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의 파워는 15년간 한국 수상스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 타고난 운동신경 그리고 곧은 성품이 모두 그렇다. 지금도 북한강에서 수상스키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는 딸을 위해 은행 빚을 내 논바닥에 골프 연습장을 짓기도 했다. 가평에 가면 아버지는 “아무리 뚱뚱한 사람이라도 30분 안에 물 위에 띄울 수 있다”며 보트를 몰고 있고, 딸은 국내 정상의 골퍼로 논밭을 향해 볼을 날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녀열전으로 유명한 한국여자골프지만 또 하나의 ‘아빠와 딸’을 소개해야겠다. 주인공은 지은희(20)와 아버지 지영기 씨(51)다. 지은희는 고교시절부터 또래 최고의 여자 골퍼로 이름을 날렸다. ‘얼짱’ 최나연, ‘제2의 박세리’ 박희영, 이미 국내 정상에 오른 바 있는 송보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른바 4인방 체제. 하지만 나머지 셋에 비해 덜 알려졌다. 세 명은 한국여자골프의 미래라는 찬사를 받으며 잘나가는 동안 지은희는 상대적으로 숨을 죽였다. 톱10은 밥 먹듯이 달성했지만 우승운이 지독히 없어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죽하면 ‘소리 없는 강자’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국가대표 탈락 등 억울하다 할 만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올 초 아시안투어에서 우승하며 징크스를 털어버린 지은희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10월 조용히 미국으로 가더니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미LPGA 2007년도 퀄리파잉스쿨 2차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한국 선수 중 최고의 성적이었다.
이제 11월 29일부터 최종예선을 치른다. 내로라하는 전 세계 골프 천재 100여 명이 모여 무려 5일 동안 90홀을 치르는 만만치 않은 관문이다.
지은희의 캐디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부친 지영기 씨다. 딸의 프로 입문 후 경쟁이 치열해지자 국가대표 감독직까지 내던진 지 씨는 미국까지 따라가서라도 당분간 더 백을 멜 계획이다. 쟁쟁한 선수들이 다 떨어질 정도로 어려웠던 퀄리파잉스쿨 2차 예선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뿐히 합격증을 받은 것도 지 씨의 공이 크다.
지 씨 부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들 ‘강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은희가 이번 퀄리파잉스쿨을 통과, 미LPGA 한국낭자부대의 새로운 멤버가 돼 또 하나의 부녀열전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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