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트를 머리에 이고 달리고, 갯벌을 뒤집어 쓰고 얼차려를 받는 등 ‘지옥훈련’을 받고 있는 기자와 GS칼텍스 배구단 선수들. | ||
지난 10월10일, GS칼텍스 여자배구단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직원까지 총 22명은 이른 아침 인천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무의도로 들어간 후 곧장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 첫날은 간단한 제식훈련과 PT체조를 실시한 후 자리를 옮겨 천연암벽타기와 로프에 매달려 L자형으로 내려오는 훈련이 전부였다. 워낙 강도 높은 훈련을 상상해서인지 선수들 표정엔 ‘그까이거’ 하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둘쨋날 훈련은 IBS(Infatable Boat Small) 육상훈련으로 1백10kg에 달하는 소형보트와 하루 종일 몸싸움을 벌였다. 패들링(Paddling, 보트운행을 위한 노 젓기)훈련과 보트를 육지와 바다에서 출발시키는 훈련들을 연습한 뒤 호흡이 맞지 않는 팀을 상대로 교관의 ‘맛보기’ 얼차려가 시행되었다. 기자가 보트 위로 올라탄 상황에서 달리기 시합을 벌이는 걸로 벌을 대신했는데 6명의 선수들이 엄청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실미도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관이 나눠준 미군식 전투식량을 처음으로 맛봤다. 워낙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전투식량이 꿀맛이나 다름없었다.
해상훈련을 끝내고 훈련 캠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젠 훈련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아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열심히 패들링을 했다. 양팔의 통증을 참아가면서 ‘하나 둘 셋’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노 젓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관이 모두 보트에서 내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캠프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데…. 그런데 보트에서 내리니까 발이 바닥에 닿았다. 물이 빠질 시간이 돼서 바다가 갯벌로 변신을 하는 중이었던 것.
문제는 보트를 머리에 얹고 5km는 더 됨직한 해안가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 중간에 갯벌에서 보트 다이빙과 갯벌 마라톤을 실시했는데 온몸에 머드팩을 하는 사치 아닌 사치를 누린 것은 그나마 좋았다. 그러나 양 다리 사이로 사람이 통과해서 제일 늦게 도착하는 팀이 엎어 놓은 보트 속을 통과하는 얼차려는 정말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기자가 속한 팀이 계속 지는 바람에 온몸을 진흙으로 샤워하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는 잊지 못할 체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쯤되자 모든 교육생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고 박삼용 감독조차 옆에서 끙끙 거리는 신음 소리를 낼 정도였다.
▲ 수료식 때 기념배지를 달면서 선수들 몇몇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 ||
잠시 갈등이 생겼다. 해상훈련으로 멍투성이가 된 몸으로 도저히 야간 산행 훈련은 불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행 체험 취재’ 아닌가. 어차피 힘들게 온 만큼 마지막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산행을 시작했다. 선수단 제일 앞에 서서 산을 타고 오르내렸다. 손전등 하나에 모든 걸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순간에도 국사봉 정상에서 올려다 본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기가막히게 아름다웠다.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 세 시간을 걷자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오르막길에서 손유리 주무가 기자를 잡아당기고 이정옥 선수가 밀어주는 방식으로 간신히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자는 선수단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변해 갔다.
결국 기자는 생꾸미로 가기 전 대열에서 빠져 뒤따라오던 교육대장의 차에 올라타는 걸로 체험 취재를 마쳐야 했다(그때 빠지길 정말 잘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5km 동안엔 구보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수료식을 마친 박삼용 감독은 해병대 캠프에 참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강인한 정신력과 팀워크 다지기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우리 팀의 작년 성적이 3승에 불과하다. GS칼텍스의 명성을 제대로 잇기 위해 경험과 담력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팀의 고참 선수인 정은희는 “태어나서 이런 훈련은 처음 받아봤다. 보트를 머리에 얹고 뛰느라 목이 너무 아팠다. 고통도 즐겨야 한다는 걸 절감할 수 있었다”며 훈련 소감을 밝혔다.
리베로를 맡고 있는 남지연은 “노 젓기할 때 기자님의 ‘으악’ 소리에 필 받아서 더 열심히 노를 저을 수 있었다. 사서 고생한 것은 분명한데 올 시즌 우리 팀이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신인 선수인 강민정과 이지혜는 훈련캠프 오기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고 배구 훈련보다 더 힘든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레프트 이정옥은 “훈련도중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선후배를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었다”고 토로했다.
선수들 사이에서 3일 동안 풍부한 ‘안주거리’를 제공한 포커페이스 교관이 수료식 때 기념 배지를 달아주자 선수들 중 몇 명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1991년부터 99년까지 슈퍼리그 9년 연속 우승과 92연승의 위업을 자랑하는 GS칼텍스 여자배구단. 실미도를 빠져 나오는 그들의 머릿속엔 모두 ‘우승’이란 두 글자만이 각인돼 있었다.
실미도=이영미 기자 bom@ilyo.co.kr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