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3월 고 정주영 회장 빈소로 향하는 손길 승 SK그룹 회장(왼쪽)과 최태원 (주)SK 회장. | ||
이로써 지난 2000년 (주)SKC&C 부당지원 의혹을 계기로 맞붙었던 참여연대와 SK그룹은 3년 만에 다시한번 충돌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참여연대는 최태원 회장, 손길승 회장, 유승렬 전 구조조정본부장을 SK증권-JP모건간의 주식 이면거래와 관련한 배임죄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또 금융감독위원회에 SK그룹의 증권거래법 및 금융관련 법령 위반혐의와 JP모건사의 위법 행위에 대해 조사를 요청했다.
참여연대의 이번 고발은 SK그룹 최고경영자인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거론된데다가, 국내 대표적 재벌그룹의 도덕성 문제와 직결돼 있어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참여연대가 이같이 강공 드라이브를 건 배경은 앞서 발표한 금감위의 SK그룹에 대한 내부 조사가 너무 미흡했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어서 해당 기관으로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SK그룹은 이에 대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SK는 일단 SK증권과 JP모건 간에 있었던 주식 이면계약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한 상태다. 최태원 (주)SK 회장 역시 파문이 커지자 SKC&C 주식, SK증권 주식 등 4백억원의 사재를 쏟아부은 상황에서 검찰 고발을 당하게 된 것.
SK그룹 관계자는 “참여연대의 보도자료를 보고서야 고발사실을 알았다”며 “당혹스럽지만 사태 추이를 지켜보면서 향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SK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SK그룹의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의 시작은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지난 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그룹의 계열회사인 SK증권은 역외펀드투자에 의한 손실 등으로 인해 지난 98년 8월경 금감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고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SK증권이 적정한 영업용 순자본비율 및 재산채무비율 등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SK그룹으로부터 분리돼 운영되거나, 증권회사 허가취소를 받을 중대한 위기에 처한 것. 게다가 SK증권은 JP모건으로부터 역외펀드투자로 인해 발생한 투자 손실 2억달러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게 됐다.
재벌이 소유한 금융사가 경영난으로 인해 허가취소 처분을 받는다는 것은 해당 그룹 전체에 직격탄을 날리는 심각한 일이었다. SK증권은 투자손실금 지급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본조달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SK증권을 살리기 위해 SK그룹은 묘수를 짜내게 된다. SK증권이 JP모건에 대해 화해금으로 3억2천만달러를 지급하고, 대신에 JP모건은 손배소송을 취하하고, SK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약에 따라 JP모건은 지난 99년 10월14일과 11월30일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SK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4천5백50억원을 납입하고, 8천8백42만2천3백24주를 취득했다. 이 조치로 SK증권으로서는 급한 불은 일단 껐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SK증권과 JP모건의 화해계약을 체결하며 타 계열사인 SK글로벌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이면계약을 맺었다는 것. 이면계약의 내용은 SK글로벌의 해외자회사인 SK글로벌 싱가폴과 SK글로벌 아메리카가 3년 뒤에 JP모건의 SK증권 주식 중 일부를 매입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되사준다는 옵션계약을 맺은 것이 주요 골자였다.
결국 SK증권-JP모건간에 맺은 화해계약으로 인한 손실 중 일부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떠안은 셈. 이 결과 SK글로벌의 해외자회사 두 곳은 SK증권이 JP모건에 부담해야할 손해배상금 및 유상증자대금 중 1천4백36억원을 대신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JP모건의 옵션행사가 예상되자, SK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경 또 다른 계열사인 워커힐과 SK캐피탈이 SK글로벌 아메리카가 인수키로 한 JP모건의 일부 주식을 매입해주는 이중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사건의 개요다.
이 과정에서 SK증권이 이면계약 내용을 전혀 공시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SK그룹이 잘못을 인정함에 따라 지난해 12월13일 금감위로부터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과징금 11억8천2백50억원을 부과받은 상태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금감위의 처벌이 지나치게 약했다”며 최태원 회장 등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 회장의 고발과 관련해서는 참여연대와 SK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참여연대측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99년 10월 당시 최태원 회장, 유승렬 전 본부장 등은 SK글로벌의 등기이사로서 자회사의 경영을 감시, 감독해야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최 회장의 경우는 SK증권의 지배주주이자, SK글로벌의 이사로서 이해 상충관계에 있다는 점을 미뤄볼 때, SK글로벌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SK증권을 지원한 것은 최 회장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고 SK글로벌에는 손실이 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대주주가 법적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며 최 회장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의 경우 소액주주의 피해 등을 고려해 이미 SK증권 주식 8백8만3천9백68주와 SKC&C주식 4만5천주 등 총 4백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상황”이라며 “향후 유상증자 등 해결책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고발소식을 접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참여연대가 서울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함에 따라 향후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