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선동열 감독은 묘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장악했다. 지난 5월17일 롯데전에서의 선 감독. | ||
최근 대구구장에서 만난 선동열 감독이 기자에게 던진 한마디가 걸작이다. “요즘 애들(선수들)은 술도 안 마시고 사나봐.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까?”
선 감독이라고 해서 선수들의 지나친 음주에 대해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러나 어차피 몰래 숨어서라도 마실 술이라면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즐기고 살아도 된다는 게 선 감독의 지론이다. 술 얘기를 꺼낸 것은 선 감독의 선수 관리 스타일을 단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 선수들이 마음대로 술을 마시느냐? 그건 절대 아니다. 다음은 삼성 A선수의 증언. “선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 감독님은 묘한 느낌을 주는 분이다. 선수들을 편하게 대해준다는 점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선수들이 먼저 알아서 조심하다 보니 특별한 문제없이 선수단이 잘 굴러가고 있다. 술? 어쩌다 한잔 하더라도 절대 다음날 냄새 안 날 정도로 알아서 그친다.”
또 다른 중고참 타자인 B선수는 “감독님에게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날 잘못한 일은 그날 혼내는 스타일이다. 이건 일본프로야구에서 체득한 경험이라고 한다. 선 감독은 “어제 경기를 갖고 다음날 혼내는 건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선동열 감독의 장점 중 하나는 언론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선수시절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플레이어들 가운데에는 정작 언론과 적이 되거나 언론으로부터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선 감독의 경우 스스로 인정하는 언론플레이의 대가다.
최근 일화 한 토막. 양준혁과 심정수가 타격 슬럼프에 빠져있는 동안 선 감독은 이들의 타순을 7번으로 내려앉히는 등 충격요법을 줬다.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와 함께 일종의 문책성 조치였다. 그러나 선 감독은 해당 선수들을 직접 다그친 적이 없다. 오히려 경기 전 덕아웃에 모인 취재진에게 “지금 우리가 1위를 달리고 있는 건 심정수와 양준혁 같은 고참 선수들이 팀을 잘 이끌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몇몇 신문에 이 같은 발언이 보도된 건 물론이다. 선수들이 이 기사를 봤다면 어떤 마음을 가졌을 지 짐작할 수 있다.
선 감독은 공공연히 “선수들에게 내가 대놓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기자 양반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결국 다음날 다들 읽게 될 텐데 뭘 걱정하나”라고 말한다. 부진한 선수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활약이 큰 선수들의 장점을 칭찬하는 발언을 의도적으로 기자들에게 토로한다는 것도 선 감독의 리더십 전술 가운데 하나다.
▲ 선동열 감독의 코치시절 모습. | ||
90년대 중후반의 삼성은 프런트가 선수단에 불필요한 간섭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좋은 전력을 갖추고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랬던 결점들이 김응용 전임 감독을 거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선 감독에 이르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프런트가 선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현재 삼성은 구단의 대외 활동을 도맡고 있는 김응용 사장과 실전 사령관인 선동열 감독의 투톱 체제에 야구단 운영에 관한 한 도가 튼 김재하 단장이 그림자처럼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아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현장과 프런트가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는 셈이라 불협화음이 없다.
6월 둘째 주에 삼성은 두산 3연전을 포함, 올 시즌 처음으로 4연패를 당하며 잠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은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선수들이 긴장감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 져서 2위도 해봐야 돼”라며 유유자적이었다. 물론 선 감독은 “상대적으로 우리팀 전력이 강하고, 또 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5년 임기를 보장받지 않았는가. 하루 하루 승부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매일의 승부에 피를 말려야하는 프로야구 감독이 실제로 이처럼 속 편하게 얘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의 여유는 코칭스태프를 통해 선수들에게 전염된다. 감독이 중심을 잃지 않고 여유로우니 선수들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감독이 성적 때문에 조바심을 내면 코치들을 다그치게 되고, 코치들은 다시 선수를 닦달하게 된다. 스트레스 받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삼성에선 눈에 띄지 않는다.
선 감독도 사람이라 어이 없는 내용으로 패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경기 후 코치 한두 명을 대동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화를 삭이곤 한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