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에이민 5단 | ||
우메자와(37)는 아마추어 시절, 명문 게이오대학의 바둑 대표선수로 활약할 때부터 빼어난 미모로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재원이다. 1970~80년대 대마킬러로 명성을 떨쳤고 2004년 일본기원 이사장에 취임했으나 바로 그 해 57세의 나이로 타계한 가토 마사오 9단의 제자이기도 하다.
1996년 프로 입문 후 초창기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2000년대 들어와 5단에 승단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2007년 ‘여류기성’을 쟁취하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지켜내, 롱런 가능성을 보였으나 이번에 씨에이민에게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국제바둑연맹 이사, 대학 강의, NHK 방송 출연 등 승부 바깥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씨에이민 5단은 1989년생으로 대만 출신, 대만 여성 프로바둑의 샛별이자 희망이다. 2001년 12세 때 일본에 건너와 같은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밍징(黃孟正) 9단(52) 문하를 거쳐 2004년 일본 여류프로바둑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입단했다. 14세 4개월. 이후 거침없이 내달렸다.
2006년 제8기 여류최강전에서 우승, 일본 여류프로바둑사상 최연소인 17세 타이틀 획득의 기록을 세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듬해 제26기 여류본인방 우승, 그 이듬해 제20기 여류명인 우승, 그게 다 일본 여류프로바둑사상 ‘최연소 여류본인방’ ‘최연소 여류명인’ 기록이었다.
▲ 우메자와 5단(위)와 만나미 4단. | ||
씨에이민도 올해 21세. 기성 획득 나이는 세 사람이 같다. 그러나 세 사람 중에서 씨에이민의 생일이 가장 늦다. 그러니 ‘사상 최연소 여류기성’은 씨에이민의 차지다.
요컨대 이제 일본 여류프로바둑은 씨에이민의 세상이 된 것. 나이로 보나, 발전 속도로 보나, 현재의 기세로 보나 당분간은 적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날 두 번씩이나 일본 바둑계를 천하통일했던 조치훈을 떠올리게 하는 아가씨다. 조치훈만 생각나는 게 아니다.
조치훈에 이어 린하이펑 9단(68), 좀 더 뒤로 가면 우칭위엔 9단(96)이 떠오른다. 우칭위엔, 나이가 올해 아흔여섯이다. ‘살아있는 기성’이란 칭호를 들을 때가 언제 적인지 까마득하다. 조치훈 앞으로는 왕리청 9단(52)이 떠오른다. 제일 가깝게는 요즘 일본 바둑계를 휘젓고 있는 장쉬 9단(30)이 있다.
일본이 바야흐로 현대 바둑을 꽃피우기 시작할 때 중국 대륙에서 청년 우칭위엔이 건너오더니 무림의 뭇 고수를 전부 제압하고 오랫동안 천하제일검으로 군림했다. 사카다 에이오(90)와 후지사와 슈코(1925~2009)가 나타나 주인공이 되고, 일본 바둑의 정통을 이어가는가 싶자 또 다시 이번에는 중국의 조그만 섬, 대만에서 린하이펑이라는 청년이 건너와 사카다와 후지사와를 밀어냈다.
오다케 히데오(68)를 맏형으로 하는 기타니 문하의 준재들, 이시다 요시오(62), 가토, 다케미야 마사키(59) 3총사가 뛰어난 기량으로 린하이펑을 제치며 세계 바둑계의 주연으로 한창 활동을 하는 중에 이번에는 한국에서 조치훈이라는 꼬마가 건너오더니, 어느 시점부터 급성장해 일본 바둑계를 10년쯤 휩쓸어 버렸다. 그리고 요즘은 앞서 말한 장쉬가 서열 4, 6, 7위의 ‘십단’ ‘왕좌’ ‘작은 기성’을 거머쥔 상태에서 서열 1위의 ‘기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장쉬는 이미 서열 2, 3위의 ‘명인’과 ‘본인방’을 지낸 적이 있어 이제 기성전에서만 이기면, 명실상부 제일인자에 오르는 것은 물론 7대 타이틀을 한 번씩 차지해보는, 이른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제는 여성 쪽도 한국 가수 보아를 좋아한다는 대만 아가씨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본 바둑의 운명이 좀 기구한 것도 같다. 그러나 그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바둑을 세상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알리고, 세계에 보급한 것은 일본이다. 그 공로는 크다. 그런 일본 바둑이 약해졌다.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볼륨은 아직 우리나 중국을 압도한다. 남자 기성전의 우승 상금은 4500만 엔으로 우리돈으론 5억 7000만 원이 넘는다. 세계대회 두 개를 합한 것보다 크다. 여자 기성전은 500만 엔. 이것도 6400만 원쯤 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