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 초록색 점퍼를 입은 커트 머리의 여자가 눈에 띄었다. 하키대표팀 뿐만 아니라 실업팀을 통털어 유일한 ‘아줌마 선수’ 이선옥(27·경주시청)이었다. 이선옥은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결혼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앳된 외모의 이선옥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곧장 경주로 내려가야 한다며 이틀 뒤 경북 성주에서의 만남을 제안했다. 결국 5월 8일부터 협회장기전국남녀하키대회가 열리고 있는 성주에서 이선옥을 만났고 굴곡 많았던 그의 성장 스토리를 들으며 진한 울림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시차 적응도 채 안됐지만 본선 티켓을 확보한 탓에 마음은 한결 홀가분하다는 이선옥과 함께 사진촬영을 위해 먼저 하키장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팀이 연습 중인 가운데 코너 한 곳에서 촬영을 하는데 야구공 만한 하키공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촬영에 집중이 안 됐다. 스틱도 그렇고 하키공이 기자의 눈에는 순간 ‘무기’로 보였던 탓이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선옥은 “언론에선 하키 선수들을 너무 초라하고 불쌍하게만 보는 것 같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협회의 지원이 미비한 건 사실이지만 어렵게 대표팀 생활을 하는 건 아니란 설명이다. 그러면서 “야외 운동이라 얼굴이 타서 그런지 선수들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을 포함해 아일랜드 이탈리아 캐나다 말레이시아 우루과이 등 6개국이 마지막 한 장 남은 올림픽 티켓을 놓고 싸웠던 올림픽 최종 예선전에 대해 이선옥은 “참가국 중 한국의 랭킹이 가장 높았지만 대회가 캐나다에서 열린 탓에 캐나다와의 경기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면서 “무엇보다 단 한 번의 패배없이 6전 전승에 34득점, 1실점의 결과는 선수들에게 큰 보람과 선물을 안겨줬다”고 회상했다. 한국 입장에선 본선 티켓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혹시나’하는 걱정에 이탈리아전을 마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는 것.
본선에서 한국은 세계 랭킹 1위인 네덜란드와 호주(4위), 중국(5위), 스페인(8위), 남아공(12위)과 함께 A조에 배정받았다. 네덜란드도 힘든 ‘벽’이지만 개최국 중국과 한 조라는 부분도 큰 부담이다. 이에 대해 이선옥은 “어차피 단기전에선 랭킹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누가 더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지가 승부를 결정짓는다”면서 “한국은 대대로 정신력만큼은 따라올 팀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고 메달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선옥은 화려하지도 유명한 스타플레이어도 아니다. 그러나 하키계에서 그의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다양한 사연들로 팀을 이탈한 사건이 자주 벌어졌어도 해당 감독들이 그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은 부분에는 바로 남다른 실력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틱을 잡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하키를 접했는데 실제 운동 세계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타와 체벌로 견디기 힘들었고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기 어려워 해마다 팀을 이탈했던 것 같다.”
동기들과 단체로 팀을 뛰쳐나오기도 했고 혼자 탈출을 감행한 적도 있지만 매번 코치나 감독, 또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시 팀으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한다.
그가 팀에서 방황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부모의 이혼 때문이었다. 성격 차이로 갈라서게 된 부모 밑에서 결국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와 함께 남게 된 이선옥은 운동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부재를 크게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해고등학교 졸업 전 인제대학교로부터 체육특기생 입학 제의를 받은 이선옥은 절친한 친구와 함께 인제대행을 약속해 놓고 대학에 진학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가 “선옥이랑 같은 대학에 가는 게 싫다”며 이선옥의 손을 놓아버렸다.
“내가 그 친구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오랫동안 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친구 부모님이 나서서 내가 인제대로 가는 걸 막았다. 솔직히 학교에 가지 못한 아픔보다 친구에게 배신당한 아픔이 훨씬 깊고 컸다. 한동안 방황도 많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됐다. 아버지가 간경화로 고생하시다 결국 돌아가셔 대학 학비를 낼 처지가 못 됐기 때문.”
이선옥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통곡하면서도 학교와는 인연이 없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더욱 독하게 스틱을 잡았다고 한다. 때마침 경주시청의 서동운 감독이 이선옥을 찾아와 입단을 권유했고 이선옥은 우여곡절 끝에 경주시청에 입단했다.
“난 부모 복은 없어도 지도자 복은 있는 것 같다. 내가 인연을 맺은 코치님이나 감독님이 모두 날 아끼고 챙겨주셨다.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의 시기도 받았지만 내 입장에선 그분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하키 선수로 생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 감독은 영양실조로 빈혈을 달고 살았던 이선옥에게 빈혈약을 챙겨주고 아내를 통해 먹을거리를 준비해주는 등 각별한 관심과 배려로 일탈을 일삼았던 이선옥이 경주시청에서 뿌리를 내리게끔 큰 도움을 줬다.
이선옥이 성인이 된 후 또 한 차례의 위기를 맞이했던 이유는 지금의 남편 고철윤 씨(28)를 만나고부터다. 경주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고 씨를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선옥은 금세 사랑에 빠졌고 티격태격 잦은 싸움 속에서도 고 씨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휴가를 받아 남편과 데이트를 하던 중 크게 다퉜다. 너무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다 팀으로 복귀하는 시간을 놓쳤고 남편과 그 문제로 또 싸우다 ‘팀에 못 들어가게 됐으니까 날 책임지라’는 말을 하게 됐다. 남편은 엉겹결에 ‘책임지겠다’고 했고 그 후 곧장 시부모님을 찾아가 ‘같이 살겠다’는 선전포고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부지 같은 행동이었지만 당시 그런 ‘무대뽀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고 씨와 같이 살면서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하게된 이선옥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 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신혼 생활이 알콩달콩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해도 하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기혼자 신분으로 팀 복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저 신세 한탄만 하고 있다가 평소 친하게 지낸 선배가 서 감독님에게 내 심정을 대신 전했던 모양이다. 서 감독님이 다시 내게 연락을 하셨고 ‘운동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기에 냉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사실 감독님 입장에선 무리수를 둔 거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결혼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 감독님이 다시 날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걸 잊지 못한다. “선옥이 네가 결혼한 아줌마도 하키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라. 난 이선옥을 ‘하키의 전주원’으로 만들고 싶다.”
이선옥한테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생애 마지막 올림픽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도 출전했던 그는 당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더 이상 (올림픽에 대해) 욕심내면 안 될 것 같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엔 소속팀에만 전념하고 싶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결과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메달에 대한 욕심도 나지만 솔직히 연금도 타고 싶다(웃음).”
혼인 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이선옥은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이후로 결혼식을 미뤘다. 그리고 올림픽 이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한때 미움과 원망이 뒤섞여 자신을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던 그 분, 바로 어머니다. 이선옥은 강원도에서 혼자 투병 중인 어머니를 찾아가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엄마, 보고 싶었어.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