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가 발칵 뒤집힌 이유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이 편법적인 방법으로 회사 지분을 확대한 의혹을 제기한 때문이었다.
참여연대는 “증권거래소 공시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정몽규 회장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대부분이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한 것.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혹은 정 회장이 지분확보를 위해 해외에서 발행한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대거 사들였다는 것이었다. 이는 올초 의혹이 불거진 두산그룹 경영 4세 박정원 사장의 지분확보 수법과 유사하다는 게 참여연대측의 논리.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편법 지분확대’ 의혹이 불거졌지만 정 회장과 현대산업개발측 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 ||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 정몽규 회장의 사무실이 있는 현대산업개발 23층에는 정 회장을 비롯해 이방주 사장, 사업본부장 등 핵심 경영인들이 속속 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진행된 긴 토론 끝에 이들은 일단 함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연대가 삼성, CJ, LG, 두산 등 재벌들은 골라가며 공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산업개발도 일종의 정해진 순번이 아니었겠느냐는 게 이 회사 관계자들의 반응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은 정 회장의 편법적 지분 확대 의혹과 관련해 외부에 “할 말이 없다”는 모르쇠작전을 펴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이광석 상무는 “자꾸 우리에게 어떤 입장이냐고 물어오는데, 딱히 답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문서를 확인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도 계속 검토중이다”고 덧붙였다. 이는 참여연대의 의혹 해명 요청에 대해 굳이 장단을 맞춰줄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참여연대가 정몽규 회장이 BW를 인수, 지분 확대에 나선 시기로 지목한 지난 99년은 정세영-몽규씨 부자가 현대산업개발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지난 99년은 정 회장 개인으로서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있는 한 해였다. 정 회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에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명함을 바꿔야 했던 해였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 96년 만 34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자동차 회사 회장으로 취임하며 남다른 포부를 펼쳐 보였다.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 사진을 늘 몸에 소지하고 다녔을 정도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의 내분으로 인해 지난 99년 꿈을 접어야했던 것.
이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자동차를 일찌감치 점찍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현대자동차 내의 내분이 일어나자 ‘왕회장’이 앞장서 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줄 것을 지시했고, 정몽규 회장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
이렇게 해서 ‘자동차맨’ 정몽규 회장은 ‘건설맨’으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이런 아쉬움 때문일까. 이후 정 회장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에만 몰두해오던 중 참여연대로 인해서 다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의 회장으로 선임된 것은 지난 99년 4월이고, 참여연대가 정 회장이 편법적으로 지분 늘리기를 시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같은 해 5월과 7월이어서 현대산업개발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
현대산업개발은 일단 이 문제에 대해 일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직후 금융감독원이 즉각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어서 함구만 한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