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훈현.(왼쪽 사진) 이세돌.(가운데 사진) 이창호.(오른쪽 사진) | ||
입단 1년차도 아니고 ‘반년차’에 한국리그에 참가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더니 첫 출전에서 허영호 7단, 한상훈 3단 등 유명 강자들을 연파하며 소속팀 광주 Kixx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 강 초단을 발탁한 감독 양재호 9단은 싱글벙글.
이렇듯 주요무대에서는 푸릇푸릇한 청춘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올드팬들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무대도 있다.
조훈현 9단과 서능욱 9단이 9년 만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제1회 SKY바둑배 시니어연승전 10차전. 7월 1일 SKY위성바둑TV 스튜디오를 찾아 두 사람을 만났다. 기자실은 만원이었다. 서능욱 9단은 6연승의 괴력을 발휘했고, 오늘 국수팀의 주장이자 마지막 주자 조 9단을 이기면 끝. 서 9단이 만루 홈런을 칠지도 모르는 일. 그거면 대박이고, 조 9단이 서 9단의 연승을 저지하며 반격에 나서 주면 그것도 좋으니까.
대국 시작인 오후 2시. 생방송이다. 조 9단이 1시 40분쯤 먼저 도착했다.
약속에는 철저하고, 특히 시간 약속은 어기는 적이 없는 조 9단이다. 몸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보다 수척해진 것 같기도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상한 일들에 엮여 마음고생을 했던 탓 같았다. 윤기현 9단의 바둑판 소송 사건과 이세돌 9단의 휴직계 사건.
“잘 지내시죠?…^^”
“잘 못지냅니다…^^”
“잘 되겠지요~^^”
“…^^ … ”
바둑이 시작되었다. 조 9단이 흑을 잡았다. 조 9단이나 서 9단이나 속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 두 사람은 쾌속정을 타고 반상을 누볐다. 그런데 그렇게 보아서 그랬는지, 조 9단의 대국 모습이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바둑통 속에 손을 집어넣어 돌을 잘그락거리지도 않았고, 돌을 집어 들어 착수하려다가 손을 거두어들이고, 전에는 수시로 그랬는데, 이번에도 아주 안 그런 건 아니지만, 몇 번 없었으며 중얼거림은 일절 없었다.
중반부터는 난타전이었다. 현란한 공방이었다. 패를 너무 좋아해 ‘패능욱’이라는 별명도 있는 서 9단. 아니나 다를까, 상변에서 큰 패가 벌어졌고 바꿔치기가 되었다. 바꿔치기에서 서 9단이 좀 손해를 보아 집이 부족해졌다. 세 불리를 느낀 서 9단은 조 9단의 대마를 향해 총공격의 나팔을 불었다. 조 9단의 대마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해설을 하는 백성호 9단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야~ 이거 대마가 잡힐 것 같은데요. 서능욱 9단이 오늘 7연승으로, 그야말로 멋지게 대미를 장식하겠네요.”
그러나 대마불사. 패가 있었다. 조 9단은 절묘한 수순으로 패를 만들어 냈다. 잠시 굳어있었던 조 9단의 얼굴이 펴졌다. 다시 바꿔치기. 흑 대마는 백진에 들어가 백돌 몇 점을 잡고 크게 살았고, 백은 패의 대가로 잡혀 있던 돌들을 살렸는데, 흑이 산 게 더 커서 승부는 그걸로 결정이 되었다.
복기가 끝나자 조 9단이 자리를 떴다. 예의 빠른 걸음으로 대국장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평소 조 9단의 운전기사를 자처하던 부인 정미화 씨가 아니라 큰딸이 밖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대마가 문제가 생겼던 것 아닙니까? ”
“문제가 생겼었지요. 우리 팀 체면 때문에…^^”
서 9단은 기자실로 내려와 아쉬움을 삭이다가 일어섰다.
전날 6월 30일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있었던 이세돌 9단의 기자회견과 7월 2일 있을 한국기원 이사회가 화제였다. 이세돌 9단의 기자회견에는 바둑기자 70여 명이 모였다. 온오프 매체 바둑 담당기자가 전부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다. 이세돌 9단은 사과했고, 한국기원 이사회는 이 9단에 대한 특별한 조치 없이 휴직을 인정했다.
이창호 9단은 7월 4일 창하오 9단과 후지쓰배 준결승을 두러, 열흘 전 춘란배에서 두 번 거푸 진 걸 설욕하러 7월 2일 일본으로 날아간다. 회식 자리에는 이창호 9단의 연인으로 ‘공표’된 사이버오로 이도윤 기자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 기자를 놀렸다.
“아니, 연인이 내일 출국하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가서 챙겨 주고, 격려해 주고 그래야지.”
이 기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중요한 대국 전에는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제일 좋은 거예요.”
“며칠 전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걸 뒤에서 지켜보며 따라갔는데, 아니, 왜 손을 안 잡는 거야. 손만 잡으면 사진 찍어서 올리려고 했는데.”
“잡기도 하고, 놓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근데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아직…모르겠어요.”
“아니, 사귄 지가 벌써 꽤 된 것 같은데, 아직이라니?”
“10개월밖에 안 됐어요.”
“오잉~ 10개월? 야아~ 10개월이면 요즘은 결혼해서 애도 낳는데…”
“에이, 이 사람! 규수한테 무슨 그런 천박한 농담을 …”
이 기자의 얼굴이 ‘비로소’ 붉어졌다. 거기까지.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우리를 슬프게 했던 윤기현 9단의 소식도 있었다. 최근에 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슬픈 얘기다. 술 담배 안 하고 테니스로 단련한 튼튼한 몸이라 누가 보아도 건강만큼은 자신 있을 것 같았던 윤 9단이다. 병인은 보나마나 스트레스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윤기현 이세돌, 그 폭풍우도 이제 지나가고 있다. 세월이 약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