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IOC가 취했던 과거 비슷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IOC는 2004년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에 대해 구속기소가 되자마자 바로 자격정지 결정을 내렸고, 2006년 박용성 전IOC 위원의 경우 1심 선고가 난 후 자격정지조치가 내려졌다. 물론 이 두 케이스에서도 형평성이 지켜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이 같은 IOC의 결정은 즉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의 경우도 7월 17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7월에 소집된 IOC 윤리위원회와 8월 3일 소집된 IOC 집행위원회에서 논의가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어떤 소식도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국내 언론도 모두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아무 논의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삼성과 IOC에서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당시 제보 내용과 관련 삼성 측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삼성그룹 스포츠단의 이진원 부장은 9월 5일 “처음 듣는 얘기다. 삼성스포츠단에서 IOC 관련 업무는 내 담당인데 담당자 모르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다른 파트에서 일을 추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잘라 말했다. <일요신문>은 이 같은 답변에 따라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8일 <연합뉴스>가 ‘이건희 IOC 위원 일시 자격 포기’를 첫 보도한 후 IOC 공식홈페이지에서 찾은 문서는 앞서의 답변과 상당 부분 달랐다.
이 문서는 2008년 7월 18일자로 돼 있는 IOC 윤리위원회의 결정문으로 이는 2008년 8월 3일 IOC 집행위원회에서 통과된 것으로 돼 있다. 내용은 ‘IOC 윤리위원회는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한국에서 기소를 당하자 바로 이를 논의했고, 유죄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기로 했다. 이는 2008년 6월 아테네 집행위원회 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2008년 7월 15일 이건희 회장이 자크 로게 IOC 위원장 앞으로 자진 임시 자격 포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이건희 회장의 요청은 7월 18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윤리위원회 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8월 3일 베이징 집행위원회 때 윤리위원회의 이건희 자진 자격정지 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IOC의 이 결정문에 따르면 IOC는 이 전 회장이 관련된 한국의 ‘삼성특검’을 예의주시했다는 것으로 <일요신문>의 취재가 있었던 당시 이미 모든 결정이 난 상태인 셈이다. 물론 IOC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이 문제를 처리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채 감춰져온 부분에 의혹이 남는다.
IOC는 통상 윤리위원회 등 산하 위원회의 결정 내용은 그때그때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집행위원회 결정은 기자회견, 뉴스레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바로 공개한다. 예컨대 세계태권도연맹의 ‘맨체스터 돈 봉투 사건’은 6월 아테네 집행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 직후 알려졌다. 그런데 8월 3일 베이징 집행위원회에서 IOC 위원의 자격정지라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놓고 그 결정문을 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홈페이지에만 올린 것이다.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 등을 놓고 한국 스포츠 외교 위기론이 거론되는 가운데 벌어진 이 전 회장의 위원직 자진 사퇴는 과정상의 논란도 논란이지만 한국 스포츠 외교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체육계 인사들의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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