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수석비서관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소.”
부총리 김성준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부총리께서도 빨리 물러나셔야 할 것 같아요.”
이상희가 실소를 하면서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그 자리에 오래 계시면 청문회에 불려 나갈 거예요. 지금 물러나시면 국회의원에 다시 출마할 수도 있어요.”
김성준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도리질을 하고 돌아갔다.
“이 박사, 부총리는 내 대학선배이기도 하고 오늘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조한우가 승용차에 오르기 전에 이상희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대학선배라니까.”
“지난번 총선 때 부산에서 공천신청을 했죠. 그런데 그 지역은 대통령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버티고 있어서 도저히 공천을 받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부인이 백 아무개라는 점쟁이에게 점을 쳐보니까 공천을 받는다는 거예요. 부인은 점쟁이가 엉터리라고 했는데 부산 지역의 경쟁자가 갑자기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었어요. 부인이 그때서야 고맙다고 점쟁이에게 천만 원을 갖다가 주었다고 해요. 점쟁이를 만나는 부인을 둔 사람이 경제부총리예요.”
“정말이오?”
조한우가 놀라서 물었다.
“내가 왜 소장님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기분도 좋지 않는데 드라이브나 해요.”
이상희가 조한우의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요것 봐라. 그러잖아도 내가 먹어 치우려고 그랬는데 지가 먼저 꼬리를 치네.’
조한우는 가슴이 설레었다. 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을 이상희가 몰아붙여 그룹회장에게서 욕을 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은근하게 걱정을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인가. 주는 떡은 감사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조한우는 좋다고 대답했다.
시내를 벗어나 미사리를 달리기 시작하자 날씨가 화창해서 좋았다. 출렁거리며 흐르는 강물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길가의 가로수들은 잎잎이 푸르러서 녹향을 뿜어대고 있었다. 이상희는 조수석에 앉아서 하얀 블라우스의 윗단추 하나를 풀어 놓아 희고 뽀얀 젖무덤이 드러나 있었다.
‘설마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지? 분위기를 잡기 위해 술을 한잔 먹이고….’
조한우는 이상희를 쓰러뜨릴 생각에 골몰했다. 블라우스와 까만 스커트는 미국 직장 여성들의 전형적인 출근복이다. 미국 직장 여성들이 대부분 미니스커트를 입듯이 이상희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곁눈으로 흘겨보자 허벅지가 눈이 부시게 드러나 있다. 스커트 안에 손을 넣으면 여자의 비밀스러운 곳, 도톰한 부분까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룹 비서실장님이 전화를 걸어올 거예요. 그럼 달러를 많이 확보해 두라고 하세요.”
이상희가 슬림형 담배를 피워 물고 말했다.
“그룹에서 달러 사재기를 해야한다는 말이오?”
“KG그룹뿐이겠어요? IMF 신탁통치를 받으면 우리나라 재벌 1위인 오성그룹도 달러 사재기를 할 거예요.”
“기자들이 눈치를 챌 텐데….”
“기자들이 뭘 알겠어요? 기자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요. 사건이 터져야 허둥지둥 취재하기가 바쁘죠.”
이상희가 조한우를 향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조한우는 손을 휘저어 담배연기를 쫓는 시늉을 했다.
“귀여워….”
이상희가 조한우의 얼굴을 살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리요? 다 큰 어른한데 귀엽다니….”
“애인 있어요?”
“그런 소리 말아요. 나는 바른생활맨이라구.”
“이상희 씨가 애인이 돼 준다면 사양하지 않겠어요.”
조한우는 운전을 하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탓인가. 조한우가 작업을 해야하는데 오히려 이상희가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미모의 여자가 접근을 하는데 싫을 까닭이 없었다. 조한우는 입이 쩍 벌어졌다.
“미국 애인은 어떤 남자였습니까.”
“금발머리였어요.”
“외국인이었군요. 왜 외국인과 사귀었습니까.”
“남자들은 외국 여자와 사귀고 싶지 않아요? 인간의 욕망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요.”
팔당대교를 지나 청평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조한우는 운전을 하면서 이상희가 금발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모습을 잠깐 생각했다.
“만져 줘요?”
“예?”
“미국에 있을 때 운전을 하면 애인을 항상 만져주었어요.”
이상희는 조한우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핸들 아래로 손을 가져왔다. 조한우는 깜짝 놀랐으나 막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조한우 쪽에서 기대하고 있던 것 이상이었다. 조한우는 갑자기 아랫도리가 불끈 일어섰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다. 이상희의 한마디에 조한우의 남성이 뱀대가리처럼 고개를 치켜 세우고 있었다.
“역시 착한 아이네.”
이상희의 부드러운 손이 바지 지퍼를 열고 조한우의 남성을 움켜쥐었다. 이상희의 눈이 요염하게 번들거렸다. 조한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재빨리 주위를 살폈으나 쌩쌩 거리고 달리는 차의 운전자들이 조한우의 차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없을 것이다. 조한우는 청평까지 달려오는 동안 내내 구름을 타고 있는 듯 황홀했다. 그의 아내 주애란도 조수석에 타면 간간이 그의 남성을 만져주고는 한다. 그러나 이상희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이상희는 처음에는 손만 가지고 장난을 하더니 나중에는 핸들 아래로 머리를 넣어 조한우를 경악하게 했다. 숨이 막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노발대발하는 거요?”
KG그룹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들이 청평호반에 있는 모텔에 들어가 옷을 벗고 마악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였다.
“전화를 받아요. 비즈니스는 중요하잖아요.”
이상희가 조한우의 가슴을 밀어내고 말했다.
“창보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한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이상희는 조한우가 전화를 받는 동안에도 뒤에서 껴안고 애무를 해댔다.
“천박한 엘리트라고 했다면서?”
“그렇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말이었습니다.”
“대체 창보그룹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회장님이 노발대발해서 부산에서 상경하고 있소. 회장님이 6시까지 상경하실 테니까 두 사람 다 당장 회사로 들어오시오.”
“지금 말입니까?”
“6시까지 비서실로 들어와요.”
KG그룹 비서실장은 이상희에게 들릴 정도로 호통을 치고 전화를 끊었다.
“비서실에서 들어오라고 그래요?”
이상희가 풍만한 가슴을 조한우의 등에 압박하면서 물었다.
“그렇소. 지금 시간이 빠듯할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하죠?”
“아무래도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 같소.”
“저는 괜찮은데 소장님이….”
“아니오. 일단 회장님을 만나고 봅시다.”
조한우는 얼굴이 창백하여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여자와 발가벗고 있다가 일을 치르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다가 회장보다 늦게 도착하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상희는 조한우가 넥타이를 목에 걸자 자신이 직접 매어주기까지 했다. 남자에게 노골적이면서 섬세한 여자였다. 모텔을 나오자 이미 4시 30분이었다. 조한우는 빠르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희는 옆에 앉아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다.
“야! 니가 청와대를 우습게 알아?”
회장실로 들어가자마자 회장이 대로하여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