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몽이었으면… 이천수는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가 이번 일을 더욱 확대시켰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 ||
“제가 죽어버리면 모든 일이 잠잠해질까요? 사람을 죽인 것도, 마약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절 무참히 짓밟으려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때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함을 나눴던 기자 분들, 제가 축구를 그만둬야 속이 편할까요? 절 어디까지 내몰려고 하시는지, 제가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도대체 그분들이 원하는 게 뭘까요?”
전 소속팀 전남과 또 한때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던 김민재 사장과의 갈등보다 이천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을 향해 연일 계속되는 공격적인 기사들이었다.
“제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면계약이 있다고 거짓말 한 건, 분명히 잘못을 시인했어요. 그런데 왜 절 죄인 취급하면서 그렇게 무차별 공격을 퍼붓나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언론 탓한다고 또 뭐라고 할 건가요? 비판을 안 받겠다는 거 아닙니다. 욕하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부분도 다 수용하겠습니다. 그런데 몰아가더라도 사람이 숨은 쉬게 해줘야 하잖아요. 이건 너무 심해요.”
이천수는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북받쳐서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가 이번 일을 더욱 확대시켰다고 생각하는 이천수는 최근에 김민재 사장이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덧붙였다.
“세상이 무서워요. 어쩌면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얘기하고 같이 상의했던 일을 자신은 전혀 모른다고 발뺌을 하는지….”
이천수는 김민재 사장의 주장을 듣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고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얘기들 때문에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서 “솔직히 여기서 또 내가 뭐라고 하면 김 사장님이 또 대응할 것 아닌가. 같은 사안을 놓고 핑퐁게임을 하듯 반복되는 게 싫지만 진실은 알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천수는 먼저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약금과 사인 부분과 관련해 정확한 설명을 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전남 구단 숙소 인근에 백운프라자라고 있어요. 지난 2월에 전남 임대건 계약 때문에 저랑 매니저 김철호가 같이 머물면서 사장님(김민재)을 통해 전남의 계약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근데 사장님이 가져온 계약 내용을 보니까 연봉 0원에 위약금 관련 내용이 있는 거예요. 처음 가져온 계약서는 구단, 에이전트, 선수, 이렇게 사인할 수 있는 칸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연봉 백지 위임은 받아들이겠지만 위약금만큼은 절대로 오케이할 수 없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다시 구단으로 들어가셨고 이번엔 선수의 사인난이 빠진 구단과 에이전트 사인난만 있는 계약서를 가져오셨더라고요. 그러면서 위약금과 관련해선 ‘형이 모든 걸 책임질 테니까 내가 사인하겠다’고 했고 전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사인을 하신 거죠. 그 자리엔 김철호도 같이 있었어요. 물론 제 매니저니까 제 편에서 얘기를 하겠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정말로 전 사인을 원치 않았고 사장님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인을 하신 거예요.”
그러나 페예노르트 이적 제안이 들어오면서 이천수는 임대 기간 중에 알 나사르로 이적을 결심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보듬어줬던 전남의 박항서 감독이 다칠 것을 우려해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게 됐다. 즉 연봉 9억 원 이상의 이적 제안이 들어오면 선수는 거부권이 없다는 이면계약 내용이다.
“6월 23일, 매니저 김철호가 강남에서 기자 몇 명을 모아놓고 제 이적과 관련된 간담회를 가지며 당시 이면계약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철호가 기자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김민재 사장님을 만나서 상의를 했습니다. 이적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 사장님과 감독님이 다칠 수 있으니까 두 분이 모르는 이면계약이 있다고 발표하겠다고 말씀드렸고 사장님도 그 내용에 대해 인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기자회견에서 이면계약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자신은 협의한 적이 없다면서.”
이천수는 행여 자신을 도와준 두 분이 이적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을 염려해 이면계약을 생각해 낸 것인데 지금은 그게 부메랑이 될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숙였다.
“운동만 하다 보니 선수는 이런저런 계산을 못해요. 감독님, 사장님을 보호하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떠올렸던 게 이면계약이었어요. 제가 제 무덤을 판 거였죠. 솔직히 팬들이 보낼 비난도 두려웠습니다. 전남과는 이미 정이 떨어졌고 이적 제의는 들어왔고 감독님과 사장님은 걸리고, 제가 이적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을 생각하다보니 그만….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이건 저도 듣고 철호도 들은 얘기예요. 사장님이 저한테 일본 히로시마 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 팀의 강화부장이 사장님 친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시즌 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제 경기를 직접 보기로 하셨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사장님도 전남과 제가 연말까지 계약이 된 걸 아시고도 시즌 중에 제 이적을 추진하려 했다는 겁니다.”
이천수와 인터뷰 후에 통화를 했던 에이전트 A 씨도 “김민재 사장이 이천수를 이적시키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면서 “전남과 계약이 된 상태에서 이적을 알아본 에이전트도, 또 거기에 동조한 선수도 다 문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천수는 “페예노르트에서 6월 1일까지 완전 이적과 관련해 전남에 의사를 물었었고 전남은 이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면서 “전남에서는 6, 7, 8월 중에 페예노르트가 이천수와 관련된 이적을 추진할 경우 보내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천수는 자신과 김민재 사장과는 에이전트 계약이 안 돼 있다고 밝혔다.
“사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저랑 대리인 계약이 돼 있는지. 그런 계약서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전남에 임대됐던 건 전남이 구단 대리인으로 김민재 사장님을 위임했던 것이고 사장님은 구단 대리인 자격으로 저랑 접촉했습니다. 사장님과는 2008년 7월 24일 계약을 해지한다는 계약해지서를 작성했어요. 그 후론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거죠.”
이천수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천수와 김민재 사장과는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가 아니라 선수와 구단 대리인의 관계였던 것이다. 만약 김 사장이 다른 팀으로의 이적 제안을 갖고 온다면 그 건과 관련해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면 되기 때문에 이천수는 김 사장과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친분을 가지고 인연을 이어갔던 것. 즉 구단대리인이 구단과 위약금과 관련해 직접 사인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천수는 김 사장이 주장하는 녹취록과 관련해 이런 입장을 표명했다.
“제가 위약금을 갚아주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서요? 정말 답답해요.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아세요? 제가 사인한 것도 아닌데 제가 위약금을 낼 책임은 없는 거잖아요. 사장님한테 절대 그 돈을 못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김)철호도 그렇고 주위에서 사장님이 혼자 감당하기엔 금액이 크니까 이적 팀에서 돈을 받게 되면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더라고요. 27일, 사장님이 광양 숙소로 찾아오셔서 그 위약금 얘길 또 꺼내셨어요. 그래서 사장님이 먼저 구단에 위약금을 내시면 나중에 이적팀에서 돈을 받은 후 일부 챙겨드리겠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덜컥 기자회견을 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완전히 다른 말을 하시면서. 법적으로 대응하시겠다고 하는데 전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시비비가 가려진다면 얼마든지 응할 생각이에요.”
그러나 이천수는 혼자서 에이전트, 구단과 싸우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말했다. 인신공격성의 비난을 듣는 것도 부모님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어머님이 쓰러지셨어요. 식사도 못 하시고 많이 아프세요. 못난 아들 때문에 부모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전화하실 때마다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이전에 제가 실수한 것도 있었고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고 또 오랜 시간 고통스런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천수이기 때문에 일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억울한 면도 있네요. 전 축구를 하고 싶고 축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절 가식이라고 매도하시든 나쁜 새끼라고 비난하시든 축구장에 있고 싶습니다.”
이천수는 보기 좋지 않은 모습으로 팀을 떠나 전남 드래곤즈 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축구를 하고 싶어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