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추행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김태일 전 감독. 지난 2004년 금호생명을 우승시킨 후 <일요신문>과 인터뷰했던 모습이다. | ||
제보 후 연락을 취해보니 김태일 감독은 일본에 있었다. 얼마전 우리은행팀의 감독 인선 과정에서 후보로 추천받았으나 ‘여자를 추행해 소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제대로 심사조차 받지 못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속사정을 잘 아는 정해일 도요타자동차 감독이 일본으로 건너와 잠시 쉬어가라고 해 일본에서 상처를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최근 귀국한 김 감독은 고민 끝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저 요새 일본어 공부를 합니다. 더 이상 한국에서는 제 천직인 농구지도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어느 정도인 줄 아십니까. 새벽 3시에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납니다.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농구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저, 선수 안 건드렸습니다’라고 해명할 수도 없잖아요. 이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김 감독은 30대에 4년간 미국 농구유학을 다녀왔다. 돈이 많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이 절반은 놀러 갔다오듯 미국연수를 다녀오는 것과는 달리 무명의 김 감독은 접시를 닦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본고장 농구를 악착같이 배웠다.
“그때 4년 동안 농구 대신 다른 것을 배웠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먹고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스토어에서 ‘찍새’를 하면서도 좋은 농구지도자가 되겠다고 이를 악물었는데 지금 ‘선수를 건드린 부도덕한 지도자’가 됐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인터뷰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자 김 감독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김 감독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자 농구계에 소문으로 나돌았던 문제를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먼저 성추행 소문이 나돈 이유와 또 그런 의혹을 일으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다. 김 감독은 한숨부터 쉬었다.
“여자프로농구 세계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전화 몇 통화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WKBL에 공식 확인도 가능할 겁니다. 제가 금호생명 감독으로 있을 때 WKBL이 소문에 대한 내사를 실시해 근거없는 악소문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거든요.”
인터뷰 후 WKBL의 도영수 홍보팀장에게 문의했더니 김 감독의 말이 맞았다. 도 팀장은 “연맹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말 근거 없는 루머였다. 팀내 여자 문제에 관한 한 김태일 감독이 실수를 한 부분은 없다”고 확실하게 답했다. 간접적으로 몇몇 선수들에게 사실 확인 작업을 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선수들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있지도 않은 일이 사실처럼 알려졌을까. 도 팀장은 “김태일 감독이 2004겨울리그에서 전 시즌 꼴찌였던 금호생명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일부 농구인들 사이에서 시기심이 발동해 2005 겨울시즌까지 여자문제에 대한 루머가 계속 나돌았다. 이에 WKBL이 조사를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도 “WKBL 조사 후 안심했죠. 그런데 팀을 나온 후,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은행 박 전 감독의 사건이 터지면서 오히려 이제는 루머가 아니라 기정사실화되는 거예요. 루머의 근원지가 누구인지 짐작은 되지만 물증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겁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프로농구 감독으로 다시 발탁되지 않는 원인을 괴소문으로 돌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문제였다. 이 대목에서 김 감독은 언성이 높아졌다.
“구단에 밉보이면 안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참 말하기 곤란하네요. 하지만 확실합니다. 우리은행 관계자의 말을 믿을 만한 농구인으로부터 전해 들었고 신한은행 때는 한 임원이 저를 높게 평가해 공개모집에 원서를 넣으라고 했는데 제 건 아예 1차심사에서 제외시켰다고 들었어요. 루머로 사람 하나 죽이는 게 이렇게 간단한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몇몇 관계자에게 확인하니 김 감독의 상황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다른 건 몰라도 여자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것은 정말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일찍 이혼한 경험이 있고, 최근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자도 있다. 상황을 잘 아는 약혼녀는 김 감독이 처한 상황에 대해 “농구에 미련 두지 말고 그냥 장사나 하면서 살자”고 부탁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농구계에서 비주류로 통하는 성균관대 출신이다. 선수시절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다. 농구가 좋아 열심히 공부를 했고 기회가 맞아 남자와 여자 프로팀을 거치며 지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루머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저는 자부심이 하나 있어요. 제가 감독으로 있을 때 금호생명은 여고 선수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팀이었어요. 명색이 프로팀을 운영하는 구단들도 신중해야 합니다. 전화 몇 통화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편의대로 그냥 루머에 근거해 판단해서는 안 되죠. 저 농구감독 안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실추된 명예는 어떻게 합니까.”
한쪽에서는 딸아이와 같은 선수를 성추행해 철창신세를 지고, 다른 편에서는 있지도 않은 루머에 유망한 지도자가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고…. 2007년 여자프로농구의 세계는 정말이지 요지경이 따로 없다.
한편 김 감독은 지난 13일 성추행 루머와 관련, WKBL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