라고 말해야죠. 근데 저 말고도 김태희씨 좋아하는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더라고요.
사진 촬영을 위해 엄정욱의 공을 받아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죄다 도망가 버린다. 포즈만 취할 거라는 설명에 간신히 한 선수가 나섰지만 영 자신 없어 하며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정욱인 살살 던져도 140km가 넘어요.”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