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이가 지난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2루타를 때린 후 환호하고 있다. | ||
그러나 막상 말을 걸어보면 그 무뚝뚝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게다가 훈련이 시작되면 세상의 피로를 모두 짊어진 듯 찌푸린 얼굴을 하고 다니기에 ‘조금 전 봤던 그 사람이 맞나?’ 싶다. 경기가 시작되면 또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온몸이 다 쑤시는 것처럼 인상을 쓰고 다닌 선수가 치고 달리고 몸을 던지며 날아다닌다.
8개 구단 감독 모두가 “박한이 같은 톱타자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한이는 이래저래 특징이 많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수다.
▶▶신인왕 놓치고 엉엉?
지난 2001년 연말 ‘MVP-신인왕’ 시상식. 그해 삼성에 입단한 박한이는 타율 2할7푼9리, 13홈런, 61타점, 17도루를 기록하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후반기에 홈런쇼를 펼치며 단기간에 깊은 인상을 남긴 한화 김태균에게 결승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신인왕을 내줘야 했다.
당시 박한이는 주변 지인들의 귀띔 때문에 신인왕 수상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시상식 직전만 해도 거의 수상을 예감한 듯 들뜬 분위기를 보였다.
분위기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이상하게 돌아가고 결국 김태균에게 패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순간 박한이는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한참을 있다가 돌아왔다. 눈 주변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훗날 “그때 울었냐”고 묻자 박한이는 “무슨 소리, 절대 아니다”라며 정색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야구 인생의 첫 번째 실패에 눈물을 흘렸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증언이다.
▶▶단순함의 대명사?
모든 선수들이 “야구는 박한이처럼 하는 게 제일”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박한이는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하는데 그게 최고’라는 소리다. 생각이 많으면 몸이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신중해지면 실수가 나오는 종목이 바로 야구다. 이 때문에 코치들은 “야구장에선 잡념을 없애는 게 순간의 플레이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1루에서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엄밀히 말하면 ‘서서 뛰어 들어 가는 게 슬라이딩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입증된 상태. 하지만 승부처에선 의욕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부터 슬라이딩으로 날아 들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 박한이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가장 많이 하는 타자다.
코치들이 “그러다가 다친다. 절대 1루에서 슬라이딩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지만 소용 없다. 박한이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내야 땅볼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몸을 던진다”라고 말한다.
▶▶적이 많은 선수?
이 같은 단순함 혹은 순수한 열정이 때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5회 이후에 점수 차가 커서 승부가 결정 났을 때에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쓸 데 없는 1-2루 도루를 자제하고, 깊숙한 외야플라이 때도 2-3루 리터치를 안 하는 게 예의다. 만약 8회에 9-1로 앞선 팀에서 2-3루 리터치를 감행한다면 다음 타자에게 빈볼이 날아들 것을 각오해야 한다.
박한이는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선수다. 상황이 어떻든 주자로 나가있을 때 깊숙한 플레이가 나오면 무조건 리터치를 한다. 그러다보니 상대팀으로부터 얄미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런 플레이 때문에 “예의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두세 시즌이 지난 뒤 다른 구단 선수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걔는 원래 그래”라며 그 순수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박한이는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최고의 톱타자감이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
삼성 이외의 구단 팬들로부터 적대적인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워낙 얄밉게 야구를 잘하기 때문이다.
박한이는 타석에서 준비 동작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타석에 서면 방망이로 타석 고르고 방망이로 홈플레이트도 톡톡 쳐보고 장갑 만지고 헬멧 벗어 냄새도 한번 맡아보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 방송사에서 체크해보니 평균 24초가 걸린다고 했다. “경기 촉진룰이 생기는 판인데 그냥 빨리 타격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면 “무슨 소리, 그 과정을 안 거치면 나는 타격을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가뜩이나 시간을 많이 끄는데 실제 승부에선 또박또박 안타를 많이 치니 상대팀 팬들의 입장에선 얄미울 수밖에. 각종 야구 관련 게시판에는 “나는 박한이가 싫다”고 글을 남기는 팬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런 안티팬들도 야구 선수로서의 박한이의 매력에 대해선 근본적으로 인정한다. “미운 박한이가 우리팀 선수였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걸로 봐선 말이다.
▶▶탤런트와 열애?
최근 박한이는 열애설에 휩싸였다. MBC 사극 <주몽>에 출연 중인 탤런트 조명진과 사귄다는 얘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았다. 함께 손 잡고 영화를 보거나, 다정하게 식사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등 꽤 구체적인 증언들이 있었다.
박한이는 펄쩍 뛰었다. “그냥 친구예요. 제발 사귀는 거 아니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라며 쩔쩔 맸다. 박한이와 조명진은 만 스물일곱 살로 동갑내기다. 박한이는 “나야 남자니까 괜찮지만 이상하게 소문나면 명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까봐서”라고 걱정했다. “친구끼리 왜 손을 잡고 영화을 봤느냐”고 묻자 박한이는 “이리저리 하다 보면 친구끼리 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냐”며 항변했다. 단순함과 솔직함이 장점인 박한이가 열애설과 관련해선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니 뭔가 수상하긴 하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