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프라이드와 경쟁 관계인 K-1은 어떨까. K-1과 야쿠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일요신문> 취재 결과 K-1은 일본 야쿠자와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K-1의 국내 대회가 열릴 때 야쿠자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K-1 관계자 행세를 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국내 K-1의 한 관계자 A 씨는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무조건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그 남자의 목소리는 다소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약속 장소에 나간 A 씨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내놓은 사진들에 눈길이 갔다.
자신을 수사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그는 사진을 제시하며 ‘이들 중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요구했다. 여러 장의 사진 중 A 씨가 아는 얼굴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K-1의 일본 고위 관계자였다.
그 남자는 다른 사진들 속의 인물들도 본 적이 있는지 물었고 A 씨는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사진 속 사람들이 바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야쿠자들이고 입국할 때 K-1 관계자라고 밝혔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후 그들이 투숙한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이름을 거론했는데 그곳은 실제로 K-1 관계자들이 묵었던 호텔이었다. 야쿠자들과 K-1 관계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모두 같은 호텔에 투숙했던 것이다.
수사 기관의 그 남자는 K-1 대회 때 야쿠자들이 입국해서 어떤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궁금해 했지만 A 씨가 아는 사실이 전혀 없어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우연히 이 정보를 접하게 된 기자는 야쿠자들이 입국해서 국내 조폭들과 회동했다는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한 B 씨를 통해 그 상황을 상세히 듣게 된 것이다.
B 씨는 지난해 3월 19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던 K-1 서울대회, 즉 최홍만의 데뷔전 전날 수사기관의 남자가 일러준 강남의 그 호텔에서 국내 조폭과 야쿠자들과의 대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B 씨는 “아는 ‘형님’이 K-1 티켓을 줄 테니 나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 야쿠자들이 있었다”면서 “K-1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K-1 대회가 열릴 때마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B 씨는 “격투기는 어느 정도 조폭과 연결돼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 관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격투기 전문 기자 C 씨는 한때 국내 거대 조직에서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고 K-1과 비즈니스를 벌이려 했던 부분에 대해 털어 놓았다. C 씨는 “2년 전 거대 조직의 후원으로 일본 K-1 취재를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날 가이드한 사람들이 야쿠자였다”면서 “양 조직의 보스들은 한·일 네트워크 사업으로 K-1과 관련해서 일을 벌이려 했지만 K-1 측에서 부정적인 자세를 보여 성사되지 못했다”라는 얘길 들려줬다.
즉 국내 조폭들이 세력 확장을 위해 K-1 대회를 유치하려 했지만 K-1 측에서 호락호락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내세워 결국 국내 조폭과 야쿠자, 그리고 K-1이 손을 잡을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다.
C 씨는 K-1 대회가 열릴 때 야쿠자들이 들어왔다면 ‘사업적인’ 목적보다는 단순히 여흥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K-1 측으로부터 티켓을 받은 후 경기를 보고 국내 조폭들과 만나 유흥을 즐긴 뒤 일본으로 돌아가는 수준이라는 것. C 씨는 “K-1이 야쿠자와 밀접한 연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격투기 대회를 치르면 조폭을 끼지 않고 일하기가 어렵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업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 다른 격투기처럼 야쿠자가 K-1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보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한편 C 씨는 국내 K-1 대회가 야쿠자 또는 국내 조직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일본 K-1 측에서 조직이 개입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K-1 한국 대회는 순수 프로모터들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