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지난 3월말 기준 총자산은 각각 74조4천억원과 74조8천억원. 둘을 합치면 국내 첫 지주회사로 출범한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1백7조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또 이들 두 은행의 합병으로 합병 시 수신점유율과 대출점유율은 각각 25%와 23.88%로 높아져 1위인 국민은행(37.99%, 41.49%)을 바짝 추격하게 된다. 영업기반인 점포수(8백95개)도 국민은행보다는 3백54개가 뒤지지만 우리은행보다 2백40개, 하나은행보다는 3백4개나 많다.
▲ 파업으로 인해 대란 직전까지 갔던 조흥은행 사태가 일단 락됐지만 신한-조흥 합병은 은행권에 또다른 형태의 파고 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6월 파업 당시 삭발한 노조원들이 본점안팎에서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다. 국민일보 | ||
1위인 국민은행은 그동안 압도적인 자산 규모를 토대로 시장지배력을 행사해 왔으나 실질적으로 경쟁 가능한 은행의 탄생으로 다소 긴장하게 됐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우리금융보다는 신한은행이 대형화를 통해 경쟁상대로 부상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물론 신한지주는 조흥은행 인수 후 3년 가량 자회사로 남겨둔 뒤에 합병한다는 방침이어서 2위 등극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경우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반면 국민은행은 제대로 된 경쟁은행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서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민은행은 합병을 먼저 성사시키면서, 그 동안내부정비를 하는 등 ‘내공’을 쌓아왔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합병 이후 이미 전산통합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구 국민은행 계열과 구 주택은행 계열간 인력화합을 위해서도 일정 부분 교차발령을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 신한-조흥은행은 앞으로 3년뒤 실제적인 통합을 이룬다고 봤을 때 현재 국민은행만큼 양측 인력간 단결력이나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3∼4년이 뒤처진다는 계산이다.
대기업 등 기업금융부문에 강점을 지닌 우리은행,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이나 투자신탁 및 증권대행업무를 홈그라운드로 여기는 하나은행 등이 새로운 경쟁자에 맞서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지 주목된다.
또 조흥·신한 합병을 계기로 중소형 은행들 역시 대형은행들의 고래등 싸움에서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선 대형화를 통한 생존모색이 불가피해졌다.
국내 은행의 개편으로 당장 ‘3약(弱)’으로 전락한 외환은행(자산규모 61조7천억원), 한미은행(49조4천2백8억원), 제일은행(36조5천억원) 등은 자의든 타의든 합병 물살에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외환은행의 경우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와 지분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은행권 재편 움직임에서는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은 미국계 벌처펀드인 론스타에 코메르츠 보유지분과 정부지분 일부를 일괄매각하고 아울러 자회사인 외환카드 경영권도 함께 넘기는 협상을 진행중이다.
조흥은행 인수를 추진했다 실패한 제일은행 역시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의 막대한 자금력을 토대로 다른 합병 파트너를 물색, 제2의 합병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매각을 통해 투자차익을 남겨야 하는 곳은 한미은행에 투자한 칼라일 펀드도 마찬가지다.
현재 칼라일펀드의 국내 투자수익률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한미은행 지분 매각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하영구 한미은행장은 “주당 1만3천원대를 넘어간다면 모를까 현재 주가수준에서는 대주주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 행장은 신한-조흥은행 간 합병을 계기로 한미은행이 다른 은행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준비중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양효석 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