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희는 지난해 9월 이란과의 경기에서 벼락 같은 골을 성공시켜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로 단숨에 떠올랐다. | ||
수비수 김진규처럼 조원희 역시 공격수 출신이다. 배재중에서는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배재고 재학 시절에는 단신임에도 불구,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다.
조원희를 지도한 배재고 박규 코치는 “단신이었지만 돌파력과 슈팅력이 워낙 뛰어나 골을 많이 넣었다”며 “원희가 고3 때 추계연맹전 16강 청구고 전에서 상대 수비 네 명을 따돌리고 기습적으로 왼발 중거리 슛을 성공시킨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조원희는 ‘대표팀 오른쪽 윙백
배재고 공격수 출신’이라는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 전후로는 박진섭(성남)이 대표팀 오른쪽 붙박이로 활약했으며 2002월드컵에서는 송종국(수원)이 그 자리를 지켰다. 두 선수 모두 조원희와 마찬가지로 공격수 출신이다.
조원희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어려움에 직면했다. 대학 진학이 수월하지 않았던 것. 조원희는 원래 고려대 진학을 원했다. 그러나 고려대는 선뜻 답을 주지 않았다. 사실상 조원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당시 배재고 백현영 감독(현 배재중 감독)이 일본 주오대 입학을 권유했으나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쳤다. 주오대는 4년간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며 한국 선수 한 명을 데려올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조원희에게 울산에서 감각을 익히고 1년 후 다시 입학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조원희는 백현영 배재고 감독과 협의 하에 이를 받아들여 월봉 1백만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또래 선수들이 수억 원대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 구단에 정식 입단하는 것을 보고 조원희는 마음이 무척 흔들렸다. 그러던 차에 성남 차경복 전 감독이 정식 계약 제의를 해오자 조원희는 연습생으로 입단한 지 2개월 만에 구단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고 한다.
지방 전지훈련장까지 내려온 조원희의 부모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백 감독은 조원희를 심하게 야단쳤다. 설령 다른 팀으로 가더라도 먼저 구단에 양해를 구해야 했던 것. 백 감독은 “그때 원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게 야단을 쳤던 기억이 난다”며 “원희가 어린 나이인데다 정식 입단 계약을 하자고 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팀을 떠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백 감독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은 조원희는 다시 울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울산에서 연습생으로 1년을 보내자 고려대로부터 입학 제의가 왔다. 그러나 이때는 조원희의 마음이 바뀌어 있었다. 1년간 프로팀에 있으면서 하루빨리 프로 무대를 경험하고 동시에 군 문제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조원희를 고교 때부터 지켜봤다는 상무 이강조 감독도 흔쾌히 그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감독에 의해 포지션을 윙백으로 바꾼 조원희는 2년간 상무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고 그 뒤로 조원희의 주가는 무한대로 상승중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