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재경부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 ||
지난 2월 초. 과천 정부종합청사 내에서는 때아닌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재경부 소속 공무원들은 아침부터 끼리끼리 모여 특정인의 거취를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이었다. 내용은 이 전 장관의 재경부 장관 컴백설. 이날 오전부터 과천 종합청사에 나돌기 시작한 이 얘기는 삽시간에 재경부 소속 공무원들 사이에 퍼졌다. 일부 공무원들은 만나자마자 이 얘기를 주제로 올리며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물론 그의 컴백에 대한 공무원들의 견해는 크게 엇갈리는 분위기였다.
이 소문은 2월 초부터 과천 청사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김진표 현 장관이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2월 안으로 물러나고 후임자로 이 전 장관이 기용될 것’이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눈길을 끈 부분은 김 장관의 퇴진설도 그랬지만, 왜 이 전 장관의 컴백을 두고 직원들이 술렁이고 있느냐는 점이다. 부처 수장의 교체는 때가 되면 있는 일이다. 또 과거에도 누가 새로운 수장으로 기용되느냐 하는 부분이 관심의 초점은 되긴 했지만 내부 직원들이 술렁일 정도는 아니었다.
재경부가 술렁인 것은 바로 새 수장으로 지목된 인사가 이헌재 전 장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재경부의 분위기는 술렁거렸다기보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 이에 대해 재경부 고위 간부는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이 워낙 경제 전반을 잘 알고 있는데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다. 특히 그는 강력한 업무추진력을 갖춰 직원들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재경부 직원들이 긴장하는 것은 부처의 일을 너무나 훤하게 꿰고 있는 인사가 장관으로 옴에 따라 예상되는 ‘피로감’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전 장관의 이력을 보면 재경부 직원들의 이 같은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1944년생으로 올해 환갑인 이 전 장관은 고시 출신으로 원래 기획원-재무부에서 공직자로 잔뼈가 굵었다. 그러던 그는 지난 79년 율산파동 때 연루돼 관료의 옷을 벗어야 했다. 그후 대우그룹, 신용평가업계 등을 전전하다가 DJ정부 출범 직후인 98년 고향 선배이자 고시 선배인 김용환 전 자민련 부총재의 천거로 금감위원장에 올랐다.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등 3개 금융감독기관을 합쳐 출범한 금감원(금감위)은 IMF 당시 경제계를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이 기관의 수장을 맡은 이 전 장관은 그야말로 막강 파워맨 그 자체였다.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DJ노믹스의 3인방으로 각광받던 그는 지난 2000년 1월부터 무려 2년 동안 재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마지막 경제관료생활을 했다.
그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의 에피소드는 지금도 재경부 직원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말이 비교적 느린 그에게 붙여진 재경부 내 별명은 ‘어눌한 천재’. 워낙 눌변이어서 자세히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못알아 들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경제에 관한 한 특정분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빠꼼이’여서 업무보고를 하는 직원들이 진땀을 흘려야 할 정도였다.
금감원장-재경부 장관 시절 이 전 장관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집무실에서 하루종일 TV를 시청했다고 한다. 업무보고를 위해 국·과장들이 방에 들어갔을 때 그가 즐겨보는 것은 골프나 바둑프로그램. 이 장면을 접한 직원들이 긴장을 풀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였다.
이 전 장관은 “저 친군 왜 드라이버가 저렇게 안나가지?”하고 업무보고를 위해 들어온 국·과장들에게 묻는다. 갑작스런 질문에 직원들이 더듬거리면 즉시 “대우문제 처리는 어떻게 돼가나?”하고 질문의 방향을 업무쪽으로 돌려 담당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업무보고를 하러 온 직원들에게 골프와 바둑, 업무 얘기를 오가며 질문을 던져 공무원들의 기를 죽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10분쯤 보고를 마치고 나오면 노련한 국장들도 등에 식은 땀이 흐를 정도였다.
특히 이 전 장관은 대부분의 사안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핵심을 뚫어보기 때문에 국장들도 자칫 말실수를 하거나 엉뚱한 변명을 했다가는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통에 혼쭐이 날 정도였다.
이 전 장관의 컴백설에 대해 긴장하는 쪽은 비단 재경부 공무원들만이 아니다. 그의 독선에 가까운 강력한 추진력을 경험한 재계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또 무슨 일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 장관은 금감원장-재경부 장관 시절 대우-현대-동아그룹 해체, 전경련 해체 등 초대형 경제사건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해 재계를 소용돌이속에 빠트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시장의 저항과 공무원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DJ정부 초기 반도체-자동차 빅딜과 같은 초유의 경제사건도 그의 추진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가 추진한 반도체 빅딜과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 관계와 재계에서는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재계는 가뜩이나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되고 있는 반재벌 성향의 정책으로 움츠러든 마당에 이 전 장관이 다시 재경부를 맡게 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걱정하는 분위기다.