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원 회장대행 |
KB금융지주 사태는 지난해 12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가 자체적인 인재풀 내에서 새로운 회장 후보를 선출한 후 불거졌다. 앞서 9월 황영기 전 회장 사퇴 이후 강정원 회장대행 체제하의 KB금융 회추위는 강 회장대행과 더불어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를 회장 후보로 올렸다. 하지만 이 사장과 김 전 대표는 “이사회의 선임 방식이 특정 인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중도 사퇴했다.
그럼에도 강 회장대행이 내정자로 선임됐지만 금융당국은 사외이사 제도가 독단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강 내정자와 사외이사들의 비리의혹 조사에 나서는 등 강도 높은 사퇴 압박을 가했다. 강 회장대행은 결국 지난해 12월 말 내정자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런 금융당국의 압박은 ‘관치금융’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른바 ‘강정원 사태’로 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회장 선임에 실패하면서 회장대행 체제가 길어지고 회장직 공석이 8개월여 지속되자 KB금융 회장 선출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내부적으로는 회장직 공석으로 인한 업무능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KB금융지주는 지난해 수익성 면에서 신한금융지주에 뒤지고 자산규모에선 우리금융지주에 밀리는 수모를 겪으면서 최고 결정권자인 회장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강 회장대행은 무엇보다 시급히 진행해야 할 회추위 구성에는 유독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온 반면 자신의 지배체제는 확고히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강 회장대행은 지난 1월 사퇴한 김중회 KB금융 사장을 직접 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취임한 김 전 사장은 KB금융 내에서 대표적인 황 전 회장 최측근으로 평가돼온 인물이다.
이처럼 회추위 구성이 늦어지고 강 회장대행이 지배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그가 정식 회장직에 재도전하기 위해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강 회장대행이 회장 입성을 위해 회장 선출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시기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금융당국과 정면 대결 양상을 보였던 강 회장대행이 실제 재도전을 한다면 정국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6월 지방선거 이후로 회장 선출을 늦출 것이란 분석도 뒤따랐다.
지난 3월 26일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공석이던 사외이사 3명의 자리가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 고승의 숙명여대 교수, 이영남 이지디지털 대표로 채워지자 회추위 구성 논의가 가속화될 것이란 예측을 낳았다. 그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이경재 전 행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주총회 당일 회추위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이사회에서 서서히 논의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최근까지 회추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지방선거 이후 회장 선출설’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가운데 KB금융은 지난 4월 16일 오후 이사진 간담회를 열고 “오는 4월 30일 사외이사 9명으로 회추위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작 이사회의 가장 주요한 현안으로 여겨지던 회추위 구성일이 사외이사 선임 뒤 한 달여나 지난 날로 정해진 것이다.
오는 30일 첫 회추위에서 회장 추천 및 공모 일정, 자격기준 등 세부사항을 정하고 절차를 밟는 데도 만만찮은 시간이 걸린다. 지난해 강정원 회장후보 선출 당시 회추위 첫 회의부터 선출까지 20일이 걸렸다. 게다가 KB금융 관계자에 따르면 최대한 빠르게 회장 후보를 정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회장 선출을 위한 주주총회까지 또 6주가 걸린다. 회장 선임은 6월에나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강 회장대행이 임기(10월)만 채우고 물러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1월 14일부터 시작된) 금융감독원 종합검사에서 문책성 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나오지 않는 이상 강 회장대행의 임기가 보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회장직 재도전을 위해 지방선거 이후로 회추위를 미룬다든가 하는 얘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고 구성 논의 과정에서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6월 지방선거 후 KB금융 회장 선출설’은 현 정권의 의도라는 얘기가 들린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6월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친 정권 인사가 ‘보은 차원’에서 차기 KB금융 회장으로 올 수도 있다는 관측과 함께 신임 회장 인선이 지방선거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경재 전 행장이 회추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된 배경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전 행장이 KB금융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이 의장이 현 정권의 특정 인물과 상당한 친분이 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KB금융 측은 “개인적인 친분은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눈에 띄는 대목은 벌써부터 현 정권과 밀접한 인사들의 이름이 KB금융 회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부분이다. 특히 올해 초부터 거론되는 한 인사의 경우 지난해 한 금융기관 회장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친 정부 인사가 KB금융 회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입단속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KB금융 사태 이후 ‘친 MB’ 성향의 인사들이 차기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며 “하지만 정부가 KB금융지주와 관련해서는 관치금융 논란으로 한 번 시달린 적이 있는 만큼 또 비슷한 논란에 휩쓸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