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터전 삼성에 둥지를 튼 박진만. 그는 현재 싱가포르에서 휴식중이다. 이종현 기자jhlee@ilyo.co.kr | ||
지난 24일, 전날 삼성과 39억원에 계약을 맺은 박진만(28)은 밤새 무슨 일 있었냐는 말투로 싱가포르 간다며 인천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공항가는 길에 기자와 전화통화가 이뤄진 박진만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기자의 요청에 11시까지 공항에 오면 인터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시간이 10시10분. 서둘러 차에 올라탄 뒤 ‘다소’ 무리한 도로질주를 감행한 덕분에 가까스로 출국장에서 박진만을 만날 수 있었다.
이영미(이): 이거 완전히 ‘라이브쇼’하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출국 직전 통화가 돼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애꿎은 휴대폰 탓만 하며 통화 안 된다고 발 동동 구를 뻔했어요.
박진만(박): 어제 밤이라도 전활 주셨더라면 이런 난리부르스 안 췄을 텐데…. 하여튼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이: 아니, 그런데 저기 저 사람, 심재학(두산) 선수 아닌가요? 어? 안경현(두산) 선수도 보이네요.
박: 하하. 오늘 여행은 저 형들과 함께 가는 거예요. 가족들이랑 같이요.
이: 인생의 큰 숙제를 해결하고 떠나 마음은 홀가분하겠어요.
박: 절대 그렇지 않아요. 어젯밤에 현대 구단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어요. 현대 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요. 9년 동안 현대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어 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 박진만 하면 ‘김재박 감독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김 감독과의 관계가 무척 끈끈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직접 통화는 하셨나요?
박: 그럼요. 삼성과 계약하자마자 아버지가 아닌 (김재박)감독님께 먼저 전화를 드렸어요. 감독님께선 어차피 계약한 거니까 예전처럼 훌륭한 모습으로 선수 생활하라고 격려를 해주셨는데 그 목소리가 잠기셨더라구요.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이: 현대와의 계약이 틀어진 진짜 이유가 뭔가요? 혹시 오래 전부터 삼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닌가요?
박: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 오해는 받기 싫어요. 현대측에선 한국시리즈 끝난 직후 이런 말을 전해 왔어요. ‘넌 무조건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니까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고 여기 남아라’하고. 전 그 말만 믿었습니다. 절 제대로 평가한 뒤 대우해주리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보니까 좀 다르더라구요. 조금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박: 예. 처음에는 대략적인 얘기만 나눴고 두 번째는 제가 생각한 금액을 제시했는데 그때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얼마를 제시한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산출한 기준은 뭐였죠?
박: 4년 계약에 40억원이요. 두산에서 롯데로 간 정수근 선수가 제 모델이었습니다. 저랑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이: 삼성과는 언제 접촉한 거예요?
박: 원구단과의 협상이 20일 밤 12시까지였거든요. 삼성에서 전화온 게 21일 새벽 12시5분이었어요. 즉 원구단과의 협상이 틀어지자 공식적인 시한이 넘어서자마자 5분 만에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까 삼성의 김평호 코치와 박덕주 운영 과장이 우리 집 앞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12시를 넘기만을 기다렸더라구요.
이: 기분 좋았겠어요.
박: 절 그토록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조건을 들어주겠다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구요. 결국 22일 밤에 삼성과 사인을 하게 됐어요.
이: 현대 유니폼을 입을 당시의 눈에 비친 삼성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박: 선동열 감독님이 오신 다음부터는 마운드가 너무나 막강해졌어요. 그것도 주로 신인 선수들이 마운드의 중심축을 이룬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발 빠른 선수가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수비하기가 쉬웠어요. 도루는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 내년 시즌 현대랑 게임 있는 날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질 것 같네요.
박: 맞아요. 만약 수원 경기가 있는 날이라면 제가 아마도 현대 라커룸을 찾거나 현대랑 삼성 구단 버스가 똑같이 서 있을 경우 현대 선수단 버스에 오를 것만 같아요. 하하.
이: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인사는 남겼지만 지면을 통해 솔직한 심경을 표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박: 현대를 떠난다고 해서 현대를 잊는 건 아닙니다. 9년간 현대 가족으로 몸담고 살며 참으로 행복했어요. 특히 김재박 감독님과 여러 코치님들, 그리고 선후배들,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꼭 감사하고 싶은 분이 있어요. 성만이형(현대 홍보팀 이성만 과장),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