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수 삼성구조본 사장(왼쪽), 민수기 LG건설 고문 |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기존 재계 인맥에서 보면 섬같은 존재이다. 그의 최종학력이 지방 상고(부산상고 53회)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고졸학력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해 변호사 생활을 했고, 바로 정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그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넬 수 있는 인물이 극히 적은 것. 그의 고졸 인맥이 재계에선 그나마 유일한 그와의 연결통로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그의 고교 인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노 당선자의 최종 학력인 부산상고는 세워진지 1백년이 넘는 명문고이다. 실업계 고교가 퇴조하기 전인 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명문으로 꼽혔었다. 부산상고 동문회는 지난 4월 11대 동문회장으로 노 당선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신상우 동문(43회, 전 국회부의장)을 앉힌 뒤 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물론 노 당선자도 오랫동안 동문회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동문회 활동에 열성적이었다. 부산상고 인맥의 활동반경은 주로 경제계나 금융계쪽에서 많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학교가 위치한 영남권, 부산권에 뿌리를 둔 기업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둔 기업으론 삼성, LG, 롯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부산상고 인맥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현재 부산상고 출신으로 재벌 그룹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경영인은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사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부산상고 52회로 노 당선자의 1년 선배다.
이 사장은 노 당선자가 5공 청문회로 국민들에게 뚜렷이 각인되던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사장은 지난 봄 민주당 당내 경선 이후 노 후보와 가까운 재계인맥으로 꼽혔었다. 하지만 선거전이 격화되면서 그도 적잖은 마음고생을 한 듯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론사들이 발행한 인명록에 이 사장은 ‘65년 부산상고 졸업, 69년 고대 상과 졸업’이라고 썼지만 올해 들어 졸업연도만 표기한 채 고교와 대학 이름을 삭제한 이력을 공개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장은 이번에 고교후배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그가 가진 정재계 인맥의 범위가 더욱 넓고 단단해지는 결과가 됐다. 때문에 내년 삼성전자 주총에서 그의 부회장 승진설이 나돌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남권에 뿌리를 둔 기업인 롯데그룹에는 45회의 오용환 동문이 롯데월드 대표이사로, 48회 이승순 동문이 롯데호텔 이사로 있다. 노 당선자의 아들이 일하고 있는 LG의 경우 어느 그룹보다 풍부한 노무현 인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당선자 집안에선 부인 권양숙 여사가 부산의 LG화학에서 일한 적이 있고, 아들도 LG전자에서 일하고 있는 등 어느 기업보다 LG에 대한 친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 오용환 롯데월드 대표(왼쪽), 정종순 KCC 부회장 | ||
경쟁사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SK그룹의 경우도 부산상고 인맥이 자리를 잡고 있다. SK(주)의 황두열 부회장이 부산상고 49회 졸업생인 것. 황 부회장도 지난 봄 민주당내 후보 경선 이후 노 당선자의 흔치않은 재벌가 동문인맥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었다.
황두열 부회장과 같은 49회 출신 전문경영인으론 정종순 KCC부회장을 들 수 있다. 부산상고 출신 오너 경영인으론 9대 동문회장을 역임한 김찬두 두원중공업 회장(39회),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41회), 김영재 한국후지필름 대표(42회), 박안식 대창단조 회장(45회)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 전문경영인으론 신문석 농심 고문(42회), 삼성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안시환 안진회계법인 부회장(45회), 사공수영 전 금호케미칼 대표(47회) 등을 들 수 있다. 부산상고 출신 인맥의 또다른 줄기는 금융인맥이다.
노 당선자가 친한 친구로 꼽았던 동기인 이충정 동문도 제일은행 지점장을 거쳐 업무추진역으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노 당선자와 함께 은행입문 전 어망회사에서 함께 일한 적도 있다. 이씨 외에 노 당선자와 친한 동기들로 이상익 부산MBC 이사와 김병호 전 국무총리실 총괄조정관 등이 꼽힌다.
금융계 부산상고 인맥으로 51회 동문들을 먼저 꼽을 수 있다. 김지완 부국증권 대표, 옥치장 증권거래소 감사,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보, 정형배 산업은행 조사부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 시중은행에는 김옥평 한미은행 부행장(54회), 이수희 서울은행 상무(55회), 김성진 경남은행 상무(56회) 등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부산상고 출신들은 이번 대선에서 동문회 차원에서 노 당선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교를 나와 대학을 거쳐 중앙 관계나 재계에서 뛰고 있는 인물과 고교를 마치고 바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동문들과 약간의 시각차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교를 마치고 바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인물들은 100% 노무현 지지였지만 대학을 거쳐 중앙무대에서 뛰고 있던 인물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것.
이는 부산상고 출신인 재계의 모 인사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도 확인된다. 모 재벌그룹 요직에 있는 A씨는 ‘후보’ 신분이었던 노 당선자에 관한 인물평으로 화제에 올랐었다. 그는 당시 노 당선자에 대해 “일견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는 듯하지만 새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역량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노 후보를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잘 알기 때문에 국가장래를 위해서 노 후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A씨는 대선 이후 노 당선자를 향한 채널의 하나로 중용될 것이라는 하마평을 받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지금 그가 지난 봄과 같은 ‘소신’을 계속 피력할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